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평점 :
오랫동안 알고지낸 이웃과 불화로 독극물 살인 사건을 저지른 할머니의 기사를 본 후로 평범한 사람에게도 살의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는 예상치 못한 동기로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을 다룬 미스터리 소설집이라니 기대되었습니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의 료이치는 4년간 사귄 연인 미즈에와의 결혼을 망설입니다. 이유는 그의 할머니가 살인범이기 때문이에요. 할머니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이미 미즈에에게 밝혔고 그녀는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사실을 떨칠 수 없습니다.
료이치의 모친이 할머니의 유골 단지가 훼손된 걸 알리고 료이치는 묘가 파헤쳐졌다는 말을 들어요. 히가키 마을 사람들은 40년이나 함께 살아온 할머니를 외지인이라며 배척했고 마을 전체가 할머니와 가족을 왕따시키는 무라하치부를 행했어요. 노지네 가족도 비슷한 무라하치부를 당했습니다.
"끝이 없는 건 무섭지."
노지네의 장례식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내가 죽는 게 무섭다고 울었을 때였다. 괜찮다, 죽은 후의 일을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무섭다고 했다.
"끝이 있다는 걸 알면 어지간한 일은 견딜 수 있는 법이다만."
노지네의 존재. 즉 자기보다 더 아래가 있다는 사실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할머니를 몰아붙였던 건 아닐까.p.35

암에 걸린 증조 할아버지가 수문을 열어 피해를 본 오누마가 할머니에게 돌을 던지고 할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증조 할아버지를 살해했어요. 그후 할머니는 감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환자를 굳이 살해한 이유는 오랫동안 쌓인 분노와 사후 세계도 관련되어 있었어요.
'목격자는 없었다'의 슈야는 실수로 주문 수량을 잘못 입력합니다. 수정하면 되지만 그는 은폐하고 넘어갈지를 두고 갈등해요. 과다 주문한 목재를 빼돌리다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후에 그 사고가 잘못 보도된걸 들어요. 그는 교통사고의 진실을 밝혀야할지 그랬다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을지 고민해요.
이 여자는 전부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여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목격자의 증언만 받으면 돼요."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대답한 순간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당신이 목격자군요." p.110

슈야처럼 다른 사람의 결백을 증명하기위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해야한다면 고민되네요. 전혀 모르는 타인의 문제에 자신이 피해를 봐야하는 상황이라면 쉽지 않을거라 생각됩니다. 결국엔 슈야가 한 거짓말때문에 자신이 더 큰 위기에 빠져요. 이런 반전은 완전 예상밖이었어요. 솔직히 슈야에게 공감하는 면이 있다보니 인과응보라거나 쌤통이라는 기분은 아니네요. 이 단편은 장편으로 나와도 좋을만한 내용이었어요.
'고마워, 할머니'에서는 외손녀 안이 아역 배우가 되어 할머니가 안의 사진이 들어간 연하장을 두고 딸과 말다툼해요. 할머니는 안의 광고 촬영과 학교 생활까지 간섭하며 손녀를 학대합니다.
"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잖아. 안, 잘 생각해 봐. 이건 되는 일이야, 안 되는 일이야?"
되묻는 것과 동시에 안이 고개를 들었다. 안의 얼굴에 풀죽은 기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알아듣지 못한 말이 형태를 이루었다.
-되는 일. p.131

'언니처럼'은 더 심각한 아동학대와 살해를 다룹니다. 언니가 3세 조카를 학대하고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한 후 사람들이 자신도 유이카를 학대할거라 생각할지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립니다. 강박은 도를 지나쳐 자신과 아이를 망가뜨려요. 아이를 사랑하는 평범한 엄마가 아동학대범으로 변하는 심리적 변화가 너무 현실적이라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그림 속의 남자'는 비극적인 사건에서 영감을 얻는 화가에 대한 이야기였구요. 이 책에 실린 5편의 소설은 연쇄 살인마나 광기에 휩싸인 냉혈한이 아니라 평범함에 가까운 사람들을 다룹니다. 이웃 사람에게 괴롭힘 당한 할머니, 학대당한 아이, 육아 스트레스와 오해는 뉴스 기사에서도 드물지 않아요. 오히려 보통 사람이 한순간에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집이었어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