카인의 유전자
톰 녹스 지음, 이유정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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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리랜서 기자인 사이먼 퀸은 정신분열증이 있는 형을 두고 있으면서 자신의 아이도 유전의 형질을 대물림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어느 날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의 이름이 드러내는것을 좋아하는 런던 경찰국 경감인 샌더슨으로 부터 살인사건을 듣고 현장에 달려가 본 결과 피해자는 끔찍한 형태의 고문으로 죽어 있었고 이어서 영국으로 부터 떨어져 있는 섬에 살고 있는 노령의 할머니도 다른 형태의 살인방법으로 죽어간 것을 알게 된다.  (나중에 중세 시대에 행해졌던 고문의 방법으로 죽은 것을 알게 된다. )

둘의 공통점은 많은 돈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살인자들은 정작 손에 귀중한 물품은 손도 대지 않았단 점, 죽은 이들은 프랑스 쪽의 바스크인들이었단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편 스페인인 할아버지와 역국에서 간호사였던 엄마와 결혼한 아버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변호사 데이비드 마르티네스는 부모가 어렸을 적에 사고로 죽은 이후 할아버지을 의지하며 살지만 어느 날 운명을 코 앞에 둔 할아버지로 부터 이상한 별 표시와 글씨가 있는 지도를 받게 되고 많은 유산액을 받는 조건으로 빌바오 레사카란 곳에 가서 호세 가로비요를 찾아 볼 것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바스크 지역으로 가게 된 데이비드는 그 곳에서 호세의 거처를 찾게 되지만 미겔이라고 불리는 바스크인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한 때 미겔과 연인이었던 에이미란 여인의 도움으로 그 곳을 빠져나오게 된다.  

이후 에이미의 도움으로 같이 지도에 나타난 성당의 장소를 찾아가게 되고 성당의 구조에서 문들이 모두 2개씩이란 점, 그리고 호세를 만나 본 결과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알려하지 말란 경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점차 할아버지와 부모에 대한 의문, 그리고 점차 바스크인들이 당했던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 구르 지방에서 행해졌던 카고라 불린 불가촉 천민에 대해서 행해진 홀로코스트에 대한 일을 알게 되면서 미겔의 끊임없는 추격을 당하게 된다.   

즉 성당의 두 개의 문중 하나는 카고만이 다닐 수 있었으며 이들은 고립된 환경에 살게 된 이후로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 형질의 변이를 일으키며 식인습성을 갖고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이먼 또한 죽은 자들의 신체중 일부가 물갈퀴처럼 붙어있는 유전 이상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앵거스의 존재와 그를 지도한 교수를 알게 되면서  성경과 연관된 또 다른 인종이 있다는 가설하에 행해진 핍박에 대한 얘기와 유전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울러서 그것을 보관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프랑스에 있는 수도원에 가게 되고 그 곳의 비밀 지하도에서 문서 보관을 하고 있던 수사로 부터 그 비밀 문서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 교황청의 사람들이 가져갔단 소릴 듣게 된다.  

데이비드 또한 에이미와 함께 카고의 마지막 생존자 엘로이즈와 함께 캄팡으로 피신해 가고 그 곳에 이미 와 있던 호세로부터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이 바스크인인줄 알았지만 카고였단 사실을 알고 부터 히틀러의 유전자 검사 정책에 따라서 따로 격리 수용되었던 구르 지역에서 벗어나고자 같은 종족인 카고인들을 생체실험에 이용할 수 있게 도모했단 점, 살아난 카고인들은 많은 돈을 받고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게 된 과정,  아들인 미겔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수치스러움과혐오에 젖어서 이를 안 자들은 카톨릭 교회의 다른 분파인 극우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서 이 일을 처리해 가고 있단 점을 알려준다.  

자신 또한 카고인일수도 있단 불안을 안고서 엘로이즈가 도망간 나비로비까지 간 두 사람은 그 곳에서 앵거스와 나중에 사이먼까지 합류, 우여곡절 끝에 비밀 문서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체코의 한 성당이 통하는 비밀 지하도로 가는데 성공한다.  

그 곳에서 홀로코스트에 동참했던 피셔가 남긴 자료를 읽게 되지만 이어진 미겔의 추격으로 우여곡절 끝에 그는 죽게 되고 모종의 경찰과의 함의에 의해 이들은 그 현장을 벗어나게 된다.  

다빈치 코드를 연상케 하는 카톨릭 교회라는 종교집단과 그들이 믿고 있던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라 불린 인격체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과를 토대로 히틀러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방관했어야만 했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작가는 픽션이란 장르를 통해서 고발하고 있다.  

수천년간 떠돌아 다녀야했던 유대민족의 우수성에 대해서, 오직 순수한 혈통인 아리안만이 이 세계를 지배하게 할 수 있도록 조장한 히틀러의 그릇된 우생학적 발생경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유태인 뿐만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행해진 두 건의 홀롴코스트를 통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어떤 발생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진 민족으로 알수 없는 카고란 인종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던 이 책은 성경을 모태로 작가의 상상의 나래에 깃을 달아서 우리에게 진실된 사실을 말해주고 아울러 종교란 큰 테두리안에 갇힌 성직자들과 극우세력들에 의해서 아무 잘못도 없는 인종들이 생체실험에이용당했단 사실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종교와 역사, 그리고 과학적인 힘을 어느정도까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카인의 유전자란 이 책은 소설안에서 이루어진고 있는 액션과 역사적인 사실, 건축에 대한 설명, 인종이 어떻게 고립이 됨으로서 인종의 변형이 이루어지고 살아가게 되는지의 현장, 자신의 고유한 민족성과 모국어 유지에 대한 긍지로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바스크인에 대한 실정등, 시종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충분히 지닌다.  

다만 해결이 되는 과정에서 너무 방대하게 이동의 거리가 넓고 끝 마무리 부분에서 미겔과 비밀문서에 대한 얘기를 경찰에 넘김으로써 그 현장을 벗어난다는 점은 너무 허황된 점으로 비쳐보인다. 

적어도 피셔의 유전학적인 형질 검사가 사실이란 토대를 두고 이야기 설정을 했다면 이런 큰 사건을 두고서 경찰같은 소규모집단과의 거래보다는 국가와 카톨릭교회란 거대한 집단을 상대로 해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카고란 인종에 대해서. 그리고 아프리카의 홀로코스에 대해서 알아진 역사적인 사실은 글로벌화되가고 있는 세계의 현상을 볼 때 이런 일은 같은 인종으로서 더는 하지말아야할 일임을 일깨워주는  한 편의 따끔한 채찍질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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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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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의 마지막 완결(?) 편이다.  

저자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관계로 이후의 이야기는 그저 우리의 상상속에 맡겨두어야 하는 아쉬움이 정말 크지만서도... 

2부에서 아버지와 의붓 오빠와의 혈투 끝에 미카엘에게 발견된 리스베트 또한 머리에 총과 어깨, 엉덩이에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후송이 되고 그 옆쪽에 죽은 줄로 알고 있던 아버지 또한 병실에 누워 있으며 오빠인 니더만은 도망을 간다.  

이후 병원에서 수술로서 간신히 살아난 리스베트는 완치 후 그녀를 다시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사포내의 알려지지 않는 비밀존재의 집단인 섹션팀에 의해서 전.현직 관리와 직원들의 긴밀한 계획하에 숨막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거 사포내의 비밀 조직인 섹션의 팀장이었던 에베르트 굴베리는 자신의 후임자였던 클린턴까지 섭외해서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서 했던 살라첸코(리스베트 아버지)의 존재 무마와 리스베트의 정신병원 감금사실과 다시 연장하기 위한 계획에 끌어들인다.  

병원으로 간 에베르트는 살라첸코를 권총으로 죽이고 리스베트까지 죽이려 했지만 미카엘의 여동생이자 리스배트의 변호인의 행동으로 죽음을 면하게 되지만 에베르트는 정작 자신이 앓고 있던 암이란  병을 핑계로 노인성 정신질환에 시달린 미친 퇴직자 처럼 보이게 해서 자신 또한 자살을 유도하게 되지만  이 또한 수개월에 걸친 생명호흡장치에 실달린 끝에 죽는다.  

한편 부블란스키 경찰팀은 리스베트의 상사였던 아르만스키에게 같이 이 사건에 대한 동조를 구하게 되고 아르만스키는 사포의 헌법수호대 대장 토르스텐을 만나서 이 사건의 배후를 조사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사건의 전개는 이 뒤를 캐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점차 베일이 벗겨져 나간다. 

병실에서의 의사 도움으로 팜 PDA를 받게 된 리스베트는 미카엘의 주도면밀한 행동으로 인터넷 연결이 되면서 해커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낙인을 찍은 텔레보리안 의사의 인터넷 메일 해킹과 함께 검사의 인터넷 해킹도 시도하면서 미카엘에게 정보도 주고 자신만의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드디어 법정에 서게 된 리스베트는 모든 사실을 자선전으로 내면서 이의 사실들을 변호인을 통해서 낱낱이 밝히는 데 성공을 하고 텔레보리안 및 섹션의 모든 관련 인물들은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되면서 풀려나게 된다.  

법적으로 자유인이 된 리스베트는 아버지가 남겨준 많은 유산의 정리 도중 한 건물에 다가가서 관찰 하던 중 니더만을 발견하게 되고 그와 자신의 친구인 미리암 우를 곤경에 빠뜨리게 한 일당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 기지를 발휘, 모든 이들을 소탕하는 데 일조를 하면서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작가가 설정해 놓은 긴박한 상황설정이 시종 책을 손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2부에서 안타깝게 리스베트가 살았는지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이 끝났기에 이번 3부는 정말로 독자들로 하여금 시종 두근거리게 하는 맘과 함께 이런 법의 테두리에 갇힌 리스베트가 어떻게 해결이 되어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하는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게 만들었다.  

3부는 공권력이 행하는 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국민이 어떤 식으로 사회에서 매장이 되어갔으며, 그것을 파헤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애쓰는 피말리는 노력의 산물이 주 기둥을 이루고 있다.  

여기엔 미카엘의 뛰어난 상황 포착과 그 반경을 이용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자신만의 장기를 이용한 머리 회전과 리스베트의 해킹 실력이 시종 읽는 재미를 주기에 전혀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이와는 또 다른 줄기인 다른 매체회사로 옮긴 오랜 연인이자 친구인 미카엘의 여친인 베르예르의 모함사건이 겹쳐져서 또 한 번 리스베트의 현란한 해킹솜씨도 빛나고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해결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은 변호사에게도 자신의 속내를 시원하게 내보이지않는 맘의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가련한 여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아버지의 그릇된 성정에서 비롯된 가정사의 비극을 공권력이란 힘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하에 여지없이 리스베트란 한 여자아이의 성장기를 무너지게 했고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어떻게 보상을 해 줄 것인가하는 물음을 던져주게 한다.  

법으로 부터 당당히 스웨덴 국민으로서 복권이 된 리스베트가 처음 한 일은 자신의 이름으로 여권을 내밀면서 공항을 출국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한 일의 묘사는 그녀 자신도 스스로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로 어색함에 둘러쌓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미카엘에 대한 자신의 감정정리, 미카엘이 수사과정에서 만나 다시 제 3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자유분방한 나라답게 성의 자유로움과 그 여동생이 오빠에 대해 꿰뚫고 있는 인물묘사는 같은 형제지만 서로 터치를 안한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그대로 보여진단 점에서 우리의 동양적인 사상과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스웨덴에 돌아온 리스베트에게 아무일 없었단 듯이 말하는 미카엘의 태도는 리스베트로 하여금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하는 원동력이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게 한 모태가 되기도 한다.  

그의 방문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하게 사람간의 교류를 인정하게 된 리스베트의 다음 활약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주고 있지만 개인의 인권권리차원 보호를 위해서 맞서 싸운 아마존 같은 여전사 리스베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총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 관통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각종 성적인 억압, 협박, 강간, 매춘행위 그리고 사회에서 묵인하다시피하는 정신병력의 환자 분별과정의 오류로 인한 인권의 말살,  민주사회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공권력의 힘이란 논리 앞에서  인권권리의 상실을 작가는 큰 테두리안에 갇힌 한 여인을 대두시킴으로서 우리에게 소설적인 묘미와 함께 큰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글 솜씨를 남기고 갔다.  

때론 소설이 더 실화적일 때가 있듯이 비단 리스베트가 겪었던 이 모든 일들이 사회성 짙은 고발문학이란 점에서도 이 소설을 읽는내내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새로운 제목인 "벌집을 발로 찬 소녀"란 제목으로 출간이 되지 않았기에 전작인 밀레니엄 시리즈 3부인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으로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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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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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신혼부부가 있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곰스크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그 아버지 또한 평생의 꿈을 곰스크로 가는 것으로 살아간 사람이었다.  

당연히 남자도 성인이 되서 부인을 맞이하고 동경해 있던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많은 돈을 들여서 차표를 구입,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정작 부인은 그다지 흥분에 쌓이지 않는 모습과 피곤함을 보이던 차에, 기차는 잠시 정차를 하게 되고 부인은 잠시 내려서 쉬어 갈 것을 권한다.  

멀리 보이는 풍경과 기차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조바심을 내지만 여자는 아랑곳 없이 풍경에 빠져들고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만다.  

이때부터 간이식당에서 잠시 기차표도 다시 벌겸해서 아내와 남자는 주인여자의 일을 거들면서 불규칙하게 정차하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사이 아내는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트이게 되고 하나씩 집안 살림의 모습을 갖춰나가지만 남자는 여전히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마침내 기차표를 마련했고 기차는 오게 됨으로써 남자는 기차에 오르지만 정작 아내는 자신이 힘겹게 마련한 안락의자와 함께 같이 갈 것을 주장하고 실랑이를 벌이다 아내의 임신사실을 알게되면서 기차에서 내리게 된다.  

아들이 태어나고 마을의 선생님이었던 사람의 후임으로 졸지에 선생님이 된 남자는 마당이 있고 정원과 꽃이 있는 집으로 옮기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지만 뜬금없이 하늘과 저 멀리 기적이 울리는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멈추질 않는다. 

둘째 아이로 여아가 태어나면서 자신의 입에선 곰스크로 가잔 말은 끝내 내뱉을 수 없음을 안 남자는 곰스크를 그리워한다.  

아주 단순한 소설이다. 얆은 두께의 단편이지만 이미 대학가나 연극계에서, 그리고 방송에서도 방영이 됬다고 하는 이 작품은 (정작 나는 문인들이 추천해서 알았다.) 정작 독일에서도, 이 작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그리 없다는 점에서 희소성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의 남자는 막연히 곰스크를 동경하면서 자랐고 그것이 결혼으로 인한 여행이 빌미가 되어서 떠나게 되지만 정작 발목을 잡힌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여기에 부인은 곰스크로 정착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굳이 그 곳으로 가려는 남자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곰스크에 가면 확실한 뭔가가 있냐고 묻는 말에 남자는 확답을 주지 못하는 데서 곰스크로 가려는 그의 희망은 멀어지기만 한다.  

나는 오늘도 왜 나만의 이런 생각들과 싸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싸움을 할 권리가 없는지도 모른다. 자가가 선택한 바로 그 궤도를 달리는 게 인생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인간에겐 허용되지 않는 교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p 11 

이처럼 잠시 머물것이란 생각속에 맘은 곰스크로 향하는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맘속엔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거죠?" 라고 오히려 되 묻는다. 

아이가 태어남에 따라서 또 잠시 머물것이란 기대속에 선생님 노릇을 하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준 노 선생님은 그와 같은 심정을 이런 말로 대변해 준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의미 없는 삶이 아니예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란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p61 

누구나 성장하면서 나만의 곰스크가 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던, 정신적인것이든 간에- 

하지만 일부만이 이런 나의 곰스크로 가는 행운을 잡을 수 있으며 그런 도착성으로 인한 만족과 그안에서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실로 인생에 있어서도 큰 행운이랄 수 있다.  

그 만큼 나의 곰스크로 가는 여정은 위의 소설처럼 뜻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설사  의지를 갖고 있어서 행한다고 해도 윗 소설 처럼 여러가지 봉착된 여건 때문에 포기를 하고 맘 속에서만 그리워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남자는 항상 가족이 불어나고 안정된 직업도 있지만 언젠가는 , 언젠가는 하면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동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의 일생이 실패했다곤 말 할 순 없다. 전직 선생의 말처럼 그가 원해서 머물렀던 인생이 지금의 인생이 되었고 자신 또한 젊은 날 남자처럼 곰스크를 동경했지만 비로소 인생의 노년에 들어서보니 이렇게 살아온 인생 또한 자신이 원한 삶이었고 만족한다는 말엔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만약"이란 낱말이 주는 단어는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이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박차고 나올 용기를 부린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또 다른 길로 들어설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기에 우린 현재의 삶을 살면서도 계속 곰스크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아마도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대한 결론은 작가가 말한 윗 부분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원한 삶이고 어쨌든 그것이 실패였든 , 성공이었든 간에 이미 곰스크는 어떤 생각을 하기에 따라서 현재진행중인지, 과거형인지를 결정지어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외에도 작가의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엄마에게 드리려던 양귀비에 얽힌 얘기. 삶의 회의에 젖은 철학자가 밝은 면의 화가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희망 얘기, 자신의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섬세한 포착과 더불어서 부인 구하기에 나선 고향 청년과 마을 처녀의 약혼 이야기는 읽는내내 훈훈한 시골사람의 전형적인 삶을 엿보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인생을 향한 자신의 철학적인 메세지를 아주 간결하면서도 읽는 내내 뜻을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글 솜씨는 그가 엮은 내용이 아주 적다는 데에 책장을 덮으면서 또다시 아쉽단 생각을 하게 했다. 

여러면에서 자신의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게 하는 이 "곰스크..."는 아주 얆은 책이지만 그 안에 내포한 내용만큼은 어느 책이 가질 수 없었던 인생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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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 믿음에 갇힌 여자들
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뜨인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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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6년간을 중동에 나가 있으면서 그간 자신이 직접 겪었고 가까운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서 , 또는 그 사회에 들어가서 경험했던 일을 엮은 책이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거부당하는 저자- 

이유인 즉슨 남자와 같이 동행을 하지 않았단 점으로 인해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 어이없는 상황은 실제이고 현재 이슬람 나라에서 여성들의 지위에  대해서 생각케하는 제도의 한 일부분이다.  

이란은 호메이니의 혁명 후 기존의 샤에 의해서 행해졌던 여러가지 시행된 일들이 일부 후퇴를 당하고 전통의상을 입으면서 생활하는 보수적인 사회로 돌아갔다.  

호메이니의 결정이 그런 것이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런 것이었고, 여성들이 남자들의 축구경기는 비록 아들과 같이 대동한다치더라도 관람 자체가 안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일부다처제의  관습도 실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규정짓지는 않았다는 점, 즉 모든 부인들에게 공평하게 대할 수 있는 자라면 허용이 됬단 점, 간통에 의한 돌팔매질도 코란에는 그런 행위가 없다는점, 2대 칼리프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오늘 날까지 행하여졌단 점에서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작은 부분을 수정해 준다.  

이슬람 특유의 조혼제도로 인한 여성들의 피해현실, 할례에 의해서 출산 때마다 무수한 고통을 겪는 여성들의 현 실태를 꼬집는 현장의 묘사는 이 모든 행위가 이슬람에서 권장한 사항이 아닌 오랜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관습이 이슬람이란 종교가 혼합이 되면서 굳어졌단 점에서도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중동에 위치한 이집트는 비교적 자유로운 여성의 활동이 있는 나라라고 하지만 작가의 비서였던 여성의 말과 행동에서조차도 이슬람의 법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부국인 사우디에선 아예 여성의 존재 자체는 집 안에서만 있어야하는 존재로 외출시 아들이나 남편, 집안의 남자들과 동행시에만 가능하며 이마저도 얼굴과 손만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린 천을 덮고서야 가능하다. 

운전 자체가 용납이 안되면서도 대학의 학문과정중엔 운전학과가 있단 사실, 왜냐하면 운전자가 차가 고장났을 경우 이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확인차 필요함이란 말엔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단 생각이 든다.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밸리댄서들의 보존방식은 제쳐두고서라도 그들이 돌연 활동을 중지하고 베일로 돌아간다는 발표는 이 이슬람이란 종교가 어떻게 한 여성이기 전에 사회적으로 한 인간을 구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의 한 아이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낳은 엄마, 그리고 사랑에 빠져서 두 번째 부인을 들인 아버지로 부터 이혼의 권유를 받던 엄마가 끝내 친정으로의 복귀를 포기하고 자신의 양육을 빼앗길 위험에 돌부처처럼 평생 남편의 사랑을 포기하고 두 번째 부인과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씁씁히 내뱉는 과정은 종교의 힘을 떠나서 인간이 인간이 정한  제도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누굴 위한  정책인가 하는  일부분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함을 준다.  

여성의 선거 자체란 있을 수 없으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한 터키에서 마저도 여성이 정계에 진출하려하자 비판의 소리를 높인점, 다른 나라에선 아예 여성은 대통령 선거에 나올 자격조차 주지않는다는 점, 돌팔매시에 금방 죽이지 않되 서서히 고통을 줘 가면서 죽이는 방법으로서 신체의 한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에선 간혹 신문에서 조차도 나오는 기사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단 점에서 종교의 무시한 권력을 새삼 느끼게된다.  

하지만 비단 이런 비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이 이란의 라프산자니의 딸이 이슬람 여성들만 출전해서 경기를 이룰 수 있게 도전해 본 이슬람여성 운동경기대회, 전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의 부인인 미국인 출신 누르왕비의 정계활동에 맞춘 여성에대한 정책, 미국에서 공부 하다가 만난 이슬람 남편을 둔 미국여성이 어떻게 자신이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시엄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친정인 미국을 오가면서 절충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일부 불편한 진실을 다소나마 안정을 유지시켜준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일부 진보적인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돌팔매라든가 할례의 관습은 이슬람에서 행하라고 한 적이 없는 일라고 하면서 정작 그들은 그것이 사실은 이슬람 태동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행해왔던 관습이었음을 왜 주장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 남편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여성의 재판을 보면서 같은 영국인이라도 자신이 겪어 본 중동의 실정을 알지 못하는 한 재판의 결정 상황은 180도 다른 방향으로 진행 될 수 있단 점에는 문화의 이해와 종교가 세속에 얼만큼의 관여를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 작가는 성기절제, 은둔생활, 베일 사용만이 여성을 위한 일이 아닌 이것을 행함으로써 여성의 욕망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숨어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두고서도 불평등하며 남편으로 부터 이혼하겠단 말을 세 번 들으면 이혼 성립이 된다는 것 자체가 남녀 불평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중동에 이어서 중아아시아 이슬람권에서도 민주화의 바람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작 서방세계들과 러시아는 전전긍긍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데, 천연가스를 둘러싼 자원의 이해 분배에 있어서 자칫 자국의 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는 점에서란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의 정작 고유한 좋은 교리와 그것에 맞춰서 살아간다면 이처럼 여성이 고통받는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이 시대의 참 설명만으론 좀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단 생각이 들게한다.  

내부의 비판없이는 잘못된 관행자체를 고칠 수 없는 폐쇄된 이슬람이란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삶은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투쟁의 무기는 결국 폭탄, 총, 대규모의 검거가 아닌 대화란 말이 입가에 맴도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조선시대의 가풍에 젖어서 열녀문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슬람에 있어서 명예살인이 용납되는 한 여성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성의 지도하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고 이런 고리가 근절되지 않는 한 오늘도 여전히 이슬람의 여성들은 자신의 딸에게까지, 아니 그 이후의 세대까지 결코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생각의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슬람의경전인 꾸란- 

이 꾸란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성과 남성의 공존시대가 존재 할 수 있을 터인 지금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비록 조그만 시도라 할 지라도 안해본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집힌 여성들만을 위한 제도가 확층되었음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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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돔 1 밀리언셀러 클럽 111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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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스터스밀이란 마을에 전직이 이라크 파병 군인이었던 데일 바버라, 일명 바비라 불린 주인공은 그 곳 마을의 중고차 사장이자 마을의 부회장인 짐 레니의 아들 주니어 레니와 그 패거리들에 의해서 앤지란 여학생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이를  계기로 마을을 떠나게 되는 과정에서 마을 전체를 감싸고 내려오는 돔의 존재를 확인한다.  

주니어 레니는 그 시각 자신의 싸움을 증언한 앤지를 죽이고 그녀의 집에 있는 식품보관고에 넣어두고 연이어서 마을 의회 의장이자 아버지 하수인인 얼간이 앤디샌더스의 딸인 도라까지 죽이고 같이 보관한다. (머리에 통증이 있는 증상을 보건대 뇌종양을 앓고 있다. ) 

마을 전체가 이웃 마을과 경계가 지면서 마을은 소리없는 공포로 쌓이고 바비의 노력으로 전직 상관인 콕스 대령과 통화가 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게 된다.  

연이어 새 떼가 부딫쳐 죽고 최초의 비행기 폭파가 되어 떨어지고 마을로 오려던 차들이 연이어서 부딫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돔 근처엔 알수 없는 전기 기류가 흐른다.   

한편 마을에선 유일한 신문사이자 소유권과 편집권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줄리아 셤웨이가 바비와 같이 행동을 하게 되고 마을에선 발전기를 돌리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프로판 가스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하지만 마을의 프로판 가스를 자신의 비밀 장소에 옮겨놓고 마약을 만들어 판매를 해서 이익을 취득해온 빅 짐의 계획에 따라서 마을은 점점 전기가 끊기고 식품까지 판매중단을 함으로써 혼동이 오게 된다.  

치밀한 계획하에 마을의 주니어 레니와 그의  망나니 같은 친구들을 경찰로 임시 채용하면서 마을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그들의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빅 짐은 자신의  그간 해 온 행동에 이의를 제기한 목사와 경찰서장의 부인을 죽이면서 그 시체 처리를 아들에게 맡기면서 공동 범죄자로 마을을 장악해 나가고 그 살인의 죄를 바비에게 씌워 철창에 가둔다. 

나라로 부터 대령으로 승진한 바비지만 전혀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조 라는 아이에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돔의 원천지가 어디인지 알아보게 하고 조는 친구들과 마을 위쪽 과수원 근처에서 자주빛을 띠고 있는 상자를 발견하면서 돔의 정체를 알아간다.  

빅 짐의 하수인이자 마약중독자요, 마약을 만들고 있는 필 부시는 자신의 부인이 주니어 레니 무리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하면서 아들을 남겨두고 권총으로 그들의 일행을 죽이고 자신도 권총으로 쏴 자살한 사실을 알고 자신 또한 아내와 딸마저 이 세상에 없는 사실로 괴로워하던 얼간이 샌더스가 찾아오면서 둘은 둘도 없는 마약으로 빠져들고 프로판 가스와 마약을 찾으러 오는 빅 짐의 무리를 없애기로 의기 투합한다.  

프로판 가스를 찾으러 온 이들과 싸움을 벌인 끝에 폭파장치를 누르고 죽은 이 둘은 온 마을을 화재 쓰나마로 몰고 간다.  

전체 마을 주민 중 바비 일행은 과수원 산 위로 피신해 가고 빅 짐과 그의 부하 카터는 반공호가 있는 마을회관으로 피신해 가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연기로 인해서 바비의 일행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 있던 차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간 바비와 줄리아는 그 상자에게 더 이상 이런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부탁하면서 돔은 서서히 걷히게 된다.  

아주 방대한 책 3권안에 작가는 소리없는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란 것을 보여준 대작이다.  

특별한 무기도 없이 어느 날 알 수 없는 돔이란 정체불명의 물체가 한 마을을 뒤덮으며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현상을 아주 세밀하게 포착해서 표현해 나간 이 책은 인간의 탐욕과 잔인성이 얼마나 강도가 높을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인간 탐구 보고서란 생각도 들 만큼 그 소재가 흥미롭고 벌어지는 현상에서 눈을 떼게 하지 않는다.  

기존의 자신만이 누리고 있던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아무런 죄없는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게 하고 (프로판 가스의 실종, 식품 사재기 방지와 폭동 유발)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없이 마을의 제1인자로 살려는 빅 짐이란 인간에 대한 인간탐욕이 철저히 묘사되고 있다.  

여기엔 양심적인 목사와 비리고발을 준비했던 경찰서장과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부인까지 죽인 살인마적인 극단성과 함께 자신의 아들조차도 나중엔 귀찮게 여기는 비정의 아버지 모습도 보여주는 최악의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법의 테두리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돔에 둘러싸인 이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의 힘은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선까지 그 강도를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준다.  

연약한 여인에 대한 강간과 폭행, 한 인간을 이용해서 폭동이 일어나게 만드는 과정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일반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들어내고 있고,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적인 행동, 그리고 알 수 없는 돔의 존재를 해체해 보려는 소수의 사람들의 노력은 작가의 빈틈없는 구성에 곳곳에 배치되어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등장인물만 하더라도 많은 인원이 등장하고 있는 이 소설은 어느 누가 특정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분량답게 일일이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 모습 표현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장 압권은 프로판 가스가 폭발하면서 마을을 덥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연기에 질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자주빛을 내는 상자로 다가가기까지 산소 공급을 위해서 타이어를 뚫고 공기를 흡인하는 모습은 인간이 만든 이기적인 물질에 의해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극한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않고 끝까지 행동하는 모습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다만 그토록 돔의 생성자체와 실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얘기도 , 그저 막연히 우주에서 왔을거란 추측을 하게 하고 핵폭탄 발사마저도 안듣게 되는 상황에서 그 상자 앞에 가서 제발 멈춰주길 바라는 맘에 부탁을 한다는 설정엔 한껏 고무된 독자의 궁금증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인간의 비열함에 몸서리치는 순간을 한순간에 "뭐야?" 하는 어리둥절함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뒷 마무리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무소불위식의 권력의 맛을 알고 그것을 휘두르는데 맛을 들인 어린 청년들의 행동이나 빅 짐의 모습은 읽고 나서도 내내 씁씁함과 함께 새삼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알고 싶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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