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비인격적인 것처럼 보인다. 종이 위에 씌어진 것이니, 누가 법을 특정 인물에 귀결시킬 수 있는가? 법은 외양상 중립성 띈 것처럼 보이기에, 정의롭지 못한 부분까지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 법의 조문은 살아 있는 인간의 통치보다 더 쉽게 신성화될 수 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는 땅을 빼앗긴 한 농부가 자기 집을 허무는 트랙터 운전수와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운전수에게 총을 겨누지만, 운전수가 자기는 오클라호마 시티의 은행가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며 또 그 은행가는 뉴욕에 있는 은행가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혼란에 빠진다. 농부는 외친다. ‘그럼 난 누구를 쏠 수 있다는 거야?’
가장 큰 부는 합법적으로 획득된다. 계약법과 재산법이 이를 지원하고, 우호적이 법정판사들이 이를 집행하며, 빈틈없는 기업변호사들의 손을 거쳐 고액의 보수를 받은 회계사들이 결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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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발견된 작물재배와 정주커뮤니티의 유적은 대체로 1만 2,000년 전의 것이었는데,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국가의 유적은 기원전 3,300년 무렵의 것이다. 즉 작물재배가 시작되고 국가가 생길 때까지 8,000년 이상이나 걸렸다. 그것은 인류가 오래 정주를 했지만 본격적인 농경이나 목축으로 향하지 않고 수렵채집을 계속했다는 것, 그 때문에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경의 배신>를 쓴 제임스 스콧에 따르면 인류는 원래 정주하지 않았으며 정주하고 나서도 본격적인 농경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중노동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역병과 기생충 등 많은 장애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실제 초기국가의 대부분은 역병이나 흑사병 같은 유행병에 의해 붕괴되었다. 또 정주를 해도 수렵채집을 계속한 것은 애당초 그것이 가능한 장소를 선택하여 정주했기 때문이다. 또 수렵채집을 하면 인구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일이 없으며 트러블이 생겨도 바로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힘과 교환식>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1941년 ‘신석기 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는 농경 발명이 최초 촌락을 탄생시켰고, 이 새로운 정주생활이 도기와 야금술 발명을 낳아 수천 년 만에 최초 문명이 싹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산뜻한 생각은 이제 뒤집어졌다. 



수렵-채집이 실은 상당히 효율적인 생활방식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보기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다. 현재의 수렵-채집 부족들에 관한 민족지학적 연구는 하루에 3~5시간만 ‘일’을 하면 가족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석기시대 농부들 유골은 수렵-채집으로 생활하던 조상들보다 더 심한 영양실조, 전염병, 치아 질환 흔적을 보여준다. 게다가 곡물에만 의존하여 사냥과 채집을 하던 때보다 식생활이 단조롭다. 인간이 처음 작물 사육에 성공한 뒤에도 농경은 오랫동안, 아마 1천년 이상 소수의 생활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레 그루브에 따르면 약 2만 년 전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가 더워지기 시작했고, 인간은 구세계 끝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알려진 세계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먹을 것은 여전히 풍부했지만, 기온이 상승하자 인간의 기생충들도 아프리카를 벗어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열대의 질병이었던 것이 온대 질병으로 바뀌었다. 그루브는 그 중에서 말라리아, 주혈흡충증, 십이지장충으로 인한 질병을 ‘공포의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두 번째 중대한 사건도 일어났다. 사냥 때문에 거대동물군이 멸종해버린 것이다. 전부 포유류였으므로 남은 포유류는 대형이라고 해야 인간과 비슷한 크기에 불과했다. 갑자기(진화적 견지에서 일순간이다) 기생할 곳을 잃은 세균 포식자들은 인간에게로 몰려들었다.



바꿔 말해 2만 년 전 이후 어느 시점에 세계에는 보건 위기가 닥쳤다. 질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인간 생존을 위협했다. 질병 공격을 받은 초기 인간은 늘 이동하는 생활양식, 자식을 3년마다 낳는 관습으로는 일정한 규모의 인구를 유지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인간은 자식을 더 자주 갖고, 인구를 늘리고, 멸종을 피하기 위해 정주생활로 전환한 것이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위해 정주한 것이 아니다. 그루브 이론에는 정주생활과 농경이 분리되어 있다. 수렵-채집 생활양식에서 촌락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정주생활은 이미 농경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생겨났다. 이것은 초기 인간과 그의 생각에 관한 우리 관점을 크게 변화시켰다.“<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생각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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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북다이제스터 2024-01-02 13: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루피닷 님.^^
루피닷 님도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 ^^
 

회의주의 옹호론자들은 자신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진리는 없다'라든가, '진리가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주장 자체가 그 진리를 인정하는 꼴이기에 자기모순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회의주의자들은 종종 웃음거리가 되곤 합니다. 철학자 아낙사르코스(BC 380~320)가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아낙사르코스 자신도 환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누군가가 ‘모든 진리 주장은 알고 보면 권력욕의 표출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면, 이 명제 자체도 그 사람의 권력욕의 표출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우리는 언어와 그 개념의 덫에 걸려 있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또한 모순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조차도 언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덫에 걸려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도, 우리를 옭아매는 바로 그 개념이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자기 지시’(self-reference)의 모순은 흔한 일입니다.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이해하는 주체인 ‘나’ 자신을 포함할 때 필연적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자기 지시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나 러셀의 ‘이발사의 역설’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거짓이다’ 혹은 ‘이 이발사는 스스로 머리를 깎지 않는 마을 모든 사람의 머리를 깎아준다’라는 참과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자기 지시의 역설이 존재합니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에서 ‘난 거짓말쟁이야’란 발언을 그대로 믿어준다면,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은 진짜 거짓말쟁이일까요? 그가 진실을 말한 것인데도요? 하지만 반대로 그가 완전히 정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모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을 안 하는 정직한 사람이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그의 말은 참도, 거짓도 아닙니다. 아무 쓸데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러셀의 ‘이발사의 역설’ 또한 그렇습니다. 한 이발사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자기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수염을 전부 깎아줄 것이오. 다만 '스스로 깎는' 사람은 깎아주지 않겠소.” 이 때 이발사의 수염은 누가 깎아줘야 할까요? 다른 사람이 이발사의 수염을 깎아주는 경우 이발사는 수염을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에 속하므로, 선언한 바에 따라 자신 수염을 스스로 깎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 수염을 깎는다면 이발사는 수염을 '스스로 깎는' 사람에 속하므로, 선언한 바에 따라 자신의 수염을 깎을 수 없습니다. 이발사는 어찌하면 될까요?
















이 같은 문제가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자기 지시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 원인의 일부가 자신이라면 이 원인은 사건과 분리될 수 없어 자신의 피드백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피드백은 원자물리학에서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끼치는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관찰자는 관찰되는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고 그럼으로 정보를 잃게 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러셀은 이 같은 역설을 풀기 위해 10년의 세월을 절망적으로 보냈으나, 결국 1931년 괴델이 이런 역설을 풀려는 시도는 전혀 가망이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괴델의 명제는 학문의 기본적인 확신을 흔들었습니다. 인간 인식에는 언제나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 명제는 증명될 수 없다’는 문장도 불확실한 진술입니다. 괴델의 말처럼 이 문장은 증명될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이 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논리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언급한 이유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발사의 역설은 사물을 속성에 따라 서로 다른 집단으로 분류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줍니다. 이처럼 진리를 아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섹시투스 엠피리쿠스(2C?~3C?)는 회의주의가 함축하는 이런 자기 지시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를 좀 더 유연한 형태로 변환시켰습니다. 엠피리쿠스는 진정한 회의주의자라면 ‘어떤 것도 알 수 없다’라는 식의 모순된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의주의자는 판단을 유보할 뿐입니다. 회의주의의 목적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독단주의를 치유하여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입니다. 회의주의 핵심은 다음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회의주의란 어떤 방식으로든 감각된 것이나 생각한 것을 대립시키는 능력이다. 이때 서로 대립하는 대상과 생각이 팽팽히 맞서기에, 우리는 판단중지(epoche)에 이르게 되며, 그로써 평온함(ataraxia)에 도달하게 된다.” 회의주의는 일종의 치유책입니다. 독단주의자를 치유하여 독단이 가져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회의주의 목적은 확고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자만과 경솔을 치유하고자 함입니다.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진리는 영원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글로 썼건 또박또박 명시했건 냉철한 시간에 분별 있는 사람이 뭔가를 얻어냈더라도 이는 얄팍하고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똑같이 건전하고 똑같이 이성적인 다른 사람이 논박하고 나서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런 것은 실재에 참된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회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 역시 우리가 실재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궁극적인 실재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는 무뢰한이거나 바보다. 바보라 함은, 우리 인간이 감각 지각으로만 지식을 얻을 수 있기에 궁극적인 실재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를 무뢰한이라 함은, 그러한 한계를 알면서 그릇된 자신 철학을 따르라고 우리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흄에 따르면 우리 정신은 정념이 지배하며, 이성은 개인 생존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나중에 분석적, 계산적 기능을 수행할 뿐입니다. 도덕률 또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인 묵계일 뿐이며, 객관적인 진리와 무관합니다. 예컨대, 에스키모인은 겨울에 늙은 부모와 함께 이동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죽게 놔둔다고 합니다. 뉴기니아의 도부족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용납합니다. 아프리카의 누엘족은 기형아를 출산하면 하마가 사는 강물에 던지는 풍습이 있습니다. 멜라네시아의 어느 부족은 친절함과 정직함을 악덕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가치가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세상에는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다는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면 도덕 문제에 확신을 가질 수 없기에 어떤 도덕 문제에 도 진지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집니다. 
















흄이 도덕률조차 객관적 진리와 무관하다고 말한 점은 독단을 비판하고, 상식을 맹종하는 일상 태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입니다. 흄에 따르면,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손가락 생채기보다 전 세계 파멸을 선택하는 것이 이성과 상충되지 않으며, 낯선 사람 편의를 위해 나 자신의 파산을 선택하더라도 이성과 상충되지 않습니다. 이성이 진리를 인식하고, 자유의지가 정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념의 실현을 위해 나중에 이성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든 합리적인 것이 언제나 올바르다는 낙관론은 오해입니다. 사이코패스의 문제는 이성의 결여가 아니라 감정의 결여에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의심은 믿음 ‘뒤에나’ 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의심을 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감정적으로 우연을 얼마나 잘 인정하는지, 회의적인 질문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어 왔으며 그에 따라 얼마나 잘 훈련되어 있는지가 포함됩니다. 의심하는 일은 기술입니다. 의심은 학습되고 연마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믿는 성향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대할 때 바로 진실로 받아들이지만 나중에 따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거짓으로 거부하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장자(BC 369?~286?)는 삶의 질곡을 헤쳐 나갈 방안으로 어떤 지식이나 어떤 실천적 강령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세계와 삶에 대해 우리 시선을 단적으로 바꾸기를 제안합니다. 특정한 시선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마음을 해방시켜 세상을 ‘아예 다른 눈으로’, 아예 다른 방식으로 볼 때, 그때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세계와 삶은 전혀 다르게 변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여기지만 자신 행위는 종종 사회적으로 유형화되고 구조화됩니다. 심지어 매우 개인적인 일로 보이는 자살 행위조차도 사회에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사회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은 우리를 얽매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해방시키는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자연스럽다거나 필수 불가결하다, 선하다, 진리라는 것이 실상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은 사실상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인 힘, 이데올로기의 산물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당연한 믿음 안에 갇혀서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는 상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생각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상호주관’이라는 아이디어는 우리 삶의 순간적인 맥락을 넘어서 볼 수 있도록 하고 우리 자신 행동 원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더욱이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폭로와 비판,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무기입니다. 
















***


파블로 피카소 <황소 머리>(1942)



피카소의 작품 <황소 머리>는 1990년대 경매에서 293억 원에 팔렸지만, 왠지 조잡해 보입니다. 이러한 조잡함에도 예술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전거 손잡이에 안장을 결합시켜 소의 머리 모양을 떠올릴 수 있는 피카소의 상상력 때문입니다. 

상상력은 오랫동안 잉태 기간을 거치면서 서서히 형성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때 생깁니다. 절박한 순간에 처했을 때 상상력은 별로 관계없는 요소들을 연관 지으며 그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게 합니다.

상상력은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 보는 일입니다. 상상력은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접촉하여 이루어지는 신비스러운 능력입니다. 상상력은 필요한 모든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존속 가치가 있는 과거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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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자연에 수학 형태의 법칙이 실제 존재하기에 자연에 객관적인 법칙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케플러의 제1 법칙도 행성 궤도가 타원에 가까울 뿐입니다. 실제 자연을 아주 비슷하게 기술한 자연에 대한 근사치일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복잡한 자연 세계의 여러 조건 중 특정 조건에만 초점을 맞춘 뒤 과학 법칙을 얻어냅니다. 그래서 많은 과학 법칙이 수학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자연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연에서 수학적인 관계를 만족하는 특정 변수에만 초점을 맞춰서 변수 사이에 연관 관계를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냅니다. 

















수학조차 진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수학은 정교한 공리체계입니다. 공리란 수학 체계에 바탕을 이루는 기본 가정이고 전제입니다. 기하학에서는 참이라고 가정하는 단 하나의 공리, 곧 ‘점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위치는 있다’라는 공리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공리란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명제로써 어떤 학문이나 인식체계의 가장 기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공리체계는 형식논리입니다. 공리라는 유효한 전제를 이용해 필연적으로 유효한 결론을 도출하여 오류를 줄이려는 시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 믿음 중 일부를 완전히 확실하다고 간주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기반으로 자신의 나머지 세계관을 세우는 주춧돌로 공리를 이용합니다. 우리는 유효한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다른’ 질문 모두를 묻고 대답하는 데 공리를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학의 공리는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으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죄를 대신해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라는 점이다. 이 공리를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은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이나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공리를 인정하는 기독교 신자는 성서에 등장하는 모든 내용이 이 공리에서 도출되는 정리(定理)이기에 논리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자 아르케실라오스(BC 315?~240?)는 공리로 어떠한 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증명하려면 우리는 진리가 도출되어 나오는 전제를 가정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또 다른 전제에 근거함으로써 그 전제를 증명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결코 정지점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근거가 탄탄한 믿음 근저에는 근거가 없는 믿음이 자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믿음에 대해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도 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은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공리체계가 모순이 있는지 여부는 그 공리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를 보통 ‘괴델의 정리’ 또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라고 합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증명되어도, 우주 자체가 증명되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안에서는 결코 증명될 수 없고, 벗어난 다음에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학자 레오폴트 뢰벤하임(1878~1957)과 토랄프 스콜렘(1887~1963)은 공리체계가 완벽하더라도 의도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예컨대, 한국 사람을 규정하는 속성을 빠짐없이 다 적어놓았다고 하죠. 그런데 적어 놓은 속성 모두를 만족시키지만, 동시에 한국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가진 뜻밖의 동물이 발견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불안전한 공리가 보완되면 진리가 발견될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공리 체계가 완벽하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완전히 다른 결과 값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수학조차 진리인지 알 수 없는 회의주의입니다.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1927~2021) 역시,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1963)라는 논문에서,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 사이에 회자되어 온 지식에 대한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믿음이 정당화되고 참이 되는 상황이 존재하지만, 지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게티어 문제’라고 칭합니다.



플라톤 이래로 많은 학자는 지식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뭔가를 알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것이 참(true)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대한민국 수도가 대전이 라고 믿는다면 진짜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둘째, 당신 믿음(belief)이 참이어야만 합니다. 만약 당신이 온당한 이유도 없이 ‘우연히’ 서울을 대한민국 수도라고 믿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믿음이 옳다고 판명되었을지라도 당신이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운 좋게 맞은 추측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 믿음은 당신에게 정당화(justified)되어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정당화에 있습니다. 사실을 알고 있다는 주장에 근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식이란 전방위적으로 믿음을 정당화하는 매우 엄격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이 지식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용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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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양심 이론은 우리가 태어날 때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프로이트는 인간이 본래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 마음은 ‘원초아-자아-초자아’로 구성됩니다. 초자아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결정합니다. 원초아가 인간 육체와 관련된 본능이라면, 초자아는 인간이 사회에서 배우는 규범이 내재된 상징입니다.



프로이트는 초자아에서 생긴 두려움이 죄책감을 만들어낸다고 보았습니다. 초자아는 기본적으로 자아에 대한 검열자나 재판관 역할을 합니다. 비록 양심의 명령이나 도덕적인 자유의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회에서 형성된 초자아가 검열하는 과정입니다. 자아에게 초자아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훈육 등으로 생긴 사회의 질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 주장에 따르면, 주체 내면에서 도덕적 의지나 양심의 가책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주체의 자유의지라고 볼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도덕적 의지나 양심의 가책은 초자아 기능에 불과하며, 초자아란 시대 요구에 따라 자신 마음에 형성된 ‘흔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 마음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양심의 소리란 단지 시대유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 뇌신경과학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초자아를 ‘신체표지’(somatic marker)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사이에 신체표지라는 무의식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조용히 판단합니다. 우리는 그런 판단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조차 거의 알 수 없으며, 그런 영향은 신체표지로 신경계에 남아 있다가 우리가 다른 결정을 내릴 때 다시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1944~ )는 신경계에 새겨진 표식이 마치 몸에 새겨진 흔적처럼 의사결정을 내린 사건과 연관되어 기억된다고 말합니다.



신체표지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거나 그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자신도 모르는 상태로 갑자기 되살아납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 장단점을 고민해보기도 전에 신체표지는 선택 가능한 목록에서 이미 일부를 제외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의식에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신체표지는 감정적 기억이자 뇌가 과거에 습득한 정보를 재예시화한 것입니다. 이런 감정적 기억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작동하다가 비슷한 사건과 맞닥뜨리는 순간에 등장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게 이끕니다. 

 















불교 관점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혹은 무엇을 행하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행위를 할 때 어떤 ‘정서 특성’(emotional traits)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느낌이나 행위 자체는 단순히 마음속에서 나중에 일어나는 절차, 즉 반향(反響)일 뿐입니다. 느낌이 매 순간 활발하게 일어나는 반면, ‘정서 특성’은 행위 결과로 만들어져 개인에게 남아 오래 지속됩니다. 정서 특성은 수동적인 형태로 쌓이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신체표지나 정서 특성을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아뢰야식’(阿賴耶識)입니다. 아뢰야식은 행위 결과 내지 흔적이 종자(種子) 형태로 머무르기도 하고, 다시 그 종자가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행위로 파생된 에너지가 마음 심층에 쌓여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뢰야식은 개인 자신이 행한 과거의 업(業)으로부터 만들어질 뿐 아니라, 다른 개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 집단을 통해 형성되는 식(識: 세계를 이러저러하게 분별하여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식이 사회 집단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은 불교가 객관적인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바로 우리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 무의식은 사회에 지배받고 규정되는 수동적인 산물입니다. 권력이 서로 얽힌 사회에서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지며, 인간의 의식이란 단지 그 무의식이 최종적으로 표면화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자신 의식 안을 들여다봐선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존재로 자각하고 인식하는지, 내가 나의 삶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결단하는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식적인 생각이든 어떤 의지적인 결단이든 그 안에 무의식이 작동하며, 바로 그 작동방식을 밝혀내야만, 생각과 결단의 본질, 한마디로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불교적 사고가 프로이트적 사고나 뇌신경과학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속 밑바닥에 아뢰야식이라 불리는 숨겨진 성향 또는 잠재적 기질이 있고, 다양한 자극을 받아 이 기질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불교는 이미 오래 전에 잘 이해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신체표지나 정서 특성, 즉 아뢰야식이 일생에 걸쳐 매 순간 퇴적암 지층처럼 쌓여가고, 깊은 곳에 쌓인 지층은 현재의 경험 안에 격하게 분출될 수도, 잠잠하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불교적인 사고가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시각이 자기(self)에 대한 가변적인 시각, 즉 무아(無我) 사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불교의 자아는 <베다>의 아트만과 달리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불교는 영원불멸의 아트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란 아트만이 없다는 점을 표명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흩어지고 모이는 임시 상태일 뿐입니다. 어떤 신체표지나 정서 특성이 심층에 내재하는 동안, 개인은 저마다 독특한 인성을 갖게 됩니다. 경험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아뢰야식은 독특한 경험을 겪고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배우고, 긴 시간에 걸쳐 퇴적된 잠재 성향은 일련의 습관을 형성합니다. 이렇게 학습된 반응에 따라 우리는 순간순간 적절한 방식으로 새롭게 반응합니다. 

















불교는 변하지 않는 단일한 자아는 없으며, 우리는 자신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의 신체나 느낌, 생각이나 의지, 인식 같은 그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나의 본질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나의 유전적 조건이나 나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인, 자연적인 환경에 따라 형성됩니다. 따라서 나는 환경 변화에 따라 항상 바뀌어갈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집착할만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바로 해탈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불교는 말합니다. 



거의 모든 철학과 종교가 한편으로는 인간이 구원되어야 할 영원한 자아(혹은 영혼)를 갖고 있다고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관용이라는 이타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아를 갖는 한 이기성은 필연입니다. 그래서 예로부로 철학의 관심은 ‘존재론과 윤리학은 서로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왔지만, 적어도 불교에 있어서 이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체가 갖는 유사성이나 연속성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동일성이 부여된다고 생각하고 무아를 부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다음 불교 이야기는 우리가 무아를 깨닫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멀리 가야만 하는 심부름 중에 버려진 집에서 혼자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귀신이 송장 하나를 메고 와서는 그의 앞에 던집니다. 이내 따라온 다른 귀신이 먼저 온 귀신에게 따집니다. ‘이 시체는 내 것인데 어째서 네가 메고 왔느냐?’ 하니, 먼저 온 귀신이 답하기를 ‘이것은 내 것이므로 내가 메고 왔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온 귀신이 말하기를 ‘이 시체는 실로 내가 메고 왔다’고 하며 마침내 두 귀신이 서로 시체의 팔을 하나씩 잡고 다투다가 먼저 온 귀신이 제안했습니다. ‘여기 인간이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자.’ 이 말을 들은 나중에 온 귀신이 물었습니다. ‘이 시체는 누가 메고 왔는가?’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두 귀신은 힘이 센데, 사실대로 말해도 난 죽게 될 것이요. 거짓을 말해도 죽게 될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될 것이라면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랴’하여 사실대로 ‘그 시체는 먼저 온 귀신이 메고 왔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나중에 온 귀신이 화를 내며 그 사람 팔을 뽑아 땅에 던져 버리니, 먼저 온 귀신이 시체에서 팔 하나를 뽑아다가 그에게 붙여주어 다시 멀쩡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두 팔, 두 다리, 머리, 허리 등 온몸을 모두 시체의 것과 바꿔놓은 뒤 두 귀신은 뽑아버린 사람의 몸을 다 먹고 입을 닦으면서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이 때 그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머니가 낳아주신 몸을 몽땅 두 귀신에게 먹히고, 내 몸은 전부 시체의 것으로 되었으니, 나는 지금 몸이 있는가, 몸이 없는가? 몸이 있다고 하자니 모두 귀신에게 먹혔고, 몸이 없다고 하자니 지금 이렇게 있지 않은가?’


이렇게 걱정하기를 마치 미친 사람 같더니, 이튿날 아침에 길을 떠나 가다가 목적한 국토에 이르렀는데 불탑과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찾아가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 몸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었습니다. 비구들이 도리어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그는 ‘나도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소’라고 답하면서 지난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비구들은 그 사람이 무아(無我)의 도리를 잘 알아서 제도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 몸은 본래부터 항상 ’나‘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사대육신(四大六身: 두 팔, 두 다리, 머리, 몸뚱이 등 온몸을 이르는 말)이 인연(因緣)으로 화합하기에 내 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니, 그대 본래의 몸이 지금의 것과 다름이 없다.’ 비구들이 제도해 주니, 그 사람은 도를 닦아 번뇌를 끊고 곧 아라한(온갖 번뇌를 끊고, 이치를 바로 깨달아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성자)이 되었습니다. .

















이와 같은 비유는 불교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학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설명합니다. 인간은 엄청난 양의 몸 원자를 항상 바닥에 흘리고 다니며 새롭게 만듭니다. 원자와 세포 관점에서 보면, 인간 몸의 90퍼센트는 1년마다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대개 5년이 지나면 몸 대부분 전체가 완전히 교체됩니다(뇌와 심장, 수정체 일부는 예외입니다).



대부분 인간 세포는 7~10년 사이에 대체됩니다. 심장은 매년 18퍼센트 정도가 재생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 심장 대부분은 다섯 살이 채 안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입속 미각세포 수명은 열흘이고 피부세포의 대체주기는 39일입니다. 간은 1년에서 길면 2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간으로 대체됩니다. 우리 몸 뼈 전체 생명 주기는 평균 10년 정도입니다. 뇌의 신경세포는 대개 신생아 때 생산되지만, 뉴런이 대내 피질에서 새롭게 나타납니다. 우리 몸 조직은 갓 태어난 세포와 영구적인 세포 그리고 죽어가는 세포가 뒤범벅된 잡동사니인데, 그 갓 태어난 새로운 세포가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원자가 새롭게 교체되는 주기는 세포보다 훨씬 더 짧습니다. 현재 우리 몸에 있는 나트륨 원자 절반은 1~2주 안에 다른 나트륨 원자로 대체됩니다. 수소와 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탄소 원자들도 한두 달 안에 절반은 사라집니다. 1년 안에 우리 몸 원자의 약 98퍼센트는 공기와 음식, 물에서 섭취한 다른 원자로 대체됩니다. 

















그렇다면 신체는 5년마다 거의 전부 바뀌는데 과거의 내가 현재 나와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기억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연속성’ 이론은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딱정벌레의 몸으로 깨어나는 카프카(1883~1924)의 소설 『변신』(1915) 같은 이야기를 우리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심리적 연속성’ 이론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딱정벌레가 바로 그 남자라고 인식하는데, 그의 정신이 딱정벌레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지속성이 아니라 정신적 지속성이 나를 ‘나’로 규정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질문의 답은 주로 내가 무엇을 학습하고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은 테이프 녹음기나 비디오카메라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억의 기능은 사건을 나중에 살피기 위해 붙잡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상은 가용한 조각들을 모아 일관된 전체를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우리가 마주치는 것을 곧이곧대로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치 있다고 여기는 관심사에 따라 의미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기록합니다. 따라서 기억이나 회상은 나의 관심사가 무엇이냐에 달려있습니다. 관심사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다시 새롭게 바뀝니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십년 전의 나와 똑 같은 사람일까요?
















개인 기억 뿐 아니라 집단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믿는 것만 기억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국가 전사자를 호국영령으로 기림으로써 전사자만 추모하지 탈영병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무명용사의 탑’이나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의 죽음을 특권화 하는 20세기 국민국가 제의(祭儀)는 집단 기억 문화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반면에 독일은 탈영병을 ‘반민족적 범죄를 저지른 배신자‘가 아니라 ’반인도적 범죄에 저항한 휴머니스트‘로 기억하기 위해 소박한 수준으로나마 곳곳에 탈영병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전우를 배반하고 조국을 등진 배신자’라는 탈영병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꾸는 일은 그들에게도 쉽지 않았습니다. 탈영병을 인정하고 이들 명예를 회복시켜주면 다른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2년 독일 의회는 전시 나치가 탈영병에게 내린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 법안을 통과시킨 덕분에 탈영병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임지현(1959~ )은 “당신이 기억하는 역사가 과연 진실“인지 묻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 삶을 지배하는 도덕 원칙을 어떤 상황에서 습득했는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 성격을 구성하는 성향과 취향 역시 무의식적으로 습득됩니다. 인간의 경험에 관한 상당 부분이 무의식 기억에 남습니다. 결국 과거 사건에 의해 형성되어 우리의 행동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성향과 습관, 선호가 무의식 기억에 남습니다. 바로 이러한 기억들이 바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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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11-14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그토록 거부하고 부정하던 것들의 흔적에 좌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미움이 지나치면 사랑이 되는 걸까요,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꼰대의 그림자‘인가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3-11-15 18:3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내 안의 ‘흔적’을 잘 남겨야 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흔적’이 잘 남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