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임금 잔혹사 - 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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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금(군주)의 자리는 천명(天命)이란 했다.

아무리 뛰어난 군주의 자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대가 이를 허용치 않으면, 그리고 주위의 그에 맞는 지원자가 없다면 도로아무타불이 되기 싶상인 것이 지극히 높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있는 자리가 바로 임금, 군주의 자리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왕조 중에서도 쉽게 각인이 되고 오르내는 왕조가 이씨 조선왕조 오백 년의 역사이다.

이는 근대적인 역사의 전 왕조였고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건국하기까지의 마지막 왕조였단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소재의 다양성과 야사에서 비롯된 갖가지의 이야기는 끝없는 화수분을 연상케하기도 한다.

 

조선의 왕조 첫 태동은 무혈혁명이란 점에서 일단 세계의 유례를 찾아 볼 수없는 한 역사의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성계가 스스로 세운 단독의 왕조가 아닌 정도전의 이상셰계를 실현키 위한 하나의 도구격이었던 나라란 점을 생각한다면 조선왕조의 임금이란 자리는 왕이 갖고 있는 세력면에서 신하들의 견제를 받는 나라이기도 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긴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믿었다. 제왕이나 황제의 권력과 지위는 신이 주는 것으로, 왕은 신과 소통하는 고귀한 존재였다. 이는 중세 유럽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왕권 국가 곳곳에 강력하게 뿌리내린 사상이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은 시골 무사 출신 이성계의 군사력과 리더십 그리고 재상이 중심이 되는 국가, 입헌군주제를 구상하던 정도전의 합작품이었다. 그 결과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은 후 큰 유혈 사태 없이 새 왕조를 창업했다. (p.55)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임금이 될 수있었을까를 시작으로 하는 이 책은 왕이 되기 위한 조건을 크게 4 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제1부 왕으로 선택된 남자.... 세종, 성종, 중종


제2부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선조, 광해군, 인조


제 3부 왕으로 태어난 남자....... 연산군. 숙종, 정조


제4부 왕이 되지 못한 남자....... 소현세자, 사도세자, 효명세자

 

지금까지 역사에서 성군, 또는 폭군의 이미지와 함께 역사적인 사건의 피해자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제 몫을 하지 못하고 비명에 간 사람들도 있다.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자손이 귀한 왕조였고 오로지 적자로서 첫 째만이 왕으로 오를 수 있도록 정한 법 때문에 억지로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로 왕위에 오른 사람들이 펼친 정치들은 대체로 조선의 평화와 안정기를 보인 시대였다.

반면 그 자신의 재능과 왕으로서의 주권을 확실히 하면서 원대한 뜻을 펼치기에 적합했던 인물들도 당쟁이나 가문의 이익을 위한 계략에 희생되 결국 역사의 한 저 편으로 폭군이란 이미지로, 전락해 버린 역사를 분류를 통해 알수가 있기에 왕이 가진 자리란 어떤 것이며 그 보위에 오른 순간 그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고 이를 십분 활용하는 지혜와 자신의 강단에 따라 나라의 성망이 좌지우지 되는 역사의 현장이 재미있게 읽힌다.

 

흔한 말로 스타는 외로이 홀로 빛나기에 더욱 그 빛을 발한다는 말이 있듯이 왕좌란 자리는 그 누가 보더라도 선망의 대상이요, 자신의 뜻대로라면 모든 것을 이룰 수있단 생각을하기 쉬운 일반 사람들에게 결코 그 자리는 화려하지도 않으며 주위의 견제 속에 때로는 아비가, 때로는 형제간의 피를 보아야만 했던 외로운 자리임을 더욱 상세하게 알게 해 준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의 당쟁이나 외척간의 섭정을 둘러싼 궁중의 암투는 현재의 사정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는 것은 임금이란 자리에 오는 그 순간, 임금은 나 혼자만의 임금이 아니요, 후대에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그 자신이 보위에 있는 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해 나라를 다스려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성군이라 불리는 왕들은 시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학구적인 정치실력과 더불어 좋은 신하들과 교류를 했단 점에서, 개방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좀 더 잘 살게되길 원했던 소현세자나 효명세자의, 사도세자의 경우처럼 만일의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조선의 역사나 현재의 우리나라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를 상상해 보기도 한 책인 만큼, 폭군으로 불린 광해군이나 연산군을 다시 재 조명해 보는 기회를 ,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기존의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외의 활동을 그린 책이나  한 사람만의 역사를 다룬 책보다는 광범위 하면서도 간략하게 서술한 점이 눈에 뛴다.

 

한 챕터당 끝나는 말미에 간략한 역사의 한 부분을 일정 할애해 설명을 붙인 부문, 한 왕조의 가계도를 그려 넣음으로써 보다 쉽게 당시의 권력구도를 이해하기 쉽게 편집한 부분이 잘 되었단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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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동다東茶여, 깨달음의 환희歡喜라네 - 구름과 달과 더불어 만나는 고요한 찻자리, <동다송> 새로 읽다
원학 지음 / 김영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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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의 주류를 이루는 차가 커피라면 동양의 세계에선 흔히 말하는 차(茶) 문화로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나 영화에서, 특히 사극일 경우 어김없이 나오는 장면 중의 하나가 서로의 심중을 떠보는 장면이나, 아니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한 템포 늦추며 지긋이 눈 감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아니면 기방에서 술 따르는 기녀의 모습 외에 검은 머리에 복숭아 빛의 얼굴을 가진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다기세트가 일렬로 정해준 순서에 따라 차를 우려내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렇듯 차는 우리생활에 밀접한 생활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소홀이 다루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곳곳마다 대형 브랜드의 커피점들이 들어선 이때, 사람들의 머리속엔 당연히 커피가  우세하다.

 

이러한 점에서 차가 주는 의미는 심심풀이, 아니면 연세드신 분들, 아니면 다이어트 효과에 좋다는 녹차식용까지,,여러가지 상황들이 많은 가운데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이 새로 엮어 쓴 <동다송>. , 즉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차(茶)란 문화를 통해서 어떤 마음가짐과 교감을 가지며, 음미하며 마실 수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쓴 책이다.

 

 동다(東茶)라 함은 우리나라의 차를 말한다. 중국의 보이차, 일본의 다도란 이름으로 불리듯이 우리나라의 차의 이름이란 뜻에서 우선 정감어린 느낌이 든다.

 

<동다송>은 조선 후기 고승인 초의 선사가 정조의 부마인 홍현주의 부탁을 받고 쓴 것으로, 한국 차에 대하여 칠언절구 송頌 형식으로 지은 송시 열일곱 수이다.

이  책에 씌여진  시를 토대로 원학 스님이 현 시대에 맞고, 그에 어울리는 다른 시인들의 시와 함께 비교해 봄으로써 차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을 순례의 형식으로 읽어나갈 수있게 편집해 놓으 책이기에 우선은 읽는데에 부담이 없다.

 

 차 나무의 생장부터 첫 찻잎의 따는 시기와 찻 잎의 모양에 따른 이름들의 유례와 그 뜻을 읽게 되노라면 이렇듯 자연의 위대한 조화와 그에 어울리는 생태의 오묘한 길을 알게 해주는  깨달음이 있다.

 

커피포트에 팔팔 끊는 물에 커피를 바로 넣어 후후 불어가면 마시는 행위가 아닌 처음부터 찻 잎은 따는 시기서부터 그것을 차로 우려내어 마시기까지의 과정 속엔 온전히 차를 다루는 사람의 정성과 자연에 대한 그윽한 기도와 감사, 여기에 더불어 차를 마시는 행동까지, 모두를 함께 어우를 수 있어야만 진정한 차 맛의 경지에 도달함은 물론이요, 차 문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문화가 다분히 마시는 행위에 그치고 이마저도 커피나 타 음료에 밀려 점차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짐은 차(茶)란 문화가 도래해 온 역사적인 시대와 종교의 영향이 합쳐진 것이 아닌가 한다는 데서 아쉬움을 준다.

 

차(茶)란 문화는 분명 중국이나 일본에서 행하는 절차와는 다르며, 그렇기에 동다(東茶)란 말을 붙였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던 초의 선사, 그와 신분의 차와 나이를 넘어서 교류를 나눈 추사 김정희, 정약용, 소치에 이르기까지 그 유한한 역사의 한 장면을 이어주는 매개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의 다도는 유명하다.

생활 곳곳에 이미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을 만큼 많은 일본국민들이 애용하고 마시는 차 인만큼 우리나라도 조선의 시대 이전의 불교라는 종교와 연관이 되어 차를  이용했단 이유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멀리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탈피해 이제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차(茶) 문화를 알리고  향기로운 차(茶)를 통해서 내 마음의 정화를 , 그리고 그윽한 차(茶)가 주는 차(茶)의 마음인 다선삼매茶禪三昧, 다선일미茶禪一味 곧 선의 세계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책이다.

 

 

 

여러 고시를 인용해서 하나의 시에 덧대어 그에 속한 여러 문인들의 시와 해석, 그리고 불교와 연관된 행동과 마음가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생활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적절하게 비유한  글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전통에 입각한 본격적인 차의 문화 세계로 입문하진 않더라도 , 이제는 주위에 있는 차의 이름부터 읽어보고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를 생각해 보게되는 책이며, 이런 행동이 더 발전이 된다면 좀 더 우리나라 차(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용하게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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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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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튜 샤피로는 보스턴의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일 년전 사랑하는 아내 케이트를 사고로 잃은 후 딸 에밀리와 세 들어 사는 동성애자 에이프릴과 같이 살고 있다.

마음의 한 켠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그는 에이프릴의 차로 우연히  같이 동행하게되고 길거리 벼룩시장에서 중고 노트북을 구입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둘러보던 중 사진이 들어있는 파일을 보게 되면서 노트북의 전 주인인  엠마 로벤스타인을 찾게되고 이멜로 파일의 자료문제로 서로 답장을 오고가게 된다.

 

그녀는 뉴욕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임퍼레이터 식당의 와인감정사이다.

유부남과의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고 있던 그녀는 타인이 자신에 대한 거부감과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감정의 기복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매튜에게 새로운 호감을 느끼 던 차, 둘은 만남을 약속하지만 서로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도착했지만 둘은 만나지 못한다.

왜?

바로 1년이란 시간의 공백 때문이다.

즉 엠마는 이미 1년 전인  2010년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상태였고, 매튜는 현재 2011년을 살고있는 사람이다.

이때부터 이야기꾼이 기욤 뮈소의 기발한 창작의 발상이 시작된다.

 

가끔 가다가 타임슬립이란 것을 필두로 해서 여러가지 상황을 보여주고 과연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행보를 그리는 영화나 오락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 이야기도 그런 연장선에 속하다고 할 수있는데, 현실적인 사고에서 생각한다면 완전 허구다.

어떻게 죽은 사람과 현재의 사람이 죽은 사람이 남긴 유품인 노트북을 매개로 서로 메신저를 주고 받을 수 있으며, 엠마가 매튜가 요구한대로 행동을 옮길 수있는지에 대한 상황설정은 일단, 책 속의 허구가 섞인 이야기이니 그렇다 치고 본격적으로 둘 간의 이야기 전개는 기존에 나왔던 로맨스를 필두로 내세운 이야기 외에  스릴이 포함이 되어있단 점이 종전의 책과는 다르다고 할 수있겠다.

 

진실로 사랑했기에 전 부인과의 이혼을 하고 케이트와 새 보금자리를 찾은 매튜의 입장에서 엠마가 밝혀낸 케이트의 배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 할 수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본의아니게  매튜의 제안대로 케이트가 죽기 전으로 돌아가 죽지 않는 상황설정으로 되돌리려다 케이트의 비밀을 알아버린 엠마의 시선 속엔 처음엔 행복한 가족생활을 보여준 매튜의 가족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사랑에 목마르고 사랑을 받고 싶어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반면 매튜에겐 사생활을 엿보게됬다는 , 원치않은 상황까지  가게 된 고통과 미안함, 그리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시간적 , 공간적인 힘을 이용한 허구의 미를 모를 만큼 재미를 느끼게 한다.

 

각자의 주인공들의 케릭터엔  가슴 속에 아린 상처들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독을 내세우고 배신이란 것을 추가함으로써 ,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한단 것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어떨까? 를  비교해 보게 된다.

 

기욤뮈소의 특징인 시나리오를 연상하게 하는 각 챕터마다의 소 제목과 그에 어울리는 대사와 상황설정, 그리고 여지없이 미국을 너무나 사랑한단 느낌마저 갖게되는 미국이란 공간 속에 각 도시가 내뿜고 있는 풍경묘사와  각 나름대로의 특색이 여지없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처음의 현 상황과 상황종료 후의 다시 매튜와 엠마가 만나게되는 비트는 설정의 묘미를 반복과 또 다른 반복의 맛을 보게 한 이 책은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381쪽.... 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저자 스스로가 추구하는 글쓰기의 의미대로라면 이 책은 물론 전작의 모든 작품들이 그런 성향을 취하고 있단 점에서 처음 서두 부분엔 기욤뮈소의 전 작 어느 책과 너무 비슷하단 설정의 한계를 지니고 있단 점에서 신선도는 떨어졌으나, 로맨스의 다양한 대화와 느낌,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기본장르를 충실히 했단 점에선 역시 기욤뮈소답단 느낌이 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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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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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고정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의 작가이자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일단 출간이 되면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는다.

소재의 다양성, 그리고 일관되게 작품 속안에서 작가 스스로가 주장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와 근본적인 인간들 상호관계에 있어서의 진지한 물음을 던진단 점에서 추리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속 안에서의 주제를 가지고 현실에 입각한 생각을 던진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단 점에서 이른바,  말하는 사회파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두 개의 프롤로그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짧은 단막극 같은 콩트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처음 프로롤그는 출근 길을 나서는 한 가족이 불명의 남자가 휘두른 칼에 부부가 아이를 남겨 둔 채 생명을 잃는 장면이다.

두 번째 장면은 14 살의 중학생인 소타란 남학생이 집안의 연례행사로 이어지고 있는 나팔꽃 구경이다.

자신보다 13살이나 위인 형과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나팔꽃 시장으로 가던 중 동년의 여학생 다카미와 친해진 후 메일을 주고 받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첫 사랑의 아련함을 지니는 이야기다.

 

20년이 흐른 후 리노는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룹활동을 하는 사촌오빠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고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를 뵌 후 할아버지를 위로 할 겸 할아버지의 집에 드나들게 된다.

식물에 관한 직업을 가졌고 퇴직 후에도 식물을 키우는 보람으로 사시는 할아버지는 리노에 의해 변사체로 발견이 되면서 사건의 흐름은 급속도로 빨리 진행이 된다.

 

할아버지가  키운 꽃들을 블러그에 올리면서 단 하나만은 사진에 올리지 말것을 부탁받은 리노는 그것이 노란색의 나팔꽃임을 알게되고 이후 그녀는 소타의 형인 요스케의 만남을 계기로 꽃에 대하여 사건의 중심에 이것이 연관이 되었음을  감지하게 된다.

 

 (엔젤트럼펫이라고 하는 꽃..책에 나온 나팔꽃 형상과 비슷해서 올려봤다...다음에서 발췌)

 

 

 

 

 

 

 

 

 

 

 

하야세 경찰과 할아버지의 인연, 소타와 같이 사건의 행방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알아가는 과정 중에 다시 만나는 소타의 첫 사랑의 행방 감추기, 그리고 여기에 더불어서 각자의 인생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생각을 곁들인다.

 

프롤로그 두 개의 이야기는 좀처럼 연관성이란 찾아 볼 수 없었단 데서 독자의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다그치게 만드는 힘은 여전하다.

왜 이런 이야기가 처음 서두에 나왔는지, 도대체 나팔꽃 중에서 많은 색깔 중 노란 색은 없는지, (그러고 보니 진짜 없네..)그 이유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은 작가가 가진 패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일반 나팔꽃)

 

일본의 에도막부 시대에 있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알려진 노란 나팔꽃의 행방을 쫓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엔 일본만의 오랜 가업이어가기 정도로 해석될 수도 있는 요스케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감과 다카미의 향후의 인생 계획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일본만의 색채란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 이런 가업 이어가기의 책임성이 몇 세대 위에서 이루어진 행보를 후대인 후손들까지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는 설정의  흐름은 일본만이 지닌 특성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10년 간의 기간이 있었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되, 심도있는 역사 속으로의 행로를 유지 하지 않은 채, 살짝 역사란 색깔을 입히면서 현재를 기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흐름적 중심이 잘 잡혀져 있다.

 

단순히 노란 나팔꽃을 쫓아서 사건의 해결이 완결 지어질 것이란 독자들의 생각 속에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를 연상 생각하게 하면서 읽어보게 하는 글의 마력, 그리고 왜 몽환화라고 불려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후반부의 이야기는 두 갈래의 프롤로그가 일단 각개의 낱개 형식의 조각이 모두 한데 합쳐서 노란 나팔꽃을 중심으로 모아지는 과정은 하나의 천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큰 그림이 완성되게 하는 퀼팅을 연상 시키게 한다.

 

      (별도의 표지가 한데 합쳐저서 이루어진 모습이 이야기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여기엔 단순히 노란 나팔꽃이 지닌 위험성 경고만 가지고 인간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위험성만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론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 이런 오랜 전통적인 세습을 가지고 인간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처단하는 방식의 이면에 또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인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를 곁들여 생각해 볼 것을 권한 점이 아닌가 싶다.

하나의 식물 과인 나팔꽃을 둘러싼 두 가문의 행로에 빗대어 소타의 전공을 내세움으로써 이 두 가지 비교를 통해 소타가 향후 자신의 전공대로 밀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차후 더 안정이 보장된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갈등을 내세운 작가는 언젠가 미래의 불확실한, 하지만 현재에선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원자력의 사용에 대해서 일본에서의 사고 후의 다시 미래를 내다보는 책임의 행로를 덧대어 말하는 것은 아닌지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소타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 p 420

다카미가 소타에게 , 소타 자신이 자신에게, 그리고 그런  확신을 친구에게 말함으로써 다짐하듯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위의 말로 대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에도 시대에 존재했다던 환상의 몽환화라 불렸던 노란 나팔꽃-

인간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처럼 보여준 그 꽃의 결말은  인간 세상에서 행해진 이롭지 못한 것임을 자각한 순간 그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렸듯, 소타가 결심한 향후의 행보는 그런 의미에서 타산지석이라 할 만하단 생각이 든다.

 

일본만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만 빼놓고 볼 때 전체적인 스토리의 짜임은 속도감, 흡인력, 그리고 메시지적인 뉘앙스들은 한 번에 읽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목마름이 가시질 않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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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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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 카운티의 코플랜드 검사는 흑인 스트립댄서를  강간한 혐으로 배리 마란츠와 에드워드 젠레트를 기소하려고 준비 중에 마놀로 산티아고라는 자의 시신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기반으로 시체확인을 해 달라는 경찰의 요구에 시체 공시소로 가게된다.

 

그 곳엔 세월이 흘렀음에도 흉터와 변한 모습을 통해 길 페레즈임을 알게된다.

 

20 년전으로  거슬로 올라가 당시 18세였던,  러시아 이민자로서 미국에 정착한 부모 밑에서 아이라라고 불리는 사람이 운영하는 캠프장에 상담요원으로 일하던 코플랜드는 아이라의 딸인 루시와 함께 보초를 서야하는 당번임에도 불구하고 둘이 숲으로 가서 둘 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중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 시간에 숲에 들어간 네 명, 마고 그린과 더그 빌링엄이 피살체로 발견되었고 길 페레즈와 카밀 코플랜드는 실종되고 만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웨인 스튜벤스가 잡히고 감옥에 수감이 된 채 남겨진 가족들은 아이라를 상대로 배상요구를 협상, 그렇게 모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배상금이 들어오자 그 중에서 일부를 가지고 집을 나간 엄마를 둔 코플랜드에게 왜 이 시신으로 인해 그 때까지도 죽었다고 믿었던 길 페레즈가 이제서야 죽은 채 발견이 됬는지, 같은 시간대에 자신의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살아보려 이름까지 바꾼 루시에게 작문숙제로 넘긴 과제 속에 20년 전의 숲에서 벌어졌던 유사한 내용이 들어있는지에 대한 혼란과 고민 속에 두 사람을 다시 해후를 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과거의 사건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쓰게된다.

 

과연 할렌코벤답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탄탄한 밑밥에 독자들은 이 밑밥이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우선 일기시작하면서 5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이 책에 시간을 쏟게만든다.

 

 추리와 스릴의 가학적이고도 극단적인 성향의 표현이 아닌 할렌만의 일부의 도시에서 어느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있는 사건을 통해서 할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너무나 넓고 깊은 숲 속에 들어가지 말란 지시를 어기고 밤에 들어간 네 명중 두 명이 실종이 된 상태에서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 온 코플랜드의 흩어진 가족간의 분위기는 뭐라 표현 할 수없는 성장기의 그 만의 고독감을 드러내준다.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한 두가지쯤은 있다는 것을 토대로 코플랜드는 당시 루시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됬고, 그 이후 길의 시신을 확인한 길의 부모 또한 분명 자신의 아들임이 분명한데도 , 아니라고 부정하는 데서 숲이 지닌 어둡고 광대한 뭔가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되 있는 힘껏 움츠려 터지기 일보직전의 진공상태를 암시하는 분위기가 압권이다.

 

반전의 반전, 읽고 난 후에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알게되는 흐름에 비춘어 또 '가족애'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의 실체는 무엇이 진실된 감정이고 욕심에 가려진 진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후의 부인이 느끼는 배신감, 배상금을 둘러싸고 자식을 감추어주면서 살아가는 부모들,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의의 거짓이라고 밖에 할 수없는 거짓 진술을 해야만 했던 코플랜드 ,  다시 수면위로 오른 사건의 최후 배후를 막아보려했던 아버지의 사랑....

 

여기에 과거의 부모를 이해하지 못했던 코플랜드가 기소사건을 통해 법 구형을 받아내려하는 가운데에 비록 자식이 잘못은 했지만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아들의 형 집행을 막아보려하는 또다른 부모들의 심정이 대비되면서 주인공을 가족애란 말 앞에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는 딜레마를 또 하나 던지고 있다.

 

20년 전의 숲 안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첫 사랑에 대한 아픔과 가족들간의 분열된 감정을 가지게 됬고 20년이 흐른 후의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숲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마주보게되는 현실 속에서 서서히 밝혀진 사실을 앞에 두고 다시 망설이게 된다.

과연 코플랜드와 루시는 숲 밖으로 나와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갈 수있을까?

 

스릴을 취하는 방식 속에 진정한 따뜻함이 무언지도 묻게되는 할렌코벤 표식만의 문학~

 

역시 이번에도 여지없는 할렌코벤이다.

(단 문장 중에 한국인 상인의 특징을 표현한 구절이 있는데, 혹 살고 있는 동네에 한국인 상인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인지, 모든 한국 상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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