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 서울 거리를 걷고 싶어 특서 청소년문학 35
김영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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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지능과 외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들이 보편화된 시대에, 주인공인 '인류'의 학년 중 유전자 조합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인류가 유일했다. 유전자 조합을 한 아이들은 한 학년 월반은 기본이고, 자신의 '나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패배자로 여겨지는 세상이었다.

인류의 아버지는 인류를 낳을 때 유전자 조합 시술을 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반대했고, 어머니는 친정으로 돌아가 홀로 인류를 낳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그 후 인류의 아버지는 재혼해 유전자 조합 시술을 거친 동생을 낳았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낀 인류는 지방 소도시에서 고철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로 도망쳐 같이 살게 된다.


열등감에 유전자 조합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인류는 로봇, 정확히는 인간의 업무를 대체해 가는 로봇에 대해 반감을 가졌고, 이에 자신이 고철 공장에 가끔씩 들어오는 로봇들을 '처리'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처리라고 해 봐야 신고 없이 불법적으로 고철들 사이에 섞여 들어오는 로봇들을 센터에 신고해 수거해 가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러던 어느 날 신고한 로봇의 불법 잔해가 센터에서 수거하러 오기 전에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인류는 범인을 잡기 위해 CCTV를 설치했고, 그 후 공장에 누군가가 다시 침입했을 때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주친 것은 놀랍게도 아이 체격의 구형 로봇이었다.

로봇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인류는 그 로봇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전에 없어진 로봇 잔해의 행방을 따져 물었다. 결과, 공장에 침입한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구형 로봇은 로봇 잔해를 훔친 게 아닌,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로봇에 대한 연민으로 로봇의 잔해를 땅에 묻어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와 더불어 '구형 로봇'이라는 틀로 묶여 있는 로봇들이 인공지능이 존재해 사람들과 유사한 감정을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도구로서만 이용되면서 참혹하게 혹사당하는 화려한 도시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로봇에 대한 반감에서 우러나온 적개심과 불신으로 미래를 대하던 인류는, 미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미래를 이해해 나가고, 미래를 향해 마음을 열며, 외면해 왔던 관계들을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대하고, 나아가 새롭게 알게 된 부조리에 맞서게 되는데….



인공지능의 발전을 비롯한 여러 방면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동시에 잠재적 위협으로 다가오고는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놓인 문제들을 다루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로고』에서 보여주는 발전의 이면에 놓여진 모습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현시대를 비롯한 미래를 조금 다르면서도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게 한다. 작가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필력을 보여주며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인류가 미래를 대하는 태도와 심정의 변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인류의 의식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단순히 소설 속의 로봇에 대한 인식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 자유와 권리를 억압받는 이들의 모습이 투영돼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구형'이라는, 사람에게는 쓰이기 어려운 단어가 사람에게 적용되는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존재의 가치에 대해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로고』를 읽고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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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완벽한 실종
줄리안 맥클린 지음, 한지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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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마이애미, 올리비아는 그녀의 삶의 전부인 남편 딘과의 달콤한 신혼 생활을 끝내고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 벌써 세 달 전부터 실행에 옮겼지만 소식이 없었고, 이에 초조해진 올리비아는 딘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적극적으로 시도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딘도 동의해 올리비아는 로맨틱한 밤을 기대했지만, 딘이 위장질환이 생긴 다른 조종사의 비행을 갑작스럽게 대신 맡게 되면서 그녀의 계획은 미루어지게 된다. 실망한 올리비아는 딘과 작은 말다툼을 벌였지만 이내 딘의 입장을 이해하며 그날 밤 곧장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그를 보낸다.


하지만 한밤중에 돌아온 것은 딘이 아닌 딘의 비행기가 푸에르토리코 연안에서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딘의 비행기의 실종은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시체는커녕 비행기 파편조차 찾지 못하자 수색은 중단되었고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던 올리비아는 갑작스런 몸의 이상을 느껴 검사를 받게 되었고,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1986년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물리학 박사 과정 중인 멜라니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체를 느껴 논문 진행에 진척이 없자, 물리학 학과장의 제안으로 로빈슨 박사에게 심리 상담을 받게 된다. 불우한 성장과정으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모르던 멜라니는 처음에는 불신의 벽 세웠지만, 자신에게 친절하고 개인사나 연구과제 등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로빈슨 박사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며 마음을 열고 상담에 임하게 된다. 그녀는 그에 대해 성적 욕망을 키우며 매일 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상상을 하고는 그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펼친다.


이에 로빈슨 박사는 처음에는 직업윤리에 따라 상담자와 환자의 선을 잘 지켰지만,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신을 건져내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한 고모의 죽음을 겪으며 죄책감과 외로움과 실패감에 휩싸여 멜라니의 끈질기고 집요한 구애에 넘어가 버리고 만다.

그러고는 이내 후회해 자신의 커리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멜라니와 좋게 헤어지려고 했지만, 멜라니의 편집증적인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가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겹고 공허한 나날을 보내던 로빈슨 박사 앞에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빛과 같은 여인이 나타나며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도저히 멜라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로빈슨 박사는 사랑의 감정 앞에 점점 더 괴로워하게 된다.


1997년, 세월이 지나 딘을 가슴에 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던 올리비아에게 형사들이 찾아와, 10여 년 전 실종되었다가 얼마 전 시체로 발견된 여성의 실종과 죽음에 죽은 딘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며 올리비아를 혼란에 빠뜨리는데….



소설은 첫 부분에서 1990년의 올리비아와 1987년의 멜라니의 시점을 오가며, 두 여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둘 사이의 연관성은 보이지 않았고, 멜라니의 버뮤다 삼각지대 실종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어쩌면 다른 시공간으로의 이동에 관한 초자연적 미스터리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게 했다. 그러나 소설은 점점 도를 더해가는 멜라니의 광기를 보여주며 어쩌면 『미저리』같은 스릴러 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했다.

결국은 미스터리 추리 로맨스 소설!


개인적으로 연민을 가장 많이 느꼈던 인물은 딘이었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몸부림쳤지만, 어긋난 만남과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결국은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슬픔과 고통에 몰아넣었던 딘의 이야기에 헛헛함과 안타까움만이 남았다.

그가 조금만 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상처를 받고 한평생 죄책감과 회한의 감정 속에서 연극 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 조금만 덜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더라도 이렇게 가슴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아 딘을 너무 매력적으로 표현한 작가님이 원망스러웠다.


올리비아는 공감, 비공감이 반반 정도였다. 자신은 딘과 사랑에 빠져 결혼해 아이까지 낳아 놓고는 전 애인이 다른 여자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 주지 않아 헤어졌다는 사실에 묘한 만족감을 느낀다거나, 딘이 자신과 완전히 상관없는 상태에서 다른 여자와 하룻밤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질투와 이해가 섞인 감정을 느꼈다는 부분에서 은근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들은 전부 자신만 좋아해야 되는 건가? 그러는 자신의 감정은 자유고?


소설은 뜻밖의 사건에 직면하게 되며 완벽하게 아름답게 보였던 올리비아와 딘과의 세계가 어쩌면 거짓으로 꾸며낸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끝이 보이지 않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는다. 과연 딘과,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시간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을 속시원히 대답해 줄 딘은 이 세상에 이미 없는데…. 아니, 이제는 딘이 이 세상에 없다는 진실조차 믿지 못하는 올리비아.


소설은 버뮤다 삼각지대의 딘의 비행기 실종이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와의 로맨스, 때로는 스릴러적인 요소와 딘에 대한 연민의 휴먼 스토리적 요소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기에 도저히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고, 다 읽은 후에는 쉽사리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당분간 이토록 완벽한 미스터리 추리 로맨스 소설을 만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그 진실을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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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네가 있어준다면 - 시간을 건너는 집 2 특서 청소년문학 3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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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 아영, 지우는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사는 환경이 같지 않다. 아영과 지우와는 다르게 민아가 사는 동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였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그럼에도 단짝 친구로 함께 어울려 다녔던 세 사람 사이는, 아영이 다니는 수학 학원에 지우가 다니면서부터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민아의 형편으로는 안산 내에서도 알아주는 비싼 수학 학원에는 다닐 수 없었기에, 셋이 만났을 때 굳이 학원에 관련된 이야기만을 조잘거리는 아영과 지우 사이에서 민아는 점점 소외감을 느껴갔다.

그런 민아 앞에 원래부터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엔 없는 파란 대문의 이층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 앞에 서 있던 할머니는 민아를 반기며 민아가 그 집의 첫 번째 멤버라고 했다.


청담동에 사는 아린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순위권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학교도 그만두고 온종일 자기 방에 처박혀 생활하는 히키코모리가 됐다.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약물 부작용만 얻었고, 지금은 효과도 없는 한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기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아린은 장례식에 가지도 못하고 그저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외할머니가 생전에 선물한 하얀 운동화를 신어볼 뿐이었다. 아린은 운동화를 신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기 위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고, 그 순간 전혀 낯선 공간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 새로운 공간에 있던 할머니는 아린에게 기다리고 있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지적장애를 가진 형을 놀린 아이들을 때려 폭행죄로 대전에 있는 소년보호시설에 들어간 무견은 시설을 탈주하는 아이들을 따라 얼떨결에 같이 도망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의류 수거함을 뒤져 보호시설에서 입고 나온 주황색 실내복을 갈아입고, 수거함 옆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 안의 하얀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그러고는 어디로 도망을 칠지 고민하며 걷던 중, 파란 대문 집을 발견하고는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소설에서 시간의 집은 가족과 학교, 친구에게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초대해 그 해의 마지막 날에 본인이 원하는 과거, 현재 혹은 미래의 어느 시간에서 삶을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준다. 멤버로 발탁된 아이들은 선택의 시간이 되기까지 시간의 집에서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따스함을 선사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 가지 않았던 점은 시간의 집 멤버들이 결정되는 기준이었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선정되었다고 하지만,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첫 번째 멤버인 민아보다 원래 멤버로 선택받지 못했던 무견이 훨씬 더 불행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민아 같은 경우는 2대에 걸쳐 시간의 집의 혜택을 받은 걸 보면 시간의 집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민아가 불꽃놀이를 보며 세상의 공평·불공평을 말하는 것을 보니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 가지 않았던 인물은 아린이었다. 내가 어른이라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며 부모를 원망하는 아린이 너무 철없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야기 중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고집해 주위 사람들을 힘들고 불행에 빠뜨렸던 할아버지와 삼촌이 나오는데, 그것을 알고도 현실적인 길을 제시하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아린을 보니 화가 나기도 했다.

소설이어서 결과가 좋게 끝나서 그렇지 현실에서는 아린이의 선택은, 글쎄….

꿈을 꾸고 좇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고, 항상 크거나 작은, 혹은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직면하여 선택을 강요당한다. 그 선택이 옳든 그르든 소설처럼 과거나 미래로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그 책임을 오롯이 질 수 있도록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이 결코 불행해지는 일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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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유괴 붉은 박물관 시리즈 2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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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유괴』는 다섯 편의 추리 소설 단편의 모음이다. 이 소설은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모든 형사사건의 증거품과 유류품과 수사 서류를 보관하는 범죄 자료관(붉은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데라다 사토시와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미제 사건이나 피의자 사망으로 처리된 사건을 해결하는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황혼의 옥상에서>

23년 전인 1991년 2월 졸업식 전날 저녁, 기타구의 한 고등학교 옥상에서 2학년 여학생이 화단 모서리에 후두부를 세게 부딪쳐 피를 흘린 채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누군가가 피해자를 밀었거나, 피해자의 머리를 잡고 화단에 내리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던 중, 사건 발생 당시 피해 여학생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을 얻고는 피해자의 목소리 속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선배'를 찾고자 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과연 '선배'는 누구일까?


<연화>

24년 전 1990년 8월에서 11월 사이, 도쿄도 서부 일정 지역에서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현관 부근을 제외한 2층 목조 주택 주위에 등유를 뿌려 불을 붙인 뒤, 그 집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대피시키는 수법을 사용했다. 경찰이 연쇄 방화 사건 수사본부까지 설치했지만 방화범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던 중 자신의 친구가 범인인 것 같다는 신고전화가 걸려 왔다. 신고자인 젊은 여성은 자신의 친구가 방화 사건 뉴스를 보면서 '이번에도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고 중 그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연쇄 방화 사건은 미궁에 빠진 채 갑자기 중단되는데….


<죽음을 10으로 나눈다>

15년 전 1999년 3월, 한 남성의 토막 난 시체가 하천 부지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살해된 남자의 아내가 지목됐지만, 그녀는 남편의 사망 추정 시각에 투신자살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대체 이 가정의 비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남편은 왜, 누구에 의해 잔인하게 목숨을 잃은 걸까?


<고독한 용의자>

24년 전 1990년 3월, 전문 상사에서 근무하는 한 회사원이 자신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집에서는 같은 회사 직원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을 증명하는 노트와 차용증 다발이 발견되었고, 경찰은 돈을 빌려 간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생각해 이들을 철저히 조사했다. 하지만 범인을 지목하는 결정적 증거는 발견하지 못한 채 수사는 장기화되었고, 이후 사건은 시효가 만료되었다.

그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기억 속의 유괴>

26년 전 1988년 8월, 다섯 살의 나이로 친모에게 유괴를 당했던 도다 나오토는 양부모님의 기일에 맞춰 공원묘지에 갔다 오던 중,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 데라다 사토시를 만난다. 안부를 주고받던 중 자신의 유괴 사건에 친모가 바랐다던 돈 이외의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거라 여겨왔던 의혹을 해소하고자, 사토시에게 시효가 만료된 자신의 유괴 사건 재수사를 부탁하는데….



"이 사건의 재수사를 실시한다."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이 말을 반복할 때마다 엔돌핀이 솟구쳐 올랐다.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호흡이 빠르게 전개되어 독자들이 떡밥을 회수해 생각을 뻗쳐 추리를 펼치기도 전에 이미 허를 찌르는 반전을 펼쳐 충격을 주면서 사건이 해결된다. 그 중심에는 사고의 유연성과 틀에 박히지 않은 접근법으로 미해결 사건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있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임에도 심리 스릴러를 다루어 섬뜩하게 하기도 하고, 어긋난 선택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인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어 심금을 울리는 인물도 나오고, 사토시와 미화원의 웃음 포인트 가득한 대화 등 판타지만 빼고 전부를 경험할 수 있는 종합 쇼핑몰 같은 소설이었다.

전편 『붉은 박물관』을 읽지 않았지만 소설을 읽어 나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후속작이 이렇게 재미있는데 본편은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이로 사에코의 군더더기 없는 추리로 사건 해결의 속 시원함을 느끼는 동시에, 수사 1과 형사 출신임에도 활약은커녕 일반인 정도의 능력만 보여주는 사토시에게 실망도 느꼈다.

다음 편에서는 사토시도 발군의 추리 능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단편들 모두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재미와 긴장을 선사해 근래 읽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 중 단연코 최고의 미스터리 추리 단편 소설집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옛말과 달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자신이 어떤 재미를 놓치고 지나가는지 모르고 지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허를 찌르는 반전과 깔끔한 뒷마무리의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망설임 없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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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아이스맨 후쿠토메 지음, 김정원 옮김 / 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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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아이스크림이 전국적으로 판매하는 양산형 식품이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포장되어 판매되는 제품이냐, 해외 수입 브랜드 아이스크림 전문점 제품이냐 하는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일본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그저 일본의 슈퍼에서 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그러나 책을 펼치는 순간, 난 무언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전국 곳곳에서 파는 양산형 아이스크림은 물론, 지역 고유의 전통 식문화와 연결되어 그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수많은 수제 아이스크림과 그것을 파는 고유의 방법이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제조방법이나 판매방식에 대한 비판이 거세져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어 유니크함을 잃어간다고 하니 조금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어차피 전부 가서 먹어보지는 못할 테니 이렇게라도 책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나 할까. 😅

이 책은 각 지역의 슈퍼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현지 업체의 스테디셀러 아이스크림은 기본이고, 그 지역의 아이스크림 가게, 식당, 매점, 커피숍 등에서 판매하는 유니크한 아이스크림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 <지역에 뿌리를 둔 오리지널 아이스크림>을 소개하고 있다.

가고시마의 '시로쿠마'를 비롯하여 오사카에 전문점이 많은 '아이스 모나카', 아오모리의 '점보 아이스', 오키나와의 '아이스 젠자이' 등 지역에 뿌리를 둔 오리지널 아이스크림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는 전국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있는가 하면, 현지에서는 유명하지만 전국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아이스크림도 있는 등 인지도 면에서도 다양하다.



책을 보던 중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의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바로 '봉지빙수'이다.

봉지빙수는 규슈의 명물로 여름을 대표하며 일명 '후쿠로고리'라고 한다. 여름 축제의 포장마차나 노점에서 바로 갈아 파는 빙수를 비닐봉지에 담은 것으로 '간편하게 빙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콘셉트라고 한다.

먹는 방법은 단순하게 봉지 모서리를 뜯어서 그대로 먹거나, 그릇에 담아 취향의 과일을 토핑 하거나 우유나 연유 등을 추가해서 먹으면 된다.


봉지빙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보 아이스' 또한 생소한 것이었다.

이는 아오모리에만 있는 명물로 아이스크림을 그대로 봉지에 담은 것이라 한다. 가게마다 종류가 다양하고, 큰 사이즈임에도 전체적으로 담백한 맛이 많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먹는 방법은 자연해동하거나 전자레인지로 살짝 데워 원하는 식감에 맞춰 녹여 먹으면 된다. 그릇에 담아 먹거나 우유를 부어 먹거나 음료에 넣는 등 먹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2부 <방방곡곡 아이스크림 순례>에서는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알려지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찾아 일본 곳곳을 찾아 아이스크림을 소개하고 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그중에서도 매력적이고 개성 넘치는 몇몇을 엄선해 소개하고 있다.

동일본과 서일본의 아이스크림들을 본편에서 소개하면서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아이스크림들은 위 사진처럼 사진만으로라도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3부에서는 <현지 업체 & 체인점 아이스크림>을 소개하고 있다. 체인점 아이스크림이야 어느 나라든 비슷들 하지만 우리나라 아이스크림과 똑같은 제품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심지어 롯데 제품.

우리나라 롯데의 '찰옥수수' 아이스크림이 일본 롯데의 '옥수수 모나카'는 완전 똑같다. 아니 우리나라 제품에서는 옥수수알이 쫀쫀하게 씹히고 초콜릿이 들어 있는 반면 일본 제품 단면에는 그냥 아이스크림만 보이는 걸로 봐서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일본 제품을 먹어봐야 비교 가능할 것 같다.



마지막 4부에서는 <현지 특산물과 콜라보레이션한 아이스크림>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된 아이스크림들 전부 특이했지만 옛날식 보리된장을 사용한 '미소 소프트아이스크림'과 쇼유를 사용한 '쇼유 소프트', 흑마늘이 들어간 '흑마늘 아이스'가 있어 놀라웠다.

또한 자판기 우동 국물 맛인 '우동소바 자판기 쓰유맛 소프트'와 우동처럼 보이는 소프트아이스크림에 다진 파와 쇼유까지 뿌려주는 '가마타마 소프트' 또한 충격적이었다.

무슨 맛일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식용 철가루가 들어 있는 '쓰바메산조 철 아이스'였다. 중금속 중독이 걱정되는데…. 뭐, 금가루도 먹으니 쇳가루도 괜찮으려나?



이 밖에도 이 책의 저자는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을 직접 돌아보고 체험한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정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엄선하고 간추려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저자의 취향에서는 조금 벗어나서 이 책에는 안 실려 있지만 나에게는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이 책에 소개된 아이스크림 중에는 모양은 다르지만 이미 먹어본 적 있는 맛과 식감의 아이스크림과, 전혀 생소해서 무슨 맛과 식감일지 기대되는 아이스크림들이 있다. 먹어봤든 먹어보지 못했든 눈으로 보고 그 맛과 식감을 기억해 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다면 이 책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고.

모든 감각을 기분 좋게 달뜨고 흥분되게 만드는 아이스크림의 세계로 빠져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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