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르완다 대학살
필립 고레비치 지음, 강미경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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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도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한 르완다. 

너무나 작은 국토때문에 자신의 나라표기조차도 이웃영토에까지 쓰일만큼 조그마한 나라인 르완다는 원주민인 피그미족(트와족으로 나중에 불린다.)이 살고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후투족과 투치족이란 종족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서로간의 동일언어, 풍습을 가진탓에 서로간의 결혼도 오간 정말 사이좋은 부족이었다.  

이런 부족들간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독일에 이은 벨기에의 식민정치의 실현이 구체화 되면서 자신들의 편의대로 투치족을 정치와 그 밖의 모든 중요직을 차지하게 하고 그 밑으로 후치족을 다스리게 되는 구조를 취한 결과였다.  

다분히 자신들의 편의대로 식민지에 대한 이익을 추구한 나머지 그들간의 점차 벌어진 틈은 마침내 1960대의 학살사건과 연이어서 1994년 봄과 여름에 걸쳐 인류역사적으로 대 기록을 세우게 되는 제노사이드가 실현이 되는 암울한 시대를 거치게된다.  

벨기에의 영향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카톨릭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모여 피신한 투치족을 보호하기는 커녕 후치족이 마체테(풀을 베기위해 사용하는 칼) 와 마수(못이 박힌 곤봉)을 이용해 무참히 살해하는 광기의 현장을 일러바치는 성직자들의 반 인륜적 행위, 차라리 죽이는 편이 낳았을 현장을 서서히 뼈아픈 고통속에 죽게하는 처리방식으로 휘두른 무기앞에 사지에 대한 고통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저자는 4~5차례 르완다를 방문하면서 현장에서 보고느낀 바를 서술하고 있다.  

이런 기저에는 함족신화라 불리는 후치족과 투치족의 생김새부터 다름에 대한 편이한 인식아래 만행을 저질러졌고 투치족 부인을 둔 후치족 남편이라도 처남이나 처가 사람들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간다로 피신해 자란 젊은 르완다인들로 구성된 르완다애국전선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게됨으로써 후치족은 이웃나라인 자이르(훗날 콩고공화국)로 밀려나게 되고 세계각국의 강대국들은 오히려 후치족을 뒤에서 지원(프랑스)하는 상태로까지 번져 더욱 큰 사태로 발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보고서 조차도 사전에 제노사이드에 대한 의심과 경고를 가졌지만  그저 무심히 흘렸을 뿐이고 학살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도와달란 애국전선의 간절한 소리에도 사형은 하지 말아야한단 일관된 소리만 외칠뿐이었다.  (나중에 주동이 된 후치족 범죄인들은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스웨덴 감옥에 수감이 되고 르완다 감옥안에서 조차도 신분차별, 즉 직업에 따른 서열에 따라서 감방이나 그 외 바깥 지역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탈출한 난민캠프내에서도 후투파워라 불린 자들에게 수시로 위협을 받은 후투족사람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 다시 새로운 르완다를 건설하려는 애국전선의 길을 막고 온갖 구호품을 선취함으로써 난민들을 오히려 양쪽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를 겪는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기존의 투치족에 대한 학살이 진행될 때는 무관심속에 자국들의 이익을 주판알로 튀기고 있을 강대국들이 취한 태도이다.  

국제적인 보고는 연일 투치족이 후퇴한 후치족을 학살한다는 현장을 실어나름으로써 새삼 관심을 끌게되는 현상으로 번져가고 세계의 제1인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은 오히려 자국의 무기를 대여료를 받는 조건으로 빌려주는 대목이다. 이마저도 차일피일 미루다 그 사이에 또한 무수한 르완다인들은 처절이 학살의 현장으로 사라진다.  

저자는 르완다의 학살현장과 그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미 영화화 된 호텔 르완다의 주인공인 후치족 사람 호텔 직원 폴 루세사 바기나의 인터뷰을 곁들여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인터뷰를 한 정치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올림으로서 진정으로 유엔에서도 제노사이드란 이름으로 만들어낸 인간들의 극형에 달한 태도에 견제를 하지만 이는 그저 허공에 그친 것임을 적나라하게 보고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아프리카가 아닌 서유럽이나 일반의 다른 좀 더 실리성을 갖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세계는 과연 가만있었겠는가?하는 물음을 던진다.  

 방송에서도 큰 비중이 아닌 작은 코너의 소개로 간간이 나온것으로 기억이 될 만큼 우리들 모두는 이들의 불운한 세태에 대해 그저 무관심을 가장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비록 독립을 했다고하나 여전히 자신들의 과거속의 한 나라로 인식이 되고 더불어서 끊임없이 자신의 발 밑에 두고자 지원을 한 프랑스나, 인종구분 신분증을 철폐하란 영국의 요구에 겉으론 투치족을 응원한단 빌미아래 거절하지만 깊은 심중엔 앵글로색슨이 자릴 잡을 수 있단 의중이 곁들여진 이기심에 찬 행동들을 강대국들은 보여준다.  

또한 세계의 민주주의의 표본이자 급한 불을 끄는데 맏형겪을 자초하는 미국의 태도는 여전히 잉해할 수 없는 의문을 준다.  

비록 당시의 상황이 소말리아에서 자국의 군사들이 당한 테러에 대한 일로 신경쓸일이 있었다지만 추후의 클린턴 행정부의 연설발표문이나 행동은 기존의 행동을 비교해 보건대 자국의 이익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무너진면을 보여줬단 점에서 이 르완다 학살사건은 우리인류가 생겨난 이래 가장 혹독하고 무심하게 방치한 점에 대한 경고와 아울러서 인간보편적인 진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르포타주로서 손색이 없다.  

학살 사건 종결 후에도 여전히 자이르내에서 쫓겨난 후치족의 위치라든가 여전히 후투파워 앞에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행하는 게릴라식 학살은 정말이지 단지 이름하나 틀렸단 것으로 부족이아닌 한 소중한 인간들의 생명을 무심히 버리는 행동에 치를 떨게 만든다.  

진정의 시간을 갖고 서서히 자신들이 가진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르완다의 국민들을 보면서 작가는 그 곳을 떠나오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되지만 책을 덮고서도 여전히 그 안의 국민들은 지나온 과거속에서 그 모든것을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가 다시 이웃해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는 기억의모토로서 자신들의 존재성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르완다는 유태인들을 박해한 다른 나라인 독일이란 것만 다를뿐 학살이란 명제하에 자행된 행동은 유태인들과는 다른 그들에게 망각을 권유하면서 살란 권유에 다시 한 번 진정한 인류애는 무엇이며 생명의 존엄성은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사실적인 묘사장면과 성직자로서 행한 행동,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현실앞에서 무엇이 잘못이 되었단 사실조차도 잊은 채 살인에 맛을 느끼는 사람들의 행동,  여전히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잃고 다시금 고향에 왔지만 이웃엔 학살의 장본인이 버젓이 살고 있단 투치족 사람들의 말 속에 이미 모든것에 대한 체념으로 가득찬 인간의 모습을,   세계의 모든 평화를 위해서 발로뛰고 중재자로서 확연한 책임의 수장기구로서 모습을 보여야 할 유엔의 소극적인 태도, 매뉴얼에 얽매인채 실지 난민들을 위한 행동이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무와 태도에 스스로를 유엔구조위원회 직원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 제노사이드 규약이라는 장미빛 약속은 인종청소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도덕명령이 독립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이해관계보다 우선 해야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P 210 

*****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사람들에게 정의감을 일께워주었지만 소리높여 악을 비난하는 것과 묵묵히 선를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아있다. -P 212 

***** 무엇보다 나의 관심을 끈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공백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였다. -P 221 

***** 결국 정치는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의 중간쯤에서 이루어진다. P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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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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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신의 여성작가로서 보기 드물게 한국에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 

 그녀가 쓴 대표적인 책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접했을 때가 문득 생각이 난다.  

한 번에 나온 것이 아닌 한 해에 한 권꼴로 나온 덕분에 첫 1권서부터 출간되자마자 부리나케 신청해 읽은 기억과함께 그녀가 지은 책이라면 거의를 소장하고 있단 사실에서 나의 한 곳에 치우친 독서 편집에 대한 경고도 아울러서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그녀가 이번에 들고 나온 책은 바로 서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들에게는 성전의 의미 이상을 지닌 이슬람 대 기독교간의 전쟁을 다룬 십자군 이야기다.  

그녀가 지은 저서에도 간간이 십자군과 연결된 역사적인 사실들을 열거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해석한 글의 내용이 사뭇 다른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세계 주요종교에서 3개의 주요종교의 성전지로 여기고 있는 예루살렘.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공통된 성전이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를 두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일대 혈전을 벌이는 역사적인 사건을 작가는 일관된 냉철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특유의 생각을 펼친다.  

로마가 멸망 후 그 명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잔틴 로마문명권의 알렉시우스 황제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서로마의 수장인 카톨릭교의 교황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것에서 부터 발단이 되는 이 역사의 시작은 애초에 교황이 가진 권위를 되찾고 아울러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발 아래에 두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즉 교황은 가지고 있지만 황제는 없는것- 바로 신의 대리인으로서 할 수있는 최고의 말1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 

새로 취임한 우르바누스 2세는 하인리히 황제의 견제를 위해서 행한 당시로서  보면 글로벌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면서 정치적인 인물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자신의 성직자의 권리를 십분 발휘한다.  

성전에 참여함으로써 그 간의 죄를 면죄부로서 감해주고 천국에 갈 수 있단 사실, 되돌아오면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단 말로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출발하게 한 점을 미뤄봐서도 알 수 있듯이 종교적인 자신의 개혁적인 성향과 더불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야심에 찬 교황의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출발은 자신이 생각했던 왕의 출발이 아닌 은둔자 피에로을 위시한 일반 가난한 민중들이 출발했고 기타 왕들의 불륜과 교황과의 사이가 나쁜점 때문에 제후들의 출발로 시작했단 특징을 지닌다.  

제후들 중에서도 정실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영지를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선 성전으로 가는 길이 나름대로의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할 수있단 희망의 길이기도 했다.  

단합이 되어서 인솔자가 우선하여 이끈 행군이 아닌 각개의 개별적인 행동으로 모인 십자군은 우선 콘스탄티노플을 시작으로 하여 안티오키아의 처절한 공방전에 이은 함락성공,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이어지면서 각기 자신들이 공략한 곳에 영주로서의 다툼도 벌이게 된다.  

드디어 입성한 예루살렘에서의 영주의 자리를 확보한 고드푸루아는 즉위한 지 1년이 되서 죽음을 맞이하고 뒤이어서 그의 동생 보두앵이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실질적인 치세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지키기위해선 턱없이 부족한 병사들의 확보를 위해서 다시 유럽으로 떠나게 된 보에몬드나 그 밖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략한 성의 영주로서  그 자리에 터전을 잡게 되면서 예루살렘을 위시한 연방정부의 형태로 남으면서 제 1차 십자군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여기까지가 제 1권에 소개된 주된 내용이다.  

물론 전쟁사답게 그 안엔 처절한 공방의 사례와 무기와 창, 십자군이 입었던 상세한 의복까지 묘사한 부분도 있지만 작가가 아울러서 지적한 제 1차 십자군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엔 유럽인들의 신을 위시한 종교에 의지한 철저한 심리를 이용한 교황의 계획과 천국에 갈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도 서슴없이 내놓을 수 있었던 항전한 군사및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단점이다.  

이에 반해서 이슬람은 그 때까지만 해도 왜 먼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굳이 이 곳 예루살렘까지 와서 영토를 확장하려하는지에 대한 생각만으로 미쳤단 점에서 두 종교가 이룬 목적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있게 해 준다.  

더군다나 이슬람 안에서의 권력다툼과 분열 때문에 이런 현상은 십자군이 보다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었단 점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란 생각도 든다. 

이 과정에서 지형을 이용한 전쟁의 묘사 장면도 로마인 이야기나 그 밖의 책에서 서술한 형태의 군사적인 지식도 아울러지며 십자군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악랄한 살해나,약탈같은 행동은 종교를 기치로 건 사람들로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이런 행동이 신의 이름으로 출전한 성전이란 이름아래서 과연 신이 바랬던 일이었을까를 묻고 싶어진다.   

"선과 악인의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라고 말했다. -P239

복잡한 당시의 세계편도와 권력, 자신의 상술과 전쟁무기를 십분활용해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고도의 이권을 잡는 베네치아인 및, 제노바, 피사의 이탈리아인들의 행동엔 전쟁중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만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단 역사에서 체험해 온 습성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있는 기회도 제공해 준다.  

귀스타브 도레란 사람이 그린 삽화가 들어있는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를 같이 곁들여 보면서 맨 처음엔 그림으로 설명된 십자군의 이야기를 맛배기로, 다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면서는 다시 그 장면을 들처가면서 보는 맛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 즐거움이 아닐까싶다.  

파리 목숨처럼 역병에, 상대방의 무기에 힘없이 쓰러져 갔을 그 당시 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이 신의이름으로 이룬 성전의 결과대로 신의 뜻에 따라 천국에 갔을까도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무려 80년 뒤에나 등장하는 아랍인의 장수 살라딘에 의해서 본격적인 전쟁의 의미를 알게된다는 말에서 근 200여년간 지속해 온 본격적인 십자군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문득 "킹 오브 더 헤븐" 이란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뇌리에 스친다.  

주인공 발리안이  성을 내주는 대신 자신의 군사들과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하고 안전하게 떠날 수 있게 약속한 살라딘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오래 전 봐서 정확한 대사는 아마도 이에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 

살라딘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 

뒤돌아 가면서 다시 돌아보며 하는 말, 

"그러나 그 모든것이기도 하다." 

 아마 당시의 사람들도 이런 생각으로 그 처절한 200년간에 대한 세월을 담보로 전쟁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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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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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9.16 일 맨하튼 남주에 위치한 미 합중국 금융센터가 한 대의 마차속에 감추어진 폭탄의 세례를 맞고 무너진다.  

그 현장엔 뉴욕경창서 소속인 지미 리틀모어 경사와 전장에서 막 돌아온 의사인 스트래섬 영거 , 그리고 전장에서 퀴리부인의 제자로서 라듐을 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환자치료에 도움을 준 프랑스 여인 콜레트, 그리고 그녀의 남동생인 실어증에 걸린 뤽이 동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의문의 여인으로부터 받은 편지와 솜뭉치속에 들어있던 사람의 어금니를 형사에게 보여주고 사건을 의뢰하던 중 납치를 당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범인 중 한 사람인 드로박이란 사람을 놓치게 된다.  

이후 사건은 건물 폭파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던 프랑스 고등판무관실에 근무하던 에디피셔란 사람을 알고 있던 케틀리란 사람으로부터 얼마 전 그가 준  편지에 미리 피신하란 내용을 접하고 에디를 찾고자 하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 

한편 콜레트는 영거에게 자신의 약혼자인 전장에서 만난 한스 그루버란 사람을 찾고싶단 부탁과 함께 그와 함께 오스트리아에 있는 프로이드 박사집에 가게 되고 여기서 남동생을 치료하잔 말을 듣게 된다.  

리틀모어 또한 재무장관으로부터 자신과 함께 일하잔 권유를 받게되고 곧이어 이 사건이 멕시코가 자신의 나라일부를 되찾기 위해서 벌인 일인지, J.P모건의 라몬트의 계획에 따른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사건의 추적에 힘을 쏟는다. 

가까스로 한스를 만난 콜레트는 실은 약혼자가 아닌 자신의 부모를 죽인 범인임을 밝히게되고 한스는 영거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서 두 사람은 프로이트의 권유에 따라 남동생을 박사에게 맡기고 급히 미국길에 오른다.  

미국에 있는 리틀모어는 이 사건이 전적으로 정부의 고위 관리직에 의한 사건과 모건회사의 일부 금을 두고 벌인 사건임을 밝혀내면서 영거와 함께 사건해결을 마무리 짓는다.  

작가의 전작인 살인의 해석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접한 느낌은 우선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머리에 먼저 떠오른 것은 9.11사건을 연상짓게 한다.  

작가가 전공한 대로 소설은 크게 두 갈래의 길을 가면서 나중에 합쳐지는 형식으로 가고 있으며, 콜레트의 남동생의 실어증 현상에 대한 영거가 느끼는 정신세계에 대한 회의적 느낌과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살인 본능에 대한 충실한 해석을 답습하고 있어서 이 책은 시종 추리기법과 함께 자연적으로 정신학적인 의문에 관한 해소를 다소 해결하고 있단 느낌이 강하다.  

"우리 세포 하나하나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기 파괴를 초래하네. 죽음본능이 작용하는 예일세. 만일 세포가 죽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세포는 끊임없이 부자연스럽게 분할하며 재생산하네. 암이 되지. 그게 바로 암의 정체일세. 죽을 의지를 상실해 고통 받는 세포, 죽음 본능은 악하지 않네.”  

위의 말처럼 우리 인간들의 뇌리에 은연중에 세뇌되었다고 생각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이에 대한 실천과 그에 광분하는 광기에 대한 프로이트의 고찰적인 주장은 사뭇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연관도 없는 뉴욕시민을 대상으로 공공연히 죽음의 대상으로 내몰은 몰염치한 정치권의 세력들, 그리고 한 나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회사 이익을 위해서 감쪽같이 속이고자 벌인 회사간부의 행동을 보면서 선.악에 대한 기준은 과연 누가 심판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좀 두터운 책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 안에 든 내용중 일부분이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대사의 맛도 느낄 수 있지만 다소 지루함을도 주는   이 책은 이 부분을 넘어선다면 그런대로 당시의 시대상활 재현이나 남.녀간의 사랑, 가장으로서 느끼는 일과 가정의 행복을 두고 고민에 빠진 리틀모어형사의 생각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느끼게 해 준다.  

실존 인물인 퀴리부인을 내세움으로서 그녀가 발견한 라듐의 이용가치를 두고서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인류의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가져다 줄 수 있단 경고성의 느낌도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읽을거리를 준단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당시의 멕시코와 미국간의 정치적인 현안에 관한 문제의 조사를 토대로 한 구성적 플롯과 라듐이란 소재, 정신학의 대가인 프로이트를 접한단 것에서 이 소설은 정치, 정신학, 과학적인 하문을 두로 접할 수 있단 점에서 전작인 다른 작품을 들쳐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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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마음을 전하는 작은 책 시리즈
호리카와 나미 글.그림, 박승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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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내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단 사실을 잊고 지내는 때가 많죠? 

 이 책은 아주 사소한 생활에서, 아니면 쉬우면서도 누구라도 쉽게 하기 어려운(자존심이나 부끄러움 때문에...) 말 한마디로 서로간의 신뢰와 사랑을 차곡 차곡 쌓을 수 있는 행복을 그려낸 책이입니다.  

소리없는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림과 간단하며너서도 속 깊은 뜻과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기에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그 누군가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응원을 해 줄 사람임을, 그래서 그 뜻을 전하라고 말하라네요. 

덥다고 짜증나는 일이 있는 요즘, 사소한 일로 오해와 다툼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을 들어서 같이 보자고 권해보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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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존 그리샴
존 그리샴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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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캐자스 주 교정국관리를 받고 있던 강간범으로 법적으로 가석방 신세인  트래비스 보이엇이란 44살의 남자가 루터교 교회로 들어와 키이스 목사와 면담을 요청한다.  

그가 온 목적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해하기 위한것- 

9년 전인 1999년  텍사스 주에서 일용직자로 근무하던 중 고교생 치어리더 걸인 니콜이란 여학생을 죽인 범인이 바로 자기란 것. 지금 감옥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인 흑인 미식축구 소년인 돈테드럼은 무죄라는 것.얼마 안가서 범인이 밝혀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도망생활 하던 중 신문에서 사형집행일이 목요일로 다가왔단 사실에 괴로워하다 이제사 밝힌다며, 자신이 그녀를 짝사랑하고 납치해서 강간 후 미주리 주의 자신이 살던 지역 모처에 묻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9년 전 일이고 이미 일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지내다 이제 겨우 가석방으로 행동의 제약을 받던 그의 말을 목사는 반신반의 하지만 그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고 당시의 사건을 조회한 결과 성직자로서의 의무와  보이엇의 고백 자체에 대한 비밀유지라는 상황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한편, 당시의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돈테드럼은  다가오는 목요일로 사형집행이 확정이 되었고 사건 초기부터 형사, 검사, 판사가 서로의 편의와 시체가 없음에도 자백했단 이유하나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의도를 파헤치며 법정 투쟁을 벌여온 로비 플랙 변호사는 끝까지 그의 무죄를 위해서  그가 사건 당일 현장에서 그녀를 납치했다고 진술한 동창이자 니콜을 짝사랑했던 조이 캠블의 증언이 거짓으로 진술했단 서명과 증인 철회를 받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중이었다.  

키이스 목사는 고민 끝에 악성 뇌종양으로 삶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보이엇과 함께 캔자스 주의 경계를 넘어가면 죄인을 도와준 혐의를 받게 된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텍사스 주의 슬론시로 로비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결정을 한다.  

간신히 도착해 로비를 만났지만 이미 법조계나 주지사, 연방법원으로 부터 모두 집행 연장기각을 받게 되고 보이엇의 고백은 무두 헛소리로 무마가 된다.  

가족들과 참관인, 니콜의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돈테는 사형을 집행당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흑.백간의 폭동은 위험신호를 감지한 가운데, 보이엇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범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로비와 키이스, 방송관계자와 함께 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정확한 기억과 함께 니콜의 유골이라고 추정되는 뼈와 옷, 신분증이 발견이 되고 이는 곧 로비가 당시의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민사,형사 고발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이 된다.  

보이엇을 인도하고 돌아온 키이스 목사는 보이엇이 도망갔다는 연락과 함께 그가 다시 한 번 전과의 범행을 보이게 될 시에 자신이 감수해야할 여러가지 상황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법적인 형벌에 대한 고민으로 휩싸이게 된다.  

돈테 엄마의 호소로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되고 그의 무덤엔 그를 기리는 사람들로 기억이 된다.  

 법을 전공하고 그의 관련된 일을 해온 경험답게  작가는 여러가지 법적인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법이란 누구에게나 안심하고 정의롭게 실현이 되는 도구가 아님을 이 책에서 꼬집어  말하고 있다.  

노련한 경찰의 여러각도로 제시된 강압적인 협박과 무 개념의 시간제약을 미끼로 18살의 유망한 미식축구 흑인 소년을 현장에서 봤다는 백인 친구의 진술 하나로 시체가 없음에도 거짓 자백을 만들어내는 과정, 배심원단의 편성을 흑인을 배제한 채, 모두 백인으로만 채워져 이루어진 과정, 거짓말 탐지기가 믿을 수 없단 하에 법정에서 조차 증거로 채택이 안된 상태, 검사와 판사와의 불륜적 행태로 서로가 윈윈하는 법조계의 이중성을 낱낱이 고발한 현장을 이 책에선 자세히 언급을 하고 있다.  

법에 대해 전공하고 정의의 여신 앞에서 선서한 순간 그 순백했던 맹세는 서서히 법의 안일주의와 여론에 밀려서 어떡하든 범인 하나를 몰아세워 사건의 해결을 보려는 이중인격자들의 모습을 이 책에선 돈테드럼이란 한 무고한 희생자를 내세워 우리에게 묻고 있다.  

누가 과연 돈테드럼을 죽게 만들었는가? 

전통적으로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텍사스 주의 법의 룰, 그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끊는 용광로형태로 서서히 달구어가고 있던 흑.백의 대결은 미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기 다른 주에서 행해지고 있는 법적의 헛점과 인종간의 문제를 엿볼 수가 있다.  

***** 대체 누가 저들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를 부여했는가? 살인은 분명 나쁜 행동이건만 , 왜 우리는 다른 인간의 생명을 우리 손으로 빼앗는 것인가? - p382  

작가의 의도가 포함된 이 글은 사건의 종료 후 모든것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형사,검사, 판사, 주지사, 모두는 제 각기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법을 이용해서 빠져나오려 하고 무고하게 죽은 돈테드럼의 생명에 대한 죄스러움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비열함을 보인단 점에서 울분을 토하게 만든다.  

(사형당하는 과정과 엄마가 돈테의 옷을 벗기고 씻기는 과정은 울컥하는 맘을 추스릴 수가 없게 만든다. ) 

만일 자신의 자녀가, 아니 주위의 친.인척이 그런 상황에 닥쳤다면 이렇게 태평히 그저 법의 망에 운이 없이 걸린 한 사람으로 간주하진 않았을거란 생각에 미꾸라지처럼 명예을 잃는 생활로 돌아간 사람들이라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로비 변호사와 돈테가족의 보상금 처리 과정과 변호사비의 내용에 이견차이로 그토록 가족같았던 사람들이 돌아서게 된 얘기, 키이스 목사가 성직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스스로 행한 행동에 법은 면죄부를 주지 않는 헛점(과연 이런 경우에도 법적인 형량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나라에서 정한 돈테의 위로금명목으로 준 금액이 한 사람의 귀중한 목숨을 가족이 원한 금액보다도 못한 금액을 보상한 대목은 인간의 목숨은 파리보다 못한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들게한다.  

다른 책들과는 달이 처음부터 범인을 드러내놓고 그 후의 사건전개 과정을 짚어감으로써 우리에게 과연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법이 정말로 그 모든 소수자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진실로 인종의 편견없이 오로지 죄에 한해서 그 한사람에 대한 죄를 선고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사형제도는 마땅히 중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나, 아니면 돈테처럼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음에도, 증거가 없음에도 유예기간 연장신청을 기각할 만큼 자신만만하게 사형을 치를 만큼 양심의 선을 그어놓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가장 씁쓸한 장면은 키이스 목사 부부가 사형반대 모임에 가입을 하고 열성적으로 그런 모임에 참가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행동을 하지만 어느 날인가 자신도 서서히 현재의 법 개정은 확연히 눈에 뛸 만큼 바뀔 수가 없다고 느껴가는 구절이다.  

한 때의 사건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사형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팽팽한 대립은 과연 이 문제에 관해서 누가 책임지고 돌을 맞을 자신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 드류커버 형사, 폴 커피검사, 그레일 판사, 편견에 사로잡힌 배심원들, 진실을 보지 못하는 항소법원의 눈먼 판사들, 머지않아 당신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당신들은 남은 평생 내 생각에 괴로워하게 될 겁니다. -P384 

(돈테드럼이 주사약이 들어가기 전 최후의 진술로 한 말.... 그러나  위의 관련자들 대부분 돈테드럼의 말처럼 생각대로 큰 처벌은 받지 않았다는 데서 법의 헛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시종 무거움직한 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책답게 다음 장면을 궁금케 하여 책을 놓지 못하게 쓰여진 법정소설로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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