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반지
즈덴카 판틀로바 지음, 김태령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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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사람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상처 속에 한 힘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 참혹한 일상을 겪어왔는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자전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그 어떤 효과보다도 인간 본연의 존엄성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고도 남는다는 것을 여러 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가까운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들 중 6.25 사변을 겪으신 분들의 이야기나 일제 시대 때 살던 이야기를 들어보더라도 악랄하다 못해 저절로 치를 떨게 되는 그 상황에 대한 기억들은 인간이 망각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코 영원히 그 뇌리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히틀러의 광기적이고 엽기적인 한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도 그런 참혹함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역사는 기리어 새겨야 할 것이며 지금도 여러 나라에선 끝까지 전쟁 당시 범죄자 처벌을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영화나 책, 그리고 실제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진 이런 바탕은 박물관에 보전됨으로써 후세들이나 관광객들에게 충격을 다가오게 한 산 역사라고 생각한다.

 

1922년 생이니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도 장수에 속하는 93세의 주인공 즈덴카 판틀로바-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체코에서 터전을 삼아 살아온 유대인 여성이다.

 

 전쟁이 끝나고 50여 년 만에 찾은 고향에 대한 장소, 그 안에서 어울렸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키며 자신이 직접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들에서 접해 왔던 이야기들 못지않은 충격과 인간의 끊임없는 희망, 그리고 자신의 의지 관철 속에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을 일으킨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모두가 하나의 같은 체코인으로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1939년 3월 15일 수요일, 체코의 유대인 가정에서 평화롭게 살던 그녀의 가정에 광풍이 들이친다.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재산 몰수는 물론이요, 외국 방송을 들었다는 죄 하나로 아버지와의 생이별, 그 이후 엄마, 오빠, 여동생을 포함해 자신까지 테레진이란 곳에 설치돼 있는 강제수용소에서 살게 된다.

 

한눈에 반한 아르노와의 사랑을 안타까워하며 가까스로 수용소 안에서 짧은 재회를 나누지만 이내 아르노 가족이 형벌 수송선에 타게 됨으로써 이별 전야의 날을 맞이한다. 

수송선에 갇혀 떠나기 전, 아르노는 그녀에게 작은 깡통 반지를 끼워준다.

 

"이건 우리 약혼반지야. 널 지켜줄 거야.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살아 있다면 내가 널 찾아갈게."

 

 

 

이 한마디로  그와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테레진 안에서의 연극 출현이나 각기 다른 고통과 위험천만한 삶의 고난을 이어가는 즈데카는 자신의 아버지의 말씀과 오로지 아르노를 만나야 한다는 의지로 꿋꿋이 버텨나가는 과정들이 영화에서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사실성의 묘사가 압권이다.

 

수용소에서 다시 아무것도 모른 채 아유 슈비츠로 이송된 후 엄마와 이별하는 과정과 엄마의 죽음, 여동생의 임신과 고난의 행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전쟁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 독일군의 지독하고도 악랄했던 도보를 이용한 베르겐-벨젠 수용소에 가기까지의 모든 상황들은 인간이 같은 동종의 인간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우리는 익히 히틀러가 전쟁에서 망한 날짜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극에 다다른 독일군의 만행을 좀 더 참아내야 돼! 라는 응원을 하면서 읽게 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일체 그 어떤 정보를 접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베르겐-벨젠 수용소 안에서 죽었거나 도착 당시에 이미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같은 친구이자 동료였던 사람들의 죽음을 대하는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는 그 어떤 말조차도 허용할 수 없는 숭고함을 느끼게 해 준다.

 

사랑은 모든 장애를 극복할 것이란 믿음, 수용소에 도착한 직후 밀려드는 후각적인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도 몰랐던 사람들의 행동이 오히려 순진해 보인다고나 할까? 정말 서글픈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장면 중의 하나다.  

 

나는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것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불에 그슬린 고기 냄새 같은, 좀 달착지근하고 알싸한 냄새가. 근처 도축장에서 소뼈와 내장을 태우는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설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p 223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가질 존엄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던 비굴한 심정을 만드는 머리 삭발서부터 온몸에 이르는 수색까지, 상해 가는 뼈마디에 붙은 살점 하나라도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인간들의 행동의 묘사들은 헤르타 뮐러가 쓴 숨그네 그 이상의 처연함,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죽음이 성큼 다가옴을 느끼면서도 못 느끼는 감각의 상실성, 연민, 이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을 다시 느껴보게 되는 책이다.

 

아르노가 자신처럼 같은 수용소 안에  살고 있을 것이란 희망, 설사 못 만난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란 약속의 증표였던 깡통 반지는 그녀 자신의 삶을 오로지 지탱하고 생의 마감의 순간이 왔던 그 순간에도 굴복하지 못하게 했던 원초적인 생명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행동 하나에 대한 결단성, 영국군의 도움을 받기까지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했던 그녀의 삶 자체는 한편의 역사란 생각이 든다.

 

전쟁이 끝난 후의 다시 도전한 새 삶에 대한 의지와 아르노를 잊지 못했단 사실, 사랑이란 이름하에 저자가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며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는 실로 직접 겪은 생생한 체험이기에 더욱 아픔이 느껴진다.

 

결단력과 용기와 행운, 그것은 삶의 중요한 필수적 요소다.- p 305

 

모든 가족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후에 겪었던 인생의 방향 전환은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사연도 점차 고령화 됨에 따라 한두 분씩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그들의 애통한 심정과 역사 속에서 보전해야 할 기억의 소산적 가치를 이번에 다시 한 번 이 책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느껴본다.

 

지금도 자신의 일생에 얽힌 홀로코스트에 대한 참상을 강연하러 다닌다는 저자의 노고와 그 의지력, 그리고 이를 보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허투루 버려질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해 주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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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슬픔
이시다 이라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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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생 전체를 통과하는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도 남아 있는 부분적인 것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흔히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새파랗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운운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어린 시절의 풋사랑 내지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그 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임을 깨닫게 해 준다.

 

20대 때의 사랑은 전혀 두려울 것 없는 불모지라도 뛰어들 용감성과 상대방 하나만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일관된 뜨거운 사랑이란 표현이 어울린단 말로 생각되는 시기, 그 시절엔 일에서나 사랑에서나 실패를 해도 다음의 또 다른 것에 대한 기다림이 두렵지 않은 때란 사실, 그렇다면 30대가 느끼는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대한 생각들은 어떻게......

 

총 10편의 짧은 연애 이야기와 결혼 이야기를 담고 있는 1파운의 슬픔이란 책은 다른 사연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 아마도 지금 현시점에서 고민이 되고 있는 부분들을 조금씩은 자신의 상황과 견주어 가며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20대의 활발한 활화산 같은 사랑이 아닌, 이젠 적어도 사회생활에서 초년생의 딱지를 떼고 양복과 서류 가방, 그리고 양장이 제법 몸에 어울리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30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썼다.

 

동거를 하고 있기에 더욱 자신과 상대방의 물건 구분에 확실한 호불호를 가리는 커플이 고양이 입양을 통해 고양이를 매개로 진정한 한 가족의 구성원처럼 느껴지는 행동들의 패턴, 결혼식장에서 진행 매니저와 하객으로서 만난 커플들의 솔직한 데이트 진행, 결혼이라는 둘레에 살아가는 가정주부이자 꽃집에서 일하는 여성이 손님으로 온 한 남성으로부터 받은 데이트 신청을 수락함으로써 불륜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 구관이 명관이란 말처럼 6년 동안 사귀었던 옛 애인과의 다시 재회를 통해 또 다른 연애의 가능성을 보여준 커플, 원 나이트 스탠드를 꿈꾸며 여자 사냥에 나선 한 남자가 순진하고 청순한 한 여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색적인 환경의 데이트, 나이차가 많이 나는 부부가 느끼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사랑과 연애처럼 느껴지는 감정들...

 

어느 것 하나 닮은 것이 없는 이야기들 속에 각자가 바라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들이 이 책이 나온 시기를 생각해 보면 많이 변한 듯하면서도 고정된 틀에 갇혀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쉽게 변하질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인 1파운드의 슬픔이란 제목의 내용처럼 서로 원거리 사랑을 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커플의 격렬한 사랑의 행위 뒤에 오는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나오는 인용구를 차용한 것이다.

 

내 심장 쪽의 1파운드의 살을 베라는 말처럼 두 사람의 간만의 해후는 그토록 안타깝고 사랑이 주는 그 마력이 지닌 힘을 모두 쏟아붓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나이를 떠나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통하는 감정들을 잘 표현해 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책을 좋아하는 어느 여성이 책을 매개로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데이트 장소는 서점이란 사실, 그 속에서 서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다음을 기약한다는 미래의 희망이 깃든 내용이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희망(?)을 던져 주기도 할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 자신이 주위의 이야기를 청취해서 엮은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듯이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연애의 이야기가 비록 저, 중, 고의 느낌은 없지만 순탄한 평지를 걷는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책, 모처럼 단조로움 속에 평온한 연애 이야기를 이 가을에 읽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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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조해진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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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뿌듯하던 여름 날, 언제 지나가려나 했지만 어느새 날씨는 가을의 색채를 드리우고 있다.

 

계절상의 습도가 높았던 장마철도 한 시절이지만 그 순간을 지나가기란 인간의 마음이 한순간에 돌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어서 어서 빨리 지나가 시원한 바람이 불면 좋겠단 생각들을 하게 된다.

 

누구는 지난날의 여름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어 모두 그 나름대로의 여름이 지닌 계절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듯이 계절이 주는 느낌들은 저마다의 색깔들이 다를 듯하다.

 

민-

 종우와 결혼 날짜와 집까지 마련해 두었지만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려 한 종우와의 관계 회복을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둔 뒤에 공인 중개인 보조원으로 살아가는 여성이다.

 

한 곳에 머물 집이 없는 탓에(그와 살 집은 전세를 주고 나왔다.) 집을 구하고자 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집 소개를 마친 후에 빈 집에 잠깐씩 머물다 가는 생활이 이어진다.

 

수-

 성실한 목수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진열해 가구점을 운영하려 하였으나 권리금은커녕 임대료마저 보증금에서 차감당하는 아버지를 둔 수는 군 입대 전까지 알바에 전전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가계 임대료만은 내야겠다는 취지에 생활전선에 끼어든지 오래다.

 

그런 가구점에 민은 자신의 시간을 잠시나마 가지러 들락거리게 되고, 수 또한 쇼핑몰에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해 일하던 중 그곳 옥상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연이란 여자와 함께 일하게 된다.

 

도심의 생활 변화 속도는 빠르지만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고 막막한 세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그 뜨겁던 여름의 한 철인 6. 7 . 8월을 통과해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소외적인 삶과 고독을 그린 작품이다.

 

결혼의 실패를 떠나서 자신이 왜 종우가 원한 일마저도 외면하며 부끄러워해야 했는지에 대한 후회, 안면장애를 겪고 있는 아버지 곁에서 한시도 같이 있을 수 없었던 신용불량자가 된 수, 결국엔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떳떳한 이름마저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의 막막함, 고향을 떠나 작은 카페라도 차리길 계획했던 연이란 청춘들의 모습들은 모두가 저마다 힘든 여름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현실적인 공간에서 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이런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의 젊은이들의 고독이 또 다른 모습의 투영처럼 비친 점들이 가슴속이 먹먹함을 느끼게 한다.  

 

누구라도 어깨에 기대어 자신의 처지를 들어 줄 사람만 있었다면 이들은 과연 이런 일들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길게도 아닌 고작 아무도 있지 않은 빈 공간에서 30분 만이 오로지 자신의 시간을 가지는 민이나, 타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수, 수를 알았다고 믿었지만 결국엔 알지 못했단 사실을 깨닫는 연의 모습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도심 속 공간 한 가운데에 홀로 남겨진 청춘들의 모습들인 것 같아 더욱 쓸쓸하게 비친다.

 

 

그 후덥지근하고 무덥던 장마를 뒤로하고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그들의 하루 일상들을 세심하게 묘사한 작가의 표현으로 인해 그 뜨거웠던 여름을 그렇게 지나 보낸 이들도 있었음을, 만일 가까이에서라도 접했다면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건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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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티에리 코엔 지음, 임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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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로암은 자신의 눈앞에서 차에 치여 돌아간 엄마가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정신

치료를 받으며 성장한다.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한 아버지로 인해 조부모 손에 누나와 함께 키워진 그는 로랑스 박사 덕분에 자신의 새로운 삶을 향한 첫 발을 축하받으며 성인으로서 새 출발을 시작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깊은 연인과의 관계라든가 직장 둉료간의 사이도 단 한 명에게만 소통이 될 뿐, 어딘지 모르게 다가오는 불안 발작과 죽음에 관한 공포를 느끼며 점차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 조카 안나가 삼촌이 죽을 것이란 경고성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다시 로랑스 박사를 찾아가게 되고 로랑스는 다시 리네트 마리퀴스를 찾아가 볼 것을 권유한다.

 

자신은 정신심리학자는 아니며,  정통적 심리학보다는 정신과 영혼, 몸의 관계에 결부된 모든 지식들에 대해 열려 있는 통합적 접근법을 연구한다고 소개하는 그녀 앞에서 로암은 그녀가 제시한 방향에 대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보려 실행한다.

 

그녀가 만나보길 권유한 사람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자폐아로서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는 지능이 부족한 것이 아닌 오히려 그 안에 내재된 그녀가 가진 탁월한 능력을 이용해 로암에게 어떤 실마리를 줄 것임을 말해준다.

 

이스라엘까지 간 그는 그녀로부터 그와 같이 같은 날에 죽게 될 다섯 명의 명단을 보내줄 것을 약속하는데....

 

이스라엘, 부다페스트, 로마에 이르기까지 그가 자신의 죽음에 관한 강박 관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자신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찾아가면서 느끼는 인생에 있어서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존재와 그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들이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존재를 통해 알아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로 아버지와의 서먹했던 사이조차도 이젠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아버지를 방문하고서 느끼는 화해의 말들, 학창시절 사랑했던 쥘리아와의 다시 찾은 해후와 절실히 다시금 느끼는 사랑의 감정들이 그동안 그를 그토록 괴롭혀 왔던 삶의 고통을 제대로 떨쳐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저자의 전공분야인 심리학의 학문을 많이 드러내면서 보인 작품이다.

 

삶과 죽음은 백지장 차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죽음이란 말 자체가 어둡고 언젠가 누구나 닥칠 일임에도 여전히 그것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차후의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함에 있어서 회피하고 싶어 했던, 더군다나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죄책감에 쌓여 살아왔던 로암이란  주인공의 삶을 통해 다시 재 조명해 볼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리네트 마리퀴스에 대한 비밀과 그에 얽힌 로암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과거의 어느 한 부분에 치중을 두다 보면 어느 순간 내게 있는 이 인생의 한순간도 제대로 볼 수 없음을, 죄책감과 그 과오를 깨우치는 과정들이 좀 생소한 ‘순수한 이들의 예언’ 이란 말을 인용해 로암의 어두웠던 인생의 실체를 벗겨내는 저자의 글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 작품이었다.

 

 

보다 적극적인 인생의 비밀을 풀어헤치고 자신의 상처를 다듬어가며 진실된 사랑의 인연과 함께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여정이 담담하게 그려진 소설답게, 지금 이 순간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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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 야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신상필 지음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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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주는 힘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점, 당시의 생활상은 물론이요, 묵은지의 맛이 나는 내용들이 들어 있어 필독서로 꼽히기도 한다.

 

서양의 알만한 작품들이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우리나라의 작가들 중에서도 시대는 달라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고전의 힘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할 것이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익히 들어도 봤고 실제로도 접한 사람들이라면 반가울 책을 접했다.

 

바로 우리나라의 이야기이자 정설이 아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세대로 전해져 온 이야기들을 엮은 책, 야담(野談)이다.

 

 야담(野談)이란 오래전부터 항간에 떠돌았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선 후기 문인(文人)들이 듣고 기록한 것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다른 책들처럼 손안에서 들고 읽은 적은 없다.

 

고려 시대나 조선 전기 때만 해도 이런 유의 야담이란 것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 후기에 들어서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들을 모으고 자신의  호를 따서 책으로 엮어 냈기에, 청구야담, 계서야담, 어우야담 등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재미를 배가 시킨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의 다양성들이 역사적인 확인에 의해서 쓰인 것이 아닌 대대손손 ~그렇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하는 불확실성이 있기에 확실하게 믿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아닌 점이 바로 야담이 주는 특색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에 맞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비록 시대가 여성들을 억압하고 신분에 의해 뜻하지 않게 제약을 받는 양반이란 사람들의 파격적인 행동과 결실, 그리고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들, 양반이되 생활고에 시달려 도둑의 수장이 되었으나 모두가 잘 사는 것에 맞춰 행동을 옮긴 이야기들은 위정자들에겐 비록 야담이란 한계에 그치고는 있지만 이런 실제 생활 속에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통해 또 다른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귀감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약한 원님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뺨을 과감하게 때리고 모르쇠로 일관한 아전들의 꾀에 속수무책인 원님의 사연은 한국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고 전우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는 전혀 다른 행동의 또 다른 전우치를 보는 재미, 전쟁 통으로 부부가 헤어져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의 사연들은 조선후 기에 접어들면서 역사적인 궤와 함께 하고 있기에 야담을 통해서도 그 당시의 분위기와 시대상의 힘없는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고전에 대한 생각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다시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 아닌가 싶다.

 

어떤 특정적으로 지어진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신분의 각 계층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이야기, 그 안에서 강담사(講談師), 강창사(講唱師), 강독사(講讀師)란 사람들의 출현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변사라는 직업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가볍게 읽히지만 그 안에서 교육적인 면도 생각해보게 되고, 앞으로 이런 작품들의 좀 더 현대적인 쓰임새에 맞는 책 발간이 더욱 이뤄진다면 고전이란 한계를  벗어나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분야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린 학생부터 어른들까지 고루고루  재미를 주면서 읽을 수 있는 이 책부터 고전에 대한 도전을 해 봄이 어떻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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