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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근본 전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개인 자율성 전제와 관련있다. 자유주의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잘못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누적되는 재앙을 우리가 자유주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는 증거로 여길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초래한 폐해가 바로 자유주의 성공의 징후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적 조치를 더 많이 적용해 자유주의 병폐를 치유하자는 주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자는 격이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위기가 더욱 심해질 뿐이다.



처음에 자유주의는 자유 이름으로 낡은 귀족정을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귀족정에 반기를 들었던 선조들 소망대로 자유주의는 옛 질서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후손들은 그렇게 대체된 질서를 어쩌면 더 해로울지도 모르는 일종의 새로운 귀족정으로 여기고 있다. 오늘날 미국 선거 절차는 국내 정책, 국제 협정, 그리고 특히 전쟁 수행에 비할 바 없이 자의적인 권한을 행사할 인물에게 대중이 동의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자유주의 체제의 설계자들은 시민들에게 사적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는 생활을 장려하려 했다. 그 체제는 그들이 ‘공화국’이라 부른 ‘사적인 사람들(res idiotica)’의 체제였다. 하지만 체제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공화국은 ‘공적인 것들’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사사주의를 장려함으로써 ‘잠정 협정’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유주의 신념은 지배층의 거의 완전한 분리와 시민성 없는 시민들로 귀결되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예전부터 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이토록 완벽하게 분리하는 문명, 또는 성공할 사람과 실패할 사람을 가려내는 이토록 거대한 장치를 만들어낸 문명은 이제껏 거의 없었다. 마르크스는 언젠가 경제적 불만의 최대 원천이 반드시 불평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 원천은 소외에 있다. 즉 노동자를 생산물로부터 분리하고 그에 따라 노동 목표이자 대상과 노동자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게 만드는 소외야말로 가장 큰 원인인 것이다. 패자들은 과거 가장 부유한 귀족과 비교해도 자신들이 훨씬 더 풍족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물질적 안락은 영혼의 불만을 손쉽게 달래는 방법이다.



대학들은 실용적인 ‘학습 성과’를 앞다투어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학생들을 즉시 고용할 만한 상태로 만들거나 기존 학과들 이미지를 쇄신하고 지향을 재설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수 도입하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어 경제적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영원히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한다는 선진 자유주의 체제에서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 갈수록 흔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하여 자유주의가 정점에 이른 순간에 자유학예(liberal arts: 반복적인 기예나 돈벌이 학문과 대비되는 자유민 소양에 필요한 학예를 의미했다.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가 대학에서 내쫓기고 있다. 오래전부터 자유학예는 자유민에게, 특히 자치를 열망하는 시민에게 필수인 교육 형태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제 위대한 문헌(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압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주는, 어렵게 얻은 교훈을 담고 있기에 위대한 문헌)을 폐기하고 그 대신 한때 ‘노예교육’이라 여겨지던 것을 선호하고 있다.



즉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생활에만 몰두했고 따라서 ‘시민’ 칭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한때 자유민과 농노를, 주인과 노예를, 시민과 하인을 구분했던 정체를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지몽매했던 선조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기고만장하면서도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 형태를 거의 전적으로 채택해왔다. 그리고 찬란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자유학예라는 호사, 이름 자체에 자유민 함양을 근본적으로 지탱한다는 뜻이 담긴 이 교육을 더 이상 누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개개인을 ‘주어진’ 조건에서 해방하기 위해, 특정한 직분, 의무, 부채, 관계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목표는 두 가지 주요 실체(국가와 시장)를 매개로 이루어진 비인격화와 추상화를 통해 달성되었다. 국가와 시장은 우리를 점점 더 벌거벗은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 협공작전을 펼쳐왔건만, 정치 논객들은 두 가지 힘 가운데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어야 다른 한쪽의 침탈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국가와 시장의 동맹을 감춘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된 정치적 선택은 어떤 비인격화된 메커니즘이 우리 자유와 안전을 증진시킬 것인지 고르는 일이 된다. 다시 말해 시장 공간과 자유주의 국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된다. 시장 공간은 우리 욕구와 필요를 채워줄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면서도, 타인 욕구와 필요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한편 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욕구와 필요에 대처하는 비인격화된 절차와 메커니즘을 확립한다.



요컨대 개인 자유 보호와 국가의 활동 확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한결 같은 요구는 국가와 시장의 진짜 관계를, 즉 국가와 시장이 항상 필연적으로 함께 성장한다는 사실을 감춘다. 국가주의는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개인주의는 국가주이를 요구한다. 변혁을 다짐하는 온갖 선거 구호 – ‘희망과 변화’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든 -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유주의가 우리를 더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더 국가주의적인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한 정당이 개인주의를 촉진하면서 국가주의를 축소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고, 다른 정당이 이와 반대로 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 움직임 모두 우리의 가장 깊은 철학적 전제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힘겨운 과제는 자유주의 사회의 병폐를 더 많은 자유주의를 실현해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불가피성과 제어 불가능한 힘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자유주의 자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노르웨이에서는 광고가 조장하는 외모지상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시민단체와 정부가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특히 적색당 산하의 붉은 젊은이들이 벌이는 ‘광고보정 반대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리처칭(보정)한 거리의 광고판에 모델 아름다움의 비밀이 사실은 ‘만들어진 거짓’임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놓는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모델 허리와 팔, 다리가 가늘게 보정되었다’거나 ‘가슴과 엉덩이 비율을 확대시켰다’ 혹은 ‘피부 잡티라든가 여드름, 주름 등을 지웠다’는 내용이다.



패션과 뷰티산업은 이처럼 광고보정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지만, 어린 소녀와 소년들이 자신 외모에 만족하지 않는 경우, 지속적으로 광고가 토해내는 사실상 불가능한 외모에 사로잡혀 자신 몸과 얼굴을 성형으로 왜곡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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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정부는 한국 정부와 달리 석유 자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국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에 완전보장형 국민의료보험을 시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국민의료보험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기에 자신 수입에서 큰 부분을 국민의료보험에 쓰는 것에 동의한 대다수 국민들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모두 석유자원을 갖고 있지 않지만, 노르웨이와 비슷한 의료보장체계를 갖고 있다. 노르웨이가 석유자원을 개발하기 전에도 국가 재정의 원천인 높은 세율을 징수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석유자원이 완전보장형 국민의료보험을 실행하는 열쇠가 아니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사실 한국은 이미 국가 수입 상당 부분을 의료에 지출하고 있다. GDP 대비 의료 관련 지출비율은 2011년 노르웨이 9.2퍼센트, 한국 7.2퍼센트로 2퍼센트 차이가 난다. 하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의료보험 보장성 차이는 2퍼센트보다 크다. 의료비 지출의 본인 부담비율은 노르웨이 15.3퍼센트, 한국 33.8퍼센트로 한국이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부족 부분을 모두 다 채워줄 것처럼 광고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실제로 의료비를 보장하는 비중은 5.9퍼센트다. 민간의료보험 시장으로 투입되는 자금을 국민건강보험에 편입시키고 세율을 높이거나 차선책으로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높은 수준으로 책정한다면 완전보장성 국민건강보험을 실시하는 것이 지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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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13년 동안 노르웨이에서 느낀 복지국가의 가장 큰 장점은 근심 걱정이 없는 나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기에 아이들이 경쟁에서 겪어야 하는 힘듦과 그로인해 부모들이 겪어애 하는 걱정이 없고, 노후에 기본보장이 되기에 오늘 악착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남보다 더 맛난 것을 먹어야 할 이유도, 내가 남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주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도 없이 스스로 만족하면서 행복한 날을 구가하는 그런 사회가 복지사회다.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노약자, 병자, 장애인들은 도움 없이 인간적인 생활을 스스로 꾸려갈 수 없다. 그들이 최소한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어느 한 개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모색이 사회보장제도 성립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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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는 그래도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이 부의 불평등을 약간 더 잘 줄인 사회라고 봐야 할 듯하다. 한국은 지금도 산업으로서 최악의 비정규직 비율(노동인구 중 56퍼센트 정도)을 전혀 줄이지 못하고 있지만, 노르웨이는 비정규직이 약 8퍼센트에 불과하고, 스웨덴은 16퍼센트 정도다. 1998~1999년 이후 북유럽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거의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는 비정규직 양산을 막는 법제 장치들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평등이 실재하고 비정규직들이 -적은 비율이라 하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은 북유럽 사회들도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임을 증명해주지만,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북유럽 노동 대중의 투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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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복지국가의 기본적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대공황 시절인 1930년대 초기였다. 당시 노르웨이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인접국가 소련처럼 아예 체제를 전복시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비록 의회에서는 약세였지만, 급진적인 노조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보수정당들이 차선책으로 차라리 복지개혁을 실시하겠다는 노동당 집권을 수용한 것은, 결국 혁명에 대한 공포로 인한 하나의 양보였다면 양보였다.



1945년 이후에는 노동당이 장기집권했는데(1961년까지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확보해, 복지 관련 법안을 문제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다) 공산당은 여전히 노조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다. 친미적 노동당으로서는 이는 최대 경쟁이자 위협이었고, 공산당에 노동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집권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복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만 했다. 교육과 의료무상화부터 시작해 1960년대 중반 노년연금/병가수당 등을 지급할 종합적인 국가복지기금 설립까지, 1945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주된 복지 개혁들은 이렇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궁극적으로는 혁명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또 일면으로는 자본으로서도 내수 기반 내실화, 즉 유효 수요 늘리기 차원에서 복지 개혁들이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 이와 같은 계급 간 타협이 가능했다. 하지만 밑으로부터의 투쟁과, 보다 가열찬, 혁명적 투쟁의 가능성이 없어다면 그런 타협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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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열세 살 정도 된 한 여학생에게 실기 주법에 관한 설명을 적었던 칠판을 지우라고 지시했다. 그 학생은 약간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침착해졌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선생님 요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일은 선생님 직무에 속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월급을 받는 데에는 이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꼭 내가 도와주길 원하신다면 제게 예의를 차려서 부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동료 선생을 존중하듯 학생들에게도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일곱 살짜리 어린이 인격은 여든 살 된 노인 인격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차이점이라고는 아이에게는 더 많은 도움과 교육이 필요할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노르웨이에 살게 된 한국인 이민자들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불평을 들었다. ‘여기 선생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관심도 없고, 오히려 싫어한다니까요.’ ‘맞아요, 너 혼자 잘났냐? 왜 혼자 튀나? 뭐,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다들 잘 살고 배가 부르니까, 엘리트 교육은 필요 없다 이건가요?’ ‘오히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엄청 챙겨주고 시간도 투자하고 관심을 준다니까요.’ ‘너네 잘난 애들은 좀 가만히 있어, 이기적으로 그러지 말고. 우린 모자라는 애들, 도움이 필요한 애들이 우선순위야! 이러니 내 참 기가 막혀서.’



노르웨이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니 한 사람이 질문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수업 중에 한 번씩만 해주면 고맙겠어요.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죠.’



교육 당국의 배려는 학습 능력이 저조하거나 15세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각 과목 성적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저조한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단지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일이나 강한 면, 또는 취약한 면을 가지고 태어난다. 좋은 시스템은, 이처럼 개인들의 약한 면을 탓하지 않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좀 더 잘 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이라 본다. 지난 13년 간 노르웨이 교육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들 교육 중점은 학습에 있어서의 ‘낙오자가 없도록’ 도와주는 데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노르웨이는 사실 숙제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숙제는 교육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학생들에게 복종심을 심어 넣기 때문이다. 2011년 9월에 일명 ‘숙제철폐운동’이 벌어진 것은 그런 흐름 중 하나다. 적색당 청년조직의 수장인 이베르 어스텐볼은 숙제철폐를 위한 학생들의 시위를 조직하는가 하면, 전국적인 학생들의 동맹휴업, 즉 맹휴까지도 조직했다. 맹휴 참여는 한 시간 동안의 수업참여 거부와 숙제철폐를 위한 서명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참가 의사를 밝힌 학생들은 700개 학교에서 4만 명이었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일종의 ‘정치의식’이 높다.



노르웨이 대학생들은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학자금 대출은 공부 기간에 따라 많게는 2억 원까지 되기에, 나중에 직업을 가지게 되어 대출금을 같아야 하는 부담이 가볍지 않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동기와 의지가 확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기에 우리나라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공부는 학위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분야를 말 그대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이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여기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고, 여기서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일이 한국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다.”<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관습법과 같은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 있다. 그중 일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말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 말라',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누가 혹시라도 네게 관심 둔다고 생각 말라',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등이다.”<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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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게 2023-02-20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도 복지국가로 유명하니까 당연히 등록금도 무상일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근데 숙제 철폐 때문에 시위까지 할 정도라니. 😮 한국에도 청소년들이 만든 자발적인 정치조직들이 있지만, 숙제 폐지는 못 들어본 거 같아요. (두발 자유화라든가, 체벌 금지 같은 건 들어봤지만)

숙제가 복종심을 심어준다라... 그런 시각으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면이 있을 수 있겠네요.

얀테의 법칙은,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좀 긍정적인 문장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어요. ‘나만큼이나 남들도 모두 특별한 사람들이다.‘ ‘우린 상대가 누구든 서로서로 가르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라든지...

그들 문화니까 제가 간섭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ㅎㅎ 쓰다 보니 너무 길게 주절거렸네요. 둘다 원래 아는 책이지만 추천 감사합니다! 😁😁
 
















"나는 경제저격수였다. 경제저격수란 대기업과 미 정부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 조직, 즉 현대판 ‘살인 청부업자’를 일컫는다. 나의 공식 직함은 듣기에도 그럴듯한 수석 경제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적인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우수한 경제학자와 경영컨설턴트, 금융 분석가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담당한 진짜 임무는 제3세계 국가들을 속여 강탈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자사에서 갈망하는 무언가를 보유한 나라를 찾아낸다. 그 대상은 귀중한 자원일 수도 있고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부동산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경제저격수들이 출동해 세계은행을 포함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빌려야 한다고 해당 국가 지도자들을 설득한다. 지도자들은 국제기구에서 빌린 돈이 직접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발전소나 항만, 산업 공단 등 인프라 구축을 담당할 미국 기업에 돈이 흘러들어 간다는 정보를 제공받는다. 



이 과정에서 경제저격수들은 지도자에게 확신을 심어준다. ‘국제기구로부터 대출을 받으면 당신은 물론 당신 친구들까지도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친구란 전기나 수출,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 등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기업체를 소유한 극소수 부유한 현지 가문을 뜻한다. 다만, 경제저격수들은 인프라 구축을 담당하는 미국 기업들이 최고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따로 일러 주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후, 경제저격수는 그 나라를 다시 찾아가 말한다. ‘몇 해 전 빌린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갚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그 나라 지도자가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하면 경제저격수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몇 가지를 제안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석유(혹은 다른 자원)를 저의 회사에 싸게 팔고, 우리 회사 업무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법과 노동법을 폐지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다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저희가 원하는 조건에 따라 귀국 생산 제품에 무역장벽을 세우고, 귀국 공익시설, 학교, 기타 공공기관을 민영화하여 미국 기업에 매각하고,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시기만 하면 됩니다.‘<경제 저격수의 고백 2>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이다. 수익증권인 주식이 기계와 건물 등 고정자본에 묶여 있는 투자자본을 유동화 시키기 위한 것이고, 주식 소유를 통해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 독점이 생길 뿐 아니라 독점적인 은행자본과 산업자본 결합인 ‘금융자본’이라는 최고 형태의 독점자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면 기업들의 수평적, 수직적 결합이 광범하게 형성되기에, 독립적인 상업자본은 쇠약하게 되고 상품 투기가 거의 사라지게 된다. 힐퍼딩은 여기에서 자본주의가 ‘조직화된’ 사회로 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대중 주머니를 털기 위해, 독점가격은 기승을 부리고 증권거래소는 여전히 성황을 이룬다. 하지만 국내에서 독점이 강화되면 금융자본 이윤추구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임금을 인하하고 가격을 인상해야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일반대중 구매력이 저하하여 독점이 생산하는 상품들이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금융자본은 국내시장을 넘어서는 더 넒은 경제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힐퍼딩은 자본의 해외수출에서 상품들을 수출하거나 대부자본(화폐자본)을 수출하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철도나 공장을 짓는 직접투자가 훨씬 더 경제영역 확대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해외직접투자는 본국으로부터 화폐자본뿐 아니라 생산재 등 상품들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해외직접투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본국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지원이 필수불가결하게 되며,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 식민지와 종속국 등 경제영역을 둘러싼 투쟁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다고 힐퍼딩은 전망한다. 그리고 힐퍼딩은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인 제국주의에 대해 프롤레타리아가 ‘자유경쟁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타도를 통해 경쟁을 완전히 지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금융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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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예컨대 내가 보수언론이 ‘귀족이라고 부르는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동자라고 치자. 기계의 나사가 닳도록 돌고 돌듯이, 나는 내 직장에서 그 어떤 권리권도 행사하지 못하면서, 순전히 관리자 지시에 따라 주당 60시간 정도의 죽음 같은 노동으로 한 달에 3~4백만 원을 받는다고 해서 과연 행복하겠는가?



내 월급의 60~70퍼센트 정도만 받으면서 나보다 더 고되게 일하는 1년짜리 비정규직 동료들 얼굴을 매일 보면서 정말 내심으로까지 행복하겠는가? 내가 아니더라도 내 아들은 비정규직으로 평생 고생할 확률이 많다는 점을 알면서 말이다. 나의 연봉이 6~7천만 원 이상이라고 해서, 언제 파산이 나서 길거리에서 굶을지도 모를 영세상인, 노점상들을 맨날 보면서 나는 정말 행복하겠는가? 그들을 보면서 ‘내가 아닌 그들이 몰락하고 내가 그나마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야 있겠는데 이는 행복이라기보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경제동물의 자기만족에 가까울 것이다.



남들이 불행한 것을 보면서 혼자서 즐겨야 하는 ‘행복’은 과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인가?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사회에서 그 누가 진정한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길에서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쟁취한 성과들을 하나의 참고틀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꼭 오늘날 노르웨이와 같은 결과를 우리가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에’ 따낼 수 있는 것도, 따내야 하는 것도 아니라 할지라도 그 결과물을 향한 노르웨이 민중들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들은 많다.



예컨대 국내 보수언론들의 특기 중 하나는 ‘강성노조’에 대한 비난인데, ‘노르웨이 모델’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극도로 정치화된, 즉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집단적으로 가입한 ‘강성노조들’이다. 우리 노조와의 큰 차이라면 기업별 노조가 아닌 산별 노조라는 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외국인 차별 없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큰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이겠다. 



국내 보수언론들은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의식화시킨다’고 전교조를 맹비난하지만, 노르웨이 학교에서는 사회수업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에 대한 정치의식화다. 좌, 우 이념을 두루 익힌 아이들은 이미 13~14살에 적색당(공산당 격의 급진좌파 정당)이나 녹색당 등을 포함하여 그 어떤 정당이든 청년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공산당에 가입한 중학생’을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그저 일상의 일부다. 하지만 과연 정치의식이 이 정도로 공고하지 못하다면 복지제도를 계속 지켜낼 수 있을까? 복지제도라는 것은 총자본으로부터 쟁취한 일종의 타협인데, 총자본은 계속해서 그 양보의 폭을 줄이려고 할 것인데 말이다.



노르웨이가 장밋빛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저 극도로 부유하고 철저하게 잘 – 거의 ‘전체주의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 관리되는, 그리고 재분배 시스템이 잘 가동되는 자본주의 사회일 뿐이다. 하지만 재분배 시스템이 지금처럼 잘 가동될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 100여년 동안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사회적 책임’과 ‘평등’의 담론이 있다.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을 팔지 못하는, 즉 시장 사회에서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생계와 복지를 사회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똑 같은 사회적 권리를 누리며 똑 같은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 노르웨이’를 살려주고 지켜주고 있다. 



사회적 책임이 통념이 되어 있기에, 복지라는 것은 박근혜의 기초연금공약처럼 지배자들이 주겠다고 해놓고 언제든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취소할 수 있는 ‘주인님의 시혜’가 아니라 모두의 당당한 권리다. 그리고 ‘평등’이 전제가 되어 있기에, 복지혜택을 누리는 장애인이나 노년연금생활자 등이 전혀 위축돼 있지 않다. 나에게 노르웨이가 감동을 주었다면, ‘돈 벌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위풍당당한 평상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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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3-02-1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2-11 22: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문명 전체 역사는 현재의 간빙기에서 잠깐 동안 반짝이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잠깐 동안 기후가 안정된 시기에 살고 있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지구의 암석층을 파내 땅 위에 쌓으면서 건물과 기념물을 지었다. 우리는 특정 지질학 과정을 통해 금속이 농축된 광석을 캐냈다. 그리고 지난 수백 년 동안 지구 과거의 변덕스러웠던(쓰러진 나무가 썩지 않던) 시기에 생성된 석탄을 채굴했고, 산소가 부족한 해저로 가라앉은 플랑크톤 유해에서 만들어진 석유를 퍼 올렸다.”<오리진>

















“산소가 거의 없는 산성수 속에 퇴적된 식물은 분해되지 않고 일종의 천연 탄소 저장고인 이탄(혹은 토탄)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수백만 년 동안 퇴적물이 쌓이면 이탄은 압력에 의해 석탄이 된다.”<광물, 역사를 바꾸다>

















“산업혁명 이전 영국, 중국, 일본, 인도는 비슷한 수준의 경제 발전 단계에 이르렀으며 유럽만이 특별히 앞서 있는 분야는 없었다. 모두 인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존 자원이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 상황은 동일했다. 유럽 이외 지역도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산업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세기 이후 유럽이 산업혁명에 성공하고 세계 패권을 차지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 이유 두 가지는 모두 ‘우연’이다. 첫 번째 원인인 해외 식민지 획득은 유럽 내부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의미에서 우연(contingent)이었다. 두 번째 원인인 고품질 석탄 부존의 이점도 운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에서 우연(accidental)이다. 근대 세계에서 유럽의 패권 장악은 단지 ‘우연’과 ‘폭력’의 결과다.” <대항해 시대>


















“광산의 무개화차들은 처음에 말이 끌었는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 점점 증기 기관차로 움직였다. 탄광 지대에서는 다른 지역으로부터 수송해야만 했던 사료보다 석탄이 훨씬 쌌기에 기계화된 동력으로 전환이 일어났다. 1815년 이후 값싼 석탄 대 비싼 사료라는 상황은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점차 비슷하게 되었다. 농업 경제의 대변자 역할을 도맡아 하던 의회는 그해 곡물법을 공포하였는데, 이 법은 수입 곡물에 대해 높은 과세를 부과하여 곡물 가격을 치솟게 하였다.



18세기 유럽에서 목재 부족이 석탄 채굴을 촉진시킨 것과 비슷하게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된 곡물 가격이 가축력을 기계력으로 대체하도록 자극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토머스 그레이엄은 당대 시각으로 이를 입증해 준다. 증기 기관차가 최종적으로 확고한 지반을 구축하게 된 1834년 그는 영국 산업 자본이 선택해야만 했던 탈출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영국 지주들은 곡물과 식료품 과세를 통해서 노동력의 가격, 그것도 인간 노동력 뿐 아니라 가축들 노동력까지 두배로 올려놓았다. 이 과세 영향을 비켜가기 위해서 영국 기업가들은 수년 전부터 과세로 불리하게 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발명을 진작시키는 데 그들 자본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들 노역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애덤 스미스 계산에 따르자면, 한 마리 말을 먹이려면, 8명의 노동자가 소비하는 식품을 사는 것과 동일한 비용이 들었다. 영국에서 운송용을 키우는 말 100만 마리가 기계화되어 불필요하게 되면, 노동자 800만 명에게 돌아갈 식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철도 여행의 역사>

















“영국 산업자본가는 곡물법을 반대했는데, 여기에는 다음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첫째, 곡물과 곡물로 만든 제품은 노동자의 생필품 품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곡물 가격이 올라가면 자본가로서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살아갈 수 있도록 더 높은 화폐 임금을 지불하지 않을 없다. 따라서 농산품 가격이 높다는 것은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가치의 많은 부분이 자본가 이윤에서 지주 지대로 이전되는 효과를 낳는다.



둘째, 19세기 초가 되면 영국 제조업이 대륙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효율성을 갖추었으며 이에 따라 영국 제조업 물품 가격이 유럽 다른 나라 제조업 물품 가격보다 훨씬 더 저렴해진다. 이는 곧 만약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국제 경쟁을 확립할 수만 있다면 영국 제조업자가 유럽 경쟁자들을 가격 경쟁력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영국이 유럽 대륙에서 제조업 물품을 판매할 수 있으려면 유럽 상품 일부를 구매해야 했다. 만약 영국이 유럽 대륙에서 곡물을 수입한다면 이를 통해 유럽인들이 영국 화폐인 파운드를 수중에 넣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유럽인들이 영국 제조업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주요한 궁극적 쟁점이 있었다. 지주는 자신들 지위와 소득,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하여 영국이 계속해서 농업이 지배하는 경제로 남기를 원했다. 산업자본가는 자신들 소득과 권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영국이 제조업으로 전문화하기를 원했고, 지주에게 돌아가는 잉여가치 몫이 줄어들기를 원했다. 사실상 당시 벌어지던 것은 이 영국 지배계급의 두 적대 요소 사이의 마지막 전투였다. 지주는 봉건 지배계급의 마지막 잔재였으며 봉건 귀족과 마찬가지로 그들 권력 또한 토지에 대한 통제력에서 나왔다. 자본가 권력은 노동과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력에서 나왔다.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가치를 자본가와 지주가 공유하고 있었는데, 두 집단은 자본주의 지배계급 내에서 통제력을 행사하는 분파가 되려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1815년 지주는 이 싸움의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곡물법이 통과되어 영국 국내에서 경작된 곡물 가격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일체의 외국 곡물 수입을 금지한 것이다. 예를 들어 밀의 경우 영국 산 밀 가격이 1쿼터에 80실링에 도달할 때까지 밀 수입을 중단하는 식이었다. 산업자본가는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도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지주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상황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었다. 경제에서 지배력을 가진 계급은 결국 항상 경제적 지배력을 정치적 지배력으로까지 확장했다. 그리하여 투쟁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846년 의회는 곡물법의 완전 철폐를 의결했다. 이 사건은 산업자본가가 마침내 정치적 지배력까지 손에 넣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E. K. 헌트의 경제 사상사>

















“아시아의 높은 인구성장은 도리어 기술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기술발전은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유럽은 낮은 인구성장 때문에 그만큼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아시아보다 강했다. 1800년을 전후하여 기술진보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서 일어났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인구성장률이 높았고 소득분배와 자본소유 양극화현상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세계경제와 지역경제의 활성화 덕분에 인구가 증가하고 부존자원에 대한 생산압력이 가중되었으나 소득의 양극화가 일어남으로써 대량 소비재에 대한 국내의 유효수요를 늘리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구조와 과정이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술개발에 자본을 투자할 가격 인센티브를 증대시킨 것이 아니라 생산의 임금비용을 끌어내렸다.

 

 

애덤 스미스 지적에 따르면 유럽과 비교할 때 중국은 노동 공급이 많았고 특히 ‘중국의 하층계급’이었던 노동자는 너무 궁핍해서 임금이 낮다 하더라도 기꺼이 일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쌀 생산량이 인구성장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한 반면, 쌀 가격은 인구성장보다 더디게 상승했기에 특히 노동절약적인 생산설비의 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증대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었다. 중국과 어쩌면 아시아 전체의 농업기술은 유럽의 농업기술을 능가했다. (그리고 그것은 출산율 증가와 사망률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얄궂게도 중국의 인구성장이 산업발전에 입각한 자립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았다.

 

 

예컨대 성장하는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에 농경지가 부족했기에 목초지는 더더욱 부족했다. 그래서 노동력은 남아돌았다. 수로를 이용한 운송비는 싸게 먹힌 반면 가축사료는 가격이 비쌌으므로 운동을 인력에 의존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대규모 인구로 인해 값싼 노동력, 비싼 자원, 희소한 자본은 노동절약적인 기술에 대한 투자를 비합리적, 비경제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함정이었다. 인도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엘리트 일변도의 소비와 국가의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노동자 부담이 가중되고 노동자 소비는 위축되었으며 특히 18세기 말에 이르러 노동자는 생사의 기로에 섰다. 

 

 

투자 가능한 잉여자본은 투자를 위한 필요조건을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투자 가능한 잉여자본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잉여자본으로 노동절약적, 동력발생적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지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인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내륙 운하망과 각종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중국인이 택한 경제적 선택은 대단히 합리적이었고, 중국인이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지역경제 차원의 인력 수요공급 측면을 감안한 것이다.

 

 

유럽은 임금수준이 높고 제품 수요도 많았던데다 자본 조달이 용이했으므로 노동절약적 기술개발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었다. 동력발생 설비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영국은 숯과 노동이 상대적으로 비쌌기에 석탄을 연료로 쓰는 기계식 동력발샌체제로 재빨리 전환하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했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이라는 요인까지 감안하면 아시아는 기술투자에 더욱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소득 피라미드 정상부에서는 국내제품의 생산증대를 위한 충분한 수요를 창출해 주지 못했고, 저소득틍의 임금수준은 제자리걸음이거나 갈수록 낮아졌다. 이처럼 소득의 불균등한 분배는 노동절약 기계의 기술혁신이나 동력발생 공정에 대한 투자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1800년을 전후하여 아시아가 유럽과 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전반적으로 빈곤해서도 아니었고 전통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무슨 대단한 실책을 저질러서도 아니었다. 마르크스식이면서 슘페터식 어법을 빌리자면 실패 근원은 성공에 있었다.“<리오리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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