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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준열 외 8인 ㅣ 창비청소년문학 85
이은용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평점 :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오로지 맹준열’일 것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세계가 있다.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
나는 늘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어디선가 읽은 듯한 심오한 글귀가 있어요.
그 다음 페이지 '준열이는 누구인가'라는 제목 아래, "율리야 프세볼로도브나 스미르노바라고 합니다."라는 읽기조차 힘든 이름을 보고 '응?'하고 어리둥절 했습니다. 여자의 등장에 모두 일시 정지상태가 된 준열의 가족처럼 말이죠. 아빠, 엄마, 넷째, 쌍동이 다섯째와 여섯째, 막내 일곱째, 누나, 형, 그리고 나까지 순서대로 반응이 나오고, '여긴 흥부네인가?' 싶은 대가족이란 걸 알게됩니다.
가끔 방송에서 아이가 많은 집이 나올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도 있는데 과감하게 자녀를 셋 이상 갖다니요? 경제력도 그렇지만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텐데 어찌 해결해가나 궁금하기도 했어요.
『맹준열 외 8인』은 아홉 식구, 무려 일곱 남매의 가족 여행에서 탈출하려는 준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온 가족이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 금발의 러시아 여자가 여자친구도 아닌 "형수"라며 나타나요. 형은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복학도 미룬 채 아르바이트 중인데요.
칠 남매를 키우며 명상의 힘을 빌어 큰 소리 낸 적이 거의 없이 살아온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을 갈 거라는 뜻을 확고히 합니다. '며느리'일지도 모르는 낯선 외국인과 함께 간다고 해도 말이에요.
남매 중 셋째 준열은 티셔츠 두어 벌과 '데미안'이 전부지만, 가족들의 짐이 만만찮아요. 2박 3일 여행짐을 본 이웃은 "어머, 준열이네 이사 가세요?"하고 묻습니다.
동네에 이사올 때 준열이 막내여서 '준열이네' 라고 부르던 명칭이 그대로 굳어졌고 준열의 친구 동이가 '맹준열 외 8인'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는 소개가 나와요.
소설의 1인칭 주인공인 준열은 가족여행에서 혼자 빠져나갈 기회를 노립니다.
차안의 자리배치, 문단속하기, 화장실 다녀오기 등 출발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려요. 마침내 바다를 향해 출발하는 차안, 누나가 "어쩐지 불길해, 이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열 명을 태운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올 때 누나가 혼잣말을 했고 비로소 나는 이 여행에 동참하게 된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에 빠졌다.
가족들이 여행에 대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빠가 "우리도 갑시다."하고 말을 꺼낸 것이 이 여행의 발단이었어요.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셨고 엄마도 마트에서 실직한데다 형은 제대후 아르바이트 중. 그 외엔 수입원이 없고 차도 없지만, 넷째가 아빠 명의로 응모한 승합차 체험에 당첨되면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준열의 '얼굴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들게한 넷째의 응모글과 아빠가 당첨 안내 전화를 보이스 피싱으로 착각하고 타이르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졌어요.
막내의 멀미때문에 들른 휴게소에서 넷째를 잃어버렸다 다행히 무사히 찾아내죠.
어느새 가족은 열하나로 늘어나고 준열의 친구 동이가 합세해 일행은 열둘이 됩니다.
시작부터 떠들썩하고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해요.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각자의 개성이 소설속에서 튀어 나갈 것처럼 생생한 캐릭터들, 대가족이라면 실제 겪을듯한 일상,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작은 소동들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줍니다. 문장력이 뛰어나 흐름이 원활해서 더욱 좋았어요.
가족들은 준열에게만 비밀을 얘기하고 준열은 매일 '데미안(맨처음 나온 문장도 여기서)'을 읽고 친구 동이에게 자신이 지어낸 무서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웃고만 끝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 가슴 아픈 사연도 흐름을 끊지 않는 선에서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해주고요.
결말을 스포하자면 준열이는 탈출에 성공합니다. 물론 반전이 있어요.
청소년 소설에서 모처럼 흥행작이 나온게 아닌가 싶어요.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잡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분명히 영화화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