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 엄마 - 딸이 읽고 엄마가 또 읽는 책
백은하 지음 / 동아일보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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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그림 작가로 알려진 이가 자신과 그 엄마의 이야기를 그림과 곁들여서 소박하게 책을 내놨다. 흔히들 가장 가까우면서도 , 그렇기에 서로가 너무를 잘 알고 있기에 다툼도 작고 자라면 결코 엄마의 저런 점을 닮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어느새,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은 엄마를 많이 닮아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곤 한다. 

어릴적, 내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한 없이, 결코 늙음을 모르는 그 상태 , 그대로 있는 존재로만 알았고, 할머니는 그런 형태로 태어나 그렇게 불리워지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동네 꼬나 녀석들이 엄마를 보고 할머리라고 부르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란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손자 손녀가 없던 시절이라서 그 인지가 늦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불리워지는 시간을 인정 할 만큼 가족 수도 불어났지만...) 

여기 이 책에선 4남매를  남겨두고 일찍 세상과 작별한 아빠를 대신해서 키운 엄마의 일과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서울, 춘천에 계신 엄마와의 일을 그리고 있다. 소설 형식이 아닌 그때 그때 이러한 생각, 엄마가 보내온 선물, 끊임없이 당신 개발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엄마의 모습과 어릴 적의 자신이 들었던 , 지금도 수없이 듣던 잔소리가 어느 날은 자신이 엄마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 엄마랑 가고 싶은 여행지를 추천한 글 대목, 하지만 엄마는 평생 소원인 바닷구경을 하고서 네 할 도리는 다했다 라는 말 한마디로 꿈을 이루신 소녀같은 마음을 보여준다. 

읽다보면 엄마의 유머도 작가가 그래서 이런 글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서도 웃음과 미적 감각을 잊지 않는 모습이 아주 고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곁에 있을 땐 그 소중함에 대해서 알고는 있다곤 하지만 그저 산소처럼 보이지 않아도 항상 곁에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연세가 드심에 따라서 빳빳한 허리를 갖춘 젊은 시절의 엄마가 아닌 이젠 크루아상이란 빵의 모습처럼 허리가 점점 굽어지고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는 엄마를 곁에 두고 보는 딸내미의 심정이 따뜻하게 그려지고 있다. 

책을 덮고서 다시 한 번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우리네 엄마들이 평범한, 화장 안 한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투박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나를 낳아주신 엄.마.... 

오늘따라 그 명사가 참으로 큰 울림을 가져다 준다. 

*****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엄마. 

          우습게 보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신경질 내고 

         함부로 무시했던 일, 일, 일, 일.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엄마가 이다음 내 곁에 없을 거라는 거.

        그게 제일 무서운 일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정다운 일은  

        엄마를 가슴에 꼭 껴안는 일. 

        우리 엄마 예쁘다, 고맙다, 하며 손잡고 떼굴떼굴 

        엄 마 를     사 랑 하 는     일 입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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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빅터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존 칼린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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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있으면 세계 축구인들의 축제인 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열린다. 아주 어릴적 비디오로 본 "Power Of One" 이란 영화가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끼게 된 감동도 한 몫을 했다. 무대는 네덜란드인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보어인들이 대부분의 주요 정.경제의 활동을 쥐고 그 밑에서 보이는 신분차별을 감당해가며 살아가는 미국의 노예제도를 연상케 하는 남아공이다. 내가 본 그 영화에도 백인 소년과 흑인 줄루족 출신의 소년의 우정이 담긴 권투 영화로 기억이 되는데, 그 영화속에서 줄루족이 몸 전체를 일자로 세우고 줄루~ 줄루~ 하면서 춤추는 장면이 생각이 난다.  

이 책에는 오랜 감옥생활에서 오는 무료함과 나약함,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만넬라도 권투운동을 했단다.) 꾸준한 자기관리 차원에서 이뤄진 규칙적인 운동생활이 장차 정치적으로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 큰 도움을 받게 된다. 흔히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스포츠 중에 하나가 미식축구라고 하는데, 운동 규칙은 잘 모르겠기에 그것이 얼마나 인기 있는 종목인지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남아공에서도 백인들 전유 운동으로 생각하는 럭비 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만넬라가 이뤄낸 하나의 남아공이란 통일은 어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뜨거운 눈물과 감동의 실화를 만들어냈다. 1999년 6월 24일 세계 최강팀의 하나인 뉴질랜드 팀과 맞붙은 결승전에서 이뤄낸 승리를 이뤄내기까지의 여정이 그 당시에 있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곁들여져서 나온다.  

백. 흑간의 철저한 행동 주거지라든가, 색깔별로 구분되어지는 신분계층, 이 와중에 다른 인종으로 바꾸려는 시도의 행정절차, 같은 버스를 타지 못한다든가. 15세 이상의 흑인에겐 더 이상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비 현실적이고도 노예생활을 연상케하는 이곳에선  흑인들이 유일한 수단으로 자신들의 항거 의지를 관철시킬수 있는 것은 바로 백인들이 좋아하는 운동인 럭비를 세계운동대회에 불참 시킴으로써 그 의지를 꺽고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부 받아들여져 오랜 시간동안 경기를 못한 백인들은 더욱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게 되고 이 와중에 감옥에 있는 만넬라는 우선 법무 교정부 장관인 코비 쿠시에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국가 정보국 국장인 닐 바르나르도, 보타 대통령, 아프리칸스 언론, 후에 같이 정권을 다스린 데클레르크, 방위 수뇌부, 군사령관인 콘스탄스 필옌 장군을 차례로 만나면서  흑인들이 결코 정권을 잡게 된다면 백인들에게 보복은 없을 거란 확신의 약속을 한다. 이 중 군사령관이 별도의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전쟁에서 최후 피해야 할 것은 서로간의 전쟁이 아니란 사실로 물러나게 되는 긴박감을 연출하게 된다.  

한편 럭비팀의 이름인 스프링복스란 이름을 놓고도 분열이 되고 그들이 입는 유니폼 색깔에서 오는 백인에 대한 거부감이 흑인들 사이에 만연하고, 서로 다른 피부색, 말, 여러 부족으로 나뉜 남아공의 현 상태에서 럭비 경기장에서 울려퍼질 국가에 대한 노래에서도 여러 분열이 오고가게 된다.  같은 백인 이지만 보어인과 영국인 사이의 보이는 차별 또한 느낄수 있기에 출중한 선수들 조차도 만넬라의 인간적인 민음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면서 마침내 승리의 기적을 물리치고 영광의 트로피를 안는 것으로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다. 

인간적인 따뜻함이 나오는 이야기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것을 이루기까지 만넬라의 노력이 엿보인다.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생각나는 것은 바로 만넬라의 정치스타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백인들이 행한 정책엔 분명 잘못된 점이 있지만 그 안엔 따스한 인간의 정서를 감추고 있단 점에 착안하여 감옥에서 그들이 쓰는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배우는 일, 그들의 역사를 꾸준히 배워나가는 열정, 상대방이 럭비를 좋아한단 것에 착안해서 경기규칙이라든가 인기있는 팀에 대한 사소한 일까지, 대담과정에서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교화하게 만드는 힘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만넬라 ,자신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것은 정치선에서 만난 사람들조차도 존경을 하고 싶게 만든 믿음을 심어주기에 의심치 않게 했다.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한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린다는 말처럼, 그 또한 그 만이 해낼수 있다는 행동이 아닐까 쉽다. 27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기에 자신에게 행한 상대방의 행동을 관용으로 베풀기엔 그 세월의 보상이 너무나도 길었지만 넬슨을 이조차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두 포용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이혼의 아픔속에서, 평생 자식을 손에 안아보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마음에서, 그가 인생의 청춘기에 바쳤던 감옥생활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백인들로 가득찬 럭비팀에서도 유니폼을 입고 등번호 6번을 달고 응원해 나옴으로써 백인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넬슨의 행동은 남아공의 선수들과 넬슨이 서로 합작해 이뤄낸 감동의 실화다. 물론 여기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되는 시대적 상황도 맞물려서 넬슨의 석방이 가시화 될수 있었고 여기에 스포츠라는 운동을 통해서 하나의 구심점을 이뤄냈다는 점에선 만넬라의 통솔력과 실천성이 아주 두드러지게 보여진다. 각기 만났던 사람들이 럭비를 시청하는 장소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흑인들 조차도 백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럭비란 운동을 자신의 운동처럼 응원하고 나의 나라를 위해서 일심동체가 되는 장면은 글로만 읽어도 그 감동을 느낄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각본없는 드라마라고도 한다.  

 하나의 통일로 가는 도구였던 럭비란 스포츠를 통해서 그간의 악연의 고리를 끊고 서로 부둥켜 안고 열광의 도가니로 흥분했던 남아공 국민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각본없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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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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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구성은 10년 차이가 나는 자메이카에서 이민온 아버지와 엄마 카르멘, 위로 언니 둘, 나와 내 아래 동생으로  세 명의 동생이 있고 막내가 태어나던 날, 같은 병실에서 불륜으로 나은 아기를 입양한 또 다른 아이가 형제라는 것으로 자신의 성장기를 담담히 밝혀 내려간 글로 지은이의 환경이 나온다. 복권 당첨으로 많은 돈을 갖게 된 아버지가 집을 몇 채 사서 그 수입으로 생활을 해 나가던 중 엄마와의 돈 문제로 다툼이 심해지던 때 자신을 임신했고, 그것을 계기로 태어나자 마자 환영을 못받은 나. 클레어라고 밝힌 저자는 자신의 성장기에서 겪은 갖은 고통과 장래 희망인 법정 변호사의 길로 가기위한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책을 엮어냈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의 계모의 이미지, 신데렐라의 계모가 생각이 나는 것은 이 소녀가 생활 속에서 겪은 고통의 강도가 그 못지 않게 아주 심했다는 점이다. 흔히들 자신을 낳아준 혈육지간인 엄마가 죽고 나서 계모가 들어오면 아주 나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가 된 동화를 어렸을 적 부터 읽어 온 터라 그 이미지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지만, 이 클레어의 엄마는 친 엄마다. 자신의 아픈배로 10달 내내 가지고 있다가 낳은 자식을 , 유독 클레어만 학대한 점에선 엄마의 정신적인 문제를 한 번은 집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학대와 함께 고문 비숫한 방법으로 취해지는 가슴을 꼬집고 비틀어서 양쪽 가슴에 종양 세 개가 생겨서 수술대에 오르질 않나, 닭 털을 제대로 뽑지 않았다고 손목에 대고 칼을 대서 상처내기, 머리를 구타해서 피가 흐르는 것은 다반사요, 아버지와 헤어진 후 의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4명의 자녀와 생활하는 가운데 의부와의 혈투, 음식을 제때 주지않기, 나이가 10대가 넘어가도록 오줌을 밤에 싼다는 이유로 받은 매질, 침대 감추기, 오줌에 젖은 옷을 말리지 않고 두었다가 입혀서 재우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곹통을 당하고도 유일한 낙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란 구절엔  가슴이 아파온다.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언니들이 다닌다는 이유하나로 교복도 제대로 맞춰서 입어보지 못한 일, 작은 구두를 억지로 맞게 신기려고 구두에 콩을 가득 넣고 물을  가득 부어서 부피를 늘린다음 구두를 신긴 일 , 영성 세례를 받는 과정에서 입게 되는 드레스 조차 언니들 것을 주지 않고 중고 시장에서 산 옷, 그것도 백색이 아닌회색 빛이 도는 원피스를 입게한 일 , 같은 것은 친 엄마라고 보기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행적인 부분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13살이 되던 해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신과 언니 둘을 남겨두고 떠난 엄마는 주말마다 언니들은 식사를 하러 오는 것을 허락하나, 클레어만은 무시하고 오히려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빌미로 전기세, 물값, 집세를 내라고 요구한다. 주말엔 옷가게 점원, 새벽엔 사무실 청소원, 낮엔 학교생활과 숙제, 밤엔 모든 것을 끊고 간 엄마에게 돈을 주기 위해 부족한 돈을 채우기 위해 병원의 간호 조무사로 일을 해 나간다. 어린 가슴에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 잠이었단 말엔 눈물이 떨어진다. 말끝마다 낙태가 법으로 금지가 되어 원수같은 못생긴 너를 낳았다고 내뱉는 엄마의 말을 듣고, 짐작컨대, 남편과의 불화의 원인이 모두 클레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이 더욱 악에 받쳐 나오지 않았나싶다.  

힘 없는 아버지를 찾아가도 , 법적으로 엄마가 받는 자녀 수당에 대한 욕심때문에 같이 살 수 없는 환경요건도 한 몫을 한다. 학교에서 조차도 선생님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던 순수한 클레어 멍든 가슴엔 항상 층계을 올라오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에 침대 밑에서 죽은 듯 있어야 했던 성장기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던 차에 엄마의 학대로 머리가 빠지고, 구타 사건으로 학교 선생님인 안야코르힌스키란 폴란드 수용소에서 탈출한 선생님의 배려로 같이 지내게 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된다. 모두들 비웃었고  대학에 간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엄마 앞에서  장래 법정에서 설 꿈을 간직한 면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이룰 수 있도록 격려의 말을 해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클레어의 인생도 그냥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간 선생님의 교통사고로 인한 다리 절단은 둘의 이별을 가져오게 하지만 그 와중에 꾸준히 공부를 해서 드디어 원하는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게 된다. 이 와중에 엄마의 친필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찾아가지만 끝내 엄마는 서류를 찢어버리는 행동을 보여준다.  

결국 자신의 힙으로 일하고 공부했다는 조건인 5년을 채우기 위해 대학가는 것을 1년 유보해서 간호사 일을 하게 되고 마침내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법 사무실에서 가르침과 일을 배우게 됨으로써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서 법정 변호사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맺음을 한다.  

읽다보면 어린아이 눈에 비친 자신의 정신적 불안에서 오는 행동인 ,  밤에 오줌을 싸는 행동을 잘못이라고 뉘우친 것이라든가, 왜 엄마는 두 언니들을 예뻐하면서 나는 미워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글이 아주 어린이 다운 생각으로 비쳐진다. 항상 매를 맞기에 언니들조차도 힘든 허락을 받아오게 하는  것도 클레어 몫이요,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는 클레어의 인식 속엔 한 인간이 성장해 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생활해 가는지 , 학대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있고, 한창 사춘기 시절 댄스 파티에 가기위해서 집안 청소를 해 놓는일, 끝내 문을 잠가서 들어가지 못하게 한 엄마의 행동앞에서 뒷 담을 넘고 방에 들어간 장면은 아픔속에 자라나지만 그래도 천진한 꿈을 가진 여린 장난스런 학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힘 없는 아버지와 가학적인 엄마에게서  자란 클레어가 정작 충격을 받은 것은 형제 모두가 클레어라고 알고 있던 자신의 이름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신원 확인 절차에서 자신의 본 이름은 콘스턴스 베벌리 브리스코 였다는 점이다.  형제들조차도 클레어라고 알고 있었던 자신의 존재가 그전에 이미 죽어버린 존재로 살아왔다는 허망함 앞에선 차마 글을 읽기가 힘들었다.   

주 된 내용이 성장기에서 겪은 고통의 나날들을 표현하고 그토록 원하던 변호사 일을 하게 된 과정이 짧게 나오기에 아쉬움이 크다.  엄마가 소송을 걸어서 승소한 내용이  부록으로 있지만 책의 분량이 많아서 생략했다는 역자의 말과 , 끝까지 친엄마의 존재에 대한 용서를 하지 않을 것이란 저자의 말엔 가족의 붕괴와 그 괴리에서 오는 현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뜻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내 처한 환경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내가 클레어였다면 나도 이렇게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생활할 수 있었을까? ,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k선생님이 있었기에 따뜻한 정과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서로 다른 처지에 있었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다는 점에선 두 사람의 인간애가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선생님이 엄마와의 법정 소송을 끝내고 나오는 장면에서 마주친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  "이 세상에서 너를 가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있어. 클레어. 그걸 잊지 마라. 너를 가로 막을 수 있는 있는 건 너 밖에 없어. 너는 멀리까지 나아갈 능력을 갖고 있단다. 그냥 가기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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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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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나오키 상 수상작이 발표되고 그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서 나오게 되는 시점이 되면 일본의 많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선 올해엔 과연 누가 수상자로 선정이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 것이다.  

벌써 3월이니 재작년이 되는 2008년도 수상작인 "채굴장으로"란  제목과 함께 그에게 끌린다... 란 글귀에서 연애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허를  찔렀다. 찌른 정도가 아니라 허탈감에 사로 잡히며 다 읽고 난 후엔 "이건 뭬야~ 시작했다는 거야, 만거야?" 란 말이 나오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정말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한 한정된 어떤 자극적인 감정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그려가면서 그런쪽으로 기대를 했기에 스스로 실망감을 안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에서 떨어진 외딴 섬에서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 이 섬의 출신자인 세이란 여성의 심리묘사를 위주로 그리고 있는 불륜(?) 이라고 하기엔 시작 자체가 없는 밍밍한 이야기 이기에 본격적인 연애담은 아니다. 세이가 남편인 같은 고향 출신 화가와 결혼을 하고 이 곳 고향에서 살면서 섬 안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생활속에서 이루어지는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타지에서 온 교사인 이사와가란 남자를 만나면서부터 가슴속에서 , 하늘을 보면서, 남편이 곁에 있는데도 그 사람을 떠올리는 과정의 글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누구나 어느 순간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내 가슴에 스며든 그 사람에 대한 존재에 대한 감정을 잘 그리고 있다.  같은 동료 교사인 쓰키에의 유부남과의 드러내놓고 벌이는 연애의 이야기와 그 실상을 자연스럽게 세이에게 들려주는 그녀를 보면서 세이는 이사와가를 비교하게 되고, 시즈카 할머니의 남편을 버리면 벌 받는다는 암시엔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의 철학이 깃들여 보여지기도 한다.(그것이 비록 연세가 들어 노망에 가까운 실없는 소리가 할 지라도...) ,  

대사 하나하나에도 뜨거운 속 마음을 숨기고자 하는 말 하나도 없이, 그저 이사가와가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서, 시즈카 할머니의 죽음뒤에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나중에 도와주러 왔음에도 이사가와와 따로 채굴장으로 간 행동은 그나마 자신이 보인 마지막 행동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이사와가가 떠나고, 다시 예전읠 생활로 되돌아간 세이의 일상은 임신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끝을 맺게 된다. 

결혼이란 의식앞에서 맹세를 할 때, 평생 검은 머리가 팥뿌리가 될 때까지 동반자로 살겠다는 것을 약속을 하지만, 이 소설에선 나도 모르게 자기보다 2~3살 어린 사람으로 보이는 새로 부임을 해온 남자에게 이끌리게 된 심정의 감정이 글로 동선을 따라가게 만든다. 신체적 접촉이라고 해봐야 , 그 남자가 다친 발을 치료해 주면서 잡게된 그 부위, 그리고 이사와가가 자신의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댄 후에 그 손가락을 세이의 입술에 대며 말하지 말라는 대목 뿐이기에 더욱 아슬아슬하고, 남편도 정말 세이의 심경변화를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서도 설마 하면 모른체했을까? 그리고 쓰키에와 이사와가의 동침은 어떤 심정으로 세이는 봐라봤을까? 하는 일연의 궁금증을 작가는 설명이나 행동제시, 대사가 없기에 더욱 구 세대적인 표현의 묘미를 지니고 있는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처럼 톡톡튀는 말과 행동도 빠른 시대를 가고 있는 우리들 앞에서 먼 인생의 여정을 시선으로 두고 봤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마음 한 구석엔 다른 감정을 지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작가는 인간 심리 묘사에 잔잔한 파문과 의문을 던졌다. 세이의 마음 한 구석에 머물던 그 아련한 감정이 결국은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오고(뭐, 결정적인 행동을 한 것도 없지만서도...) 이사와가가 떠났지만, 책을 덮고서도 과연 이 둘의 마음은 통했을까? 그래서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떠난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게 한 책이다. 

대사가 도쿄의 표준어가 아닌 그 섬 사람들이 쓰는 일상 사투리로 되서 그런지 역자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실제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섬 사람들이 쓰는 말이 우리나라의 말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껴서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일본이란 배경이 쉽게 인식이 안된다. 다만 일본어에 정통했더라면 원서에 나오는 그 말의 뉘앙스를 좀 더 피부에 가깝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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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최후의 날
킴 매쿼리 지음, 최유나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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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 tv에서 아마존의 밀림에 사는 부족의 생생한 삶을 촬영한 것이 화제가 됬다. 보고서도 이미 문명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시각에서 본 그네들의 생활방식이나 문화의 습관이 새삼 신기하고 나름대로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모습에서 진화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라고 말해야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본 기억이 난다. 

세계 몇 대의 불가사리라고 명칭이 불리어진 고대의 각 문명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끈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잉카 제국이 있었던 마추픽추였다. 사진이나 글을 통해서 본 인디오들의 건축술이나 생활상이 어느 것 하나 미개인 종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봐왔기에 참으로 궁금했다. 그러던차에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게 됬는데, 그간의 알려진 바대로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을 두어서 각 양쪽의 상황과 그 사람들이 서로 받아들였던 뉘앙스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몰락을 당했는지에 대한 서술방식으로 그려진다. 

잉카제국을 몰락시킨 자는 스페인 사람 , 피사로.... 스페인에서도 지금도 그렇다고 하는데, 가난한 지역으로속하는 엑스트레마두라란 지방 출신으로 엄마는 하녀이고 아버지는 귀족 출신사이에서 태어난, 인정받지 못한자식이었다. 그런 그가 출세를 할 방법은 전쟁에 나가서 이름을 떨쳐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 부잣님 귀족딸과 결혼해서 신분상승을 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 콜롬버스의 신세게 발견으로 동료인 알마그로와 함께 개척의 길을 나선다.  

1526년 ~1528년 사이 두 번째 항해를 통해서 툼베스에서  잉카제국과 조우를 하게 된 계기를 발판으로 스페인 왕으로부터 대륙의 차지할 권리를 얻고, 다시 정복의 길을 시작하면서 잉카의 몰락의 서막이 시작이 된다.  

한편 잉카제국에서는 각 지역에 있던 왕조들이 조그만 부족의 잉카였던 왕, 비라코차 잉카의 아들인 쿠시 유판키가 타 제국으로 부터 위험을  아들인 투팍 잉카와 함께 구하면서 점차 대대로 영역의 확장일로의 길을 걷게된다.  

결국 네 개의 커다란 지역으로 나누고 그 중심지를 쿠스코로 삼으면서 명실상히 대 제국의 기틀이 완성이 된다. 하지만 이 와중에 구 세계 사람들이 드나듬과 동시에 옮긴 전염병으로 인해 차례로 계승자들이 죽고 적자인 우아스카르와 서자인 아타우알파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승리자는 서자에게 돌아가고 이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기 위해서 카하마르카에서 모인결과 생포에 성공, 아타우알파는 강인한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금.은을 주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피사로에게 속은 것을 알고 차후의 잉카군들의 반격을 두려워한 알마그로에 의해 처형을 당한다.  

 이때 부터 본격적인 잉카의 반격이 시작이 되는데, 바로 후계자인 망코잉카의 지휘아래  피사로군의 철저한 분석과 자신들의 한계를 파악한 상태에서 밀고 당기는 추적과 협상, 회유의 시대가 오고간다. 

 이 와중에 망코의 부하였던 사람들이 죽어간 가운데 전략적으로 위태함을 느낀 망코는 쿠스코를 버리고 훨씬 오지인 안티수유 지역의 하나인 빌카밤바 계곡을 새로운 수도로 삼게 된다. 

 계속 협곡한 계곡 위주의 게릴라전을 벌이게 된 가운데 알마그로는 피사로의 동생인 에르난도와의 싸움(라스살리나스 전투)에서 사형을 당하게 된다.   

한편 망코는 피사로의 보복으로  부인을 잃게되고 피사로는 분배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칠레이민주의자들(알마그리스타)에 의해서 암살을 당한다.  

피사로가 죽은 후 스페인에서는 새로운 총독을 임명하고 이 총독에게 충성의 맹세로 그간 망코가 받아들인 알마그로의 추종자 멘데스외의 여러사람들에 의해서 암살을 당한다.  

1532년 1000만이 넘는 잉카 황제(망코가 죽은 뒤에 후계자인 사이리투팍 잉카)68명에게 침략을 당하게 되고 , 황제는 쿠스코로 수도를 다시 옮기게되고 얼마 안가 죽은후에 티투쿠시가 그 왕계를 이어받는다.  

그 역시 얼마 안가 죽고 그 동생인 투팍 아마루가 왕위에 오르면서 교화 목적으로 들어간 그 곳에서 수도사인 오르티스는 읽기 조차도 눈을 찡그리게 하는 잔인한 고문을 당하면서 순교를 당한다.  

1572년  9월 24일 마침내, 그토록 찬란했던 잉카의 몰락을 알리는 전쟁이 시작이 되고 최후의 왕인 투팍아마루는 생포를 당해서 쿠스코로 데려옴과 동시에 교화를 하고 순순히 사형에 당하게 됨으로써 찬란했던 잉카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읽어내려가면서 책 머리에서 펠레폰네소소 전쟁에서 아테네의 사자가 말했다던 "강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약자는 당해야 할 것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 문명화된 기준이 되고 어느 것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하고, 무엇보다도 이 패한 전쟁으로 말미암아서 찬란한 한 인류가 간직했던 문명을 더는 발전된 모습으로 볼 수 없다는 데에 아쉬움이 크단 생각이 든다.  

신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말미암아서, 더욱 가치가 큰 금 ,은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다보니 이런 역사의  한 면을 차지하게 됬지만 잉카인들의 피라미드식 계급이라든가 그 안에서 서로 상호 호혜식의 주고 받는 생활방식에서 드러나는 지혜로움은 오히려 구세계가 갖고 있는 잔인한 계급방식보단 훨씬 인간적이고 친근하단 생각을 지울수 없게 만든다. 

 끝까지 지키고자 했지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는 잉카에게는 말, 언어가 없었단점, 즉 문자와 말이 없는 대신 키푸라고 십진법을 써서 사용한 매듭형태를 사용함으로써 극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고 대대로 내려져 전승이 어려웠고,이것은 몰락함과 더불어 그 대가 끊김을 가져왔다.  

인간의 소통도구의 가장 중요한 말과 문자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고 세종대왕님께 거듭 감사하단 생각이 들게한다. 

 그리고 무기를 들수 있는데, 뛰어난 화승총과 말, 그리고 피사로 측에서는 원주민을 생포해 자신의 말과 잉카말을 통역해 줄 사람을 키운 반면 잉카에게는 이런 사람이 없었단점,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천연두란 전염병이다.  

이 전염병이 오지 않았다면, 혹 왔다하더라도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중국의 인해전술 처럼 두 대륙간의 피터지는 전쟁이 발생했을 경우, 오늘의 역사는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졌을지는 또 모른단 가상 현실을 생각케한다.  

tv에서 아마존 촬영팀이 벌레에 면역이 없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장면이 생각이 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상황이 역전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신기한 자연의 면역체계에 대한  생각도 하게 ㅏ한다.  

잉카를 다스리는 방식에서도 아주 멸족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카이사르처럼 피사로가 , 물론 계급자체와 배움의 정도도 차이가 있지만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을 함에 있어서 확실한 선을 긎고 자신의 성과 그들 고유의 신앙을 인정하고 법에 어긋나지만 안는다면 상황에 맞춰서 지배한 방식만 채택했더라도 잉카인들이 그렇게 심한 반란과 배반을 느끼진 않았을거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다스리냐에 따라서 이민족이 타 민족에게 동화가 되고 국민이란 의식이 드는지에 대한 과정이 하나의 정치스타일로 본다면 피사로는 이 점을 너무 간과했고, 스페인 조차도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점을 차치하고라도 지배방식에서 유럽식 특유의 산물인 흑인 노예들의 이동과 종교의 억지 교화, 인디오들을 말살함으로써 오늘날에도 그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그 땅의 실제 주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만들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유럽인이 들어와서 미지의 세계가 개척이 됬고 그럼으로써 세상에 이 잉카라는 제국의 실체가 보여준 점도 있다지만, 그것이 과연 잉카인들이  원해서 그렇게 했는지, 그들이 믿는 종교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유일신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한 점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서 행 할수 있는 행동이었는지,  비록 자신들이 멸망시켰다고는 하지만 그후의 처리 과정에서 실 주인인 인디오들에게 어떤 삶을 보장해줬는지에 대해서 , 역사는 말없이 보여주고 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아무리 역사는 강자에 의해서 기록이 남는다고 하지만 작가는 어느 한 편에 서는 치우침이 없이 , 고루 고루 양 편의 입장에서 본 전쟁의 상황을 보여주었고 잉카인들 나름대로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했던 점을 나타낸 점이 아주 인상적이다.  

수도사가 순교를 당하는 장면에선 자신들의 아내, 딸들이 당했던 수모를 생각나게 해서 잔인한 방법이 동원이 되지만 그것을 과연 이들에게만 돌을 던질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잉카의 살아있는 역사를 본 듯 흥미있게 엮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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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풍경 2011-08-3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긍정적 역사 평가에 박수를 보냅니다.
굿~~!

북노마드 2011-09-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흡한 글에 대한 칭찬으로 쑥쓰럽네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