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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평점 :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대 회오리바람의 역풍 속에 새로운 왕조 편에 처신을 잘한 조신은 개성의 여장부인 청화당 마님의 딸인 경심과의 사이에 서로를 낳고 산다.
장사로 부를 이룬 청화당 마님에겐 먼 친척뻘인 여인이 있었고 그의 딸인 채심은 유씨 성을 가진 선비와 혼인, 그들 사이에 여아를 낳는다.
시대는 이른 바 새로운 역사를 요하고 그 와중에 전 왕조에 대한 지지세력편이었던 유씨 집안은 화재로 풍비박산, 여아는 청화당 마님이 거둔다.
말 한마디 못하는 여아에게 서로는 녹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녀가 부르는 옥피리에 엄마와 아버지의 기대치에 부응하느라 피곤한 몸을 풀어나가면서 우정과 사랑사이의 아슬아슬함을 이어간다.
녹주를 보면서 그녀의 어미인 채심과 경쟁하듯 살아 온 경심은 녹주를 못마땅해하고 청화당 마님이 죽자 바로 녹주를 시주하던 암자에 보내 비구니로 살 것을 명한다.
몸은 비구니로 가는 절차를 거치나 마음만은 서로에게 향한 정신 때문에 괴로워하던 녹주는 속세의 몸으로 돌아오지만 갈 곳이 없었으므로 절에 공양주처럼 살아간다.
어느 날 부부애가 남달랐던 이귀산 이란 사람이 부인의 명복을 빌어주고자 암자로 온 것을 계기로 속세로 내려가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던 차, 그녀에게 줄 피리를 구하던 것을 계기로 다시 서로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둘은 이산의 눈, 귀를 뒤로하면서 끊임없는 열정의 세계로 들어간다.
- 조선왕조실록』 에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柳)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奸)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년) 9월 25일)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사건은 시대적인 이슈가 된 조선 양반가 간통 사건이다.-
이 문장의 하나로 작가는 또 다시 채홍에 이어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불교를 숭상하고 남. 녀간의 규제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고려에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불교의 페단과 명분을 내세우기 위한 정책으로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남.녀간의 사랑은 한층 규제를 받는다.
사람이 보다 잘 살기 위해서 만든다는 제도와 법이 점차 그에 예속이 되어 실제 생활과 남녀간의 사랑에 규제를 한다는 아이러니를 작가는 녹주와 서로란 두 이성간의 불타는 사랑이야기를 그려냈다.
부모와 동생의 흔적조차 찾을 수없고 벙어리처럼 지내던 녹주에게 서로는 위안이자 친구이며, 서로에겐 엄마의 우울증과 드센 성정, 아비의 채찍질 속에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부모는 맞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부모를 거역할 수없는 장자로서의 한계를 알아 줄 이는 녹주 뿐임을, 둘은 그렇게 의지하고 사랑했다.
하지만 가진 것 없고 오갈 데 없는 녹주에게 지어진 삶의 무게는 종교에 귀의를 해도, 이산이란 귀인을 만나 세속에 내려와 살게되도, 그런 고마운 인연은 악연이 되고, 서로에게 향한 자신의 마음은 머리에 흰머리가 나는 세월을 겪어도 그칠 줄 모르는 불타는 꽃이었다.
- 그것은 녹주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껏 운명이라 불리는 굴레에 묶인 채 왜바람을 맞은 검불처럼 꺼둘렸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살 수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무서운 파국을 떠올릴지라도 목숨을 걸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어리석은 사랑이 그녀가 생에 할 수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P285
이산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을 생각할지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가슴 깊이 사랑하지 않는단 사실, 자신의 숨김없는 사랑을 위해서 지금껏 억지춘향으로 감춰왔던 결실의 감정은 늦바람이 무섭단 말처럼 걷잡을 수없는 향해을 하지만 이마저도 조선 초기의 정통적인 역사를 바로 잡고자 했던 선대 왕의 뜻을 받든 왕에 이어서 세종마저도 이 둘에게 벌을 내리를 처사를 감행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이 불륜이라면 불륜이라고 이름 지을 수있는 이 둘의 처리방식은 여전히 남자와 여자에게 가해지는 형량이 달랐던 점이 눈길을 끈다.
물론 믿었던 신하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을 세종의 입장에선 좀 더 그를 곁에 두고 싶어했을 맘이 컸단 점에서 유배의 결정을 내린 반면 여자인 녹주에게 가해진 처벌은 격이 너무 크다.
그저 아녀자란 이름 하나로 , 유부녀란 이름 하나로, 통정을 하였단 죄 때문에 구경거리요, 참수의 형장 길을 걸어가게 한 처사는 나중에 후회를 한다했지만 당시의 그들이 겪었던 나이와 세종이 보위에 오른 나이의 간격이 너무 컸으며,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선 왕이 너무 어렸단 점이 아쉬운 점으로 떠오른다.
제도 안에서 숨막히듯 살아 온 녹주에게는 아마도 짧지만, 무서웠고, 두려웠고, 서러웠던 , 서로를 곁에 둔 그 순간까지 느꼈을 심정의 묘사가 작가의 필치대로 종횡무진 독자들을 빨려들어가게 한다.
사랑 때문에 겪었던 안타까웠던 여성에 대한 시리즈 채홍에 이은 불의 꽃이 2부격이란다.
3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다는데, 언제 3부가 나올지는 알 수없으나, 작가의 눈으로 그려 본 당시의 시대에 숨막히게 살아간 여인들의 사랑이야기는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을까 싶다.
채홍처럼 앞과 뒤에 현재의 광경이 그려지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구성으로 이어진 책은 한국 말의 묘미와 한자의 숙어 조합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