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가렵다 (리커버 특별판)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고요함 속에 홀로 있게 되는 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잠시 잠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면 마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외로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일까? p.57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청소년기에 고민과 불안이 없는 세대가 없어요. 끊임없는 경쟁과 스펙쌓기로 빡빡한 시간을 보내는 현재의 10대들은 특히 더 그런듯 보입니다. 

김선영 작가님의『미치도록 가렵다』에 청소년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시원한 해답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청소년 소설을 넘어서 산뜻한 디자인의 리커버로 돌아온 책입니다. 표지에 그려진 깃털과 다이아몬드 산처럼 보이는 노란 형태가 아직 날개가 완전히 돋아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같은 아이들의 모습으로 보였어요.


강도범이라는 이름 탓인지 도범은 오토바이 도둑으로 오명을 쓰고 퇴학위기에 몰립니다. 결국 도범은 전학을 가게되죠. 그런데 전학 간 학교에서 하필 사건의 주범인 대호와 마주치게 됩니다. 이미 아이들도 도범이 어떤 이유로 전학을 온 건지 대강 짐작하는 상황. 도범은 전학 첫 날부터 순탄치 못해요. 

이야기는 또다른 주인공인 새로 부임한 사서 선생님 수인에게 돌아갑니다. 수인은 도서관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습니다.



도서관은 나무들이 통치하는 조차지 같았다. 그야말로 울울창창한 숲 속에 포박되어 있다. 

...언젠가는 나무뿌리가 도서관을 삼켜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은 이미 목신들이 접수하여 그들의 놀이터로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p.27   

한편 도범은 부모님을 위해 이제 폭력과는 멀어지려 하지만 이전의 악연때문에 빠져나가기 쉽지 않아요. 새로 사귄 친구 새와 해머의 도움으로 도범은 간신히 싸움을 그만둘 수 있게 됩니다. 

도서관의 상태에 실망한 수인은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에 연필로 메모가 쓰인걸 보고 반가워합니다. 예전에 읽은 [밑줄 긋는 남자]를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했어요.    


수인은 오히려 그게 좋았다. 마치 이 책을 함께 읽은 사람과 해후한다고 해야 할까? 

어떤 때는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을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상징 코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등, 다른 사람의 의도를 추리해보는 것도 헌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간혹 그것이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을 미지의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 왠지 따뜻하고 좋았다. p.57

수인은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고쳐나가죠. 마치 함께 성장하는 것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심코 흘린 말이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지 아이들은 비로소 상대를 존재로서 인정한다. p.75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했다. 아이들과 자잘한 일로 감정싸움을 할 때마다 자신의 격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모멸감을 견딜 수 없는 거였다. 

그러니까 원인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수인 자신이었다. p.109


도범이 폭력 학생이 된 것도, 해머가 가방에 망치를 갖고 다니게 된 원인도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분명히 있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잘 표현하셔서 아이들이 직접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달랑 나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섬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빠른 시일 내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주먹이었다. p.116  


수인은 도서관을 다시 살려 아이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려고 합니다.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사건도 발생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가죠. 나중에 교장 선생님의 술수가 밝혀집니다. 


이 책은 수인의 생각을 통해 아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어른은 아직 불완전하고 안정되지 않은 아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수인의 모친이 하는 말이 잘 와닿습니다. 아직 날개가 완전히 돋아나지 않은 중닭같은 청소년이란 표현이 잘 어울려요.


그리고 수인이 헌책에 남겨진 메모를 반기는 것처럼 저도 헌책에 남겨진 메모를 꺼리지 않아요. 그걸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합니다. 저보다 먼저 길을 걸어간 사람의 발자취를 느끼는 기분이 들고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살피게 되죠. 언제 남겨진 건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않을까 싶네요. 속도감 있는 전개에 탄탄한 문장력이 바탕이 되어 읽기 좋았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청소년기의 이야기였습니다.  


원문:http://blog.yes24.com/document/10696802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딱지가 보낸 편지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84
상상인 지음 / 길벗어린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슨 일로 편지를 쓰냐고?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야.

사실...요즘 내가 고민이 있거든.


옛일을 떠올려보면 지렁이나 벌레를 무서워하기보다 신기해하고 만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코딱지도 지저분하게 생각하지 않았고요. 다른 아이들도 어렸을때는 마찬가지더군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런 행동은 좋아 보이진 않죠.   



[코딱지가 보낸 편지]는 코딱지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편지를 쓴 내용입니다. 얼굴이 동그랗고 콧구멍이 두드러지는 아이가 순박한 표정을 하고 등장해요. 바로 코딱지가 보내는 편지의 주인입니다. 단순하고 재미난 그림체예요.



너는 콧구멍을 자주 파.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적후비적하다가 

나를 코 밖으로 꺼내곤 하지.


그러고는 어떻게 하는지 기억해? 


어떤 날은 나를 동글동글 굴리고 

어떤 날은 자꾸 눌렀다 떼었다 해.


그리고 결국엔...



이 책의 내용은 솔직하고 귀여워요. 아이들이 코딱지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가  입에 넣는 행동을 그림으로 잘 표현했어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안에 코딱지를 넣을 때는 "아!' 소리가 저절로 나와요.



아이들이 코딱지의 맛에 대해 어떤 날은 '사탕 맛', 어떤 날은 '방구 맛'이라고 한다니 우스워요. 도대체 '방구 맛'이 뭔지는 모르지만 말만 들어도 상상이 되는 기분이네요. 아이들의 천진함과 기발함을 느낄 수 있어요. 


후반부에 코딱지가 직접 말하는 그러면 안되는 이유가 나옵니다.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그러면 안좋다는 걸 납득할 수 있게 눈높이에 맞춰 말하네요. 코딱지는 먼지가 섞인 지저분한 몸이라고 해요. 게다가 보송보송한 휴지가 좋다니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아이들이 코를 후비는 나쁜 습관을 가진 걸 보고 "하지마!"라고 야단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재미난 결과를 가져올 걸로 기대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서 한 밤을 자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당신은 희영의 여린 얼굴을 떠올렸다. 그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외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p.60


『몫』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엔 내가 받아야할 댓가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지 일러스트의 커다란 바위에 붙은 건 개미머리인지, 아니면 뭔가 돋아난건지 알 수 없었는데, 책 표지를 펼쳐보고서 선인장이란 걸 알았어요. 표지의 뒷면에 계단을 올라가는 여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콘크리트와 선인장이 의미하는 바가 약간은 짐작이 되네요. 


이 소설은 특이하게 주인공 해진을 '당신'이라 부르는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해진은 우연히 대학에서 교지를 함께 만들던 편집부 선배 정윤과 마주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해진은 정윤을 보며 서로의 변화를 느낍니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해진은 옛 생각을 떠올려요.


자신에 가득 찬,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 그때의 당신은 생각했다. 정윤이 조리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모습을 볼 때, 당신은 매혹되었으나 동시에 옅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p.10

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는 말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 주는 일에 가까웠다. p.11

1996년 대학시절 해진은 정윤을 만나기 전, 교지에 실린 정윤의 글을 먼저 보았었죠. 폭력 사태에 대한 정윤의 견해와 그녀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한 건 아니었지만 그 능력에 동경과 부러움을 느꼈어요.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p.13

하지만 그런 정윤에겐 희영이라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희영은 날카롭고 유려한 문장으로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고요. 정윤은 해진의 글은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희영의 글에 대해선 매번 비판했어요. 


분명한 논리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켜 갔던 희영의 강한 얼굴 뒤로 자신은 글을 쓸 자격도 재주도 없다는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는 줄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p.32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p.58


두께가 두껍지 않은 미니북이라 더 꼼꼼히 봤습니다.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일러스트가 페이지 중간 마다 시선을 멈추게 했어요. 일러스트의 의미도 차분히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과 여성이 받는 억압과 학대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뚜렷이 나와요.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과 기지촌 여성의 죽음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고요. 희영의 말대로 여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어요. 상처를 열어만 놓고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어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약자에 대한 사회적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재능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망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이래로 계속 이어진 내용이지만 여전히 공감을 갖게 하네요. 


시대적 배경과 무거운 주제 탓에 작가님의 연령대를 착각했습니다. 사진 속의 화사하게 웃는 인상과 글은 많이 다르네요. 젊은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내용이었을 텐데 잘 풀어내셨어요. 작가 인터뷰에서 소설에 대한 정의도 인상 깊었습니다. 

최은영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은 내 오래된 친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랑, 내 몸.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 없는 삶 -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지음, 박윤정 옮김 / 판미동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활력과 의욕, 열정, 끈기를 갖고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이기 때문이다. P.24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을 때, 종교가 없는데도 기도를 한다는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기도를 들어줄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으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예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교없는 삶]에서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홀로 버티며 살아갈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미국은 1950년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채 5%도 되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30%까지 증가했다고 합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도덕성은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는 황금률의 논리가 작용한다고 해요. 


무신론자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지만 관대함, 자원봉사, 자선기부에는 박한 편이라고 합니다. 예상과 달리 미국 감옥에서 무신론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0.5%도 안된다고 해요. 



보이지 않는 신이 부여한 규칙들에 그냥 복종하는 것이 도덕성일 수 있을까요? 

도덕성은 타인들과의 경험과 우리의 인간성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P.64


저자는 세계 상위 국가들이 대부분 무종교에 가깝고 하위 국가들은 종교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상위 국가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는 건 흥미롭네요. 미국에서 경제력이 나은 주에 무신론자 비율이 높다고도 합니다. 무종교가 늘어나는 요인은 종교와 보수적 우파 정치가 결합하는 것에 대한 반발, 카톨릭사제들의 소아성애 스캔들, 동성애 등이라고 해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흔히 음악이나 문학, 자연, 연극 혹은 축구를 그들의 종교라고 말하는 주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런 세속적이고 초자연적이지 않은 것들도 높은 수준의 의미와 신성함을 제공해 준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P.178 


무종교에선 자녀나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갖는 취미나 단체 활동 등으로 의식과 전통을 대신한다고 해요. 동양의 영성에 호기심을 느껴 도교 승려가 되었던 사람의 경우가 소개됩니다. 그는 승려를 그만두고 록음악에 빠졌다가 인본주의에서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이 자신을 완전히 깨달은 영혼의 스승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고 어떤 종교든 인간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창조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거죠.P.226  


위기의 순간, 어려울 때, 힘들 때, 사람이 시련을 견디기 위해 종교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종교 없이도 기적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신이 알아서 해 주실 거라고 믿는 게 제 생각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이런 사고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책임을 떠넘기고 믿어 버리면 그 가능성은 사라져 버리죠. P.251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신을 믿거나 신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슬프거나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고민해야 합니다. 기본적이고 이성적인 문제해결 메커니즘을 종교가 있는 사람들보다 더 자주 사용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다룰 때도 더욱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죠. P.281



삶은 힘들 때도 있고 평탄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유한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삶과 그 삶이 가진 소용돌이의 핵심에는 바로 삶의 유한성이 있다. P.339


저자는 반복해서 종교가 없다고 도덕심도 없이 살지는 않는다고 강조해요. 무종교라도 기본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있고 오히려 현재에 감사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요. 마냥 의지처를 찾기보다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 답이 될 수 있다는 데에 공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현실에 충실히 사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맹의 섬 (4종 중 1종 표지 랜덤) - 개정판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이정호 표지그림 / 알마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섬이라면 무작정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색색의 모래 벼랑과 경이로운 바다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고 그 고요함과 잔잔하게 일렁이던 물결과 아늑함에 나는 넋을 잃었으며 바람이 몰아칠 때는 그 난폭함에 두려워 떨었다. 나에게 섬은 외지고 수수께끼 같고 강렬한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특별한 곳이었다. P.18-19


칼라에 익숙해서 흑백영화나 흑백 사진을 보면 처음엔 괜찮다가 몇분 지나지 않아 답답함을 느껴요. 그런데 선천적인 완전 색맹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 있고 [색맹의 섬]은 그 섬의 여행기라는 소개가 흥미롭네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올 법한,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섬 이야기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작가 올리버 색스가 썼다니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책 표지부터 흑백의 배경에 글자만 핑크색으로 되어 있어요. 색맹이라는 주제에 맞게 세심히 고른 느낌이 듭니다.


마서즈비니어드란 섬은 청각장애의 섬으로 듣는 사람이나 듣지 못하는 사람이 수화로 대화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그와 마찬가지로 색맹의 섬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마침 선청적 색맹이 인구의 거의 10퍼센트라는 핀지랩 섬에 대해 듣고 그곳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빛깔이 가리키는 내용이나 의미가 전혀없어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버릴 질감과 농담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 말이다. P.27  

그 여행에 친구 크누트가 동행합니다. 크누트는 정상 시력의 10분의 1정도지만 밤에는 하늘의 별을 정상인보다 더 또렷이 보는 흑백사진작가라니 아이러니하죠. 

섬 사람들은 낮에 일을 하기 힘들고 칠판의 글씨를 볼 수 없어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이 많고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에 별 다른 직업이 없다고 합니다. 그곳을 떠나 많은 교육을 받고 돌아온 제임스는 자신이 이방인이 된걸 깨닫죠.




나한테 색깔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렸을 때는 색을 볼 수 잇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색이란 함께 자라고 성장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의 뇌, 온몸,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과 함께 말이에요. P.92


크누트의 말로는 색맹은 색의 농도로 색을 구별하고 밤에 더 잘 보인다고 합니다. 다른 감각이 발달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직업에도 제한이 있지요.  

색맹의 섬은 섬 주민 일부가 색맹일 뿐 완전한 색맹의 섬은 아니예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고립되거나 어려움을 겪지만 이곳에선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지요.


그러한 고립이 존재해야 했을까? 전 세계의 색맹인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교류하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식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새로운 네트워크 이 사이버공간이 진정한 색맹의 섬일 것이다. P.117


괌의 주민들에게 옛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리티코-보딕이라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병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이 나와요.  


그는 우리가 두 번째 왔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곧 또 오세요." 그가 명랑하게 말했다.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만나면 또 반가울 겁니다." P.203


또 괌에는 뱀이 변전소 환기 통로로 들어가 정전을 일으키고 그 뱀 때문에 새가 사라졌다니, 믿기 힘든 일이지만 모두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는 로타 섬에서 무려 5억 년을 살아남은, 쥐라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소철과 마주합니다.   


머나먼 과거의 에덴동산. 나는 그 안에 들어가  나무를 만져보고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으며 지나간 시간처럼 닫혀 있을 뿐이었다. P.209


이 책은 폴페이, 미크로네시아, 핀지랩, 괌, 로타를 방문하여 그곳의 풍토병, 문화, 역사, 동식물에 대한 기록을 다루고 있습니다. 핀지랩과 폰페이의 색맹, 괌과 로타의 신경퇴행성 장애가 소개되고 그 외 다른 섬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 나와요. 또 다른 색맹의 섬, 덴마크의 푸르섬도 있다고 하고요.  


후반부 1/3은 이전 내용에 대한 상세한 주석입니다. 크누트가 눈의 막대세포만으로 별을 볼 수 있고, 미크로네시아 사람들은 다양한 사투리와 언어들로 인해 다재다능한 언어학자가 되었다고 하고요. 태평양 섬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언급됩니다. 


1990년 대에 쓴 책이라 아니라 더 오래된 듯한 기분이 드는 내용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다양한 섬의 독특한 문화, 과학적, 역사적 배경, 동식물에 대해 다루는데 마치 탐험기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