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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사고를 당하면 엄청난 충격을 받은 탓에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유리의 살의]는 심각한 기억 장애가 있는 여자가 자수를 한 후 진실을 찾는 서스펜스 미스터리라니 충격적인 두뇌플레이와 치밀한 심리묘사가 기대되었습니다.
마유코는 피투성이가 되어 경찰에 사람을 죽였다고 신고합니다. 그후 깨어나선 자신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해요. 그녀를 찾아온 형사 유카와 노무라는 그녀가 41세 주부이고 직접 살해사건을 신고했다고 말합니다.
마유코가 20년 전 차에 뛰어들어 기억장애가 생겼는데 그녀가 차에 뛰어든 건 무차별 살인범에게서 달아나기 위해서였어요. 그 살인범에게 부모님이 피살당했고 그자는 무기징역에서 가석방되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습니다.
부모님을 죽인 남자를 그렇게 세상에 풀어놓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엄마랑 아빠는 그런 당연하고도 당연한 삶을 빼앗기고 말았는데? 정작 그놈은 뻔뻔하게 제멋대로 살고 있다는 거야?
"죽여 버릴 거야....그 자식."p.28

더 경악스러운 건 그녀가 죽였다는 피살자가 바로 그 살인범이라는 사실이에요. 게다가 마유코의 남편은 그녀를 치었던 자동차 운전자이자 당시 마이니치 신문기자 미츠하루구요. 남편은 마유코가 부모님의 죽음을 알게될 때마다 매번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고 울면서 소리지른다고 합니다.
마유코는 부모님의 피살 사건을 잊지 않기위해 노력했고 남편은 그가 사형당했다고 속여요. 그러다 남편과 범인이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가석방된 사실을 알게된 거죠. 남편은 범인이 사죄를 하고 싶다는 말에 그녀를 만나게 해줬어요.
"당신은 아까 이 사진 속 남자를 식칼로 찔렀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나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진심으로 놀라 고개를 가로젓자 키리타니와 노무라는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소설이라도 읽고 있는 양 현실감이 없다. 하지만 기억이 없어도 여러 정황이 나를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p.95

유치장에서도 마유코는 자신이 어디있는 지 무엇때문에 갇힌건지 기억하지 못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해요. 남편이 그녀를 찾아와 이유를 말해줍니다.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20년분 인생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증오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살인사건
"그런데도....난 벌을 받아야 하는 거?"p.179

마유코를 면회온 히사에는 그녀가 변호사도 없이 기소되면 유죄가 된다며 의혹을 불어넣습니다. 마유코는 히사에가 부탁한 변호사를 통해 정신감정을 받지만 남편이 히사에가 유산을 노리고 접근한 거라는 편지에 믿을 사람은 남편 뿐이라는 글을 적어놓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건 역시 영화 메멘토입니다. 기억장애, 살인, 속이는 사람들, 몸에 적어놓은 글 등이 공통적이에요. 마유코는 결혼과는 거리가 먼 태평한 십대 소녀의 기억을 가진 상태라 자신의 결혼, 남편,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그녀의 장애를 둘러싸고 믿기 힘든 사람들의 행동이 상황을 더 혼란으로 빠뜨립니다.
기억장애를 가진 마유코와 치매 어머니를 둔 유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요. 뒤로 갈수록 더 안타까워지는 사랑이야기예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