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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평점 :

혼불이란 문학책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토지와는 또 다른 우리나라만의 색채를 느낄 수있었던 묵직한 감동을 주었던 책인만큼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책들을 읽노라면 새로운 감성이 느껴지기에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이번에 수상작인 비밀정원의 배경 또한 한국적인 느낌이 많이 드러나는 책이다.
노관이라는 강릉의 근 삼백 년간이나 존재하는 고택에서 자란 이(李)요란 주인공을 내세워 그 안에서 벌어졌던 성장기의 회상과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의 일들까지 모두 노관이란 배경을 두고 장엄하게 펼쳐진다.
일찍 허약한 아버지를 여윈 이요는 집 안의 가장이자 붙박이 화분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로지 집 안에서만 활동을 거의 하다시피한 엄마 밑에서 홈스쿨을 하며 커간다.
큰 고택답게 그 근방의 모든 땅 소유를 지녔다고 할 만큼 큰 살림을 하며 곁에서 도와주는 묘자 아주머니, 태경아범, 그리고 산지기 오두막집 아저씨, 집 안 소소한 일들을 돕는 여자들까지, 모두 이요의 성장에 있어서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는다.
어느 날 삼촌인 이율이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면서 노관에 들르게 되고 이어서 이요와 엄마와 같이 생활하는데, 자신이 알지 못했던 두 사람간의 비밀을 동네 아주머니들 입을 통해 듣게 된다.
한 때는 사랑하는 연인들이었으나 엄마는 삼촌의 청혼과 도주를 어기고 아버지와 결혼을, 그리고 여기엔 요정이라고 생각했던 데레사라는 자신보다는 두어 살 정도 더 나이가 들었을거라고 생각한 성당에서 온 여자아이를 만나면서 그 소녀가 전해주는 편지를 보관해 주는 일까지, 그리고 그 편지 안에 그녀의 인생이야기와 벽 이야기를 통해서 요는 하나의 정점에서 주위 사람들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고 다시 만남을 하는 것까지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결코 자신이 들었다는 내용을, 그래서 왜 그런 연유가 있었는지에 대해 시종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그저 오로지 가슴 아프게만 지켜볼 뿐-
여기엔 시대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음이, 삼촌의 재차 요구한 두 사람의 결합을 왜 엄마는 답 없는 행동으로 보여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아니 실은 두 갈래의 길에서 고민했음을 알려만 주는 식이다.
유신정권과 신군부의 집권과정으로 인해 자신의 선배이자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김경수란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또 다시 인연을 겹쳐가는 데레사와 그녀의 유복자 아들까지 모두를 아우른 노관이란 곳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 책의 특징은 기존에 보여왔던 현란한 미사여구의 표현이 드물다.
수묵화 향을 풍기는 듯한 아득함 속에 이루지 못한 사랑에 평생을 괴로워하며 그녀 곁을 맴돌아야 했던 한 청년인 이율의 사랑에 대한 강한 집념과 중독, 그것에서 헤어나올 수없었던 자신에 대한 처지, 두번씩이나 청혼을 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은 형수이자 옛 연인이었던 그녀에 대한 사랑의 실망감을 자살이라란 극단으로 내몰아야만했던, 그래서 비로소 사랑을 이루진 못했지만 완성했다고 한 손교수의 말처럼 자신의 생을 그렇게 끝을 내는 과정들을 저자는 시시콜콜 자세하게 풀어놓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은 곁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로 인해서 그들의 사연을 알 뿐이며 이 또한 이요도 마찬가지로 주변인처럼 듣는 형식을 취한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 마다 고어체의 느낌이며 오히려 옛 전통책을 읽는듯한 느낌에 취해 촌스럽단 느낌마저 들지만 이마저도 몰입을 하게되면 오히려 지난 날의 그런 류를 느끼게 되는 고마움마저 들게 하는 고서의 느낌을 풍기는 책이다.
여기에 일조를 하는 것은 다름아닌 작가의 철저한 지난 날에 대한 관찰력이 아닌가 싶다.
계몽사 책, 종로서적, 삼성 라디오 카세트 , 유신정권 속의 기숙사 생활, 신군부에 반한 당시의 대학가 풍경, 다방의 모습, 그리고 해마다 노관에서 걷어들이는 해산물의 걷어들임, 양식저장, 장작타는 냄새의 표현과 함께 모든 것이 계절의 변화에 따른 노관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활 자체의 여유로움과 한적함, 그리고 시대의 흐름 변화에 따른 노관의 집 안의 작은 부분들의 변화까지 모두를 아우른다.
삼촌의 자살 이후 “제가 율이씨(삼촌)의 방으로 들어간다면 다시 온전하게 세상으로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을까요?... 이번 생에서는 저 문 밖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으니까요...”란 어머니의 말에서 독자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삼촌에게 자신의 이런 심정을 표현했더라면 삼촌 나름대로 자살이란 극단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의 인생방향을 바꾸지 않았을까도 싶었던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그것도 손 교수에게 비로소 넋두리 하듯 고백하는 장면은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것마저도 시대가 요구한 당시의 정서상 도저히 용납할 수없었던 엄마 나름대로의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율이란 한 소년이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주위에 있던 인물들을 통해 사랑과 이별, 그리고 더 나아가 데레사 이안마저도 노관의 언저리에 자신의 존재마저도 들어가고 싶어했던 그 아늑한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들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노관이란 위치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는, 지난 날의 회상도 아름다웠다고 말 할수있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이루어질 수없는 삼촌과 엄마의 사랑, 그 곁에 이요란 인물의 탄생, 먼저 탄생한 데레사와의 관계는 결국 모든 것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비밀스럽고 한(恨)많은 인생을 통해 저자의 드러내지 않는 감정의 노선유지와 함께 다른 사랑의 이룸방식을 보는 책이 아닌가 싶다.
빠른 전개에 익숙했던 책 읽기에서 잠시의 한가로움과 함께 책을 덮고나서 내 가슴이 왜 이리 시리고 아픈지, 두 사람은 죽어서야 곁에 있을 수 있었던 시대적인 사랑 이야기가 먹먹하게 전해져 온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