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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하우스
캐슬린 그리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 스포있음
1791년 여덟 살의 아일랜드 소녀 라비니아는 배에서 엄마와 아빠를 잃고 오빠마저 다른 곳으려 팔려가면서 제임스란 남자의 손에 이끌려 버지니아 주 톨 오스크 담배농장에 계약노예로 오게 된다.
그 곳엔 제임스가 흑인 노예와 사이에 낳은 벨이란 여자가 흑인들이 거주하는 노예숙소와는 별도의 장소인 키친 하우스란 곳에서 살고 있었고 제이콥 흑인 아저씨는 라비니아를 그녀에게 맡긴다.
처음엔 피부색이 다르고 적대적이었던 벨과 라비니아는 어느 새 서로 의지하면서 다른 가족인 흑인 부부 마마 마에와 파파 조지, 도리, 쌍둥이 소녀들인 비키와 파니와 어울리면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가족애를 느끼면 성장한다.
집을 많이 비우는 주인이 없는 사이 20년의 나이 차가 나는 마사 마님은 그들의 자식인 아들 마셜과 딸 샐리를 키우되 도통 살림에 관심이 없고 마셜은 벨을 아버지의 여자란 생각으로 그녀를 미워하는데, 여기엔 가정교사인 워터스의 잘못된 학대와 노예 감독관인 백인 랭킨의 사악함이 박자가 맞아 떨어져 더욱 잘못된 성장의 길로 커간다.
어느 날 딸 샐리가 그네를 타다 마셜 때문에 죽게되고 이로 인한 충격으로 마사 마님은 아편에 중독, 이를 고치기 위해 요양을 가게된다.
이러는 일이 발생되는 일과 연이어서 마셜은 랭킨이 보는 앞에서 벨을 강간, 벨은 아이를 임신하고 제이미란 아이를 낳게된다.
당시 나이도 어렸고 모든 사람들이 함구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모르던 라비니아는 주인이 죽자 마사 마님의 언니가 있는 윌리엄스버어그로 같이 가게되고 그 곳에서 대학에 다니던 마셜을 만나게된다.
16살이 되던 해 라비니아는 마셜과 함께 결혼을 하게되고 곧이어서 꿈에 그리던 키친 하우스에 오게 되지만 그들은 깍듯하게 마님 대접을 하며 거리를 두게된다.
딸 엘리를 낳아 행복한 시기도 잠시, 점차 심해지는 마셜의 폭행과 비키 사이에 낳은 아들 셋을 바라보는 심정, 윌이 벨과 벤의 가족을 데리고 자신의 농장으로 가버린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녀 또한 아편에 중독되다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지만 마셜의 행동을 더는 참을 수없어 키친 하우스 가족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게된다.
이 책은 남 북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미국의 개척시대에 온 백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계약노예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됬고 라비니아가 겪고 자란 인생의 풍파는 어릴 적 봤던 "뿌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시킨다.
천애고아가 됬고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느낌을 공유하면서 생활해 간 흑인들의 생활장소인 키친 하우스와 백인 주인이 거주하는 집 빅 하우스의 대조는 이 책에서 극명한 대조를 나타내고 , 그 가운데 라비니아란 백인 소녀가 거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과 결혼과 출산, 남편의 비 정상적인 행동이 드러나면서 원만치 못한 결혼의 말로, 알고 보면 배다른 누나였을 벨을 대하는 방식과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제이미를 팔아 넘기려하는 파렴치한 , 어찌보면 인간의 성정으로선 할 수없는 모든 행동들을 보이는 인물로 나오는 마셜을 통해서 당시의 노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여기엔 또 하나의 인생들을 들여다 볼 수있는데, 바로 벨과 라비니아의 사랑이다.
벨은 흑인 벤과 서로 사랑하지만 주인이자 아버지인 제임스의 명으로 벤이 위험에 빠질까봐 그를 가까이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한다.
거기에다 벤은 노예숙소의 루사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임신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비참함을 맛보지만 서로의 사랑은 벤이 자식들을 낳는 동안에도 이어지고 이는 곧 어느 새 두 여자 루사의 묵인과 벨의 같은 여성으로서의 벤을 대하는 일심동체의 행동을 보이는 세월의 연륜을 보여주는 과정이 불륜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없는 어떤 인생의 흐름을 용인하게 만든다.
라비니아 또한 12살에 본 윌 스티븐슨이란 11살 연상의 남자에게 미래에 신부가 되겠다고 호언하지만 뜻하지 않는 오해로 인해 마셜과의 불행을 자초하게되고 , 다시 돌아 온 뒤에도 여전히 윌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감정을 주저없이 행동으로 나서는 면을 보인다. (이마저도 무너지지만...)
노예란 것 하나로 주인인 마셜의 겁탈에도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비티의 인생은 벨이 루사와 같이 한 인생이나 자신과 비티가 앞으로 같이 갈 인생임을 암시하는 과정은 작가의 필치에서 하나의 아픔과 감동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용서할 수 없는 악인 마셜의 죽음 뒤에 찾아 온 평화는 마마의 죽음과 바꾼 격이됬지만 새로이 태어날 집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흑인노예들과의 교감, 비티와의 화해와 용서는 또 다른 새로운 세대들의 사랑들을 기대하게한다.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가 있는 이 소설은 모처럼 가슴이 뭉클하고 푸근함, 그리고 뒷 편의 이야기가 좀 더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 책이다.
진정한 핏줄을 나누고 태어난 가족들이라도 서먹하거나 감정의 교류가 없는 가정이 있다고 볼 때 여기 라비니아는 한 순간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이 행복한 유년의 시절을 보내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2010년도 무명의 작가가 써 놓은 글이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 출판이 되고 이 소설은 미국의 소규모 독서클럽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됬다고 한다.
하마터면 이 좋은 소설을 놓칠 뻔 했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다.
라비니아와 벨이 바라보는 시각을 교차해서 소설의 전 과정을 끌고 가는 점도 특이하고 나이대에 맞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다.
“아비니아,(책에선 흑인들이 두 가지 이름으로 주인공을 부른다.) 분명히 말하마. 피부색이 어떻고, 아버지가 누구이고, 엄마가 누구이고는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가족이고, 그래서 서로를 걱정하는 거야. 가족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 법이지. 우리 모두 똘똘 뭉쳐서 서로 도와줘야 된다. 그게 가족의 진짜 의미란다. 어른이 되면 너도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 P206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마마 마에가 위에서 하고자 한 말이 아니었을까?
노예제도 안에서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파티와 음식장만해서 같이 먹는 정겨움 속에 깃든 오고가는 가족애 앞에서 피부색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시 돌아온 톨 오스크의 재건에 의지를 굳히는 라비니아와 그의 진정한 가족들의 의지가 아직도 가슴에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