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월 : 눈먼 달 세트 - 전2권 맹월 : 눈먼 달
류다현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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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국의 왕궁에 책력(책력(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를 날의 순서에 따라 적어놓은 책)을 얻으러 온 과국의 태자 유원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방문하던 중 예국의 공주 아희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강한 이끌림을 느낀다.

 

자신의 나라보다 항상 앞서있던 예국의 천문지리에 관한 것을 매년 받아와야만 했던 그로선 자신의 나라의 국력을 예국처럼 강하게 할 책임감이 있던 차에 예국의 왕이 갑자기 급서하는 바람에 왕위쟁탈전에서 후궁인 규비와 그의 자식인 월이 죽고 아희는 진태비와 그녀의 아들 권에 의해 독을 먹음으로써 눈먼 맹인이 된 채 냉궁에 갇혀있단 사실을 알게된다.

 

아희에겐 쌍둥이 오빠인 결이 있었으며 위험한 궐 내의 혼란을 틈타 다음을 기약하며 신분을 감추며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된 아희는 오빠가 돌아오길 냉궁에서 기다리면서  유원이 같이 떠나자해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며 거절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생활에 익숙한 냉궁의 생활은 이복오빠 권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갈구에도  오로지 결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힘겨운 생활을 하던 차, 예국과 과국 간에 이익타산에 의해 아희는 민영공주란 호칭을 하사받으며 유원과의 가혼례와 다시 후궁으로서의 혼례를 치르는 등, 일련의 시련 속에 유원은 첫 만남에서 받은 사랑의 감정을 유지한 채 앞 못보는 아희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한다.

 

하지만 서서히 유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쏠리게 됨을 알게 된 아희에겐  권의 양위를 받은 결이 아희를 다시 데려오게 되고 그녀는 유원의 왕위를 굳히기 위한 배려를 해 주기 위해 예국으로 떠나게 되고  지천관(책력을 만드는 향월대의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에 유원을 다시 만나게 된다.

 

로맨스 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아픔과 고통을 나눈 두 남녀가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단 해피엔딩의 결말은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랑의 형태는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랑의 모습엔 여러가지 방식과 나름대로의 상황에 따른 흐름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이 소설에서 나오는 사랑의 모습들은 아픔과 고통 외에 '사랑'이란 단어 앞에서 행동을 취하는 주인공과 그 주위의 사람들의 행동들이 모두 달리 보인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릇된 사랑으로 보여지는 진태비와 권 모자간의 쓸쓸하면서도 화해 할 수없을 지경으로 몰아가게된 아픈 사랑,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위로해 준 오로지 따뜻한 한 사람이었던 이복 여동생 아희에게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이란 이름 앞에서 눈을 멀게까지 만든 권의 눈을 뜨고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줄 몰랐던 권의 소유욕 강한 사랑, 자신에게 언젠가 마음을 열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아희 한 사람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어 사랑을 완성한 유원의 지극한 사랑, 왕의 자리에 오름으로서 결코 자신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단 사실 앞에서 혈육의 정을 앞세워 동생 아희를 끝까지 몰아간 결의 사랑방식과 행동들은 온전한 정신과 신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신체가 불편했던 아희 만큼만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눈 뜬자들의 눈 먼 사랑을 오밀조밀 그려내고 있다.

 

정도와 순리대로 이뤄어져야함을 자신과 아기의 목숨을 담보로 끝까지 오빠 결에게 알리고 싶었던 아희의 사랑은 모든 것을 가졌으나 결코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허상의 왕인 결의 심정을 어루만져 준 따뜻한 사랑을 보인다.

 

사랑하면 시시콜콜 더 알고 싶어지고 나만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맘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이 소설에선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어떤 자유와 구속이 필요한지, 내가 행복하고 상대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정도와 순리를 벗어나지 않는 , 그릇 속에서 예쁜 사랑을 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유원과 아희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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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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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쓰 류세이는 엄마의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대전입상이란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한 채 치매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서예가다.

 

그의 부인인 레이코는 학교 보건교사로서 자식 낳는 것마저 포기한 채 시어머니,  남편과 함께, 실질적인 집 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맡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시립도서관에서 전시회를 하던 류세이는 민간인 도서관장으로 선출된 노부키의 여동생 준카를 만나게 되고 아무도 부족한 점을 꼬집어 설명해 주지 않던 자신의 서예작품에 대한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신체는 성인이나 정신은 어린이가 갖고 있는 순수 , 그 자체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살한 엄마의 천부적인 재능을 이어받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 그런 면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갖추지 못했던 선천적인 재능을 질투하고 그녀의 안타까운 실력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 복합적인 느낌을 류세이는 갖게 된다.

 

한편, 레이코 또한 그 날이 그 날인 삶에 대한 어떤 변화도 없는 후카이도의 한 도시의 생활은 준카와 관계를 이어가게 되면서 노부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휩쓸림을 알게 되고 노부키 또한 조금의 진전 상황도 이어가지 못한 여자 동창생과의 관계와 일, 배다른 동생인 준카와 살게 된 압박에 대한 감정, 레이코에 대한 자신의 질투심 사이를 오고가는 관계를 유지한다.

 

전혀 이어질 관계가 없어보였던 사람들이 서로 연관이 되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벌어지는 조그만 틈새 사이로 간간이 호흡이 가빠짐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질투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려낸 이 소설을 각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저마다 처한 환경에 따른 다른 느낌의 질투란 감정을 보이고 있다.

 

서예가의 등단 창구인 ‘묵룡전’에서 수상해 이름을 알리겠다는 생각에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못하고 부인에게 의존해 살다시피하는 류세이가 느끼는 부인에 대한 고마움이란 감정 외에 경제력이란 힘을 쥐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질투, 준카가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에 대한 경외심 내지 재능에 대한 질투,  기혼녀임을 알면서도 남편 류세이에 대해 느끼는 질투를 갖게되는 노부키, 그리고 오직 아들만이 알 수있는 느낌을 통해 치매환자가 아니면서도 치매가 갖고 있는 행동을 보이는 엄마가 느끼는 아들내외에게 향한 질투들이 촘촘히 엮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허술해 보이는 문단들 사이로 감정들을 그려낸 점들이 눈에 뛴다.

 

그렇다고 어느 한 지점에 가서 폭발점이 드러나서 모든 것의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들이 나오는 것은 아닌,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섣불리 말했다간 내 자신 스스로가 다칠까봐 두려워 서로 주시하는 감정선의 연속을 보인단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뜻밖에 사실을 알게 되는  말미의 흐름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럼 이건 뭐였지? 라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의 선을 다시 앞으로 들쳐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해서 이 책의 저자가 보여주는 질투라는 감정에 대한 또 다른 느낌을 받게 한다.

 

나오키 상 수상자로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소개된 책인만큼 다른 일본의 여류작가들과는 또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감성 가운데 하나인 '질투'라는 감정을 토대로 그려낸 장편이기에 새롭게 다가갈 수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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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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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탓에 디지털의 혜택을 누리고 살지만 아직도 나처럼 아날로그 타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책도 아직까진 종이책이 좋고 핸폰도 스마트 폰보다는 슬라이더나 폴더폰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이가 주는 익숙함이란 단어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하는 연륜도 있겠지만 이것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하나가 라디오란 매체다.

뭐` 라됴에서도 노래 틀어줄 때 DJ가 이젠 디지털 기계를 다루는 모습을 볼 수있는 보이는 라됴란 걱도 있지만 학창 시절에 즐겨 들었던 노래들이 나오면 바로 그 시절의 라디오를 듣던 때로 돌아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감성이 풍부하다면 풍부한, 어느 작가 못지않게 책을 내는 방송인 중에서도 당연코 정혜윤 PD가 내놓는 글들은 따뜻한 정감이 서려 있다.

 

방송의 프로듀서로서 그 동안 취재나 방송 때문에 걸려진 분량의 글들을 모아서 이어지는 형식의 라디오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책의 내용들은 아주 서민적이다.

어떤 특정 분류의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취재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 온 이야기 속에 그들 나름대로의 신조 내지는 인생의 좌우명, 그리고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로 풀어낸 저자의 감동과 느낌이 생생히 전달이 된다.

 

 

인생의 70%의 소원을 이루셨다는 어느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 거친 바다와 싸우면서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어부의 모습,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가신 어느 아버지의 말씀들은 그것이 라디오란 매체이기에  눈에 보여지는 영상을 통해서 듣고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삶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요와 공급 외에 마술이란 것을 넣음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의 확고한 신념은 바로 곁에 있던 우리의 부모님이요, 어른신들이고 보면 가만히 듣는 것으로 만족했던 라디오가 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 간에 오고가는 살아있는 말들 속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삶에 대한 모습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책 색상의 컬러는 처음엔 진한 색상의 노란 색이지만 갈수록 흰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걸르고 걸러져 깨끗하고 청결한 세상을 의미하듯 이야기들의 흐름들은 유연하다.

 

 

경쟁의 사회에서 누가 하나 양보함으로써 어우어져 살아가는 사회, 쉬운 인생의 길은 아닐지라도 인생을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곳곳의 이야기 보따리 연결로서의 라디오는 한층 그 매력을 쉽게 저버리게 하지 않는단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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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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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 (李臣). 그러나 또 하나의 이신(貳臣)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내 이야기

 

조선왕조에서 대대적으로 큰 치욕을 겪었던 2번의 전란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서 당시의 왕권과 신하들의 당파싸움 속에 오로지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바로 민초들이었다.

 

사실 역사의 후대에 속하는 우리들로서는 과거의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기초로 여러 가지 상황을 예견해 볼 때 전쟁이 주는 고통의 비참함은 6.25를 겪으신 어른들의 말을 들어도 알 수 있지만 실제 그 현장을 겪어보지 않은 후손들로서는  간접적으로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을 통해서 다변도의 생각을 할 수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대상자는 노약자, 어린이, 그리고 여인들이다.

아무리 대세가 눈에 보이게 드러나는 전쟁을 치른다 하더라도 역시 승. 패자와는 상관없이 전쟁이 주는 고통은 바로 뭐라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시발점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

 

이 신(李臣)-

서자도 아닌 노비인 엄마를 둔 그는 얼자 출신이다.

광해군을 보위하던 아버지를 둔 그는 인조반정을 통해 이복 형과 아비를 잃었고 정묘호란을 통해 사랑하는 아내 선화와 딸 난이를 압록 강변에서 잃은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청 황제의 눈에 들어 조선의 칙사로 발령받아 고국에 돌아온다.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두매 산골에서 화전민으로 그림을 그리는 부인을 곁에 두고 갖바치 생활을 하던 그에게 전쟁은 그의 삶과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렸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그저 덤 , 그 자체란 생각으로 살아왔다.

 

백성들은 왕조의 왕이 누가되는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소위 말하는 고관 대작의 신하가 누구인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저 밥 배불리 먹게 해 주고 등 따뜻하게 누울 내 집과 건강한 가족들만 있다면  요순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누가 왕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정면으로 이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당시 호란을 겪은 후의 조선이란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는 위정자들은 그러하질  못했다. 적어도 폭군이라 불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공신들과 인조는 반정의 이유가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성공은 했으나 차후 벌어진 두 번의 난을 겪고도 그 흔한 책임의 과실을 따지는 절차 조차 무시하고 오로지 황제의 칙사로 하여금 청으로 입조하란 말이 떨어지질 않길 바라며 눈치를 보는 조정으로 전락해버렸다.

 

전체적으로 크게 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인조의 생각과 계획, 이 신이 생각하는 계획과 나라의 윗 선들이 다루고 있는 당시 조선의 시대를 엿 볼 수 있는 청과 명과의 조율적인 행동을 견제하기 위한 당파와 왕을 견제하려는 신하들, 그리고 이름없는 백성들의 환란을 겪으면서 신분붕괴와 이를 책임 지려하는 행동을 기피하는 이씨 왕조에 대한 비판이란 생각이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들이 이 소설에서 이 신이란 사람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설정 방식이 좋았단 생각이 든다.

 

 하찮은 미물이라도 조금의 상처만 나도 그 상처의 쓰린 기억은 사라지지 않거늘, 조정은 그것을 무시했고 인조의 그릇된 행동을 본 반정공신 중에서 인조의 목숨을 노리는 또 하나의 반정세력이 나타난다.

 

칙사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회유정책을 하는 가운데 인조와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대신들 중 일부가 자진이란 그럴 듯한 포장으로 살해가 되고 이를 추적하는 이 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간의 다툼, 그 가운데 광해군이 완성하고자 했던 폭약 비격진천뢰란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반정세력과 이 신의 연관을 의심하며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인조의 철저한 계획이 실행되는 설정이 권력을 쥐려는 자들의 서슴없는 한 면을 보여준다.

특히 인조 그 자신은 왕권을 손에 쥔 자로서 신하들과의 관계를 전 선대왕과 광해군을 통해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소신을 갖게 되면서 뜻밖에 이 신은 그 계략에 휘말리는 상황을 맞는 부분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여기엔 두 호란을 겪으면서 또 하나의 비극을 주는 것이 있으니 억지로 청에 끌려가 모진 육.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돌아온 여인들을 바라보는 조선양반들의 시선이다.

화냥년(還鄕女: 환향녀가 변한 말: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정절을 잃은 후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을 이르던 말)-

영의정 김 환이 자신의 첩과 딸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 데려 올 때 처남인 병조판서 홍원범에게도 부인과 딸이 다시 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돌아온 여인들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타국에서 이미 버린 몸이라는 시선과 어찌 다시 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냐는  양반들의 이혼 소청을 왕은 승낙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다시 조정과 양반이란 사대부들이 지닌 비 사고적인 생각을 작가는 비난하고 있다.

원해서 스스로 간 것도 아니요, 결국엔 나라 님의 정치 잘못과 위정자들의 판단 실책에 따른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여인들을 누가 위로해 줄 것이며 한 지붕 아래 따로 살아가는 타인처럼 마주치기를 저어하는 양반 사대부들의 , 오로지 대의에 의한 , 대의를 위한, 그래서 대의가 제시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 결국엔 자살이란 허울을 또 다시 강요하는 , 타인들의 가정을 가타부타 말 하지 않았던 홍원범에게도 어쩔 수 없는 당시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꼬집는다.

 

이 신 또한 그러한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아내와 딸의 행방을 쫓는 그의 외로운 행보는 그 만이 알 수 있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李臣, 아버지는 내게 이씨 왕조의 신하로 살라 하고,

貳臣, 세상은 내게 다른 왕을 섬기라 한다.

 

 

다른 왕을 섬긴 이신(貳臣)이란 결국 두 王朝, 그것도 이민족이 세운 나라를  섬긴 기회주의자란 뜻이고, 이는 결코 그가 스스로 원한 신분상승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나라 밖의 정세조차 제대로 인지를 하지 못했던 당시의 조정 대신들의  당파에 얽힌 힘겨루기,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단 길로 생각했던 그 위정자들의 그릇된 행동의  몫은 오로지 백성들의 고통이 되었음을 피차 서로 미루는 조정의 분위기들은 다른 역사적인 사실 들 속에서 다뤄지고 있는 왕의 고뇌와 대신들의 고통을 그린 점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이 소설은 전란을 겪고 난 후의 민초들의 삶, 평범하게 살길 원했던 얼자이자 갖바치였던 이 신이란 자의 눈을 통해서 오늘 날, 현재의 우리들에게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부드럽지만, 강하게, 소리 없이 전해주고 있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소용돌이 속에 두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어찌 보면 시대의 희생양의 대표격이었던 이 신이란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전쟁 후의 책임감을 묻는 저자의 소리 없는 글이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강한 울림이 전달되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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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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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드라마의 대표자라 한다면 아마도 존 그리샴을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있을 만큼 그는 자신이 전공한 것을 토대로 법에 관한한 많은 이야기를 내 놓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법 테두리 안에서 다뤄지고 있는 기상천외한, 현실에 일어날 수없단 생각을 하게 하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갖춘 이야기의 소재 발굴성은 글에 대한 능력 외에 그의 폭 넓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몇 년전 '타임 투 킬' 이란 책과 영화를 통해서 이 작가에 대한 것을 처음 접하고 그 이후에 그가 다루고 있던 많은 책과 영화들을 보게 된 것이 첫 인연의 출발점이었다.

 

당시의 주인공이었던 제이크 브리건스 (영화에서 매튜 매커너히)  신출내기 변호사가 흑인의 변호를 맡음으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 결과  집도 타고 가족들과 그 주위의 사람들이 위협을 받게되는 과정을 그린 책과 영상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책은 출판사가 말한대로 20여 년도 더 된 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후속작이라고 할 수있다.

후속작이라는 말엔  전 작인 '타임 투 킬'의 이야기 연장선이 아닌 당시의 주인공이 그대로 세월이 흐른 후에 다른 사건을 맡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단 의미다. 다른 책들을 보면 시리즈란 이름으로 계속 출판이 되는 것에 비교하면 시간도 오래 흘렀고, 시리즈란 의미를 붙이기엔 좀 그렇지만 그 연장선으로 보면 이해가 훨씬 잘 되겠단 분위기가 드는 책이다. (물론 책 곳곳에 전작의 이야기들이 간간히 나오기에 읽는데엔 부담이 없다.)

 

미시시피 주(州) 포드 카운티의 작은 도시 클랜턴에서 돈이 꽤 많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 외의 신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노인 세스 후버드가 시커모어 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사건이 일어난다.

 

두 번의 이혼으로 이뤄진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수완을 발휘해 부(富)를 이룬 그였지만 폐암으로 인한 후유증과 두 명의 자식들과 손주들과의 오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지낸 채 삶을 마감한 그는 공개된 유언장에서 전체 재산 중 자식과 손주들을 제외하고 5%는 교회에, 5%는 소식이 끊긴 자신의 동생 앤실 후버드에게, 나머지 90%는 자신의 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돌봐준 레티 랭이란 여인에게 상속한다는 내용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주인공 제이크 브리건스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유언에 따른 법을 진행하기 위해 제이크는 사건을 맡게된다.

 

이렇게 되면 말썽이 생길 우려가 크기 때문에 내 유산 문제를 맡아서 처리해줄 변호사로 당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유언을 지켜야 하며, 당신에게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나는 성인이 된 나의 두 자녀, 손주 그리고 두 전처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들은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니, 당신도 싸울 준비를 하세요. 내가 남기는 유산은 상당한 액수에 달합니다.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액수가 밝혀지면 그들의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끝까지 그들과 맞서 싸우세요, 브리건스 씨.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가족들을 중심으로 배분할 자산이 있으면 법의 형태대로 일을 처리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세스 자신이 죽기 전에 이미 법률회사에 세금을 감안해 유산정리를 유언한 유언장이 있음에도 이를 폐기토록 하고 오로지 지금, 제이크에게 준 손수 자필의 유언장만이 진실이라며 집행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레티 랭 자신조차도 도대체 왜? 란 말 밖엔 할 수없는 , 그 많은 재산을 물려주려했는지에 대한 것에 도통 영문을 모른 채 법정에 오르게 된다.

 

이 소설의 분위기는 그렇게 전개가 시작이 된다.

미국의 전체 국토 중에서 남부에 유달리 흑인 거주자가 많고, 물론 역사적인 배경 탓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지만, 유독 흑.백의 차별이 심했던 남부, 그것도 그 중에 하나인 미시시피 주가 배경이다.

유산을 물려받게 된 레티 또한 흑인 여성이다.

가족들은 당연히 법적인 소송을 제기하게 되고 이후부터 모든 것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2400만 달러가 조금 넘는 , 현금이 대부분인 유산을 둘러싸고 기나긴 법정 공방을 벌이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전 작인 '타임 투 킬'에서도 흑.백 간의 원고와 피고를 다룬 사건을 다룬 바 있던 작가는 이번에도 또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다뤘다.

전작이 딸에 대한 복수로 백인들을 상대했던 흑인 아버지에 대한 변호였다면 이번 이야기는 레티란 여인이 받게 될 , 즉 그녀에 대한 변호가 아니라 죽은 세스가 원한 유언집행에 따른 책임을 진 변호사로서의 법정을 다룬다.

 

 같은 백인도 아니고 한낱 가정부 출신의, 그것도 흑인 여성이란 점에서 세스의 아들과 딸은 받아들이질 못하고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던 오누이 사이는 단합까지 하게 되는 , 겉으로 들어나는 이유인 흑.백의 이야기 외에 본질적으로 다루고자 한 이야기인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시종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구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스의 아들과 딸에 붙은 변호사, 그들의 자녀들에게 붙은 변호사, 레티의 집에 몰려든 왕래조차 없었던 친척들의 몰림현상은 많은 유산액을 둘러싼 , 저마다의 한 낱의 기대를 걸고 모여든 파리떼를 연상시킨다.

 

세스의 유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땅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는 정말이지 영화에서나 봤던 일들이 실제적으로도 이뤄졌고 그로 인해 레티의 인생이 바뀌게 됬다는 설정이 우리와는 다른 미국의 아픈 한 면을 보여준다.

 

 

 

 

'린치사건'이라고 불리는 미국인들 중 당시에 시대적으로 묵인으로 용인이 됬던 흑인에 대한 차별은 어릴 적 보았던 그 참혹한 현장에 대한 기억이 평생토록 두 형제인 세스와 앤실의 마음에 두고두고 속죄의 마음을 지니게 하는 과정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각 주마다 법이 요구하는 사항이 다른 점에 따라서 변호사대로 그 주(州)에 맞게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민사소송의 한 단면은 법이 지닌 그 힘 앞에도 여전히 승자와 패자가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견제 내지 작전을 세우는 장면, 배심원단을 선택하는 과정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되게 살 수도 있었을 세스는 그런 면에서 양심적이었고 아마도 일평생 가슴 한 켠에 자신이 속죄의 뜻으로 실천한 이 행보가 비록 법정에서 많은 인물들과 얽혀 자신들 가문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고가게 만들었지만 이렇게라고 하지 않으면 편히 저세상으로 가지 못했을 거란 믿음으로 행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법의 승소 뒤에 오는 환희를 뒤에 두고 또 다시 항소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변호사란 직업의 세계,  그 와중에 과거와 화해를 함으로써 또 다른 열린 결말을 예고해 주는 듯한 이 이야기들을 읽고 난 후엔 저자가 또 하나의 재미와 실무위주의 이야기를  작품을 남겼단 생각이 들었다.

 

 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에 재판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전개 과정을 두루 훝어불 수는 있으나 자칫 지루함도 올 수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두 권에 걸친, 세스가 죽은 그 나무가 의미하는 바는 한국의 제목 외에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존 그리샴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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