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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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기 한 신혼부부가 있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곰스크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그 아버지 또한 평생의 꿈을 곰스크로 가는 것으로 살아간 사람이었다.  

당연히 남자도 성인이 되서 부인을 맞이하고 동경해 있던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많은 돈을 들여서 차표를 구입,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정작 부인은 그다지 흥분에 쌓이지 않는 모습과 피곤함을 보이던 차에, 기차는 잠시 정차를 하게 되고 부인은 잠시 내려서 쉬어 갈 것을 권한다.  

멀리 보이는 풍경과 기차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조바심을 내지만 여자는 아랑곳 없이 풍경에 빠져들고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만다.  

이때부터 간이식당에서 잠시 기차표도 다시 벌겸해서 아내와 남자는 주인여자의 일을 거들면서 불규칙하게 정차하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사이 아내는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트이게 되고 하나씩 집안 살림의 모습을 갖춰나가지만 남자는 여전히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마침내 기차표를 마련했고 기차는 오게 됨으로써 남자는 기차에 오르지만 정작 아내는 자신이 힘겹게 마련한 안락의자와 함께 같이 갈 것을 주장하고 실랑이를 벌이다 아내의 임신사실을 알게되면서 기차에서 내리게 된다.  

아들이 태어나고 마을의 선생님이었던 사람의 후임으로 졸지에 선생님이 된 남자는 마당이 있고 정원과 꽃이 있는 집으로 옮기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지만 뜬금없이 하늘과 저 멀리 기적이 울리는 그 곳으로 가는 것을  멈추질 않는다. 

둘째 아이로 여아가 태어나면서 자신의 입에선 곰스크로 가잔 말은 끝내 내뱉을 수 없음을 안 남자는 곰스크를 그리워한다.  

아주 단순한 소설이다. 얆은 두께의 단편이지만 이미 대학가나 연극계에서, 그리고 방송에서도 방영이 됬다고 하는 이 작품은 (정작 나는 문인들이 추천해서 알았다.) 정작 독일에서도, 이 작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그리 없다는 점에서 희소성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의 남자는 막연히 곰스크를 동경하면서 자랐고 그것이 결혼으로 인한 여행이 빌미가 되어서 떠나게 되지만 정작 발목을 잡힌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여기에 부인은 곰스크로 정착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굳이 그 곳으로 가려는 남자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곰스크에 가면 확실한 뭔가가 있냐고 묻는 말에 남자는 확답을 주지 못하는 데서 곰스크로 가려는 그의 희망은 멀어지기만 한다.  

나는 오늘도 왜 나만의 이런 생각들과 싸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싸움을 할 권리가 없는지도 모른다. 자가가 선택한 바로 그 궤도를 달리는 게 인생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인간에겐 허용되지 않는 교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p 11 

이처럼 잠시 머물것이란 생각속에 맘은 곰스크로 향하는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맘속엔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거죠?" 라고 오히려 되 묻는다. 

아이가 태어남에 따라서 또 잠시 머물것이란 기대속에 선생님 노릇을 하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준 노 선생님은 그와 같은 심정을 이런 말로 대변해 준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의미 없는 삶이 아니예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란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p61 

누구나 성장하면서 나만의 곰스크가 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던, 정신적인것이든 간에- 

하지만 일부만이 이런 나의 곰스크로 가는 행운을 잡을 수 있으며 그런 도착성으로 인한 만족과 그안에서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실로 인생에 있어서도 큰 행운이랄 수 있다.  

그 만큼 나의 곰스크로 가는 여정은 위의 소설처럼 뜻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설사  의지를 갖고 있어서 행한다고 해도 윗 소설 처럼 여러가지 봉착된 여건 때문에 포기를 하고 맘 속에서만 그리워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남자는 항상 가족이 불어나고 안정된 직업도 있지만 언젠가는 , 언젠가는 하면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동경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의 일생이 실패했다곤 말 할 순 없다. 전직 선생의 말처럼 그가 원해서 머물렀던 인생이 지금의 인생이 되었고 자신 또한 젊은 날 남자처럼 곰스크를 동경했지만 비로소 인생의 노년에 들어서보니 이렇게 살아온 인생 또한 자신이 원한 삶이었고 만족한다는 말엔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만약"이란 낱말이 주는 단어는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이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박차고 나올 용기를 부린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또 다른 길로 들어설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기에 우린 현재의 삶을 살면서도 계속 곰스크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아마도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대한 결론은 작가가 말한 윗 부분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원한 삶이고 어쨌든 그것이 실패였든 , 성공이었든 간에 이미 곰스크는 어떤 생각을 하기에 따라서 현재진행중인지, 과거형인지를 결정지어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외에도 작가의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엄마에게 드리려던 양귀비에 얽힌 얘기. 삶의 회의에 젖은 철학자가 밝은 면의 화가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희망 얘기, 자신의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섬세한 포착과 더불어서 부인 구하기에 나선 고향 청년과 마을 처녀의 약혼 이야기는 읽는내내 훈훈한 시골사람의 전형적인 삶을 엿보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인생을 향한 자신의 철학적인 메세지를 아주 간결하면서도 읽는 내내 뜻을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글 솜씨는 그가 엮은 내용이 아주 적다는 데에 책장을 덮으면서 또다시 아쉽단 생각을 하게 했다. 

여러면에서 자신의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게 하는 이 "곰스크..."는 아주 얆은 책이지만 그 안에 내포한 내용만큼은 어느 책이 가질 수 없었던 인생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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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 믿음에 갇힌 여자들
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뜨인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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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는 6년간을 중동에 나가 있으면서 그간 자신이 직접 겪었고 가까운 이슬람 여성들을 통해서 , 또는 그 사회에 들어가서 경험했던 일을 엮은 책이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거부당하는 저자- 

이유인 즉슨 남자와 같이 동행을 하지 않았단 점으로 인해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 어이없는 상황은 실제이고 현재 이슬람 나라에서 여성들의 지위에  대해서 생각케하는 제도의 한 일부분이다.  

이란은 호메이니의 혁명 후 기존의 샤에 의해서 행해졌던 여러가지 시행된 일들이 일부 후퇴를 당하고 전통의상을 입으면서 생활하는 보수적인 사회로 돌아갔다.  

호메이니의 결정이 그런 것이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런 것이었고, 여성들이 남자들의 축구경기는 비록 아들과 같이 대동한다치더라도 관람 자체가 안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일부다처제의  관습도 실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규정짓지는 않았다는 점, 즉 모든 부인들에게 공평하게 대할 수 있는 자라면 허용이 됬단 점, 간통에 의한 돌팔매질도 코란에는 그런 행위가 없다는점, 2대 칼리프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오늘 날까지 행하여졌단 점에서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작은 부분을 수정해 준다.  

이슬람 특유의 조혼제도로 인한 여성들의 피해현실, 할례에 의해서 출산 때마다 무수한 고통을 겪는 여성들의 현 실태를 꼬집는 현장의 묘사는 이 모든 행위가 이슬람에서 권장한 사항이 아닌 오랜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관습이 이슬람이란 종교가 혼합이 되면서 굳어졌단 점에서도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중동에 위치한 이집트는 비교적 자유로운 여성의 활동이 있는 나라라고 하지만 작가의 비서였던 여성의 말과 행동에서조차도 이슬람의 법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부국인 사우디에선 아예 여성의 존재 자체는 집 안에서만 있어야하는 존재로 외출시 아들이나 남편, 집안의 남자들과 동행시에만 가능하며 이마저도 얼굴과 손만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린 천을 덮고서야 가능하다. 

운전 자체가 용납이 안되면서도 대학의 학문과정중엔 운전학과가 있단 사실, 왜냐하면 운전자가 차가 고장났을 경우 이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확인차 필요함이란 말엔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단 생각이 든다.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밸리댄서들의 보존방식은 제쳐두고서라도 그들이 돌연 활동을 중지하고 베일로 돌아간다는 발표는 이 이슬람이란 종교가 어떻게 한 여성이기 전에 사회적으로 한 인간을 구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보여준다.  

팔레스타인의 한 아이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낳은 엄마, 그리고 사랑에 빠져서 두 번째 부인을 들인 아버지로 부터 이혼의 권유를 받던 엄마가 끝내 친정으로의 복귀를 포기하고 자신의 양육을 빼앗길 위험에 돌부처처럼 평생 남편의 사랑을 포기하고 두 번째 부인과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씁씁히 내뱉는 과정은 종교의 힘을 떠나서 인간이 인간이 정한  제도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누굴 위한  정책인가 하는  일부분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함을 준다.  

여성의 선거 자체란 있을 수 없으며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한 터키에서 마저도 여성이 정계에 진출하려하자 비판의 소리를 높인점, 다른 나라에선 아예 여성은 대통령 선거에 나올 자격조차 주지않는다는 점, 돌팔매시에 금방 죽이지 않되 서서히 고통을 줘 가면서 죽이는 방법으로서 신체의 한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에선 간혹 신문에서 조차도 나오는 기사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단 점에서 종교의 무시한 권력을 새삼 느끼게된다.  

하지만 비단 이런 비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이 이란의 라프산자니의 딸이 이슬람 여성들만 출전해서 경기를 이룰 수 있게 도전해 본 이슬람여성 운동경기대회, 전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의 부인인 미국인 출신 누르왕비의 정계활동에 맞춘 여성에대한 정책, 미국에서 공부 하다가 만난 이슬람 남편을 둔 미국여성이 어떻게 자신이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시엄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친정인 미국을 오가면서 절충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일부 불편한 진실을 다소나마 안정을 유지시켜준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일부 진보적인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돌팔매라든가 할례의 관습은 이슬람에서 행하라고 한 적이 없는 일라고 하면서 정작 그들은 그것이 사실은 이슬람 태동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행해왔던 관습이었음을 왜 주장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 남편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여성의 재판을 보면서 같은 영국인이라도 자신이 겪어 본 중동의 실정을 알지 못하는 한 재판의 결정 상황은 180도 다른 방향으로 진행 될 수 있단 점에는 문화의 이해와 종교가 세속에 얼만큼의 관여를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한 작가는 성기절제, 은둔생활, 베일 사용만이 여성을 위한 일이 아닌 이것을 행함으로써 여성의 욕망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숨어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두고서도 불평등하며 남편으로 부터 이혼하겠단 말을 세 번 들으면 이혼 성립이 된다는 것 자체가 남녀 불평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중동에 이어서 중아아시아 이슬람권에서도 민주화의 바람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작 서방세계들과 러시아는 전전긍긍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데, 천연가스를 둘러싼 자원의 이해 분배에 있어서 자칫 자국의 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는 점에서란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의 정작 고유한 좋은 교리와 그것에 맞춰서 살아간다면 이처럼 여성이 고통받는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이 시대의 참 설명만으론 좀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단 생각이 들게한다.  

내부의 비판없이는 잘못된 관행자체를 고칠 수 없는 폐쇄된 이슬람이란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삶은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투쟁의 무기는 결국 폭탄, 총, 대규모의 검거가 아닌 대화란 말이 입가에 맴도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조선시대의 가풍에 젖어서 열녀문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슬람에 있어서 명예살인이 용납되는 한 여성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성의 지도하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고 이런 고리가 근절되지 않는 한 오늘도 여전히 이슬람의 여성들은 자신의 딸에게까지, 아니 그 이후의 세대까지 결코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생각의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슬람의경전인 꾸란- 

이 꾸란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성과 남성의 공존시대가 존재 할 수 있을 터인 지금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비록 조그만 시도라 할 지라도 안해본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집힌 여성들만을 위한 제도가 확층되었음 하는 바램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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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돔 1 밀리언셀러 클럽 111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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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스터스밀이란 마을에 전직이 이라크 파병 군인이었던 데일 바버라, 일명 바비라 불린 주인공은 그 곳 마을의 중고차 사장이자 마을의 부회장인 짐 레니의 아들 주니어 레니와 그 패거리들에 의해서 앤지란 여학생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이를  계기로 마을을 떠나게 되는 과정에서 마을 전체를 감싸고 내려오는 돔의 존재를 확인한다.  

주니어 레니는 그 시각 자신의 싸움을 증언한 앤지를 죽이고 그녀의 집에 있는 식품보관고에 넣어두고 연이어서 마을 의회 의장이자 아버지 하수인인 얼간이 앤디샌더스의 딸인 도라까지 죽이고 같이 보관한다. (머리에 통증이 있는 증상을 보건대 뇌종양을 앓고 있다. ) 

마을 전체가 이웃 마을과 경계가 지면서 마을은 소리없는 공포로 쌓이고 바비의 노력으로 전직 상관인 콕스 대령과 통화가 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게 된다.  

연이어 새 떼가 부딫쳐 죽고 최초의 비행기 폭파가 되어 떨어지고 마을로 오려던 차들이 연이어서 부딫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돔 근처엔 알수 없는 전기 기류가 흐른다.   

한편 마을에선 유일한 신문사이자 소유권과 편집권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줄리아 셤웨이가 바비와 같이 행동을 하게 되고 마을에선 발전기를 돌리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프로판 가스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하지만 마을의 프로판 가스를 자신의 비밀 장소에 옮겨놓고 마약을 만들어 판매를 해서 이익을 취득해온 빅 짐의 계획에 따라서 마을은 점점 전기가 끊기고 식품까지 판매중단을 함으로써 혼동이 오게 된다.  

치밀한 계획하에 마을의 주니어 레니와 그의  망나니 같은 친구들을 경찰로 임시 채용하면서 마을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그들의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고 빅 짐은 자신의  그간 해 온 행동에 이의를 제기한 목사와 경찰서장의 부인을 죽이면서 그 시체 처리를 아들에게 맡기면서 공동 범죄자로 마을을 장악해 나가고 그 살인의 죄를 바비에게 씌워 철창에 가둔다. 

나라로 부터 대령으로 승진한 바비지만 전혀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조 라는 아이에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돔의 원천지가 어디인지 알아보게 하고 조는 친구들과 마을 위쪽 과수원 근처에서 자주빛을 띠고 있는 상자를 발견하면서 돔의 정체를 알아간다.  

빅 짐의 하수인이자 마약중독자요, 마약을 만들고 있는 필 부시는 자신의 부인이 주니어 레니 무리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하면서 아들을 남겨두고 권총으로 그들의 일행을 죽이고 자신도 권총으로 쏴 자살한 사실을 알고 자신 또한 아내와 딸마저 이 세상에 없는 사실로 괴로워하던 얼간이 샌더스가 찾아오면서 둘은 둘도 없는 마약으로 빠져들고 프로판 가스와 마약을 찾으러 오는 빅 짐의 무리를 없애기로 의기 투합한다.  

프로판 가스를 찾으러 온 이들과 싸움을 벌인 끝에 폭파장치를 누르고 죽은 이 둘은 온 마을을 화재 쓰나마로 몰고 간다.  

전체 마을 주민 중 바비 일행은 과수원 산 위로 피신해 가고 빅 짐과 그의 부하 카터는 반공호가 있는 마을회관으로 피신해 가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연기로 인해서 바비의 일행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 있던 차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간 바비와 줄리아는 그 상자에게 더 이상 이런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부탁하면서 돔은 서서히 걷히게 된다.  

아주 방대한 책 3권안에 작가는 소리없는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란 것을 보여준 대작이다.  

특별한 무기도 없이 어느 날 알 수 없는 돔이란 정체불명의 물체가 한 마을을 뒤덮으며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현상을 아주 세밀하게 포착해서 표현해 나간 이 책은 인간의 탐욕과 잔인성이 얼마나 강도가 높을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인간 탐구 보고서란 생각도 들 만큼 그 소재가 흥미롭고 벌어지는 현상에서 눈을 떼게 하지 않는다.  

기존의 자신만이 누리고 있던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아무런 죄없는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게 하고 (프로판 가스의 실종, 식품 사재기 방지와 폭동 유발)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없이 마을의 제1인자로 살려는 빅 짐이란 인간에 대한 인간탐욕이 철저히 묘사되고 있다.  

여기엔 양심적인 목사와 비리고발을 준비했던 경찰서장과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부인까지 죽인 살인마적인 극단성과 함께 자신의 아들조차도 나중엔 귀찮게 여기는 비정의 아버지 모습도 보여주는 최악의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법의 테두리가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돔에 둘러싸인 이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의 힘은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선까지 그 강도를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준다.  

연약한 여인에 대한 강간과 폭행, 한 인간을 이용해서 폭동이 일어나게 만드는 과정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일반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들어내고 있고,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적인 행동, 그리고 알 수 없는 돔의 존재를 해체해 보려는 소수의 사람들의 노력은 작가의 빈틈없는 구성에 곳곳에 배치되어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등장인물만 하더라도 많은 인원이 등장하고 있는 이 소설은 어느 누가 특정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분량답게 일일이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 모습 표현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장 압권은 프로판 가스가 폭발하면서 마을을 덥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연기에 질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자주빛을 내는 상자로 다가가기까지 산소 공급을 위해서 타이어를 뚫고 공기를 흡인하는 모습은 인간이 만든 이기적인 물질에 의해서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극한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않고 끝까지 행동하는 모습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다만 그토록 돔의 생성자체와 실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얘기도 , 그저 막연히 우주에서 왔을거란 추측을 하게 하고 핵폭탄 발사마저도 안듣게 되는 상황에서 그 상자 앞에 가서 제발 멈춰주길 바라는 맘에 부탁을 한다는 설정엔 한껏 고무된 독자의 궁금증과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인간의 비열함에 몸서리치는 순간을 한순간에 "뭐야?" 하는 어리둥절함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뒷 마무리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무소불위식의 권력의 맛을 알고 그것을 휘두르는데 맛을 들인 어린 청년들의 행동이나 빅 짐의 모습은 읽고 나서도 내내 씁씁함과 함께 새삼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알고 싶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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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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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리스베트의 경고에 움츠린 채 살고 있던 후견인인 변호사 비우르만은 그녀에 대한 신상명세를 그녀 모르게 주도면밀한 생활로 추적해 나가면서 그녀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살라란 인물과 접촉하게 된다.  

리스베트 또한 미카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자 1년여 동안 은닉해 온 자금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고국에 돌아오지만 여전히 미카엘에 대한 이멜에 대해선 반응을 하지 않는다. 

미카엘은 전작인 책이 대 성공을 거둔 가운데, 동구권 여성들을 유혹해 성 노리개로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취지를 바탕으로 한 책을 펴고자 하는 프리랜서 출신인 다그 스벤손과 함께 책 출판과 동시에 밀레니엄호에 기사를 싣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같이 일에 협조한다. 

한편 리스베트는 전임 후임자였던 변호사가 살아있단 소식과 함께 그를 찾아가게 되고 자신이 미카엘의 컴에서 해킹 하던 중 자신이 알고있던 살라란 이름의 파일과 자신이 집 근처에서 공격을 가했던 사람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추적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여성 인신매매에 연관된 책을 집필중인 다그와 그의 동거녀의 집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지만 미카엘이 다그의 부탁으로 그의 집을 방문 했을 때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이에 경찰은 현장에서 남겨진 권총의 지문 결과 그것이 비우르만의 권총이란 사실, 그리고 리스베트의 지문이 묻었고 비우르만이 집에서 죽어있단 사실로 범인을 리스베트로 생각하고 그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에 미카엘이 그녀가 범인이 아니란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뛰던 중 전 후견인이었던 변호사로 부터 그녀의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다.  

살라란 이름의 작자는 옛 소련연방 시절 국외정보 특수요원이었으며, 비리를 저지른 후 스웨덴에 망명요청이 받아들여져 스웨덴의 국가안보기관인 사포에 의해서 비밀기류서류에 등록된 인물이란 점, 스웨덴에 온 지 얼마 안되어 리스베트의 엄마를 만나서 쌍둥이 자매를 낳았지만 엄청난 폭력에 시달린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인 살라에게 휘발유를 뿌려서 화상을 입게 해서 정신이상자로 분류되 그간 정신보호자로 위탁 받아오게 됬단 사실을 말이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미카엘은 리스베트의 새 주소지를 알게되고 가지만 이미 리스베트는 살라의 존재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금발의 사내가 있는 장소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뒤이어 추적에 따라나선 미카엘은 결국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살라의 모습과 금발을 거리에 묶어두게 되고 총을 맞고서 실신해 있는 리스베트의 모습을 보게 된다.  

1편에 연이은 연작시리즈 라지만 개별로 읽어도 무방할 만큼 독립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전작의 간단한 설명으로 이어진 뒤에 리스베트가 겪는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 앞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다시금 냉정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초반의 일이라면 고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존재감을 나라 자체에서 기밀로 다루고 있는 인물이기에(그가 제공하는 정보가 쏠쏠했기에 이를 비밀에 부쳐야만 했던 국가의 결정상) 리스베트가 정상인들에 끼여서 살고 있는 한 언젠가는 살라란 인물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비우르만 변호사, 군나르 비에르크 전 사포직원, 그리고 그녀의 정신 상태를 정신이상자로 분류하게끔 한 정신과의사의 합작이었던 셈이다.  

혈육이란 점을 떠나서 어쩌다 들르면 가학적인 섹스와 폭력에 시달린 엄마의 모습은 전편 1부에 나온대로 혼자선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의 기력을 가진 여인으로 등장했던 모습의 이유가 여기 2편에서 나오고 있고, 정상인들보단 훨씬 대화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리스베트였지만 아버지가 저지른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던 12살 시절의 그 모든 악이 시작되었던 그 때의 일은 읽는 내내 충격과 동정심을 일으켜준다.  

한 개인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으로 여지없이 무너져가는지, 도저히 그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이 과정은 전편에 흐르는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연이어 전개됨을 보여준다.  

1편이 여성이 성 폭력에 시달려 그 곳과의 인연이 먼 곳으로 떠나야 했던  점에 비추었다면 2편은 가정내에서의 아버지란 사람이 저지른 폭력과 이를 감추고자 하는 그릇된 국가권력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 외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조차 없는 리스베트가 권투로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고 비열한 비우르만을 옭죄는 방법은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단 점에서 이 책은 리스베트 외에도 동구권 여성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서구유럽에 오게되는 과정을 이용한 성매매 도구로 착취당하는 과정도 함께 보여준다.  

결국은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금발의 사나이가  아버지가 한 때 섹스를 통해서 낳은 이복오빠란 설정이 읽는 내내 극단적인 충격을 주고 있단 점에서 책을 놓기가 쉽지가 않다.  

여전히 양성애자적인 기질을 보여주고 있는 리스베트와 미미라 불린 우란 여인의 섹스 행동은 여전히 성 자유개방주의 국가다운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수긍하기엔 한계가 있다. 

또한 한방향으로 가고 있던 길을 일부러  갓길에 빠져서 일일히 두서없이 한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친절하다 못해 지겨움을 주기까지 하는 설명은 이 책이 갖고 있는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글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기에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이 갖고 있는 신체적, 사회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취약점을 이런 소재로 이용해서  다루었단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소재고 다시금 그의 방대한 글 솜씨에 대해서도 칭찬을 해 주고 싶다. 

3편을 다시 들여다 보게 하는 리스베트의 안부도 궁금하게 써 놓은 마지막 장도 결국은 그의 이런 재주를 십분 발휘한 덕이기에 다시금 3부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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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시대 기병 중심의 왕실 친위군인 겸사복인 강채윤- 

어린 시절 나라의 북진 정책에 따라서 소작농의 자식이었던 그는 농사직설이란 책을 끼고 살았던 아비의 희망찬 꿈에 들떠서 고향을 등지고 북쪽으로 터를 잡지만 해마다 쳐들어오는 여진족의 침탈로 아비를 잃고 복수에 불타 김종서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병사로 살아간다.  

그런 그를 눈여겨 보던 김종서에 의해서 성삼문으로 위탁이 되고 겸사복으로 일하던 중 숙직 당일 집현전 학사중에서 최말단이자 왕따였던 저작이란 벼슬을 갖고있던 정성수가 열상진원이란 우물에서 죽은 채 발견이 된다.  

정보관(겸사복 별관)은 이의 사건을 채윤에게 떠맡기고 여차하면 과오를 그에게 뒤집어 씌울려는 작정을 하게 된다  

죽은 정성수가 많은 서고 중에서 분서행의 책임자로 있었단 사실, 분서고에서 발견된 그가 남긴 마방진을 보고서 서운관 관원 이순지에게 보여주고 사술에 밝은 "소이"라는 무수리를 소개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벙어리- 

알듯말듯한 필치로 그에게 더욱 혼란을 주게 되고 연이어서 집현전 학사인 주자소에서 일하는 윤필, 명나라 사신의 소행이 확실치만 어쩔 수 없는 명에 의해서 풀려난 사신에 의해서 죽은 허담, 농사직설 지은 정초가 경회루에서 목매 죽은 것처럼 죽임을 당한 사건, 삼문을 아미산에서 위험에서 구해준 채윤은 이 모든 사실뒤엔 엄청난 배후 세력이 있음을 감지한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엔 전통 경학파의 거두인 최만리 대제학을 위시한 기존 세력이 세종대왕이 상왕이 존재하던 시절 썼던 자신의 장인인 심온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죽음에 이르게 된 저간의 사정을 기술한 모화주의 반대사상을 적은 책 - 바로 고군통서란 책을 수중에 넣기 위함이었으며, 세종이 학자를 위시한 정책이 아닌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기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이 위태함을 느끼자 저지르는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죽은 자들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점의 숫자상으로 이것이 오행에 기초한 결사 모임임을 알고서 그 오행에 따른 죽음을 막고자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주상과 무수리 소이까지 이 결사 회원의 일원임을 알게 된 채윤은 주상으로 부터 고군통서를 빼았으려는 무리를 물리치다 오히려 옥에 갇힌다.  

명의 짜여진 각본대로 고군통서의 필체상 주상의 것임을 알게되어 위험에 처하게 된 상황에서 호위무사인 무휼에 의해서 주상은 위기를 넘기고 채윤은 최만리가 옥에 갇혀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상태를 의문으로 여기게 된다.  

옥에서 끌려나온 채윤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엔 최만리의 뜻이 적용은 됬지만 그에 넘어선 권력과 최만리의 느슨함을 견디지 못한 직제학 심종수가 최종 범인임을 밝혀낸다.  

우리의 주위엔 알게 모르게 그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당연시 하며 느끼고 사는 것이 있다.  

산소, 물, 나무가 뿜어내는 자연의 힘찬 숨소리,,,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우리의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껏 알고 써오는 이 한글- 훈민정음을 발표하기 전 7일간에 벌어진 이 살인사건을 추리소설식으로 엮은 이 책은 고려가 멸하고 새로운 기조의 왕조인 조선이란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기 까지, 지금으로 말하자면 혁신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왕인 세종의 힘찬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아니었나 하는 재 평가를 다시 해 보게 한다.  

자신의 힘이 없었던 왕의 군림 시절 장인이 억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담은 책 고군통서 안에 명에 대한 우리나라가 처한 사실을 직시하고 있으므로 기존세력들의 반대가 만만찮았음을 보여준다.  

삼문으로 부터 그간 죽었던 사람들이 겉으로는 집현전 말단관원이었지만 사실은 왕의 명에 의해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신들의 사명감이었던 지도 제작, 고려사 개수작업,고려 가요 필사에 이르는 일을 맡았단 대목에선 그가 어떤 식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했는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도된 나라의 방향이 어떤 사람들과 일을 함으로써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고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가 인정하고 벼슬길에 이끌었던 장영실이나 반인 가리온에게 자신의 육체를 맡겼단 점에서 주상으로서의 그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단 점에서 군자의 행동을 엿 볼 수있으며 삼문으로 부터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비밀을 지키고자 벙어리인 무수리 소이에게 발음의 교정을 통해서 말을 할 수 있게 한 점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하나 탁월한 소재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랜 세월동안 중국에 의해서 길들여져 왔던 정통 경학파의 수장이었던 최만리의 의견대립에 맞서서 정인지 같은 실용 경제학파를 중시한 점은 최만리의 눈엔 당연히 눈에 가시였던 바, 세종은 이미 이들이 고수했던 유교의 신용자들로서 사대부들의 경세 실용과 격물치지 이치에 반대하였던 사람들, 고려를 떠 받든 불교의 저항, 자신들의 뜻에 반대하는 세종을 감시하는 명에 대한 저항이 소극적이었던 행동이었다면 보다 큰 저항은 큰 밑그림겪인  

 "그것은 시대와의 싸움이었다. 발목을 잡는 과거를 떨치려는 싸움이었고 한 몸안위에 만족하며 주저앉으려는 현재와의 싸움이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 2부 p 204 에서 나온 것 처럼 바로 앞을 내다본 굳은 결의의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세상에서 수 초만에 사라지는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대국에 속한 소국의 비애라고 말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언어는 그것을 쓰고 읽고 말함으로서 그 존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한글 날이 공휴일에서 빠지고 흐지부지 달력에서 하나의 상징인 숫자에 불과한 지도 몇 해가 지났지만 새삼 이 소설을 읽고 느낀 것은 그것에 대한 애착 없이는 누구도 그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의 해박한 역사적인 지식과 지금의 스도쿠를 연상시키는 마방진, 그리고 주상의 배려로 같은 길을 가는 채윤과 소이에 대한 사랑은 또 하나의 깊은 사랑을 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9월 경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다고 한다.  

주상역엔 한 석규, 채윤역엔 장혁이 캐스팅 됬다고 하는데, 소설 속의 인물간의 캐릭터 표현도 궁금해 지고 원작과 드라마에서 얼만큼의 공통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을지 , 벌써 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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