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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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과자 전문점 3대 주인인 77살의 우타니 구이치로는 나라에서 정한 제도인 실버배틀, 일명 노인 상호처형제도란 것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채택이 되는 바람에 70세 이상의 노인은 한 달간의 유예기간 동안 서로 죽이되 최후 순간에 1인만 남아야 한다는 규칙을 받게 된다.  

아주 가까운 친구를 권총으로 죽이게 되고 이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은 왕년의 형사출신인 사루타니 진이치와 함께 서로 돕는 동지가 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겪어야만 몇 십년간은 이런 제도를 당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게 된다.  

스스로 죽기를 원해서 대학교수의 집에 들어가 하녀처럼 살다가 죽은 할머니, 무기를 소지하려 야쿠자와 거래를 트게 되는 과정,  가족을 방패삼아 자신을 보호하려는 할아버지, 죽여서 자신만 남았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 예기치 못했던 사람에게 무참히 죽게되는 사람, 전직 프로레슬러 출신인 난쟁이 이누이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서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하수구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속에서 생활해 가는 등... 예기치 못한 각종 현상이 벌어지고 이런 사건의 연속은 방송국에서 취재차 나온 사람들에 의해서 고스란히 전국에 전파를 타게된다.  

약국에선 수면제가 없어지고 같은 목적으로 모임을 결성하게 된 무리들은 한 목표물을 정해서 죽이되 그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불신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빨리 죽이라는 정부 관리의 협박에 따라서 자신이 살기 위한 조처로 자신 조차도 인정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잔인성과 희열감, 그리고 반복적인 무의식의 행동에 치를 떨게 되지만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뒤늦게 이런 제도는 없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정부에 항의하고자 모임을 갖고 거사를 치를 것을 결정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마지막까지 목숨을 부지하게 된 구이하라만이 그 현장에서 벗어나는 아찔한 순간을 모면하게 된다.  

 새해에 들어서 각종 매체나 신문에서 연일 우리나라 인구의 비율이 노년층으로 가고 있다는 보고를 읽어보게 된다.  

각종 선진국들이 행해오고 있는 최상의 복지 실현의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조치로서 연금이나 의료복지혜택에 있어서의 각종 문제점과 해결점을 제시하기 위한 사설로서도 그 문제의 심각성은 깊다고 할 수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폭발적인 중대한 노인인구조절 정책의 일환으로 젊은이 1명당 7명의 노인을 부양해야하는 현실, 이에 따른 경비경감과 국민연금유지, 저출산제도를 해소시키는 일환으로 행해진다는 것에 착안한 제도를 소설이란 것에 맞춰서 그 상황을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아주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블랙의 유머와 상황설정이 픽 하는 웃음이 나오게 하지만 이것이 웬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반드시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가까운 미래의 일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노인인 것- 그 자체가 죄란 말로서 이 소설은 이 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늘어만 가는 노인만 없다면 과연 이 세상을 살 만한 세상일 수 있는가?  그렇단 확신이 있다면 어떤 근거로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단 생각이다.  

우리의 과거 고려장이란 제도도 생각이 나게 하고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라 노인들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음에도 현실의 비관적인 생각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행동의 연속으로 살인의 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인간 본성의 내면에 깃들여져 있는 악마의 근성도 보여지고 이런 행동속에서 마침내 일본인 다운 생각대로 이럴바엔 죽을 사람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서로 죽이는 경쟁을 벌여(마치 로마시대의 검투사 대결을 연상 시킨다.)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금함을 모이게 하고 이 돈은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은 그들만이 가진  민족성의 현실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유명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작가답게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소재의 채택과 더불어서 그 자신이 스스로 70대가 되어서야 이 글을 썼다는 점에서 아마도 자신이 직접 그 연령대에 속하고 느낄 수 있었던 어떤 현실성에 닥친 절박감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지게끔 써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잔인한 처형장면의 묘사나 코끼리를 대동하고 막판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애를 쓰는 등장인물들의 묘사는 아마도 영화나 만화로 나오게 된다면 책에서 읽는 그대로의 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고 넘어가기엔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언젠가 나도 이런 연령대가 닥칠 것이고 장수의 비결을 제시하는 각종 건강비결이 더욱 많아질 시기가 연이어 몰아쳐 온다고 가정한다면 인구조절을 한다는 명목하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한다.  

동물의 세계인 고래나 레밍이란 쥐들의 세계, 또 다른 동물들은 자살이나 임신 가임기간을 의도적으로 피함으로써 그들 자신들의 생태계 영역을 보전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어쩌면 인간들은 이런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륜있고 인생의 선생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을 없애는 방식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행동에 일침을 가하고 있지나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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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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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365일 대응이라는 모토로 운영되고 있는 , 시나노대학 의학과를 나온 후 대학에 머물지 않고 교외에 있는 혼조 병원에서 5년째 근무를 하고 있는 구리하라 이치토는 자칭 그 자신이 사악한 천사로 부르고 있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환자를 끌어당기는 의사'란  별명으로 불린다.  

당직을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응급환자가 몰려오는 통에 간호사들 사이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근방에서 이 병원만큼 큰 곳이 없기에 온갖 증상의 환자들로 넘쳐난다. 자신의 주 전공이 내과계통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진료과목을 곁들여서 해야하는 처지는 그 옆에 무수히 많은 카르테(진료카드)가 이를 말해준다.  

어느 날 같은 학과 친구면서 대학에 있다 이 곳에 온 동료 스나야마 지로로 부터 대학병원에 한 번 쯤은 근무를 해봐도 좋을 경험이라는 말과 함께 시나노대학으로부터 소화기내과로 와 달라는 청을 받고 고민을 하게 된다.  

같은 시기 췌장암 환자의 급속히 나쁜 상태로 이별을 맞이함과 때를 맞추어 담낭암 환자로 대학병원에 추천서를 써 줘서 치료의뢰를 넘겼지만 대학병원으로 부터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아즈미란 환자가 다시 입원을 청하면서 더욱 그 고민은 커진다.  

아무런 가족도 없던 그녀는 항상 밝은 미소를 보여준 환자였으며, 그 자신은 계속 상태가 나빠짐에도 마지막 희망으로 일본의 알프스란 명칭으로 불리는 산 구경을 하는 것과 동시에 어릴 적 먹던 카스테라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힘든 병마와 싸우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구리하라는 병원 옥상으로 데려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하지만 이틀 후 그녀는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가고 그녀의 마지막 부탁인 남편이 사준 모자를 머리에 씌워줌으로써 그녀와 약속을 지킨다.  

작가 자신이 의과 대학출신이자 의사로서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있는 책이다. 

오랜 현장의 경험상으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베테랑 간호사, 1년차 간호사로서 아직까지는 환자의 아픈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하고 치료를 해야하는지 방황하는 간호사 미즈나시 요코의 모습,  거구의 모습임에도 미즈나시를 짝사랑하다 자신의 뜻대로 데이트를 하게된 친구 스나야마의 모습은 촌각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현장에서도 피가 끊는 생생한 청춘들의 모습과 따뚯한 인간의 모습이 보여진다.  

구리하라가 살고 있는 주택에 같이 세 들어 사는 학자님이라 불리는 사람과 남작이라 불리는 화가와의 우정은 학자님이 떠날 때 보여준 눈 내리는 겨울에 온통 벚꽃이 만개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그들의 모습에선 우정과 사랑은 이별 앞에서 언제나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가벼운 말투속에 자신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 더 나은 물로 들어가 좋은 시설과 함께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이 조그만 병원에서 열악한 환경을 견디면서 정 많은 나이 든 환자와 같이 보내는 것이 좋은 가를 결정하는 기로에 섰을 때, 그의 스승격인 왕너구리, 여우선생이라 불린 소화기내과 부장과 부부장의 견해는 주인공에게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대한 멘토가 되주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뭐니해도 눈물이 찡하게 흐르게 하는 장면은 아즈미를 살리기 위한 일초를 다투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의사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이 과연 이 환자에게 유익한 것인가? 하는 갈등이  찰나의 순간 속에서 구리하라가 생각하고 있던 말들은 일말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는 것- 

-약물이나 항생제 등을 이용하여 끊어지는 목숨을 연장한다는 건 오만한 사실이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고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보다 나은 임종을 만들어 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능한 모든 의료 행위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사람들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한다.  

"전부 해달라"라고 울면서 소리치는게 미덕이라는 식의 생각은 슬슬 버려야한다.  

살아 날 가능성이 있다면 의사는 가족의 요구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치료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살아나지 않을 사람, 즉 노환으로 누워있는 고령자와 말기암 환자에게 행하는 의료이다. 

- 생명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감상적으로 " 모든 치료를" 하고 외치는 것은 이기적이다.  

환자 본인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가족이나 의료 담당자들의 자의적인 이기심만이 존재한다. 누구나 이 이기심을 갖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한 의사로서 그간의 겪고 생각한 바의 일부를 아즈미란 환자를 보내면서 빌려 쓴 구절이기도 하지만 폭 넓게는 안락사라는 것도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의 존엄한 귀한 생명 앞에서 안락사를 주도하다 체포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구리하라가 말한대로 환자의 의사를 반영해서 그 행동을 실행했다 할지라도 생명이란 테두리 안에서 그것이 과연 허용될 수 있는 도덕적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고통조차도 어떤 형태로 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 기계적인 호수에 물리고 약물 투여를 해서라도 생명 연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굳이 자신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의학도들이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자신은 잠도 못자는 이 혼조병원에 남기로 한 구리하라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은 비단 이것이 진료를 하는 의사로서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환자와 간호사  그 밖의 모든 것들에 소통을 하고 있었던 구리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또한 아즈마가 남긴 편지에 적힌 병을 않는다는 것은 정말 고독한 일이며, 병든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고독하다는 구절엔 환자를 보살피는 과정과 그들에게 어떤 따뜻한 말을 해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행동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를 흠모한 나머지 그의 작품을 읽고 그 속에 빠져서 말투가 나스메 소세키를 닮았다고 표현이 되고 있는데, 그 뉘앙스가 어떤 것인지 알수 없기에 이것의 느낌을 같이 가지고 읽고 내려갔더라면 더욱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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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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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라? 

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니, 일생을 통틀어 살아가면서 괴뇌와 고민, 이 순간마저도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고민의 기로에 서 있다.  

모든것을 아우르는 번뇌에서 해방이 되어서 아무런 부담없이 살아가기란 쉽지않고 또 그러기에 인생을 고로 시작해서 고로 끝난다고 하지 않던가? 

일본의 일류대학을 나온 신세대 스님답게 불교의 교리를 몰라도 차분히 설명하는 형식과 그에 걸맞는 사례를 들어가면서 번뇌로부터 헤어나오는 말씀을 적은 책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란 "마음속에 쌓아놓은 에너지" 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음은 물질을 만들며 카르마는 우리의 뒤를 조종하는 잠재력이며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번뇌다.  

이 번뇌를 이루고 있는 구성중에 근본번뇌, 탐욕, 진에, 우치가 있으니 이중 욕망을 나타내는 탐욕, 혐오감과 미망의 뜻인 진에, 우치가 삼독이라 하여 불린다. 이 가운데서도 근본의 에너지는 바로 우치라고 한다.  

우리가 맘속에 악을 행하면 스트레스가 생기며 선을 행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것을 말한다. 이에 주저하게 되면 마음은 악을  즐기는 것이 되며 자신에게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함도 알려주고 있다.  

 분노가 일어날 때는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용어인 sati를 번역한 "알아차림"으로 인식해 자신이 지금 화가 났음을 인정하고 분노나 화를 되뇌이다 보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음도 말한다.  

탐욕과 우치에 이르러서 마음의 다스림법을 알려주고 번뇌를 조절하는 방법에서는 불교의 목표인 마음의 조절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고 있다.  

초심자의 경우엔 우선 실천이 쉬운 규칙을 스스로에게 정해서 실천해 나가는 방법을 권유한다.  

거짓말 하지 않기, 험담이나 바하하지 않기, 이간하는 말 않기, 가식된말 하지 않기, 집중력이 모자라는 것이 원인이 되는 마음의 부자유로 부터 벗어나기, 모든 동작에 하나하나 감각이나 찰나의 순간을 알기,흔히 우리들이 무심히 사용하는 단어인 "말하고 싶지 않지만...'이나 "그런데 말이야..."라는 말은 마음의 번뇌만 늘일뿐이기에 사용의 자제가 필요함도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상대방과의 대화함에 있어서 같은 말이라도 즉 그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을말일 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상처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 입에 담지 말라는 말과 말의 옵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상대를 쉽게 설득하고 부드러운 대화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구절이다.  

나도 모르게 맘 속에 상대의 잘된 점으로 인하여 분노와 이기심, 질투가 일어나게 되면 상대에게 언어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기에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  

스님 자신이 만든 3초간의 실천법 또한 실 생활에서 해 볼만한 행동의 지침서가 아닌가 한다.  

무슨일을 하기 전에 단 3초간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이요, 일을 함에 있어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정지, 즉 한데 섞지말고 명확하게 의식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동일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에도 색다른 느낌과 지루함을 모르고 일할 수 있다는데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결국 번뇌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자 노력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선 수행과 좌선같은 행동도 도움이 됨을 말해준다.  

하지만 평시에도 화내지 않기. 불쾌함 느끼지않기,화의 카르마를 쌓지 않으려는 노력은 말이 쉽지 정말로 스스로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닌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옆에 있는 과자 한 조각 같고도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날 때도 있지 않는가?) 

깨달음을 심기란 마지막 장에선  불교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바 대로 그저 볼뿐, 그냥 들을 뿐이라는 생각의 공의 순간을 알게 해 준다.  

자비의 비는 불쌍하다, 가엾어라 하는 감정을 가지는 것이니 타인에게 따뜻하게 대하기 위한 능력도 필요함을, 보시를 하는 입장에선 생각하기 나름인 자신만의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이 또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모두에게 필요한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복잡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해 나가 살고 있는 바쁜 시대에 한 줄기 신선한 물줄기를 뿌림으로서 잠시나마 위안과 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등... 종교를 떠나서 좋은 글들로 채워져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각 챕터마다 스님이 직접그린 삽화가 들어있어서 보는 즐거움과 함께 글과 함께 같이 생각 할 순간을 주는 맛도 일품이다.

 ***** 과거를 쫓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법을  

         그때그때 관찰하고 

         초조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그를 요달해 알아 닦고 익혀라. 

         다만 오늘의 할 일을 열심히 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리요. 

         진실로 저 죽음의 대군과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와 같이 살며, 

         열심히 밤낮으로 태만하지 않는자, 

         사람들을 그를 일컬어 

         일야현자,적정자,적묵자 라고 부른다.  -맛지마 니까야 제 131경  [일야현성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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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을 행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라 

         선을 행하는 일에 주저하고 있으면 

         마음은 악을 즐기는 것이 된다.  - 법구경 1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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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개정판 백탑파 시리즈 2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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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6. 29 일 청전 이명방 의금부 도사는 서자 출신들로 학식과 다방면에서 놀라운 재주를 가진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와 교류를 지내고 이에 더불어서 사건해결에 뛰어난 추리력을 보유하고 있는 화광 김진, 이덕무의 처남인 야뇌 백동수와도 친하게 지낸다.   

정조는 이덕무로 하여금 적성현감으로 발령을 내리고 때마침 여러 곳에서 올라온 열녀문을 세워달라는 상소문이 많은 탓에 진열녀와 가열녀를 가리는 일을 규장각 금서관들인 이들에게 맡긴다.  

여러 상소중 열녀적성 김씨전의 내용이 수상하다여긴 이들은 왕의 명으로 이명방과 김진이 이 일을 맡게 됨으로써 이덕무가 관리를 맡게된 적성에 같이 가게 된다.  

김씨가 죽은 적성의 임참봉으로 알려진 시아버지 임호, 시동생 임거선, 시어머니 남씨, 그리고 친족인 서당 훈장인 임태봉과 노예인 똘이와 몸종 향이, 한의원 조광정의 행동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기미를 알아챈 이들은 한양의 임판서대감과 팔촌지간임을 알게 되고 임 판서대감이 아끼는 기생인 계목향으로부터 자신이 죽은 김씨여인, 즉 김아영과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서로간의 소설을 쓰고 주고 받는 사이임을 알게된다.  

한편 적성관아에 오래 전부터 서로 이권 개입으로 인한 앙숙이자 서로 도모할 수 밖에 없는 질청과 향청의 관리 책임자를 바꾸는 일을 감행하게 되고 이는 곧이어서 장세를 걷는 공부를 집행하고 돌아오려던 이방의 죽음과 다섯 포졸의 시체를 발견하는 일로 번진다.  

이들의 뒤를 캐던 김진과 이명박은 한독주와 정행수가 옥에서 독살로 죽게되는 일을 당하게 되고 한 독주가 죽기 전 자신의 부하인 식철에게 모종의 일을 맡기고 죽음에 따라 이명방과 김전은 그들의 거개간 장소인 지하에서 매매첩이 담긴 자료를 거두게 된다.  

죽은 이방과 다섯 포졸의 죽음뒤엔  임 판서 같은 대관들에게 귀한 그림을 구해주고 오고 간 거래 과정에서 질청과 향청간의 이권개입, 그리고 임 판서가 이 일에 연류됬음을 밝히고 더불어서 죽은 며느리에 대한 수사도 모두 이들 가족이 연류됬음을 파헤치게 된다.  

모든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계목향 또한 아영과 못다이룬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떠나가고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온 이들은 연경에서 외간 남자와 외통하고 임신까지 한 상태로 죽은 줄만 알았던 김아영과 그의 남편인 식철, 아기, 그리고 계목향까지 만나는 해후를 하게 되면서 모든 일이 아영의 전체적인 계획적인 일로 벌어졌음을 알게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열녀문이라 함은 지아비를 일찍 여의어서 그 뒤를 따른 부인네, 혹은 가문을 일으키고 홀로 자진하여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이 할 도리를 했다는 여인네의 지당한 길을 의미한다는 것을 드라마나 역사에 적힌 사실로 알고 있다.  

이 이야기는 정조때에 벌어진 사건으로 구성되어진 이야기다.  

이 시대는 지금의 기독교가 신분의 구별없이 소리없이 받아들여지고 그 세력이 어느정도인지도 모를 정도로 서서히 퍼져가던 시기인지라 이 책에서도 그 사실을 염두에 둔 바탕으로 그 시대의 여인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당찬 여인 김아영이 나온다.  

병자인 남편을 촉석루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남편이 자신의 뜻대로 야소교도가 되고 제사에 관련된 일에 충돌을 일으키자 문중을 지키려는 욕심에 아들을 죽인사아버지의 음모, 그리고 온갖 핍박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서 자진하길 강권한 시어머니 남씨의 만행이 드러난다.  

이에 굴하지 않는 아영의 당찬, 어찌보면 기가 드센 그 여인은 당장 가세를 일으킬 조건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서책을 통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부를 일으키는 과정, 노예해방을 약속한 일은 당시의 풍속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역동적인 페미니즘상을 부각시킨다. 

매매를 통해서 중개인들과의 교류, 그 안에서 싹튼 신분차이를 넘어선 사랑과 그의 결실, 그리고 기생 계목향과의 교류는 이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의 한 바램도 보여주면서 결코 주위의 타협에 굴하지 않는 자신만의 잣대를 드러내 보여준다.  

실력은 있지만 결코 정치에 온전한 신분으로 발을 내디딜 수 없었던 이들 서얼출신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규중규수와 기생과도 다를 바 없었던 소외된 이들 계층은 그나마 정조의 트인 정책으로 말미암아 일부라도 그 희망의 관직을 받지만 이마저도 혹 의구심을 내게된다. 즉 정조 자신의 뿌리도 결코 정당한 순수 혈통이 아니란 사실이다.  

만약 정조 자신이 순수왕가의 피를 이어 받았다면 과연 이런 정책을 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도 결코 서얼의 유능인재를 사랑했지만 신분의 파괴적인 정책엔 소심했단 사실도 알려준다.  

김진이 김아영에 대한 열녀문을 세울 것을 청한 대목에서 거절한 장면이나 그것에 비유해 자신들의 처지를 떠본 김진의 행동엔 성자라도 그 시대가 안고 갈수 밖에 없었던 군왕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또한 적성관아의 이권개입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필요에 의한 묵인하에 세습되어져 오는 권력의 내습과 아무리 혁신을 펼친다 해도 뿌리박힌 돌을 쉽게 파내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준 살인사건을 내세움으로써 작가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치를 논하는 입장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영의 거칠 것 없는 자기 발언은 과연 열녀문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진정으로 열녀문을 받을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져야 하는 가에 대한 기준과 물음을 던진다.  

"200년 전만 해도 조선에서 여자가 이혼하고 개가하는 일은 드물지 아니했습니다. 개가를 할 것인가, 홀로 살 것인가는 각자 판단 할 문제지만, 열없쟁이(겁쟁이)처럼 미리 마음을 닫을 필요는 없지요. 새로운 사랑이 찾아 왔다고 하여 예전 사랑이 사라진다고 보지는 않아요. 새롭게 혼인하고 행복을 꾸미는 데 주저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 p277 (제 2권) 

두 번의 큰 변란을 거치면서 거침없이 밀려오는 서양문물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고 그 바탕을 이루기위해 힘을 쓰고자 했던 이용후세의 학자들과 선비들, 그리고 현대의 슈퍼울트라 여인상의 대변격인 김아영의 존재를 통해서 오늘 날 우리에게 진정한 나의 행복과 사랑의 기준은 무엇이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책을 덮으며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영화로도 상영 중인 것으로 아는데, 원작에서의 맛은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는 원작을 차용하되 대부분 각색된 부분이 있기에 원작이 주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스타일'이나 "성균관 스캔들" 처럼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것을 못 본 나로서는 이 책이 주는 당시의 사회상이나 여인의 상이 시종 긴박감 넘치고 지식의 갈구를 탐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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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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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에 고국 도미니카를 떠나서 미국에 정착한 우라니아는 자신의 본명보다 우리/ 미스 카브랄/카블랄 부인/ 카브랄 박사로 불린다.  

14살에 떠나온 그녀는 35년간 가족(아버지는 물론이고 고모와 사촌까지)과 일체의 연락을 끊고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한 끝에 하버드대를 나오고 세계은행의 한 간부로서 성공을 거둔다.  

그런 그녀가 휴가를 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떠나온 고국을 35년만인 49살에 이르러서야 방문을 하는 충동적인 행동을 한다.  

호텔에서 나와서 자신의 기억속에 머물던 장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발걸음이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고 눈동자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던 아버지와 대면을 하게 된다.  

수령이자 총통, 자선가, 새로운 조국의 아버지라 불린 사람,_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장인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 밑에서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는 수 많은 정적의 틈새에서 오로지 그 만을 위해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모험을 포기한 채 충성을 맹세하지만 어느 날 자선가의 미움을 받게되고 모든 권력과 금전의 제재를 받게된다.  

다시 한 번 신의를 갖게 될 기회를 주위의 권고로 받아들이고 14살의 아무것도 모르던 딸을 자선가에게 처녀성을 바치게 되는 행동을 하게 되지만 이에 충격을 받은 우라니아는 그 길로 수녀원의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된 수녀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급박하게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한편 갖은 포악과 공포정치. 자신의 가족들에게만 쏟는 불공정한 나눠먹기식의 권력을 휘두른 자선가의 정치에 각기 다른 사연으로 뭉친 사람들, 대표적인 터키인 살바도르, 대통령 경호부대 장교인 아마디토, 안토니오 임베르트, 안토니오 델라 마사는 정보에 따라서 트루히요가 그의 비밀경찰들이 보호하지 않은 채 그의 비밀별장으로 여자를 즐기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기다리고 있다가 암살하는데 성공을 한다.  

하지만 뒷 마무리까지 생각한 절차를 생각하지 않은 오류를 범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같은 동료가 총상을 입게 되고 이 일을 주모하던  국방장관 로만 푸포의 배신으로 일은 그르치게 되면서  줄줄이 피신을 하는 가운데 일부는 맞서 싸우다 현장에서 죽고, 일부는 몸을 피신한 채 숨기게 되고 일부는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의 현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들만의 암호로 불린 트루히요를 나타내는 "염소"는 무사히 자신의 의지대로 죽였고 뒤이어 진정으로 원하는 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로 가는 절차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곧이어 트루히요의 장남의 포악이 절정에 이른 고문에 못이겨 죽은 로만에 이어서 나머지 6명의 행동대원들도 서방 각국의 온갖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체조차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발레르 대통령의 주도면밀한 계산과 행동에 따라서 도미니카 공화국은 트루히요의 가족들이 망명의 길로 떠나는 것으로 서방과 합의를 보고 본격적인 국가 재건의 길에 나서게 된다  

이 책은 독재정권이란 형태로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현 지구의 몇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독자적인 정책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 가운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역사를  작가의 상상이 곁들여져서 실존하는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회상과 현재를 넘나들고 있는 이야기다.  

허구의 인물인 우라니아는 대표적인 독재정권에 희생된 여인의 대표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아버지 자신의 야망을 찾기위한 방편으로 색정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70대의 트루히요 앞에 자신의 딸을 바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에겐 평생 용서 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한다.  

"내가 왜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는지 아세요? 그건 아빠가 결코 진심으로 그 일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p 181  

반신불수의 아버지에 대한 치료와 간호비를 보내면서도 결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그녀의 가슴엔 이후 남자란 없었으며 오로지 공부와 일에만 묻힘으로써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던 그간의 일을 아버지를 보면서 과거와 현재의 심정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 네가 도서관에 틀어 박혀 있었던 것은 배움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생각 하지 않기 위해, 도미니카의 기억을 쫓아버리기 위해서였다.- p 261 

트루히요와 있던 그 밤에 당했던 일을 고모와 사촌 , 조카에게 털어놓기까지 오해를 살 만 했던 저간의 사정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비로소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기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그녀의 맘은 그리 편치 않음을, 비춰보인다.  

염소를 암살하고 자신들이 정작 꿈꿨던 미래의 청사진이 한 사람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생명들이 줄줄이 연행이 되가는 현실을 바라 본 그들 네 남자의 시선엔 우라니와는 또 다른 고통이 깔려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요, 가까이 있던 사람들조차 자신들을 고발하게 하는 사회의 풍토는 과연 염소가 그간 치밀하게 어떻게 국민들을 조여오고 통치를 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며,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선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까지 악날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들이 진정으로 믿고 있는 신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길래 가엾은 신도들을 구하진 않고 이렇게 고행에찬 울음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역설적인 반항심마저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의 자식의 살을 고기로 먹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고 죽게 되는 공모자의 죽음 앞에서 동료들은 차마 말 할 의식조차 잃어버리며, 서방의 각국의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철저히 복수에 불타는 염소의 장남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은 채 비상사태란 빌미로 자신의 입지와 자신이 이 암살에 연류됬음을 폐기하고자 한 발라게르의 모습엔 인간의 이기적인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감으로써 서방에 자신의 뜻을 보여준 행동엔 나라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약삭빠른 인간이 구렁이에서 자신만 다른 동료의 등을 밟고 올라서 세상을 나온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염소가 저지른 공포의 독재체제하에서 희생당하고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했던 사람, 그 자신이 미치도록 주색에 빠진채 저지른 만행, 그럼에도 전립선 고장으로 우라니아 앞에서 울어버린 일, 염소를 암살함으로써 일부는 저 세상으로, 일부는 체포조치가 풀어지면서 일약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게 되는 양 극단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타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이란 책에서도 같은 정권에 속한  그 시대를 살아간 가족들이 전한 이야기가 읽는 내내 블랙코메디의 여운을 남긴다면 이 책은 아주 정직한 감성으로 아주 우울하고 때론 분노를 , 때론 슬픔의 눈물을 자아낸다.  

-자유의지를 가질 때에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이나 럼주 한 잔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었소. 담배 연기와 무더운 날 바다에서 하는 수영..... 이 모든게 육체와 정신에 더 좋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었다. -p 252 

지금 아프리카의 튀니지에선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되고 정치적으로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단 소식이 들려온 가운데 나라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행해진 정치형태로 독재정권이란 것이 탄생된 계기는 그 이유를 막론하고 권력을 지닌 자가 어떻게 자신의 욕망으로 부터 권력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하며, 비단 자신의 야망으로 행해진 이면에는 자신이 알고 있었든, 또는 모르고 있었든 간에 소리없는 아우성에 허우적거리고 생활하는 국민의 소리가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우라니아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조카에게 답장을 쓸 것이란 생각이 드는 장면으로 비로소 조금씩 과거와의 이별을 준비하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다는데서 희망을 갖게한 작가의 메시지를 보는 듯 한 인상을 준다.

라틴 문학답게 회상하는 장면이 마치 마술에 걸려서 환상적인 모습을 취하게 쓴 글 방법이나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의 어법이 마치 제3자가 말하듯이 하는 어법에는 신선함마저 들고 자신의나라가 아닌 타국에대한 사건을 묘사한 작가의 통찰한 관찰과 상상력은 읽는 내내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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