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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평점 :
한국 사의 근대화 과정에서 결코 간과할 수없는 것 중에 하나가 동학농민 운동이다.
순수한 우리네 민중들의 힘을 모아서 탐관오리와 정치의 무능함, 일본과 러시아, 영국, 미국, 그리고 청의 야심찬 먹이감의 대상으로 찍혔던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이 사건의 발단도 작은 불씨에서 시작을 했지만 이는 곧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이 되는 계기가 됬다고 학창시절에 배운다.
여기 이 동학운동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다 간 일명 녹두장군이라 불리는 키 작은 전봉준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 나왔다.
일대기라고 해봐야 전봉준의 태생부터가 아닌 동학농민이 공주 우금치에서 뜻하지 않은 일본의 현대식 총에 모두 당하고 도망다니던 중 붙잡히면서, 아니 붙잡혀 주면서 한양에 가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책이다.
일개 한 명의 백성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왜 동학의 운동 선봉장이 되기까지 그가 같은 동지였던 사람들로부터 몽둥이로 다리와 발을 맞고 부상을 당하면서 가마에 태워져 끌려가기까지, 지나치는 곳곳마다의 그 시절의 회상과 자신의 목숨을 두고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귀화,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이 된 이토란 자가 회유를 하면서 겪는 개인적인 고뇌가 담겨있다.
누구나 한 세상 태어나서 아무 탈 없이 살다가길 소망한다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있던 위인들은 적들에게 꿋꿋히 자신의 굳은 의지를 드러내 놓는 반면 전봉준은 많은 생각을 한다.
지금 자신의 한 목숨을 희생양 본보기로 삼아 한양 대거리 한 복판에 머리가 걸려있는 것을 본 백성들과 동지들이 다시 일어설 것을 원하는 삶이냐, 아니면 이토의 말처럼 귀한 목숨, 미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잠시 유보를 한다는 뜻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들어가서 철저한 일본사람으로 세뇌당하면서 선진국으로 가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다시 조선에 들어와 새로운 세상을 펼칠 것이냐를 두고 생사의 결정를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중심이라고 할 수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한층 우리의 가까운 사람으로서 전봉준을 느끼게 해 준다.
누구나 목숨은 아까우며, 설사 그것이 책에서만 접하는 위인들을 두고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전봉준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주는 느낌은 이렇게까지 치욕과 능멸, 자신을 가마에 태우고 가던 조선인들까지 무참히 살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단 한계를 느껴가는 전봉준이란 사람, 그리고 자식과 아내를 생각하는 지아비로서의 전봉준, 자신이 믿는 한울님을 대상으로 동학이란 것을 일으키기까지의 벼슬아치들과의 담판, 이토의 말에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힐 수가 없었던 한 조선인의 삶 모습이 세심한 글로 독자들을 이끈다.
무엇때문에 이런 곤란을 겪으면서까지 나는 일어서야만 했을까?
바로 밥의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밥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바로 생명이다. 그런 생명을 나도 모르게 억울하게 당하고 빼앗기고,이건 아니다 느낄 정도의 나라가 엉망으로 가고있던 때, 밥을 찾기 위한 우리 민초들의 항쟁이 열강의 개입, 무엇보다 위정자들의 그릇된 탐욕,착취가 결정적인 우리 근대사의 한 관통을 지나가는 전봉준이란 인물을 통해서 과연 내가 전봉준이라면 난 내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삶의 원초적인 욕망을 물어보게 됬다.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밥을 만들려고 산다. 밥을 쟁취하려고 싸운다. 더러운 밥이 있고, 깨끗한 밥이 있고, 떳떳한 밥이 있고, 부끄러운 밥이 있다. 내가 일어선 것, 고부 사람들이 관아로 몰려가 사또에게 대든 것, 아버지가 사람들의 소두로서 항거하다가 곤장을 맞고 장독으로 죽은 것, 호남 일대의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선 것이 다 이 밥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이 조선 땅에 들어온 것도 조선 사람의 밥을 빼앗아 가려고 온 것이다. 조선 사람에게는 쭉정이만 먹이고 저희는 알곡을 탈취해 가려고 그러는 것이다. 전봉준은 국물을 후루룩후루룩 마시면서 생각했다.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슬픈 밥에 대하여 모두 말하고 나서 죽어야 한다.-p216
일본의 끈질긴 회유 앞에서 한 때는 굳건히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했다가도, 어느 한 순간엔 이것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의 갈림길을 겪는 전봉준이란 인물 앞에서 파리만도 못한 목숨이란 말이 나올법한 위태위태한 삶을 살다 아무도 봐줄 이 없었던 한적한 곳에서 삶을 마감한 그의 생애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다.
모처럼 생생한 사투리가 넘치는 살아있는 말들의 잔치를 읽었다.
비옥한 땅을 가진만큼 많은 고초를 당하고 살았던 당시의 민초들의 삶 역시도 녹두장군이 가면서까지도 여전한 궁색을 면치못한 비참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가 남긴 인간적인 고뇌와 동학운동이 가지는 의미,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있는 뜻 깊은 의미를 다시금 뒤져보게 만들었다.
이것이 아마도 글을 쓰는 작가의 어느 한 부분의 책임있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씀으로써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의 한 부분이며, 후손에게도 물려줄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는 점에서 뜻 깊은 소설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인터넷서점에서 연재한 것이 책으로 엮여져 나와서 반가웠다.
신문에서 연재하는 글을 읽듯이 조금씩 조금씩 읽다보면 다음 내용이 정말 기다려지는 안달감일고나 할까, 뒤의 결말이 정말 궁금해서 너무 짧게 짧게 글이 올라온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 책으로 한꺼번에 다시 만나니 한숨에 읽어내려가는 맛이 역시 제격이다.
소설가로서 현재의 젊은 층을 겨냥한 짧은 챕터형식으로 간략간략하게 글을 엮어나간 작가 님의 의중도 쉽게 알 수가 있고, 책 표지를 보니 겉은 노란 바탕에 전봉준을 실었으리라 짐작되는 수레와 그 끝에 새가 앉아있다.
책 표지를 벗기면 다시 보라색의 책이다.
흔히 미술에서 말하는 보색관계라고도 할 수있는 책의 표지 색상도 전봉준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그 파랑새는 혹독한 동학이라는 겨울 잠에서 깨어나 비상의 날개를 펴고 한울님의 뜻에 따라 모두가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있는 희망의 날을 그리며 날아간 것은 아닐런지....
살아가는 인생의 한 커다란 고민의 갈래 길에서 전봉준은 그렇게 갔다.
~새야 새야 파랑 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