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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긴 편지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70
마리아마 바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50이 다된 라마툴라이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40일 간의 복상기간을 거치는 동안 어릴 적 단짝 친구인 아이사투에게 그간 자신이 살아 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편지형식을 빌어서 쓴다.
라마툴라이와 아이사투는 세네갈이 식민지에서 독립해 새로운 세계를 거치는 동안 엘리트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 말하자면 신세대 여성들이었다.
친정엄마의 사윗감이 될 모습 속에 치아가 벌어진 것을 보니 틀림없이 바람을 피겠단 말을 들음에도 그(모두 Modou)가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 또한 그를 선택함에 주저없이 결혼을 감행, 열두 아이를 낳으면서 학교 생활을 하는 직업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 며느리로서 살아간 자신의 모습과 세내공의 딸인 신분으로 태어난 친구 아이사투는 왕족 출신인 시어머니의 못마땅한 눈길에도 의사인 남편 마우도와 결혼,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해 보이기만 했다.
그런 두 사람의 인생은 일부다처제의 관습으로 인해 두 갈래의 길로 갈라진다.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나부란 조카를 두 번째 며느리로 들이 민 아이사투의 시어머니의 행동으로 인해 아이사투는 남편 마우도와 결별,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반면 라마툴라이는 자신의 딸인 다바의 친구인 비느투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한 남편에 대한 배신과 결혼 당일 시아주머니와 사제, 그리도 마우도의 방문으로 알게 된 그 사실로 인한 충격된 삶을 살아가지만 이혼을 생각지 않는다.
***** 광기나 나약함 때문이었을까? 용기 부족이나 어찌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을까? 어떤 마음의 동요가 모두 폴을 혼란에 빠뜨려 비느투와 결혼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이런 남자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니. 그에게 내 인생의 30년을 바쳤다니. 그의 아이를 열두 번이나 품었 다니. 경쟁자를 내 인생에 덧붙이는 것으로도 그는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야.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그는 정신 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태워 버렸어. 감히 또 그가 어떻게….
날 자기 아내로 만들려고, 안 한 게 없던 그가 어떻게! -p30
「(…) 여자들은 제발이지 이걸 이해하고 용서해야 해요. 육체적 <배신>을 생각하며 괴로워해선 안 됩니다. 중요한 건 마음에 있는 거니까요. 두 존재를 잇는 건 이 속에 ─ 이 말을 하며 그는 자기 심장이 있는 가슴을 쳤어 ─ 있으니까요……. 저항의 극단적 한계에 내몰린 채 나는 내 손에 닿는 것을 먹는 겁니다.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따지고 보면 진실은 추한 겁니다.」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그는 어린 나부를 <먹을거리>의 차원으로 깎아 내렸지. 이렇게, 다른 <맛>을 맛보기 위해 남자들은 아내들을 배반하지. 난 기분이 무척 상했어. 그는 내게 이해를 청했지. 그런데 대체 무엇을 이해하라는 거지? 본능의 지배를? 배신의 권리를? 변화의 욕망에 대한 합리화를? -p66~67
그 이후 남편이 자신과 가족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죽음으로써 벌어지는 여러상황들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편지의 내용이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세네갈이란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슬람이란 종교의 영향, 신세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에 주위의식에 대한 눈치, 그리고 뭣보다 일부다처제를 당연시 받아들이는 남성들의 근본적이고도 뿌리 박힌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 떠난다? 한 남자와 열두 명의 아이를 낳고 25년을 살았는데 제로에서 다시 시작한다? 정신적이면서 물질적이기도 한 이 책임의 무게를 혼자 감당해 낼 힘이 내게 있을까?
떠난다! 과거를 말소한다. 분명히 늘 빛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명료했던 페이지를 이제 넘긴다. 앞으로 그 페이지에는 사랑도 신뢰도 위대함도 희망도 담기지 못하겠지. 난 결혼의 썩은 이면을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어. 경험하지 말까! 그걸 피해 달아날까! 용서하기 시작하면 잘못이 눈사태처럼 쏟아져 계속 용서만 하게 되지. 떠나는 거야. 배신으로부터 달아나는 거야! 공유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온갖 상상을 하고 조그만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일 없이 편히 자는 거야. -p77
방송이나 책에서도 언뜻 들은 적이 있다.
우스개 소리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
그것이 현대건, 근대건, 봉건적인,아니 더 나아가 까막득한 먼 시대에 걸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엔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편협합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말일 것이다.
편지 속에는 모두 3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시각들이 나온다.
1세대 격인 아이사투의 시어머니와 라마툴라이의 친정엄마, 그리고 오로지 살기 위해 딸을 늙은이에게 주는 비느투의 엄마 모습은 철저히 이슬람이란 종교에 순리를 따르고 관습의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 온 여인들이다.
일부다처제를 당연시 받아들이고 가문의 혈통을 따지는 이런 생각은 새로운 시각 자체는 엄두도 못내고 세월을 살아 온 여인들의 모습이 투영이 된다.
그런 반면 2세대 격인 주인공 라마툴라이와 아이사투는 식민의 역사와 독립된 나라로 거듭난 자신의 고국을 고스란히 체험해 내면서 여성도 당당히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수있다는 신 사고 방식의 개념과 함께 독립된 나라의 새로운 나라의 법 체제정비 속에 아름다운 풍속들이 조화롭게 유지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세대이다.
그런 시각에서 나온 일부다처제의 불합리성을 누구보다 수긍하기 어렵고, 이를 자신의 몸 속에서 울부짖는 고통과 자신의 홀로서기를 결정함에 있어서의 두 사람의 인생 결정 방식은 두 가지 갈래의 길을 보여주는 결과를 낳는다.
더 발전된 제 3세대격인 라마툴라이의 딸들-
그 중에서 다바는 친구인 비느투로부터 늙은이에게 받은 선물이란 말을 든는것도 모자라 실제 자신의 아버지가 친구를 부인으로 맞이한 충격에서 어머니에게 이혼을 권하는 , 당찬 모습의 여인모습과 남편과의 공통적인 시각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신세대 여인이다.
***** 다바는 제 아내입니다. 제 노예도 하녀도 아니예요.
***** 결혼은 족쇄가 아니예요. 두 사람이 하나의 인생계획을 공유하는거지요. 그리고 부부가 이 결합에서 각자 제 몫을 얻지 못한다면 그걸 유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여자도 결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어요. - p 138
다른 딸인 아이사투가 학생신분으로 덜컥 임신한 모습을 바라만봐야하는 라마툴라이의 어미로서의 고통과 딸이 겪을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는 모정의 모습은 읽는 내내 다른 나라의 모습이 어찌 이리도 우리네 조상들이 살아 온 모습과 현재의 워킹 맘으로서의 고민을 그대로 표현해내었는지, 읽는 내내 구구절절 가슴을 적시지 않는 문장이 없을 정도로 머리에 쉬이 떠나질 않는다.
***** 한 가정의 어머니는 여행할 시간은 없어도 죽을 시간은 있다. -p141
인간이 살아가는 테두리 안엔 분명 법이란 것이 필요하고 수없이 흘러흘러 굳어진 관습이란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사람들은 쉽게 고쳐지면서 살아가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보면 , 라마툴라이가 자신의 홀로서기를 하기까지 친구에게 쏟아부은 고통의 심정은 또 다시 새로운 자신만의 방식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면 젊디젊은 비느투, 또한 다바와 같은 신세대면서도 먹고살기에 우선 순위를 두었던 엄마의 강요에 희생된 가엾은 여인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여성들의 모습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에 일조를 한 모두, 마우도, 그리고 라마툴라이의 첫 사랑이자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국회의원인 다우다 디엥 조차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라마툴라이에게 청혼하는 모습은 자신의 본처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관습이란 이름 아래에 행하여지고 있는 남성들의 무지의 행동으로 밖에 이해 할 수없는 답답함을 보인다.
그래도 라마툴라이가 생각하는 홀로서기는 아이사투와는 다른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이 있음으로 해서 견딜 수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런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마지막 부에선 그녀 나름대로의 홀로서기가 수긍이 가게 만든다.
***** 난 남자와 여자가 어쩔 수없이 상호 보완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
사랑은 그 내용이나 표현에서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두 존재는 자연스레 이어주지.
......
내가 이미 얘기했지. 내 삶은 다시 만들어나가는 걸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 모든 실망과 모욕을 겪고도 내 안에는 희망이 살아있어. 더럽고 역겨운 부식토에서 초목 이 돋아나듯이 내 안에서 새로운 싹이 고개를 내미는 게 느껴져. -p 168~169
작가가 출간한 지 오래됬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전혀 이질적인 느낌이 없었단 것은 바로 지금도 세네갈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하는 그릇된 사고방식의 관습, (여성에 대한 자유억압과 권리박탈) 여전히 오늘도 자녀와 가정에 온 힘을 쏟으며 자신의 독자적인 인간으로서 나 만의 홀로서기에 대해 고민하는 현대의 여성들에게 심금을 울려 줄 책이라고 생각한다.
고정된 체제 안에서의 의식의 변화는 긴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러는 와중에 여성들이 변화해가는 체제 안에서의 역할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169페이지의 짧은 분량의 책 속에 담긴 내용치고는 짧다면 아주 짧은, 그래도 이토록 긴편지는 처음이었다.
책을 덮은 지금, 아직도 라마툴라이의 영상이 그려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