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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ㅣ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 바다를 접해 본 것이 학창시절 방학을 맞이하여 보길도를 향한 길에서였다.
기차로 5.~6시간 정도를 갔다고 기억되는데, 내려보니 또 배를 타고 가야 비로소 내가 원한 장소인 보길도로 가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갑작스레 좋지않아 보길도에서 미처 가지 못하고 중도라는 곳에 내려 바로 민박을 하면서 다음 날 보길도를 향한 기억이 난다.
당시의 배는 많은 바캉스족들 때문에 그야말로 시루떡이란 표현이 제대로 어울리다 싶었을 정도의 많은 인원들이 타고 있었고 배 밑 선실에 앉았던 우리 동행들은 바로 창가에 코를 박고 넘실대는 바닷물의 정체를 그야말로 입을 딱 벌리면서 다물줄 모르고 보던 생각이 난다.
맑은 물도 아닌 그저 출렁거리는 바닷물의 율동은 바로 내 앞에서 수도물을 크게 틀어놓은 것 처럼 내게 다가와서 쏟아부을 것처럼 엄청난 압력을 자랑했고 이러다 혹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물귀신이 되겠구나 하는 , 당시의 두려움이 생각난다.
바다에서 태어나고 지금도 그 곳 고향에서 자신의 글과 삶을 살아가는 작가 한창훈 님의 이 책은 그런 오랜 기억속에 묻혀있었던 나의 작은 추억거리를 끄집어 내게 한 책이다.
어디가 시작점이고 어디가 끝인곳인지를 모를 한 없는 모습을 자랑하는 바다-
그 바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 속에 지구라는 행성은 그저 우주 속에 한 푸른 물방울이요, 우리는 타 동물과는 다른 인간이라고 자각하며 살아간다지만 결국엔 미세한 존재들임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바다에서의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겸손과 그들을 이겨낼 생각을 하지않는다.
오로지 그저 수긍하며 받아들일 뿐, 기껏해야 태풍이 몰아치면 기도 하면서 이번엔 제발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우리 아버지 배 무사하고 집들도 무사하고, 모든것들이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있길 바랄 뿐 , 더 이상의 큰 야망도 없으며 바다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방랑자처럼 여러 배를 타고 북극해까지 섭렵한 작가의 멈출 수없는 '바람끼'는 그래서 어쩌면 육지에서 생활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더 진솔하고 솔직하며, 그 생활 안에서 녹아나오는 체험적인 삶에 대한 방식이 새롭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술과 멸치 몇 마리가 주어지고 바다와 나와의 일체동심적인 생활의 모습과 그 안에서 묻어나오는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인 해녀와 작부집 여인네들의 생활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련한 추억의 한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 앉혀 놓는다.
바다의 고래를 보러 위험을 무릅쓰고 북극해까지 시도하는 모험 속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뱃 사람들의 정이 가득한 가족애, 항상 이별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시 뱃길에 올라야하는 그네들만의 정서가 가슴 가까이 메아리져 울려퍼진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하나 자연 앞에선 무용지물임을...
매 순간마다 바다의 흐름과 유빙, 쇄빙선의 감각적인 느낌을 체험해 보고 싶게 만드는 유혹적인 글들, 여전히 바다를 벗 삼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생활은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둔 처절한 생존임을 깨닫게 해 준다.
***** 살과 죽음이 한순간이다. 재해는, 인간이 난 무엇인가, 를 물어볼 틈도 없이 찾아온다. 그게 오면 우리가 만들고 이루어냈다고 뻐기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웃의 참사를 대할 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정도이다. 무기력하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 이라는 흔해빠진 말이 새삼 무겁고 아프다. - p157
그렇다면 왜 바다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머물까?
아마도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바다는 사람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푸른 물방울 속에 70%를 차지하는 바다의 존재는 때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엄청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기에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함부로 내던져버릴 수없으며, 또한 그것을 배신하며 살아갈 용기조차 없는 것은 아닐런지....
생생한 화보의 바다 현장과 함께 작가의 여유자적한 인생관찰기, 정약전이 귀양가 있던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취급한 어보가 '자산어보' 임에 빗대어 자신만의 철학이 깃든 한창훈표 자산어보는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바다를 동경해 버리게 만들었다.

무차별 공격이었던 쓰나미에 대한 공격, 세월호 참사에 얽힌 바다에 대한 미움과 함께 생생한 바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은 기회만 된다면 나도 한 번 북극해나 남극해를 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한다.
글 말미에 작가는 묻는다.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항해를 하겠는가.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선은 용기를 내어야할 것이 첫 번째 관건이요, 두 번째는 작가처럼 배를 내가 소장하고 있다면 난 어떤 식의 항해를 ?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우선은 따뜻한 기온이 항상 넘치는 파푸아뉴기니를 가보고 싶긴 하다.
그 곳 사람들의 원시적인 물고기잡이를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터라 순진하고 욕심없는 사람들 무리에 끼여 나의 묵은 욕심과 때 묻은 생각을 모두 날려 버리고 싶단 생각이 이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