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양장)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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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베트의 만찬

 

노르웨이의 베를레보그의 자매인 마르티네와 필리파는 청교도적인 목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를 대신해서 검소, 청렴, 소박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며 그 마을에 자선을 베풀며 살아간다.

 

아름다움 미모를 갖고 태어난 마르티네가 18살 되던 해 로렌스 로벤히엘름이란 장교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아버지로부터 고모가 있는 곳으로 가 자숙하란 말에 가게되고 거기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 그녀들이 있는 집으로 파티를 가게되면서 마르티네를 만나게된다.

 

첫 눈에 반한 상대이지만 그녀의 청순하고 깨끗함, 자신에 비해 너무나도 정화된 세계에 살고 있던 그녀를 보면서 차마 고백을 하지 못하다가 마지막 떠나면서 "영원한 작별이오!" 란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 후 그는 궁녀와 결혼, 사교계에 만족하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해 나가지만 때론 마르티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떠올리곤한다.

 

둘째 필리파, 또한 파리의 유명 오페라 가수인 아실 파팽을 만나면서 그녀의 타고난 목소리 재능을 눈여겨보고 사랑을 느끼면서 노랠 가르치는 아실 곁에서 같이 노래도 부르지만 아실의 권유에 따른 세속적인 유명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 거절하고 자신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던 1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아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되고 사연인즉 바베트란 프랑스 여인이 고국의 혼란한 정세를 빠져나와 홀홀단신으로 남게됬다며 그녀를 거두어 줄 것을 부탁한다.

쓰러질듯 방문한 프랑스 여인과 동거하면서  자매들은 그녀가 요리를 하는 가운데 자신이 복권에 당첨됬다는 사실, 그러면서 그녀의 부탁은 자신이 직접 음식을 차리고 싶다며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단 말을 하게된다.

이에 승낙한 두 자매는 로렌스의 방문, 마을 사람들의 초대, 거북바다의 실체를 보고서도 아무말 못한 채 끙끙거렸지만 요리가 나오는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새롭게 감동시키고 로렌스 대령 또한 프랑스에서 익히 알고있던 '캉유 엄사르코파주"란 유명한 음식을 맛보면서 그녀가 당대 최고의 여자 요리사가 요리한 음식임을 말하게되고 극찬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떠난 후 자매는 바베트에게 음식값으로 모두 얼마가 들었냐고 묻게되고, 바베트는 복권으로 탄 모든 돈이 음식으로 차린데에 쏟아부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더 이상 부자도 아니며,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됬다며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폭풍우

 

쇠렌센은 나이든 배우이자 연출가-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 자신이 직접 역을 맡기로 하고 요정공기 역할을 할 에어리얼을 찾다가 무명의 신인여배우 말리를 발탁하게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배가 난파당하면서 자신을 태어나게 하고 소식이 끊긴 상태로 그녀의 미모는 특별함이 있었다.

크리스안산에서  폭풍우 공연을 하러 배를 타고 가던 중 배가 파도를 만나 위험에 처하자 그녀는 앞장서서 사람들을 구하게 되고 배의 선주인인 요쿰 호세방켈의 안내로 그의 집에 머물게된다.

그의 아들인 아른트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지만 그가 사업차 잠시 마을을 떠난 사이 그녀와 함께 배에서 위험을 무릅썼던 선원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폭풍우를 맞서서 싸운것은 실제의 상황에서 보여진 용기가 아니라 이미 자신이 맡고 있던 에어리얼의 역할에 충실한 나머지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한 상태로 역할에 몰입해서 나온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아른트를 사랑하지만 이내 자신에 대한 상황을 느껴가면서 결국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3.불멸의 이야기

 

1860년대 동료조차도 배신하고 돈을 모은 영국인 클레이는 광둥성에서 부자가 된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통풍이 일자 엘리스 루이스란 직원을 집으로 불러 장부를 읽게 하다가 그마저 모두 읽게되고 읽을 거리가 떨어지자 선원들이 하는 5기니벌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가 실제로 그런 일을 해 보자고 결심, 선원과 아가씨를 섭외하게된다.

 

아가씨는 자신이 배신했던 사람의 딸. 그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그녀는 복수를 위해서 돈을 받고 하룻밤을 모르는 선원과 동침한단 계약을 하게된다.

선원은 바로 얼마까지만 해도 배가 난파되어 홀로 섬에 있다가 구출이 된 사람-

밤에 두 남녀는 클레이의 계획대로 자게 되지만 선원이 순수성과 진심어린 자신의 계획을 듣게 된 그녀는 괴로워하게되고 그, 즉 폴이 떠나가는 것을 보게된다.

떠나는 폴은 자신이 고립된 섬에서 모았던 것 중 조개껍데기를 엘리스에게 주고 떠나고 엘리스는 어디선가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음을 느낀다.

 

4. 진주조개잡이

 

사우페는 이란 시라즈에서 신학을 공부한 청년으로 인간을 위해 날개를 만들기로 결심, 새와 생활을 하던 중 그 사실은 대신 미르자에게 들어가게 되고 미르자는 무희 투무스에게 접근, 그 자신이 믿는 존재처럼 보여서 그의 생각이 헛됨을 알리고자 계획하게 되지만 투무스는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 사실을 고백하며서 사우페는 떠나게 된다.

 

 얼마후 유명한 진주조개잡이가 있단 소릴 듣게된 이야기꾼(여기선 실제 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사람) 마라자마는 그를 찾아 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게되면서 그가 사우페임을 또 그가 겪은 거북복어의 말을 통해서 평온을 찾은 경위를 들어보게된다.

 

"결국 인간은 시간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겁을 먹고 과거와 미래 사이는 끊임없이 오가며 균형을 잃고 말아요. 수중세계에 살고있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녹아있는 말은 바로 '지금이 지나간 자리는 망각의 심연' 이라는 말이지요." -P297

 

5. 반지

 

부모의 반대에도 시기스문은 24살. 로비사(리세라 불림)는 19살에 결혼한 신혼부부다.

양목장을 둘러보다 양을 죽이는 사람을 놓친것을 듣게 된 시기스문은 그 문제와 관련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리세 먼저 돌아가라 하지만 리세는 남편을 당혹시키기 위해 예전에 알아두었던 사람의 인적이 드문 비밀의 장소로 잠시 몸을 숨기기로 하고 그 곳을 기억에 의지한 채 더듬어 찾아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그 곳은 타인이 점령한 상태-

바로 사람들이 찾고자 했던 범인이었으며, 그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결혼반지를 빼어 주고 이 곳을 떠나라고 하지만 그는 반지는 내버려둔 채 그 곳을 떠난다.

시기스문이 찾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 앞에 나타나지만 그녀는 그에게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그녀는 그 반지를 잃어버림으로써   , 이는 곧 가난, 핍박, 외로움과 맺어졌음을 깨닫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시기스문은 그녀가 자기가 준 반지를 잃어버린 것에 마음을 쓰는 그녀가 가슴에 와 닿음을 깨닫는다.

 

원 제목이 운명의 일화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집어든 까닭은 만찬이란 것이 붙어서이다.

만찬~

얼마나 푸짐한 느낌을 주는 말인가?

아무리 상황이 험악한 상태가 와도, 서로간의 의견이 반목이 되어있는 심리가 되도 일단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마음은 유연해지고 일말의 여유를 가지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작픔들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의 첫 제목인 바베트란 프랑스 여인의 기구한 운명, 내란으로 인해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모든 것이 떠난 상태인 , 유명한 요리사였던 그녀가 청렴하고 근검절약에 배인 두 노쳐녀들과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삶의 행복은 마지막 그녀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만든 만찬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볼 수있다.

 

아무리 유명한 권력자라도 일단 자신이 손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서 오히려 그들의 입맛을 쥐었던 여인이 자신의 조국을 등지고 타국에서 두 노처녀들과 동거에 들어갔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비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의 철학에 동조하면서 자신의 솜씨를 한 번에 드러낸 그녀의 마음씨, 세상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 만찬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진정한 인간미 넘치는 향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영화로도 이미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 보진 못하고 이 책을 먼저 읽은 상태라 영화의 화려한 음식 이미지가 책 속에 나오는 음식의 이미지와 얼마큼 부합되어 있는지는 알 순 없지만 일단은 첫 장에서부터 작가의 북구유럽 특유의 설국에서 벌어지는 일반 사람들의 행복을 비추어 글을 써내려나가는 데에 솜씨가 뛰어남을 느낄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연극속에 자신의 이미지의 몰입이 지나쳐 실제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연극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실제의 일을 마무리하다 비로소 두려움을 느끼게되는 말리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선원들의 허구이야기를 실제로 만들어보려했던 클레이의 부의 사치를 누리려는 야망, 거북복어의 말을 통해서 풀어낸 작가의 인생관이랄까, 삶에서 묻어나온 철학적인 짧은 대화는 깊은 인상을 준다. 

 

작가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실제  주인공이자 글을 쓴 사람이라고해서 집어들었던 책은 그녀만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하다고 해야할 정도로 살아온 그녀의 이력은 글을 풀어 쓴 솜씨에서 그 위력이 더 없이 나타나고 있다.

 

헤밍웨이, 카뮈에 의해서 노벨문학상에 오르지 못하고 매독에 의해 수술 후유증에 따른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단 사실이 그녀의 인생이 더 극적이다 싶게 살아간 점도 간과할 수가 없을 만큼 남지만 뭣보다 글의 흐름이 일반 독자들에게 책을 읽고 있단 느낌이 들지 않게 그저 간단한 옛 이야기 한편을 들려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자연스런 글 흐름이 눈에 뛴다.

 

북구의 나라에서 이런 글 재주를 가졌던, 사랑에 정열적이고 사업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 당시의 시대상으론 여장부 기질을 보였던 그녀가 이런 섬세하고 다양한 소재로 글을 썼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각 단편들 모두 하나하나가 재밌고 옆에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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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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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과 그의 동생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었단 죄로 끌려와 고초를 겪다 정약종의 죽음으로 유배를 가게된다.

 

정약전은 흑산으로 가는 유배길에서 지난 날의 일을 되새기면서 그 자신이 먼저 천주교에 대한 설명과 교리를 형제들에게 옮겼지만 정작 순교를 한 사람은 동생인 약종이었고 그 자신은 긍정도, 거부도 ,이렇다 할 말도 없이 그저 동생의 죽음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행운을 맞은 사람이다.

 

동생인 정약용의 배교와 밀고로 인해서 제일 큰 형인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의 죽음은 그 이후 둘 사이에 금언이 된 말이 되었고, 이는 후일의 일이었다.

 

흑산_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군진 별장인 오칠구에 의해 다스려졌고 그에 의한 명으로 새로운 유배자가 올시엔 거절할 명도 없는 당연지사로 죄인의 목숨까지 살려먹여야 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있는 곳이었다.

 

바다와 풍랑, 거친 파도의 세기에 따라서 살아서 돌아온 이도 있고 약전을 받들어 모시는 명을 받은 조씨의 조카되는 순매 또한 그런 사연을 갖고 있는 과부다.

 

이런 오고가는 사람이라곤 그저 문풍세라 불리는 사공이 젓는 배가 옴에 따라서 육지의 소식을 듣게되는 흑산에서 약전은 황사영의 소식과 더불어서 파도치는 바다를 보면서 그 너머의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결국은 여기서 생을 마감하겠구나 하는 의심의 여지없는 희망을 저버리게되는 삶의 고난을 연속해나간다.

 

선왕과 자신의 핏줄이라곤 없는 대왕대비의 자교로 내려진 칙교에 의해서 전국에서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을 색출해내려는 과정에서 아전출신의 박차돌의 젓갈장수 행세와 그들의 조직을 타파해야만 자신이 산다는 긴박한 삶의 연속, 점과 점이 모이고 이것이 선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촘촘한 조직망을 이루고 있는 천주교인들의 집합체는 사실상 나라에서도 뿌릴 뽑아내기엔 그 수가 불어나느 추세인지라 나라와 민초간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왕대의 부패한 정치를 타파하려는 모색의 방안으로 받아들인 천주교란 종교가 지닌 힘을 의식한 대결이라고 할 수가 있다.

 

16살의 나이에 급제한 황사영-  그 자신을  아끼던 왕의 부름을 잊지않고 있던 그에게 처 삼촌들로부터 들은 천주교에 대한 사상과 교리는 맑은 심성을 가진 그에겐 차후의 지금의 세상이 아닌 저 너머 어딘가에 고난의 삶을 이끌어 해결해 줄 누군가가 있단 믿음하에 육손이를 면천해주고 평안 정주의 역참의 마부로 있던 마노리를 소개 받으면서 그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같은 행보를 보이는 행동은 권력핵심으로부터 , 정약용의 배교로 인한  증거로  그를 추적하는 발판이 되어버리는 과정이 약전의 회상속으로 그려진다.

 

흑산에 묻혀있으면서 장창대란 청년과 함께 고기의 생김새와 새의 생활형태를 관찰하고 그 와중에 순매와의 생활은 또 다른 정씨 가문의 핏줄을 잉태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황사영은 마노리가 청에서 만난 구베아주교로 부터 받은 은화가 발각되어  결국은 육손이, 김개동, 그 자신,황사영이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비운을 맞게되는 이 소식은 그들이 죽은 후 몇 년후에야 약전의 귀에 들어가게된다.

 

약전 또한 현산어보라 불려졌던 지금의 우리가 알고있는 자산어보를 집필하게 되고 이는 곧 창대에게 자신의 책 제목을 붙인 연유를 말한다.

 

"같지 않다. 자(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P338

 

아마도 약전은 흑산이 지니고 있는 캄캄한 세계보단 그나마 나은 색으로 볼 수있는 어둡고 깊은 심연의 바닷속을 보면서 자신이 비록 순교를 못했을지언정  그 너머의 어딘가에 있을 구원의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하는 구절이다.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의 배경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서양인들의 자발적인 선교에 의해서가 아닌 지식인들 사이에서 오로지 현 정권에 대한 부패와 일반 백성들의 보다 나은 삶을 구축하고자 한 깨어있던 지식인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구하고자 받아들엿단  데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의 바램이 무엇인가?

그저 부역안하고 지나친 노비, 매노의 신세로 전락 안하면서 등 따습고 배 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야 행복을 느끼지않겠나?

 

이런 의미에서 계급차별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 죄를 짊어진 저 윗 분의 사상은 당연히 그들만이 느낄 수있는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었던 종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단순히 자신들의 처지에서 나오는 위의 바램의 소원을 읆는 구절구절마다 삶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는 위의 노래처럼 평민들과 노비들, (강사녀, 궁녀출신인 길길녀, 아리)또 윗 계급인 황사영처럼 진지한 삶에 대한 탐구와 정권에 대한 불만은 비록 여러 박해 사건으로 많은 인명을 앗아갔지만 저자는 흑산에 유배된 약전의 시각으로 그 당시의 애환과 자신의 종교관에 대한 자세와 생각을 읽어나갔다.

 

김 훈 작가의 글은 부드럽지가 않다.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이 작품도 그 작가만의 분위기를 우리가 많이 알고있는 정약용의 시선이 아닌 동생과 같은 배교를 했으면서도 순교의 길을 하지 못했단 생각에 유배지인 흑산에 머물다 생을 마감한 정약전이란 인물에 비추어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한 종교을 가짐에 있어서 순교냐 배교냐를 떠나서 작가는 두 가지의 경우 모두 그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결정이었고 그 둘을 비교해 비판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나름대로 읽으면서 추측해본다.

 

결국 삶을 버리면서 순교한 정약종이나 처조카를 고발하고 배교한 정약용이나, 흑산에 유배되어 또 다른 삶을 이어나간 정약전 , 그들 모두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만 달랐을 뿐 누가 옳고 그른 삶을 살다 갔다고 말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흑산 넘어로 파도치는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저 먼 어느 세상을 그리면서 흑산에 서당을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친 정약전의 삶은 그래서 오히려 빛나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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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유전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더 똑똑하고, 더 아름답고, 더 건강한 혼혈의 기적
아론 지브 지음, 김순미 옮김, 최재천 감수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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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양공주라는 명칭과 함께 튀기란 용어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진 잘 몰랐지만 아마도 좋지 않은 어감이란 뜻으로 쓰인 말이라고 느낌이 닿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다양하게 섞인 피부를 갖고 있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혼혈인들이 갖고 있는 장점과 사람 안에 내재된 정보체 총합인 유전자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조합이 되고 섞임으로서 갖게 되는 장점을 다룬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엔 자신이 믿고있는 종교에 비교한다면 쉽게 수긍할 수없는 기독교근본주의에 따른 영향이 크겠지만 저자는 이를 모두 제쳐두고 단순히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우리 인간들이 갖고 있는 무궁무진한 유전자의 세계를 다뤘다.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인간은 좌우균형이 잡힌 사람들이 연애나, 결혼시기, 그리고 여성의 오르가슴을 빨리 도달하게 하는 능력이 다른 비 좌우균형을 가진 사람보다는 훨씬 그 성공비율이 높음을 말해준다.

 

여기엔 곤충의 실험이나 옥수수의 잡종대세에 따른 경작방식, 사람의 체취가 묻은 티셔츠의 실험 등 다양한 실험속에 독자들의 흥미유발를 시키고 지루함을 모르게 하는 글의 솜씨가 유연한 저자의 몫이 크다고 할 수있겠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혼혈인들의 비중이 예전보단 높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종의 인종들간의 결합보단 낮은 이유에 대해선 인간종족  특유의 같은 공간안에 친밀감, 즉 자신의 집단내에 머물고 싶단 욕망때문이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결혼의 적령기가 되면 자연적으로 자신과 같은 생각과 생활을 같이 이어갈 수있는 배우자의 선택에서 보다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단 사실을 대변함으로써 그간 우리가 혼혈인들에 대한 인식에 대한 인지도를 약간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모든 생물체는 각기 동형접합으로 태어나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만나서 이뤄지는 이형접합의 좌우균형을 갖춘 생물들의 성장속도, 뛰어난 학습능력등의 실례를 보여주면서 이의 장점을 주장한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근친상간의 자손보다는 각기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결합에서 태어난 자손들이 훨씬 적응력과 신체적인 병이 드물다는 사실을 자신의 유대가족력과 유대인들만이 갖고있는 병력소개를 참고로 증거를 제시하기도 하는 이 책은 결국 우월한 유전인자라는 것은 반드시 동형접합에서 태어난 인종만이 우수하단 사실보다는 혼혈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좀 더 넓고 폭이 깊게 다뤄야함을, 그래서 혼혈인들이란 인종간 결합으로 태어난 후손이라는 점을 인식, 이러한 유전적 다양성의 인정이 필요함을 말한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우수한 인종은 있는가? 하는 물음엔 절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한다.

혼혈의 아름다움과 (예를 들은 할리베리, 제시카 알바)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결국 인간의 차이는 분명존재하지만 이것을 무시하거나 숨기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꼬집어 주기도 한다.

 

우리는 단군신화의 자손이란  말 아래 순수한 단일 민족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이런 의문이 일었다.

 

역사시간을 생각해 보자면 우린 단일민족이라고 하는데, 고려 때 "충"자가 들어간 왕들은 대부분 몽골제국의 공주나 친척들과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을 과연 순수혈통이라고 볼 수있는가? 하는 의문점을 들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결국 저자의 말에 의하자면 아무리 먼 거리의 사람이라도 자신의 조상 뿌리 대대로 위로 올라가 캐면 결국엔 근친간의 결혼이란 것이 성립되기 쉬웠고 우리나라  조상들도 결국엔 인류의 진화과정상 서 아프리카의 조상을 뿌리고 결국엔 순수하단 의미자체가 없단 말로 해석이 된다.

 

그렇다고 저자는 인류보편적인 인종이란 편견에 대한 견해는 살짝 피하면서 생물진화적인 면에서 우월한 유전자는 서로 섞임으로서 더 월등한 사람으로 태어나기 쉽다는 점을 알려줄 뿐이다.

 

이에는 분명히 우리들 사이엔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공존해 간다면 섞임의 다양성은 하나의 선물이란 것을 주장한다.

 

이 책은 비단 저자의 나라에만 국한이 되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에도 당장 그 현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농촌의 결혼이 늦은 사람들이 외국의 사람들과 결혼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손들의 모습은 우리가 자라온 환경의 또래 친구들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갖춘 아이들이기 때이다.

 

이는 곧 국가적인 차원에서라도 보다 혼혈인들에 대한 보다 활발한 보편화된 시각과 넓은 교류가 필요함을. 국민들 간의 인식에도 열린 사고 방식의 시대가 필요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지구는 이제 한 지붕 안에 사는 시대이니 만큼 누가 머리가 나쁜 인종이고 우월한 인종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져야 함을 더욱 강하게 실어준다.

 

제목으로 봐선 전공분야를 다루는 사람이나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손에 넣지 않을 분야인데도 책 속의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 쉽게끔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자손 고수 방식), 진화 생물학적, 인류학, 유전학 , 동물생물학, 식물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례를 들어가면서 글을 진행하기에 이런 분야에 초보라도 전혀 거리감이 없이 금방 빠져들게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손에 넣은 이상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한 글의 흐름이 정말 재밌고 매력적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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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10도 -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
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 유지훈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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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10도 - 적도에서 북으로 1,126km 수평으로 이은 띠를 말한다.

 

 

 

 

 

 

1. 아프리카

 

이곳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나라들이라고 할 수있는 , 흔히 말하는 분쟁다발 지역으로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 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리아, 그리고 아시아 나라 지역권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가 속한다.

 

 

 

 

 

 

 

 이들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점이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싶은 것을 드러내주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같은 뿌리안에서 발생했으되 서로간의 경전과 교리가 다른단 이유로, 반목을 일삼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란 두 종교가 같은 하늘 아래 두 지붕격으로 서로 으르렁대면서 피를 흘리는 생생한 현장을 르뽀 형식으로 발로 뛰면서 체험을 한 현장보고서 형식을 취한 책이다.

 

아프리카는 광활한 대지가 품고있는 땅답게 광대한 자원과 풍부한 인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빈곤을 벗어 날 수없는 지역으로 통한다.

 

이에 대표격인 나이지리아, 수단, 소말리아의 공통점을 바로 이런 점을 제쳐두고라도 이미 뿌리깊은  두 종교간의 불신이 서로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실 생활은 제쳐두고 여전히 현재 진행중임을 저자의 곳곳의 글에서 엿 볼 수가있다.

 

원초적인 뿌리는 이미 식민제국주의 시대인 영국의 지배로부터 그 원인을 갖고 있었고 영국의 편의적인 정치의 편리함을 추구한단 단순한 논리에 서로 같은 국민이면서도 다른 종교를 믿고있단 점 때문에 반목의 골이 깊어진 상태는 이미 두 종교간의 싸움 안에서도 또 다른 교리차이로 각기 갈라져나온 종교의 반목으로 국민들의 생활의 이중고는 훨씬 심각한 골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교파중 복음주의의 기치를 내건 선교사들이 남 수단에서 이슬람의 남진을 막고자 선교에힘을 쓰는 과정이나, 북 수단인들이 생각하는 남 수단인들을 생각하는 골 깊은 인종적인 차별의 대우는 실상 종교문제 뿐만이 아닌 정치의 부패세력과도 연관이 지어짐을, 아프리카 특유의 기후의영향으로 인해서 북의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려 남으로 내려오는 현상을 비추어 보여주는 어린 소년들의 행로는 딱히 어떻게 이들을 보아야할지에 대한 판단을 잠시 유보하게 해 준다.

 

소말리아의 사태로 알려진 그들의 내전 또한 미국이란 거대국과 알카에다와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위정자들의 양심없는 행동엔 힘 없는 국민들의 고통의 모습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2. 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 국민이 많은 나라를 이루고 있는 나라인 인도네시아, 또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열대강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수카르노의 정치노선의 전략에 따라 이슬람 민병대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민병대와의 의견차이로 이는 곧 식민주의 표방으로 서방 세계와의 분쟁확산으로 번지는 결고를 내게되는 과정과 현재 같은 이슬람 내에서도 다른 교리 차이로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갈등의 차이를 보여준다.

 

말레이아의 소수 부족민인 오랑 아슬리족을 두고 정부가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려는 노력과 기독교 선교사들간의 개종의 힘 겨루기는 두 종교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민족종교를 고수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두 종교가 보이는 행태들은 결국엔 두 종교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힘 없는 부족의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미국의 식민지배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한 이슬람교를 믿는 필리핀의 모로족이 지금까지 행해오고 있는 해방운동은 결국엔 본질적인 종교가 갖고있는 신이 창조한 순수한 교리가 어떻게 변질되고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알고보면 세계의 주요 종교중의 자릴 차리하고 있는 이 두 종교간의 다툼은 위도 10도에 위치한 나라들만의 특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욱 심각하게 진행중인 것이 사실인것을 감안한다면 꼭 종교때문만은 아닌 제 2.3의 요소가 포함된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즉 여기에 일조하는 것이 석유, 기후, 전쟁, 식민주의적 이해가 얽혀들어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타인이 보기엔 기독교의 세력이 점점 커져간단 생각이 들 정도로 교회의 십자가 수가 많단 사실 앞엔 실은 같은 기독교라고 하더라도 복음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교파 내에서도 각기 다른 주장이 대두되고 서로 화합하지 못한 상태에 이르면 자연적으로 자신들만의 교회를 세우게 된다는 저자의 말에 교회의 숫자가 많단 사실만 가지고는 실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종교로 다가갔다곤 할 수없는 사실을 대변해 보여준다.

 

이슬람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인도네시아의 같은 형제라도 서로 각기 이슬람을 바라보는, 지하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달리하는 까닭에 서로 비판하고 같은 이슬람 왕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이 두 종교간의 불협화음만으론 이들 위도상에 나타난 다분화된 전쟁의 시각을 단정지을 수 없단 사실을 작가는 말해준다.

 

 상대의 사제와 주교의 신체를 절단하고 폭행하고, 어린 소녀들의 머릴 베어버리는 극악무도한 행동의 정의가 실은 자신들이 믿고있는 종교의 율법에 어긋남이 없음을 스스로 망각해 벌이는 비 인간적인 행동들을 행한 사람들을 취재하고 이교도에게 수치침의 일환으로 강간, 살해, 입에 댈 수없는 음식을 먹게하는 , 서로가 서로에게 지울 수없는 상처들을 주는 연속성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 아래 천지창조를 하셨다는 그 위대하단 두 종교의 창조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한 두개가 아님을 절로 느껴지게 만든다.

 

작가의 말대로 위도 10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맘에서 우러나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극히 적다는데서도 알 수있듯이 이들 국민들에겐 오로지 살기 위해서,교육을 받기 위해서, 투표를 하기위한 권리를 갖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국제적인 구조활동도 결국엔 비즈니스로 연결이 된단 사실에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 줄 수있는 행동의 제약과 이기적인 마음, 자신의 이익에 저울질 해대는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 끼여서 진정한 삶의 질을 느끼지 살아가지 못한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내 잊을 수가 없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다고 작가는 비관적인 현실만 있다고 하진 않는다.

 

나이지리아의 아샤파 이맘과 우에 사제가 서로간의 공존을 위해서 노력해 다가가는 모습은 이런 혼란한 와중에도 이들처럼 서로의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공간에 가깝게 다가서려는 의지에서 작가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해준다.

 

우리나라도 이런 나라들처럼 심하진 않아도 토착민속신앙, 유교를 비롯해서 불교, 천주교, 기독교,카톨릭교등 각기 믿는 종교가 혼합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들처럼 극한 상황에 몰리진 않아도 가끔 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는 좋지않은 종교인들의 행동을 접할 때면 비록 극소소이긴 하지만 이들로 인해서 넓고 보편적인 진리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일부 종교인들까지 욕을 먹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이주 노동자들 중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도 많기에 뜨건 용광로 속에 언제 불꽃이 튀어서 화를 입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 오기 전에 지금처럼 서로간의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이 더욱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만든다.

 

아버지가 유명한 성공회 주교임에도 딸인 자신은 정작 아무런 종교를 믿지 않는단 , 신기할 정도의 종교관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한 쪽만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고 글을 써낸 작가의 이력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신선함을 주어서 그런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로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의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의 기분이 읽어내려가면서 같이 호흡을 할 수있게 만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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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2011-12-1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리가 깔끔히 되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북노마드 2011-12-1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혹 번역자 님????

2012-02-21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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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전직 경찰관이었던 거니는 퇴직 후 부인 매들린과 함께 자신의 취미이자 때론 상품으로도 호평을 받고있는 뛰어난 그래픽 실력자로서 살아가던 어느 날, 25년 전의 대학 동창이자 정신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던 마크 맬러리의 의뢰를 받게된다.

 

사연인즉, 어느 날 자신 앞으로 온 편지에 붉은 잉크로 쓴 글에서 무작위로 1,000 미만의 아무 숫자나 생각해내라고 하고 그 숫자를 맞힌 범인은 그에게 289.87달러를 현금이나 수표로 위철리 사서함 주소를 알려주면서 입금시키라고 협박을 한데서 발단이 된다.

 

 하고 많은 숫자중에서 그것도 온전히 자신의 머리속에 우연히 생각해 낸 숫자를 알아맞힌 범인으로 인해 마크는 초조해하고 거니에게 의뢰를 하는 와중에 그의 부인에 의해서 위스키병을 깨서 목이  난자된 채 죽어있는 모습으로  발견이된다.

 

사건을 맡은 전직 동료인 하드윅과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거니는 범인이 경찰을 조롱하고 뜻하지 않게 수사의 방향을 방해할 목적으로 부츠의 방향, 새, 의자들을 이용하고 총을 먼저 난사한 뒤에 와인 병을 이용했음을 밝혀낸다.

 

그런 와중에 이 비슷한 사건의 형태를 띤 살인이 브롱크스에서 발생이 되고 그 곳에 간 거니는 이미 살해당한 마크가 살해됬던  지역을 뜻하는 피어니(작약)를  뜻하는 조화를 범인의 옆에 뒀단 사실에 사건은 점차 미궁으로 빠지게된다.

 

더군다나 위철리 사서함의 주인인 그레고리 더모트는 자신의 사서함이 누군가에 모르게 이용됬단 사실에 불안에 떨게되고 두 살인사건의 공통점을 찾던 거니는 한 때 알콜중독 재활원에 입원했었던 근거만 있었지 전혀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살인의 연관성을 두고 고민에 빠지게된다.

 

그러던 차에 세번 째 살해될 용의자로 리처드카치란 사람을 알아내게되고 (결국 살해당한다.) 거니는 사서함을 이용한 범인과의 소통을 위해서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그에게 보내게된다. 

 

 검사, 경찰책임자등과 함께 얘기를 나누던 중 실제 벌어졌던 어느 사건의 힌트를 얻어서 658이란 숫자와 그 다음에 주시된 19라는 숫자를 알아챈 경위를 비숫하게 연관성 있는 가설을 세우게 된 거니는 범인의 협박이 더모트와 자신이란 것을 알고 경찰보호를 받고 있던 더모트의 집으로 가게되된다.

 

도착 한 때는 이미 더모트를 보호관찰 중이던 경찰이 이미 살해된 상태로 똑같은 전례를 밟은 살해의 현장을 보게된다.

 더모트로 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일어난 가정내의 불화로 인한 가정사를 듣게 된 거니는 더모트의 계략으로 그 곳을 책임지던 경찰과 함께 지하의 방으로 끌려가면서 사건의 종말을 맞는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더모트는 그 당시의 상처로 숨을 거두게되고 거니는 비로소 자신의 집인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그리워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요즘도 가끔 방송에서 마술사가 나오면서 카드의 숫자를 맞히는 기막힌 프로를 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맞힐 수가 있을까 하는 감탄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 소설도 그런 우연이란 것을 기둥으로 삼은 소설이다.

 

소설 속의 한 여자경찰이 말하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어 숫자의 우연성을 알아차린 거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범인인 더모트는 어릴 적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술주정으로 인해서 엄마를 폭력의 대상으로일삼고 그 날도 비번인 때 술에 취한 아버지가 엄마를 폭력으로 다루면서 위스키 병으로 엄마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과로 엄마는 뇌손상을 입게되 저능아 비슷한 신세가 된다.

 

어린 자신은 보호소에서 살게 되었고 그런 상처는 이내 알콜중독자라면 처단해야한단 사이코패스적인 강박관념, 철저한 자신의통제하에 저항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통쾌감을 느껴가며 게임을 즐기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편지를 보내게되고 그 중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두려움을 떨게 된 일부 사람들이 걸려들면서 우연의 일치가 정확히 떨어진단 사실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기둥이다.

 

범죄심리학자서부터 첨단 그래픽의 총탄발사 방향과 피의 흘린 방향, 사건 인근의 별장에 자신이 범인임을 서서히 드러내놓고 다닌 범인의 엽기적인 행동은 아버지의 직업인 경찰에 대한 비난, 수사의 혼동에 빠들리 만한 철저한 살인계획까지 철두철미한 행동을 보여준다.

 

수학적인 통계의 확률과 그 안에 걸려들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내면서 사건의 해결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경찰들의 모습과 거니 또한 어릴 적 아버지의 자상한 가정내의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던 자신의 모습, 첫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의 가깝지 못한 관계, 일에만 몰두하느라 어린 아들인 대니의 죽음을 속수무책으로 봐야만 했던 자신의 고뇌에 찬 모습도 섞어가면서 이 사건의 줄기를 아우른다.

 

흔히 볼 수있는 숫자놀음의 묘미에 빠진단 느낌으로 시작된 658이란 숫자와 우연이란 단어가 만나면서 뜻하지 않게 목숨을 잃게 된 사람들의 모습속엔 과거에 올바르지 못했던 행동이 탈로남에 따른 부담으로 이 사건에 엮어들어가게되는 정황을 스릴러가 주는 기분을 느끼기에 만점이고 왜, 어떻게, 범인은 658이란 숫자를 알아낼 수가 있었을까? 하는 독자의 궁금증을 작가는 아주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손에 놓지못하게 하는 긴박함과 잡힐 듯 하다가도 놓치는 안타까움의 연속성을 부여하기에 손에 땀을 쥐게한다.

 

더모트 자신이  어린아이적의 자신의 아버지를 막지못한 나약했던 자신의 무능함과 엄마의 정신이상적인 행동은 아마도 두고두고 이런 반 사회적인 인물로 크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도 혹 우리 주위에 이런 우연의 일치는 없는지, 내가 정말 나도 모르게 이런 일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들게 할 만큼 치밀한 구성과 반전의 상황설정의 구도가 모처럼 스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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