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사진작가로 이름난 어빙 펜은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는데, 젊은 날 우연히 패션 잡지 보그의 표지사진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자신만의 사진 스타일을 완성해간다. 그는 유명한 인물들을 많이 찍었는데, 그 접근방법이 상당히 독특하다. 모델과 약간의 언쟁을 벌이면서 그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출해내는 방식을 썼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하는데, 그 반대로 접근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델을 지치게 하는 방법도 구사했다. 예를 들어 당대의 유명인들이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오면 한 두시간 가량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경계심이 풀리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드러날때 찰칵.
이렇게 찍은 인물사진은 워낙 유명하니 패스하고, 'Still Life: Irving Penn Photographs 1938-2000 (Hardcover)' 라는 사진집을 소개해보련다. 가로세로 길이가 35센티미터 정도하는 하드커버의 사진집이다. 페이지수가 안 나와서 정확히는 알 수 없는데 대략 170쪽 정도 하는 것 같다. 흑백과 컬러가 혼용되었으며 두껍고 광택이 나는 사진용지에 인쇄되어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말끔한 정물사진이 주류를 이룬다. 정확히 말하자면 패션잡지 보그를 위한 광고사진들이다.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령 제목이 'Bee stung lips, editorial photograph for vogue, new york, september 22, 1995' 라는 사진이 있다. 여성의 주황색기가 도는 붉은색 루즈를 칠한 입술위에 벌이 매달려 있다. 약간 입을 벌셔서 윗니가 조금 드러나있고 그 위에 새까맣고 노란털을 가진, 아마도 뒤영벌류로 짐작되는 녀석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혀도 약간 보이고 입술주위로 솜털이 촘촘한 클로즈업 사진이데, 시선을 잡아끈다. 광고사진은 이처럼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와야만 효과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뭘 주제로 한 것일까? 립스틱 선전일까? 또 다른 사진을 보자.
'snails, oyster and frog legs, editorial photograph for vogue, new york, february 7, 1989' 가 있다. 말 그대로 달팽이와 굴, 그리고 개구리 다리를 촬영한 것이다. 배경은 하얀색이라 아무것도 없다, 굴 위에 달팽이가 2마리 붙어 있고 놈들은 그들의 더듬이 4개를 쭉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굴껍질 아래로 개구리 뒷다리만 보이는데, 모두 껍질이 벗겨져서 손질이 된 상태다. 힘줄과 근육, 지방질과 뼈가 그래도 드러나 있다. 한때 우리네 농촌에서도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서 먹고는 했었는데.....ㅎㅎ 이렇게 감각적잉 사진들이 수십장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