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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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20일 금요일 정오_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서 5명의 여행객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흔하디 흔한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이 사고가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 추락사를 당한 사람들 앞에 다리를 건너고 뒤를 돌아다 본 쥬니퍼 수사에 의한 글 때문이다. 수사는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하고 많은 다리중에서, 그것도 추락사한 5명은 과연 예정된 수순대로 삶을 마감할 운명을 지녔는가? 아니면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게 되는가에 대한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 본연이 의무에 충실하고자 죽은 5사람의 행로를 추적하게 이른다.  

첫 번째는 몬테마요르후작부인 _ 그녀는 못생긴 얼굴을 지녔지만 결혼을 해서 낳은 딸인 클라라는 예쁘다. 그런 자신의 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부었지만 그녀의 딸은 그런 엄마의 곁을 탈출하고자 먼 스페인의 남자와 결혼해서 떠나가버린다. 이런 그녀의 딸에게 자신의 애정어린 편지를 보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고자 하지만 여전히 클라라부터는 차갑고 지적인 감정의 편지만을 받을뿐이다.  

두 번째 사람은 이런 부인을 돕고 있는 수녀원에 있던 고아출신인 페피타 

그녀는 수도원 생활에서 밴 거절할 줄 모르는 순종의 행동으로 인하여 후작부인을 돕는 하녀이지만 그녀 자신이 수도원에 돌아가길 원한다는 솔직한 편지를 후작부인이 봄으로써 그 편지를 찢어버리고 후작부인 곁에 남게된다. 이런 그녀의 편지를 본 후작부인은 여태까지의 자신의 열정적이었던 딸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대한 그릇된 점을 깨닫게 되면서 리마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다리를 건너게 된다.  

세 번째 사람은 쌍둥이인 형 마누엘과 에스테반중에서 에스테반_ 

둘은 수도원에 버려진 아기였지만 수도원장의 발견으로 근처에서 살아가게되고 필사 일 외에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생활하지만 형 마누엘이 유명배우인 카밀라의 부탁으로 연애편지 대필을 하면서 그녀에 대해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후 죽게 되자 자신도 자살을 시도하지만 여행가 알바라도 선장의 도움으로 바다로 가기로 결심하게 되면서 다리를 건너게 된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람은 어릿광대로 불리는 피오아저씨와 카밀라의 곱사등이 아들인 돈 하이메_ 

피오는 카밀라를 훈련시켜서 유명배우로 거듭나게 만들지만 그녀는 돈 안드레스 총독사이의 사랑의 결실로 세 아이를 낳게 되고 염병에 걸리게 된다.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피오아저씨의 제안인 그녀의  아들 돈 하이메를 자신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가르치고 싶다는 뜻을 받아들여 같이 동행을 허락하게 된다. 이 둘은 다리를 건너다 추락한다.  

위 5명의 각자의 사연들은 어쩌면 무수히 지나가는 우리들네의 사연과 같다.각기 소유한 사랑에 대한 생각이나 행동들이 다를 뿐 ,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같은 핏줄인 쌍둥이 형에 대한 자신의 사랑,애틋한 연민 등 모든 사랑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1926년 여름에 집필해서 1927년 여름까지 집필했다던 이 소설은 이 작가에게 많은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 되었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추락사한 현재의 상황인 날짜가 기록이 되어있고 그 다음 부턴 과거로 흘러들어가 회상하는 식으로 엮어가기 때문에 언뜻 보면 보르헤스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어적인 표현법은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와 견주어 볼 때 어색함이 없다.  

쥬피터 수사에 의한 추적 과정의 결과는 죽은 5명가 연관된 딸, 수도원장, 선장, 배우의 기억속에 결코 헛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이면서 아름다운 다리 이름에 걸맞게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인생의 한 편에서 생이 활기참이, 다른 편에선  죽음이란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종교와 현실의 우연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의 흐름 내용보다는 띄엄띄엄 서술하는 문장이 오히려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신앙과 진실 사이의 간극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넓은 법이라든가, 우리는 죽게 될 것이고 그 다섯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모든 충동은 그런 충동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돌아간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의미인 사랑! 

위 구절로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을 모두 대변해 주고 있단 생각이다. 간혹 정치인들에게도 인용되고 있다는 문장들은 읽어 내려가면서도 곱씹어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문장중에 하나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이 책은 지금도 생과 삶, 사랑,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적지않은 영향을 준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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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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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죽음을 준비하는 여자가 있다 직업은 조각가- 

그녀의 집안 내력은 아홉 살이었던 어린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친할머니는 손수 끓이신 복어국을 남편이 보는 앞에서 먹고 자살을 했고 그런 충격으로 목수로 일한 아버지는 잠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엄마를 부르며 괴로워했다. 그런 모습을 본 그녀는 자신의 집안내력에 있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숨을 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엔 신체의 손상이나 주위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완벽한 자살이란 주제가 실행이 되어야했기에 유품정리인과 만남을 가지게 되고 백이란 중년과 함께한 세월의 고리를 끊으면서까지 일을 진행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완벽할 수 있는 재료료 선택한 것이 복어란 생선_ 

그 옛날 고모의 입에서 말로만 듣던 할머니의 죽음의 소재가 됬던 복어는 그녀가 일의 핑계차, 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할 요구로 일본에 건너와서 시장의 복어 전문점으로 출근을 하게 된다.  

이런 그녀곁을 맴도는 한 남자_ 

그의 직업은 건축설계사다. 그에게도 우울증에 걸린 형이 마지막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자신에게 한 이후 가지 않았던 죄책감, 그리고 자살로 마감한 아들을 잊지못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로부터 한 번만이라도 웃음이나 말을 듣고자 애를 쓰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 또한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그가 그녀를 한 모임에서 보게되고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알 수없는 느낌을 가지고 그녀의 행동을 막고자 다가가면서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어나가게 된다.  

끈질긴 복어의 요리 과정을 보는 그녀를 보고 복어요리사는 마침내 그녀에게 복어의 요리과정을 알려주게 되고 그녀는 복어를 사오면서 죽음을 시도하지만 그가 마침 오면서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그녀대로 그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끌리게 되고 그 또한 자신의 설계일로 한국에 오게되면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사람과 그 주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그녀와 그의 이야기로 서로 이어지면서 내면의 아픔, 그토록 죽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복어를 먹고 혀가 마비되고 신체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 살고자하는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들 누구나 느끼게 되는 죽음의 두려움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 아닐까? 

그녀의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하직하는 방법도 자살이었고 그녀의 친할머니도 그랬던 것처럼 무슨 순서의 절차처럼 그녀 또한 자살을 하고자 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그를 만남으로서 자신의 내면에 어떤 삶에 대한 끈을 발견하게 된다.  

그  또한 형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괴로워하던 때에 그녀을 봄으로써 형의 어떤 분신같은 모습을 느꼈을것이고 그런 배경엔 그녀가 하고자 했던 어떤 불특정의 행동을 눈여겨봄으로써 그녀를 형처럼 놔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배경이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처럼 어려운 데가 있다.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여기가 아닌 다른 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p136 

그녀가 친구 사임으로 부터 진정한 충고를 들었을 때의 모습은 그래서 가여웠다. 자신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죽고자 하는 욕구를  그 친구는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런 친구에게 진심어린 말은 그래서 그녀에게 더욱 아픈 상처를 도려내게 된 계기를 만들어줬는지도 모른다.  

그 또한 그녀를 잊지 못한다는 감정에 이끌리게 되면서 자신도 형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진정한 자신을 위한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런면에서 그녀가 자신이 죽은 뒤에 사후 뒤처리를 부탁한 유품정리인이란 직업을 가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복어라는 죽음과도 같은 동의어를 거친 경험 후에 내방인이란 용어로 바뀌면서 잠간 자신을 찾아와서 삶을 보고간 사람이란 인식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점에선 죽음의 경계를 벗어났다는 암시를 해 준다.  

그와 우연히 마주친 장면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처음 태어났을 때 머리부터 나온다는 생각으로 다시금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그에게 머리부터 내밀고 다가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희망적이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그 사실 앞에서 그녀, 또는 그 처럼 일말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헤험쳐 나온 사라들 모두에게 이 책을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의미를 던질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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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머니! - 몰랐지용? 경제의 기초 타임 어린이 지식교양 시리즈 : 까불래용의 알겠지용 5
홍성철 지음, 현태준 그림 / 타임주니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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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서로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안에 발달한 경제의 개념은 그 폭이 점차 범 세계적인 교류를 통해서 무시못할 규모로 자라고 있다.  

어릴 적 부터 몸에 밴 경제에 대한 철저한 습성을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반가운 책이 나왔다는 느낌이 드는 책을 읽었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경제라는 말의 뜻을 순서로 점차 경제의 범위를 넓혀서 거부감이 없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먼저 각 차트부터 단어 상자를 넣어서 알려주고자 하는 기본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했고 그에 대한 설명을  어린이를 중심으로 자신의 행동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경제활동에 대한 책임감과 행동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 단원이 끝날 때 마다 복습의 개념으로 징검다리와 화살표 방향으로 다시 기억해 주기 위한 배려도 엿보인다.

그림과 곁들여서 쉽게 접근이 용이하고 복잡한 경제단어인 희소성이나 인플레이션 , 보험, 산업의 의미를 어른이 봐도 이해를 하기 쉽게 해 준이 눈에 뛴다.  

어릴 적 부터 몸에 밴 습관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는 이 책은 경제를 주위에서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있게 만든 점이 눈에 띄고  고학년 일 경우에 기초적인 경제의 개념을 좀 더 확실하게 복습하고 넘어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딱딱한 서술형이 아닌 대화법을 유도해서 자칫 딱딱 할 수 있는 용어들도 주의의 친구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기초적인 경제 학습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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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유전자 -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이상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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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냉전 체제 이후의 세계주도권은 구 소련이 해체된 후에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EU연합이 가세하면서 세계의 판도는 여전히 서양세력이 주도하고 있지만 중국이란 거대한 용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대하자면 먼 미래까지, 아니 가까운 몇 십년 후에도 과연 이런 판도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이 책은 던지고 있다 . 

순수 한민족이 세웠던 왕조부터 시작해서 중국인 역사에서 이민족이 중국이란 나라를 통일했던 왕조는 징기츠칸이 세웠던 원나라와 만주족이 세웠던 청나라_ 

저자는 징키츠칸이 유목민의 특성인 기마민족성을 내세워 동유럽까지 세력의 판도를 키웠던 시대부터 아바스 왕조 해체까지 자신의 힘을 과시했던 훌라쿠 칸에 이르기까지, 서양인들의 심성을 자극했다.  

이후 명대에 거쳐서 정화의 해외원정은 그 세대를 이은 왕의 전폭적인 지지만 있었더라면 서 유럽의 세력 판도는 어떻게 변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세대를 이어져오면서 서방세계의 아편중독과 관리자들의 그릇된 사적인 탐욕이 빚어낸 제국의 영광은 점차 여러 불평등한 조약을 거치면서 광대한 중국땅은 야금야금 여러 열강들의 야욕으로 그 영토를 빼앗기에 된다. 서태후의 안일한 대처는 결국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의 역사사건으로 한 점을 긋게 되고 이어 청조는 몰락하게 된다.  

쑨원의 삼민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중국은 그를 초대 중화민국 대통령으로 앉히고 그의 뜻을 받든 장제스는 또 다른 세력인 공산당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힘의 대결을 겨루게 된다.  

서로간의 힘겨루기에서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탈출을 하게 되고 마오쩌둥은 국내의 힘든 여건을 외부의 힘으로 돌리려는 전략에 맞춰서 티베트 점령과 한국전쟁에 참여를 하게 된다.  

이 와중에 스탈린과의 배신으로 점차 자신만의 공산주의 힘을 키울것을 맹세한 마오는 점차 그 세력을 키워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힘을 길러내게 된다.  

저자는 12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한 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막강했던 용의 모습에서 외부의 세력과 자국의 내부에서 벌어진 여러 권력다툼에서 온 힘없는 시절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국민들의 그 장소에 유린하고 이용하는 목적에 지나지 않는 소모품으로 정치를 꾸려왔다.  

그런 중국이 마오의 철저한 , 그러면서도 소련과는 전혀 다른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현 시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적인 힘력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에서 보듯이 엄청난 국민의 수를 자랑하는 인력을 이용한 인해전술과 등소평의 공산주의식 경제체제(고양이의 색깔이 어떻든 간에 잡기만 한다는 논리)에서 뭉친 중국민들의 힘은 지금의 세계경제계에서,또는 군사적인 힘에서 그 힘을 감히 업신여길 수 없음을 나타내 보여준다. 

천안문 사태에 이르러서도 서방의 인권논란의 비난에도 여전히 그 진실을 밝히지 않고 깨어있는 젊은이들의 개방화를 요구하는 개혁 앞에서도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된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점에서 중국이란 용은 잠시 땅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 그 힘의 저력은 여전히 진행중임을 보여준다.  

현재 각국, 특히 미국의 강력한 위안화 절상 압력, 핵무기에 대한 제제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자원확보와 땅에 대한 미련, 그리고 우리나라의 동방공정의 실천에 따른 역사의 왜곡을 통한 땅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려는 모습은 거대한 용이 서서히 힘찬 비상을 위한 전초적인 기치의 모습으로 비쳐보이고 있다.  

희귀금속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서 강대국인 일본이 무릎을 꿇은 일은 비단 이 선에서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 일례라 할 수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중국인들에게 19세기는 치욕의 시대였고, 20세기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회복의 시대였으며, 21세기는 우리의 우수성을 떨치는 시대가 될 겁니다.  

위의 말처럼 중국은 이제 중국이란 나라 안에서 뿐만이 아닌 저자의 말처럼 태평양 시대에 접어들 시대를 대비해 일본, 미국의 힘을 물리치고 자신들이 세계 제일이 되고자 하는 옛 중화사상에 걸 맞는 행보를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처럼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성없는 전쟁이 실시간 진행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그에 맞설 정책이나 경제적인 우위권 다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을 던진다. 

넓지도 않는 땅덩어리에 인구밀도는 최고, 저 출산율의 심각성마저 대두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을 던져주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확보와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예술계의 지원, 공공교육의 확장, 숨은 보물이 많은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 대한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우리의 숨을 재능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원전수주나 차세대 주요 산업 육성 발표가 있는 지금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생각에 발표된 좋은 결과란 생각이 든다.  

중국의 용은 서서히 , 그러나 누가 "어" 하는 사이에 세상의 주도권은 변하고 있는 이 때 우리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와 그에 대비가 필요함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소 작은 글씨로 중국의 주요한 역사적인 사건을 나열하면서 특히 우리의 역사 한페이지인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서술은 읽는내내 "만일"이란 단어가 이처럼 절실히 원한적도 없었을 만큼 안타깝고 아픈 현실을 드러낸 부분이다. 저자의 해박한 중국에 대한 취재와 중간에 일단락을 지으면서 보너스로 그 시기에 해당하는 역사의 이야기는 읽는 동안 지루함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다만, 광대한 대륙이다보니 지나온 역사를 더듬어본 과정이고, 특히 군에 대한 전술적인 이야기가 들어있기에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긴박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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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워터 -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황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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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흑인 , 엄마는 1921년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2살 때 랍비인 아버지와 한쪽 손은 굽어지고 다리는 절고 위에 병이 있는 엄마를 둔 레이텔 데버러 실스키란 이름의 백인 여성이다.  

위로 누나, 형이 7명,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침례교 개척 목사로 일하던 중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후 엄마는 나를 낳고 1년 후 정도인 시점에서 양부인 , 그것도 백인이 아닌 흑인과 인디언의 피를 가진 사람을 두번 째 남편으로 맞고서 그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  

이 글은 미국에서 재즈 뮤지션이자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아들의 글이다.  

글의 구성은 아들이 엄마의 과거를 묻기 시작하며서 부터 , 그것도 14년이 흐른 후에 엄마의 입을 통해 전해진 글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와 엄마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두 갈래의 글로 나뉘어져있다.  

당시의 독일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엄마의 재력과 미국행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맘에도 없는 엄마와 결혼한 아버지는 흑인을 극도로 싫어하며서도 그런 흑인을 상대로 배가 넘는 이익을 내는 장사를 해 경제적으론 궁핍함이 덜했으나 자신은 성적인 놀이대상이 되었고,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 유대인이 지켜야 하는 성서구절의 암송, 안식일과 유대인의 음식만을 고수했던 생활에서 버거워하던 차 오빠는 가출을 하게 되고 먼 훗날 전쟁에서 전사했단 소식을 듣는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며 놀리던 백인 학생들에서 낄 수 조차 없었던 엄마는 자신이 사랑했고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흑인 남학생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되지만 남학생의 책임감 없는 말과 다른 흑인 여학생과 결혼하게 됬다는 사실, 그에 앞서 엄마가 자신의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모른 척 해주고  아버지의 후환이 두려워 서둘러 이모집으로 보내 중절을 하게 한 시절은 엄마에겐 성장의고통 그 자체였다.  

이후 엄마는 아빠되는 사람을 이모의 공장에서 일하던 중 알게되었고 백인과는 다른 부드러운 성격과 유머에 반해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가족들로부터 죽은 사람이란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아픈 엄마와 어린 여동생의 부탁을 뿌리치고 집을 나온 이후 두 남편과의 사별 후 엄마는 타이피스트로서 생활을 하게 되고 12명의 자녀들을 키워나간다.  

작가 자신 또한 항상 엄마의 흰 피부가 부끄럽고 궁금해서 매번 물어보지만 엄마의 대답은 확실한 것이 없는 채 뚜렷한 말도 해 주지 않을뿐더러 윗 형과 누나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부와 악기 연주외에 다방면에 걸쳐서 교육을 받게하는 억척스런 엄마로만 보일 뿐이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형과 누나들이   흑인 해방 운동의  열기로 휩싸이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반항의 시기로 홍역을 앓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꿈쩍도 안했으며 작가 자신 또한 고등학교 시절 뛰쳐나와 마약, 절도,주유소 직원,,, 온갖 일을 경험하며 인생에 대한 것을 배워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대학과 신문사에 무난한 생활을 하던 중 엄마의 입을 통해서 할아버지가 살고 계실 만한 주소를 추적하는 일 , 엄마가 살았더 지역 탐방, 엄마의 유일한 친구와 다시 재회하게 했던 일, 개척교회로서 그 명성을 이어 나간 아버지와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교회에 참석함으로써 엄마의 오랜 옛 기억과 재회를 하고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다.  

작가의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흑인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무슨 일이 발생해 엄마를 대동하고 나설 때의 상대방이 당황했던 얼굴 표정, 자동차가 있었어도 전철을 이용했기에 노선을 꿰뚫고 살았던 어려웠던 시절, 형제간의 먹기 위한 쟁탈전, 같은 흑인들이 다니던 학교를 거부하고 꼭 백인들이 다니던 학교에 다니게 했던 열성 , 윗 세대가 대학 관계로 집을 떠나게 되면 다음 차례가 수장이 되어 형제간에 우위서열을 다듬던 일등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었던 일상생활사를 엿보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별난 엄마의 아빠의 선택은 어쩌면 시대상 흑. 백간의 데이트 현장조차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결혼은 더더군다나 이해수준을 넘어 도저히 용납이란 것 자체가 허용이 안되었던 시기에  엄마의 자라온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단 생각이다.  

같은 백인일지라도 유대인을 무시했던 왑스 계층, 그런 유대인들 조차도 흑인을 무시하던 시대에 자란 엄마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어린시절이 흑인 소년을 만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람에 대한 소통과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의 생각은 피부색을 떠나 진실성, 성실성,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인간을 보았기에 두 사람의 남편의 피부색은 상관이 없었다.  

자식들의 교육 또한 유대인의 정신답게 돈만 있다고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 아닌 이상 머리에 지식이 들어 있어야 한단 잔소리로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억척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생활을 한다.  

무료공연이나 전시회 공연, 악기 다루는 일에 대해선 만사를 제쳐놓고 그 많은 아이들을 타인들이 보건 말건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간 신념, 이웃이 뭐라하건 집 안의 일에 대해선 일절 밖에 나가서 함구를 할 것, 숙제와 공부타임을 중요시 한 점, 매를 들땐 용서가 없는 철칙을 준수한접, 이 모든 점이 자식들이 자신의 피부와 엄마의 피부가 다른 점에 대한 반항의 시절을 거치면서도 결국 돌아오게 만들수 밖에 없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사회인으로 겪은 자신의 피 내부엔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상은 피부에 의해서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용된다는점, 성공한 흑인들의 경우도 자신들이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의 사람들과 교류를 원하지도, 자신이 겪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하길 꺼려한다는 점에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용광로의 피부 전쟁을 보느듯한 아슬함과 씁씁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혼혈로 살아간다는 건, 마치 재채기가 나오기 전에 코에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느낌, 얼른 나오기를 기다리지만 절대 나오지 않는 느낌과도 같았다."라고 표현한 대목은 혼혈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준 대목이다.  

저자 자신 또한 흑인과 백인 사회에서 보여지는 이견이 나올 시 맘속으로 흑인을 옹호하지만 겉으론 결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단 글엔 미국사회에서 부대껴 살아가야 하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이젠 다문화의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종간의 피부 외면과 멸시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교육적인 배려가 필요하단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저자 엄마의 확고한 신념의 토대로 유대교에서 자신의정체성을 기독교로 전환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의 참 된 삶을 알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피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닌 내면의 감성과 자질, 그것을 주위환경에서 인식되어지는 수준에 의해서 일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폭이 얼마나 다양해 질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렸을때 난 어머니가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신이 날 만드셨지." 라며 말을 돌렸다.

백인이냐고 하면 "아니, 피부색이 옅은 편이지."라며 또 말을 돌렸다. 

위의 구절 처럼 엄마의 낙관적인 생각은 자식들의 교유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거듭난 계기를 열어준 저자 엄마의 인생관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책 말미에 올해 1월에 타계한 레히첼 데버러 실스키(유대이름)에서 루첼 드와치라 질스키로 바뀐 미국에서의 이름, 다시 루스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길 원햇던 엄마의 인생 전편에 흐른 이야기 구술은 자신이 잊고자 노력했었던 그 젊은날의 삶이 다시 아들로 하여금 불러내게 됬을 때 이미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모두 용서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흐름이 솔직하고 강물처럼 유연하게 흐른 구성은 읽는 내내 손에 놓지 못하게 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생을 살았구난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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