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르몬이 그랬어 ㅣ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평점 :
겨울 나무는 체내의 수분이 어는 걸 피하기위해 수분 흡수를 줄인다고 해요. [호르몬이 그랬어]는 인생의 겨울에 있는 주인공들이 겨울을 집중의 계절로 전환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이라니 기대되었습니다.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는 1인칭에 현대 배경이라 늘 그렇듯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갖게 되네요. 처음엔 옛 친구와의 재회로 깨닫는 세월의 무게 정도로 생각했다가 예와 키스를 하는 장면에선 얼떨떨했어요. 퀴어적 감성이 묻어나는 이야기였어요.
주인공은 술취해 기억이 불분명한 채로 깨어납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몰라 소름이 돋고 전날의 예의 전화를 받고 술을 마시러 나간 걸 떠올려요.
아주 오래 예의 목소리를 잊고 있었다.
만나자,고 말하고 예는 약속 장소로 우리가 다니던 대학 근처의 작은 술집 앞을 짚었다. 그리로 가는 길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 만은 무섭게도 온전했다.p.12

상경하여 대학에 들어간 나에게 시리도록 희고 고운 얼굴의 예는 어려운 상대였어요. 사귀는 사람이 2명 있지만 그 둘보다 더 강렬하게 남은 건 예에 대한 기억이에요.
'호르몬이 그랬어'는 결말을 보고 안도해야할지 좀 찜찜한 기분이 들어요. 오랜만에 사귀던 애인의 연락을 받고 나가니 괜찮은 레스토랑에 데려갑니다. 연애할 때와 다른 장소에 약간 당황하고 있는데 이젠 애인이 아닌 '누군가'가 말해요.
나 결혼해.
결혼만 빼고 다했던 것 같은 내가 아닌 결혼 아닌 건 거의 아무것도 못 해보았을 사람과 결혼이라. 재미있다. 충격을 받은 나머니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도록, 진짜로 재미있다 p.68

심지어 부케를 받으러 오라고 하는 전 애인과 헤어진 후 엄마의 애인과 자버리겠다는 충동을 실천에 옮겨요. 엄마의 애인과 폭음한 후 정신을 잃고 그의 아들 방에서 깨어납니다.
진짜 에세이는 '...라고 했다'는 작품이에요. 작가는 청소년 문학상 수상으로 일찍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요.
열 살 때? 열한 살 때? 원고지에 쓴 이야기를 보고 언니가 서련이는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라고 했다. 거짓말을 하면 매를 맞거나 벌을 받았지만 지어낸 이야기를 종이에 옮기는 것으로는 혼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고 기분이 좋았다. p.111

이 책은 문장에 대한 고민이 느껴져서 스토리를 따라 쉽고 빠르게 읽어가기보다 천천히 문장을 짚으며 읽게해요. 조금 모호해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뜻이 잘 구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