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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p 188
죽음이란 말을 가까이서 가슴 속에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같다.
아버지의 고향 친구분인 한 분이 암으로 떠나셨다는 말씀을 하시던 아버지는 친구의 죽음과 아직 어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병원으로 가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는 왜 그리 가슴이 콩닥거렸는지, 죽음에 대한 어떤 확고한 이미지나 뜻에 대한 막연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나보다. 또한 혹시 우리 아버지와 같은 연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던데, 우리 가족만은 아니겠지? 하는 어떤 희망적인 사항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그러다 친.외할머니께서 연이어 돌아가시면서 처음으로 장사지내는 것을 보았고 무덤에 묻히는 장례 행렬까지 보았다.
그 당시에 엄마는 엄청나게 우셨던 기억이 나고, 나 또한 울었지만 엄마의 울음에 비한다면 그 슬픔의 강도는 비교가 안될 듯 싶다.
이렇듯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에 지금도 그렇지만 굉장한 회의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가까이 대화하고 같이 밥 먹고 웃고 울던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의 죽음이라는 것 앞에 모두 신기루 같았던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에 나오는 화자인 '나'의 장례식도 그렇다.
관에 묻히고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흙이 한 줌 한 줌 뿌려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와 관련이 있던 조문객들의 반응들은 제각각이다.
두 아들을 둔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남겨줄 요량으로 '에브리 맨'이란 보석상을 운영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냈고 , 그 자신도 광고계에서 성공한 남자였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면서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경멸을 지니고 있고, 두 번째 부인인 피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낸시만이 오로지 그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자신의 배반과 실수를 거치면서 은퇴 후 한적한 은퇴자들의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어릴 적 부터 시작된 수술은 71살이 된 지금까지 온갖 몸에 병을 달고 살아왔고 지금은 심장에 제세 박동기마저 착용이 된 상태로 살아가는 노인이다.
젊은시절엔 뭐든 것이 가능하다. 섹스, 사랑, 남성다운 활력과 과시, 물론 그로인해 그는 혹독한 결과를 치르고 오늘 날에 홀로 살게 된 결과로 남았지만 , 그래도 이 모든 일의 결과는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단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때때로 닥쳐오는 건강에 관한 두려움은 그림을 그리는 교실을 열어 같은 은퇴자의 모임을 만들게 되지만 이마저도 모두 같은 공통의 관심사로 쏠리게된다.
"당은 어떤가요? " "혈압은 어때요?" "의사는 뭐래요?"-p85
그는 생각한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루에 일정 시간 수영과 해변 산책을 하고 조깅하는 젊은 여인에게 또 다른 꿈을 꾸며 대시를 하지만 모두 부질 없고 어떤 뚜렷한 목적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가 그저 세끼 먹고 다량의 약을 먹으며 24시간을 메워나간단 생각에 노년에 드는 외로움과 병과 점점 친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는다.
수업에 참여한 한 여인의 자살을 두고 그는 그녀가 죽기까지 죽음에 대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마지막 들이킨 물 맛을 느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그 동안 자신이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를 생각하다 결국엔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이 원초적인 제공자였음을 알아가면서 드디어 참을 수 없음을 알게된다.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 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p164
한 생명이 태어나 한 줌의 흙으로 가는데엔 나이도 , 성별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어릴 적에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상처의 더딘 회복속도, 갈수록 현저히 떨어지는 기력, 하나의 병에 보너스 내지 더블로 찾아오는 질병들, 장성한 자식들은 제 살길 바빠 부모의 노쇠한 육,정신적인 보살핌을 살필 겨를 없는 바쁜 생활....
노년에 이르러서야 젋었을 적 시절의 왕성함을 기억하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세월은 누구나 평등하게 주어졌기에 노년이란 말 그 말 한마디엔 많은 인생의 뜻을 간직하며 살아 갈 수밖에 없다.
노년은 전투예요. 이런게 아니라도 , 또다른 걸로 말이예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예요." -p 149
200페이지도 안되는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의 늙고 병들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시 한 번씩 꺼내볼 때마다, 즉 나이가 한 살 더해짐에 따라 받다들여지는 강도가 달리 와 닿는데서 일말의 울림을 준다.
탄생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죽음이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단 사실을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인간의 전체적인 삶을 통해 드러나는 병마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 둘씩 친한 관계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책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에브리 맨(보통 사람들)-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
"현실을 다시 만들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p13
냉철한 문단과 어느 것 하나 아끼지 않을 수없는 노년에 드리운 감정을 이렇듯 무심한 듯 관조적인 자세로 쓸 수있는 작가의 노련미에 다시 한 번 읽어보게 하는 책이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메모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