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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이명경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1월
평점 :
시대의 흐름 속 개인의 삶.

1960년대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가 이런 시절이 있었나 놀랐어요. [달항아리]는 지금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낙후된 모습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변화를 목격하고 경험한 작가가 말하는 자전적 경험이라니 기대되었습니다.
이윤지의 부친은 일제치하에 일본 유학을 다녀와 변호사가 된 엘리트 지식인이었어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오페라를 부르며 딸이 노래를 못하니 노래 잘 부르는 사위를 얻고싶다 했지요. 당당하고 자랑스럽던 부친은 7살 딸이 무심결에 숨은 곳을 말하는 바람에 경찰에 끌려가 처형당했어요.
자신때문에 부친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짐으로 남습니다. 모친은 딸과 아들을 데리고 억척스럽게 생활을 꾸려나갔어요. 돈버는 능력을 펼쳐 남매는 모친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부족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갑니다.
모친은 자녀들이 남편처럼 무엇이든 남보다 뛰어나길 기대하여 강하게 압박해요. 윤지는 죄책감때문에 모친의 바람대로 노력하나 남동생은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공부에는 뜻이 없어요.
윤지는 부친이 생전에 부르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첫사랑에 빠져요. M에 대한 마음은 깊지만 둘의 사주가 맞지않다는 말에 함께 하지 못하고 말아요. 윤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떠나지 않습니다.
M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하던 그가 그리웠다. 그는 지금 천당에서 지옥으로 직행한 윤지의 모습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윤지는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P.86

"너의 아버지 잘못된 건 지금 생각하면 다 그 양반 운명이었어. 아까운 사람이 그렇게 허망하게 간 것도 내가 일찍 혼자된 것도 다 운명이었어."
"다 운명이었다고?"
"그래. 그렇다고 할밖에."
윤지는 엄마의 말로 인해 조금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P.162

풍족한 생활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도 다시 시작하며 평화롭게 지냅니다. 시동생의 꼬임에 넘어간 남편이 도금 공장을 인수하고 이후 IMF가 터져요. 도박중독인 시동생은 미수금을 30-50%할인해주는 조건으로 모두 거둬 달아나고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윤지와 남편에게 떨어집니다.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이 사업에 전혀 문외한인 남편과 윤지가 공장을 살린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준이의 도움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윤지의 뻔뻔함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고 P.248

윤지는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살아온 느낌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부친에 대한 죄책감과 첫사랑을 뒤돌아보느라 앞으로 나가는 게 힘들어요. 그 시대의 평균이라 하기엔 조금 거리감이 있지만 이윤지라는 개인의 삶을 통해 격변하던 역사를 돌아보게 되네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