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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심판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8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인 목록 속에 유난히도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었다.
곧 나올듯 하더니 가물 해진 기억 속에 잠시 묻어 있었던 반가운 작품이기에 서둘러서 구매를 했건만 배송업체가 휴가인지, 뭣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근 4일 만에 대전을 기점으로 해서 돌고 돌아 이제야 접하게 된다.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당연히 영미권에 내노라하는 작가들이 많을 것을 볼 때에 확실히 유럽권만의 정통적인 정서와 스릴의 느낌을 다르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느낀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유명하다고 하는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게도 중세 전공 고고학자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작품 또한 중세에 걸쳐서 내려오는 전설적인 일에 현실적인 일이 겹쳐지는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의 적절한 조합이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강력계 형사 '아담스베르그'란 인물을 내세운 이 책은 기존에 나오는 냉철한 이미지의 형사는 아닌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28살의 아들이 어느 날 나타나는 바람에 같이 동거를 하면서 사는, 왠지 어리숙하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캐릭터다.
첫 장면에서부터 주의를 끌기에 충분한, 60년 이상을 동고동락해온 노부부의 살인 사건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연이어서 광장에 비둘기의 발목을 끈으로 강제로 묶어 피가 나게 하는 몹쓸 짓을 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애쓰는 일까지 도통 이 일 저 일에 신경 쓸 일이 많은 상황이 그려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건은 자신의 관할 밖의 일이다.
1777년의 중세 유령 부대라 불리는 '성난 군대'의 출현으로 인해 한마을이 온통 두려움에 떠는 상황이 진정되길 원하는 한 어머니의 방문으로부터이다.
노르망디 외진 곳에서 살고 있는 방데르모 부인은 ‘성난 군대’의 출현을 환상 속에서 본 자신의 딸 '리나'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아담스베르그에게 부탁을 하러 파리까지 온다.
성난 군대라 불리는 그들은 누구인가?
사기꾼, 착취자, 부패한 재판관, 살인자 등 죄짓고도 벌받지 않은 자들을 처단한다는 그들은 법에 의해서도 교묘하게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일단 표적으로 지목된 자는 3주 내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리나의 눈에 보인 세 사람 외에 또 다른 자는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가운데 파리에선 한 기업 가문인 클레르몽 회장이 차에 탄 채 불에 타서 죽은 방화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동시 일발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성난 군대의 진정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내려간 작은 마을 오르드백에선 여전히 전설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로 하나씩 나타나면서 표적이 된 자들이 죽어나간다.
레오란 여인의 눈썰미를 기대하는 아담스베르그는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21세기가 됐지만 여전히 이런 과거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소문 하나에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말의 죄 때문에 언제 그들이 몰려와 자신의 목숨을 거둬갈 지에 대한 두려움에 떤다.
환상에 젖은 그럴듯한 옛 전설에서나 속할 만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이용해 하나둘씩 사람사는 공동체 안에서 해를 끼치는 자들을 처단하려는 자, 그는 정말 그 자신도 성난 군대로 부터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앞장서서 이런 일들을 과감하게 하려는 것일까?
언뜻 매치가 안 될 것 같은 두 개의 사건에서 같은 말이나 단어, 문장으로서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은유적인 표현법,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설탕 종이 하나 때문에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아담스베르그란 인물에 대해 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 작가의 첫 작품을 대했기에 기존에 나왔던 작품들도 한 번 더 보고 싶단 생각이 들 만큼 다른 추리소설과는 다른 분위기 일색이라 그녀의 작품의 대명사라고 일컬어지는 일명 롱폴(ROMPOL) (Roman Policier의 줄임말. 프레드 바르가스가 소설을 쓸 때 제목을 정하지 않고 먼저 집필에 들어가는 방식에서 비롯된 작가만의 용어였다. 경찰 소설 혹은 추리소설을 뜻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바르가스의 추리 소설'이란 의미이자 작가의 애칭으로 굳어졌다) 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들이 하나 씩 해결되 나가면서 마지막 범인의 색출 장면까지, 과거에 그룻된 오해로 점철된 한 가문의 사람들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인식이 현재도 여전함을, 그런 고통 속에서 내림 굿처럼 자신에게 그런 힘을 갖게 된 리나란 여인의 특별한 환영(幻影)을 보는 신기(神氣)는 각 나라별로 이런 사람들이 있긴 있구나 하는 것, 그들의 혈연 비밀에 얽힌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된다.
형사란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부하들을 둔 아담스베르그 앞 날에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특히 각 부하들의 특출한 재주(?)를 감추기 위해 모든 흔적을 없애는 아담스베르그란 인물은 실제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