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적 사랑
요한나 아도르얀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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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실제 가족사를 아주 무겁지만은 않게 그리고 있는 글이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느날 한 날 한 시에 동반자살한 것을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는 부부애, 사랑 ,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시대별로 겪어온 노부부의 얘기를 그리고 있어서 생각 할 부분이 많았다. 헝가리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덴마크로 망명하게 된 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진 상황에서 악착같이 살아 남아 자식들과 자손들이 각자 흩어져서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자살 동기를 찾으려고 작가가 그간 이 두사람과 왕래가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가고 , 그들에게 그분들의 성격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는 과정을 작가가 이런 상황에선 아마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란 상상도 곁들여서 르포 형식으로 글을 이어가고 있다. 정형외과 의사였기에 쉽게 약국에서 처방 받을 수 있단 이점을 이용해서 자살을 결심한 이 노부부의 사랑관 앞에선 과연 진실된 인간의 삶을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존엄사란 말이 요즘 대두되고있는 가운데, 마지막 자신들을 그대로 놔두란 메모지를 남기면서 까지 죽을 수 있는 용기와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절실하게 보인다. 할아버지의 점점 나빠져만 가는 병세 앞에서 언젠간 죽게 된다는 걸 인정하고 남는 한 사람의 존재마저도 같이 떠나길 원한 그 이면엔 서구 사회의 가족의 이면을 보는 것 같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싫어서 결국엔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는 그 현실이 싫어 결국 남편과 죽기로 결심하는 할머니의 결심은 철저하게 계산된 시간과 약의 복용여부를 오랜시간 대화를 통해서 결실을 맺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원망 않고, 자신들의 오랜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동반 자살이란 결과로 맺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홀롵코스트라든가 어두웠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시대를 살았던 노부부의 친구들의  증언을 실 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체험자적 대화로 이끌어 표현한 것이 오히려 가슴이 더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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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혼자다 1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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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칸 영화제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시간대 별로 서술하는 방식은 코엘료 답지 않은 추리소설을 연상케 했다. 러시아의 갑부인 이고르란 남자가 주인공으로 자신과 이혼한 전 부인인 에바를 되찾기 위해서 , 감행한 살인사건을 "칸"이란 영화제를 빌미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살해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있다. 첩보원을 연상케 하듯 뛰어난 총을 사용하는 법이며, 손 몇가락으로 사람을 소리없이 쓰러지게 묘사하는 장면은 흡사 영화를 보는 둣 하다. 아직도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에바를 빼앗은 사람이 하미르라고 믿고 있는 그에게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고 이것을  에바에게 자연스런 세계를 재패했다는 식의 메세지를 보낸다. 이곳에선 일반인들이 화면에서 비친 화려한 레드 카펫의 연예인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 대한 허상을 꼬집는다. 소위 말하는 슈퍼 클래스안에 드는 사람들도 겉 보기엔 화려한 생활로 비쳐지지만 그것을 지켜나가려고 안간힘을 애쓰는 모습이나, 그 클래스사람들을 잘 만나 자신의 지위를 향상 시키고자 각종 스폰서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이 곳곳에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고르 자신이 생각하는 에바에 대한  진실된 사랑 방식이 에바에게 있어선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가볍게 여기는 이고르의 방법이 힘에 버거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힌트를 줘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일방향으로 가던 이고르였기에 에바가 떠난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오직 아직도 진행중이란 생각으로 일관된 이고르의 의식은 현대인들의 삭막한 현실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믿을 존재이며 이들 중 자신이 승자가 되려면 아무런 양심의 꺼리낌 없는 행동양식이 용서가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코엘료 특유의 종교적인 정신이 혼합이 가미된 글을 읽으면서 진정 승자란 일을 처리하고 비행기에 오른 이고르인지, 아니면 이고르의 손에서 진정으로 벗어나 이승을 떠난 에바와 하미르인지, 자신의 스폰서를 기대하는 가브리엘라인지, 각자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한다면 모두가 승자가 아닐까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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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돌
아티크 라히미 지음, 임희근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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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아프가니스탄 어느지역 어느곳... 

 번역가의  말 처럼 작가는 특정 지역 어디라고 제시하진 않고 다만 어느 한 공간에 배경을 맞추고 총을 맞은 남편을 둔 두 딸의 어느 여인의 고백 형식으로 글을 썼다. 이슬람에 대해선 그간 몇 작품을 읽긴 했지만 여인의 입장에서 바라 본  종교와 세속의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를 이렇게 보이는 것처럼 그려낸 것은 처음이다. 딸만 있는 집에 둘째로 태어난 여인은 어린 나이에 어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혼을 하게 되고 전쟁에 나간 약혼자를 기다리다가 결혼도 없이 시댁에서 시어머니아 같이 방을 쓰며 남편 될 사람을 기다린다. 결혼 생활은 길었지만 실제적으로 남편과 가까이 지낸 것은 3년에 불과하다는 여인의 넋두리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도 미처 몰랐던 여인이고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성적인 욕망에 , 자신을 스스로 억제 해야만했던 사실을 누워 있는 남편에게 고백한다. "생게 사부르"... 인내의 돌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덧대어 작가는 이 여인이 그간 겪었던 남모를 이스람 여인으로서 살아야했던 환경에 대한 울분, 기대에 못 미치는 남편의 성적인 생활, 멋 모르던 초혼 첫 날밤에 생리를 하면서 치러야 했던 그 마음을 일일히 나열하면서 자신의 울분과 남성들의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그릇된 인식을 비웃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쫒겨날 지도 모른단 생각에 시집에서 억울하게 쫒겨난 고모를 만나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여인의 고백엔 정말 뚯 밖이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아버지에게 들은 인내의 돌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 주며 남편에게 당신이 나의 인내의 돌이니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여인의 끊임없이 나오는 살아오면서 느꼈을 죄책감, 치욕감, 등을 세세히 풀어나간다. 이야기 중간에 다른 어린 병사를 남편이 있는 옆방에서 일을 치르는 과정도 남편에게 그 아이에게 느꼈던 감정을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단 것으로 미주알 고주알 풀어낸다. 두 딸의 아버지가 당신이 아닌 씨내림으로 인해서 자신이 시댁에서 쫒겨날 처지를 면하게 됬다고, 그것이 모두 당신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냔 클라이막스의 외침은 마침내 참고 참았던, 그 얘기를 모두 들었던 인내의 돌이 폭파하면서 그 여인은 남편의 손에 이끌려 단검에 한 칼에 인생을 마감한다. 

결국, 남편이자 인생의 한 3분의 1도 안되었던 결혼생활을 통해서, 배우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결혼하고 임신을 못하는 것이 모두 여인의 잘못인양 둘러대는 시어머니의 시선속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인생살이는 몸 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이라는 인내의 돌을 옆에 두고 한 맺힌 여인의 절규이자 고백이다.  여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자신의 인생의 결정권을 이슬람이라는 종교하에 의견조차 내비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끌려가 살아야만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보여준다. 의사 표현 조차 할 수 없는 그저 생명 부지의 숨만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남편이 여인의 부정한 행실 고백에 마침내 인내의 돌이 폭파하며서 그 여인을 그제서야 평화롭게 놔 주는 장면은 왠지 쓸쓸하고 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평생을 가슴에 지고 갔을 엄청난 비밀을 토해낸 후련한 인생 고백서라고 한다면, 그 여인에게 조금이나마 멍에를 덜어내지 않았을까 쉽다.  

작가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심정 묘사 표현이 , 마치 자신이 여인의 몸 속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뛰어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장면 하나하나 처럼 쉽게 감정 이입이 되기에 읽기엔 무리가 없고, 영화도 되고 연극 무대처럼 생각되는 느낌이 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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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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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령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긴급구호는 쉬운 일이 아니고, 아주 잘 훈련된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영양불량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은 면밀한 계획에 따라 신중하게 치료해야 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먹을 것을 주면 오히려 위험하단다. 자칫 생명을 앗아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지. 굶주림에 시달린 몸은 몹시 쇠약해져 있어서, 구호 센터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에는 신진대사가 극도로 악화괴어 있는 경우가 많단다. 

 

 위의 구절 구절 한 마디로 요약이 될 수 있는,  세계의 기아들이 왜 많이 있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 해결책을 위해 노력 하려는 의지로 글을 쓴 이의 생각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6.25전쟁과 보리고개를 무수히 거치면서 우리의 부모님과 그 윗대 선조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그 때의 배고픔을 모르고 살게 된 이 때에, 세계 빈곤 국가에 처한 나라에서 기아에 처해서 처방을 쓰기엔 너무 늦어 이 세상과 이별하는 어린이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장 지글러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단체에서 몸소 느끼고 체험한 것을 아들에게 들려주는 식의 얘기로 우리들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평소 밥상에서 남는 음식을 쉽게 아무렇지도 않은 의식으로 처리해 버리는 우리들 각 가정에서 필히 음식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글이었다. 그저 막연히 나라의 환경자체가 농사짓기엔 척박한 사막이고 물 부족 국가이고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라가 많단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군다나 아프리카의 경우엔 각기 다른 부족들간의 이해 관계, 뭣보다 빼놓을 수 없는 종교,그리고  막연히 알고만 있었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어린이들이 왜 그렇게 손을 쓸 수도 없이 배가 풍선처럼 부어오르고 팔 .다리는 너무 가늘어서 지탱조차 힘든 영상을 TV에서 보면서 정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단 말을 떠올리곤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아프리카의 뛰어난 선지자 역할을 하고자 했던 머리가 깬 사람이 나라를 통치해서 기아를 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 사례는 아직도 세계 2차 대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엄연한 현실에선 강대국이 지배했던 그 방식대로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의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신 제국주의로 인해서 자신이 지배한 나라가 자립하는 과정에서 강대국이란 허울 좋은 이름의 탈을 쓴 소위 말하는 강대국들은 자신의 국민들과 자신의 권력의 부를 잃지 않기 위해서 서로 공모해 가면서 이들의 나라 앞날을 저지하는 형태로 힘을 과시한다. 이와 더불어서 금융과두체제에 대한 비판과 강대국과 거대 다국적 기업간의 모종의 관계 때문에 암살 까지 당하는 사례를 보여준  작가는 그저 가난 때문에 기아가 생긴단 생각만하고 있던 나에게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보여주고  비단 그 나라가 처한 척박한 현실외에도 이런 모종의 경제 권력을 휘두르고 그 사실을 겉으론 지원이란 명목하에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결국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경제 원리에 따른 것이란 것을 알곤 정말 분노가 치민다. 누구라도 정말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생명 유지의 근간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의.식. 주 중에 가장 으뜸이 먹는다는 것인데, 하물며 갓 태어난 생명 조차도 이런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과연 누가 이들에게 이렇게 할 권리가 있는가?하고 묻고 싶어진다. 많은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부터 살피는 의료계에 처한 상황은 더욱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마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과연 나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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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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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해서 실수를 하더라도 어느 한 명의 미모가 특출나게 뛰어나다면, 같이 일을 했던 평범한 소유의 일한 동료보다는 용서의 폭이 더 넓어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것을 인지상정이라고까지 표현해야 할 필요은 없지만, 이 소설은 아주 평범함에서 많이 벗어난 어느 여자와 그를 둘러싼 두 남자의 얘기가 그려지고 있다. 처음에 만나는 장면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끝날 때 극 중의 화자처럼 다시 처음의 상황을 들춰보게 된다. 영화배우인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함께 버림을 받은 나와, 재벌가의 뒷 자식으로서 살아가야했던 요한, 정말이지 너무나 못생겨서 주위의 친구하나 없이 오로지 자신의 성실함만을  무기로 삼아서 살아가는 여자를 중심으로 십대 후반을 넘어서 20대 첫 초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추적 끝에 다시 그 여인을 만나기까지의 얘기가 회상신으로 적어내려간다. 작가는 우리들의 그릇된 외모 지상주의를 비난하는 일관된 정서로 이끌고 있다. 세상의 반은 여자,  그 반은 남자라는 지구에서 , 그 지구의 나라 중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정한 실력있는 사람이 그 능력을 인정받고 진실된 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여러가지 고쳐야 할 점이 많은 것을 은유비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유달리 그 여인에게 끌리게 된 주인공인 나는 어쩌면, 자신이 말했듯이 나중의 만난 예쁜  사원을 먼저 만났더라면 자신도 그에게 먼저 끌려서 사귀었을지도 모른단 고백엔,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주어진 환경에서 진흙에 묻힌 보석을 찾아내어 가꾸기가 어렵단걸 말해준다. 내내 자라오면서 엄마로부터 자라면 괜찮아질거란 희망하에 열심히 공부는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단걸 깨달아가는 여 주인공의 마음 표현이 그렇게 쓰리고 아플 수가 없었다. 너무 못생겼잖아요...란 말 구절엔 아픔보단 어떤 블랙 코메디를 보는 둣 하여 웃음이 나온다. 나완 다른 환경에 있었지만 어쩌면 자신의 컴플렉스인 아버지로부터의 버림받음과 그녀의 자신감 축소에서 오는 위축이 동병상련의 느낌을 갖게하지 않았나 싶다. 순수했던  20대의 사랑 앞에서 진실로 좋아한단 말 한 마디 표현 못하고 사고로 병상에 눕고 다시 재기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이 내내 조마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의 재회 장면에선 자신의 삶을 내 나라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타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그나마 행복의 순간이라면, 자신을 찾아 만나러온 그 사람에 대한 사랑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 반전 처럼 작가의 다른 서비스인 그 후의 이야기 를 읽으면서 내내 각기 다른 각도에서 본 세 사람을 읽을 수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나의 개별적인 독립형태로 끝내고 싶은 독자라면 그나름대로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이야기엔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어 좋고, 연결편으로 생각이 되는 독자라면, 요한이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맘, 그녀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맘이 구구절절 와 닿아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쉽다. 내 생각으론 개별적으로 남겨두고 싶다. 너무나 가슴깊이 상처받고 살아온 그 여인에게 자신을 찾아 온 진실된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세상 외모 제일주의로 얼룩지고 진실된 사랑조차도 외면 당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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