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예술의 역사 4 : 바로크 예술 만화 예술의 역사 4
페드로 시푸엔테스 지음, 강민지 옮김 / 원더박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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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릴 때 영화에서 보았던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하고 웅장한 유럽 왕궁의 내부 장면이 떠오른다. 그곳은 벽에 걸린 액자 틀뿐만 아니라 내부를 채운 가구들, 심지어 촛대 같은 작은 소품조차 구불구불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런 장면과 함께 머릿속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파이프 오르간 소리.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진 바로크의 스테레오타입이다. 딱 여기까지다.


분명 학창 시절 나름 열심히 수업을 들었었지만 지금은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가 누가 있는지 헷갈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전시회에 가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뭔가 기억에 오래 남을 임팩트 강한 무언가가 없을까?

그러던 중 『만화 예술의 역사 4 : 바로크 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누구나 좋아하는 만화로 되어 있어 읽기 쉬운 데다가, 내용 또한 꼼꼼하고 자세하면서도 한눈에 보기 쉽도록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로크 미술은 이전의 르네상스 양식에서 요구하는 원칙과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고도 다양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분별한 자유분방함이 아닌 최소한의 질서와 원칙은 유지한, 생명력으로 살아 역동하는 이상화된 자유로움이다.

그러고 보니 '바로크'하면 떠오르는, 틀에 박히지 않고 예상 불가능한 구불구불한 문양들이, 정형화된 동그란 진주가 아닌 모양이 예측 불가능한 '찌그러진 진주'의 실루엣 같기도 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쳤던 종교가 16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으로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고, 신교에 맞서 다시 세력을 결집하려는 구교의 저항에서 바로크 미술이 탄생했다.

그리하여 바로크 미술은 이성과 관념에 의한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감정과 감각에 호소하며, 감성 자극을 극대화하는 표현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그는 예술 전 분야에 정통한 천재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수를 거쳐 독립한 뒤에는 베르니니와 평생 라이벌 관계로 경쟁을 펼쳤다.

그는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요소를 가미해 자신만의 특색이 있는 독창적인 바로크 건축물을 설계했다. 책에 나와 있는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의 경우 성당의 돔과 나선형의 첨탑에 보로미니만의 독창적인 건축 방식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보로미니가 선보인 역동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건축 방식은 바로크 건축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본명이 '미켈란젤로 메리시'지만 본명보다 출신지에서 따온 카라바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7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탈리아 화가로 르네상스 회화 양식을 마치고 바로크 회화 시대를 개척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라바조는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들과는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어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기법을 창시했다. 이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 바로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책에 나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메두사의 머리>는 이후 수많은 호러 매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화가로 이탈리아 만토바 공의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익힌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 미술 전통과 모국 플랑드르로 대표되는 북유럽 미술 전통을 종합하여 빛나는 색채와 생동하는 에너지와 웅장한 구도가 어울린 독자적인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17세기 유럽의 대표 화가이다.

루벤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18세기에 유행하는 로코코 양식과 신고전주의의 형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 <시녀들>로 잘 알려진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세계적 거장이다.

당시에는 루벤스와 고전주의 화가들이 미적 취향의 기준이었기에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항상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이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마네는 벨라스케스가 '화가들의 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후세페 데 리베라,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등 수많은 바로크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선생님이 시간 여행을 떠난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작품들 또한 실제 작품 사진이 아닌 작가의 그림체로 재탄생한 그림들이기에 익살스럽게 보여 무척 인상적이고 신선했다.

마지막으로 맨 뒷부분에는 책에 나오는 바로크 예술가들의 작품들의 이름과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작품을 정리해 보는데 유용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예술 작품에 대한 장면과 그 옆에 적혀있던 일목요연한 설명이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한 컷의 그림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각 잡고 시작해야 되는 예술사 공부가 아닌, 즐기면서 은근슬쩍 스며드는 예술사 공부 시간이었다. 특히 분명 똑같이 그렸는데 아방가르드해 보이기까지 하는 명화들의 만화 컷이 압권이었다는….😆


웃으면서 즐기는 사이에 예술사 개요와 작품이 정리되니 교양을 위해서라고 다른 것은 제쳐 두고라고 『만화 예술의 역사』 시리즈들은 꼭 챙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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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에서 우리가 나비를 쫓는 이유
조나단 케이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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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년 갑작스런 태양의 복사선 변화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포유류의 전기 시스템만 엉망이 된다. 이로 인해 포유류는 햇빛을 보면 몇 시간 안에 죽게 되는 일광병에 걸리게 되며 거의 모든 포유류가 멸종을 맞이한다.

태양 대격변이 일어났을 당시 지하에 있었던 극소수 사람들은 운 좋게 살아남아 지하주민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태양 아래 생활할 수 없었고 태양이 사라진 밤에 지상으로 나와 먹을 것을 구해야만 했다.


주인공 엘비는 태양 대격변이 일어난 지 약 40여 년 후 과학자들이 모여 살던 산타모니카 기술 연구소 지하벙커에서 태어났다. 다행히도 엘비가 태어났을 무렵엔 그곳 주민인 생물학자 플로라의 일광병약 제조 성공으로 그 약을 복용한 그곳 주민들에 한해 낮에도 지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연구는 절반의 성공으로 한 번 먹으면 36시간 약효가 지속될 뿐이었다.

이에 플로라는 약효가 영구적일 백신 개발 연구를 계속했고, 엘비의 부모님은 플로라의 연구를 열정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일광병약의 주재료인 제왕나비 비늘의 절대적 부족으로 엘비의 부모님은 엘비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제왕나비 떼를 찾아 멕시코 미초아칸으로 호기롭게 떠난다. 그 길은 예상보다 멀고도 험난했으며, 고생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흘러 2101년 여름, 플로라는 10살이 된 엘비를 데리고 제왕나비의 이동경로를 따라 엘비의 부모님이 있을지도 모르는 멕시코 미초아칸으로 향하며 백신 연구를 계속한다.

아무도 없는 낮의 지상을 여행하는 것은 순탄한 듯했지만 갑작스런 지진과 해일을 만나며 발이 묶이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엘비가 지진으로 무너진 벙커 앞 트럭 안에 혼자 있던 사내아이 시토를 발견하고는 야영지로 데려온다.


시토에게 일광병 응급조치를 마친 플로라는 시토가 발견된 곳으로 가 생존자를 찾지만 발견하지 못하자 시토를 데리고 여행길에 오르기로 한다. 이에 엘비는 시토를 발견했던 장소에 혹시 생존해 있을지 모를 시토의 부모를 위해 메모와 일광병약, 생필품 등을 놓고 떠난다.

그리고 얼마 후 시토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의문의 무리가 시토를 찾아 엘비가 메모에 남겨놓은 장소에 나타나는데….



이야기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정확하게 자신들이 가야 할 곳으로 나아가 미래를 이어가는 4세대에 걸친 제왕나비의 이주를 통해, 비록 현실이 암울하더라도 인류도 분명 나아갈 곳이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대를 이어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는 주위 환경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말하며 그것에 대한 소중함도 일깨우고 있다.


엘비와 플로라를 찾아온 무리들은 정말 시토의 보호자가 맞을까? 그리고 그들은 순수하게 시토를 찾으러 온 것일까?

인류 멸종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야기는 상황들이나 여러 인간 군상들을 미화시키지 않고 너무나 적나라하게 직관적으로 보여주어 생동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일부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라는 인간 본성이 뼈저리게 다가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간은 결코 자연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비로소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류 발전의 방향성을 볼 수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엘비와 플로라는 왜 제왕나비를 쫓아가야만 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쯤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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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안병억 지음 / 페이퍼로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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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르만족은 세계사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쳤을까?

중세 유럽에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신성 로마 제국은 유럽의 역사를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신성 로마 제국은 실제 하나의 국가가 아닌 공작령, 백작령, 주교령, 왕국 등으로 구성된 영방 국가로, 800년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가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의 관을 받으며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가 로마 제국의 계승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서 시작된다. 그 후 962년 오토 1세가 다시 교황으로부터 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받음으로써 실제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된다.

그렇게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는 유럽의 중심을 차지했다.


아니, 그보다도 이전인 4세기 말의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나 현대의 제1, 2차 세계 대전처럼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독일과 연관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학교 교과과정에서는 독일의 역사가 프랑스나 영국의 역사보다는 많이 다뤄지지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독일의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독일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는 독일의 역사를 독일이 생겨나기 이전 게르만족의 기원부터 뼈대를 확실하게 잡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적절하게 배치된 지도와 중요한 사건의 요약정리, 특히 독일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세계사에서는 어떤 굵직한 사건이 일어났었는지 비교해 알아보기 쉽도록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연표는 독일사를 홀로 동떨어진 역사가 아닌 세계사 속의 살아있는 역사로 생생하게 이해시키고 있다.


이 책은 서기 9년 자신들의 병력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로마군의 침입을 물리쳐 게르만족의 자유를 지켜낸 게르만족의 지도자 헤르만의 이야기부터 그들이 중세 유럽의 중심이 된 이야기를 거쳐 현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변화된 독일의 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역사를 개괄적이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칸트나 헤겔, 마르크스 같은 독일의 철학가나 사상가, 괴테 같은 문학가들, 빌리 브란트 같은 현대의 정치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역사학에서 중요한 시대 구분점인 3월 혁명이나 다른 역사책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는 나치에 저항한 비폭력 그룹인 백장미단 이야기 등 독일 역사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기에 독일 역사의 큰 틀을 이해하기에 좋은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다른 독일사 책들과 달리 현대사를 100페이지가 넘는 상당히 꽤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어 현대 세계정세 속의 독일을 파악하는데 더욱 유용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독일이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절충한 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 비례대표에 대해 논란이 많아 비례대표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는데, 한국의 비례대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독일의 비례대표를 보며 확실히 우리나라 비례대표제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통일을 보며 우리도 지금의 반쪽짜리 평화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통일을 이루어 진정한 세계적 강국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독일의 외교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잘 알지 못했던 독일사이기에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며 느끼는 만족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쉬운 설명으로 독일사를 이해하기 쉬웠고, 굳이 암기하려 하지 않아도 역사적 흐름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대한 독일의 역사를 꼭 알아야 되는 주요 사건 위주로 체계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를 통해 쉽게 접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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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흑역사 - 이토록 기묘하고 알수록 경이로운
마크 딩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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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고 신비로운 인체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심오한 수수께끼는 뇌일 것이다. 혹자는 우리의 뇌를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물이라고 부를 정도로 뇌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무지에 가까울 정도이다. 뇌는 구성하는 세포 수만 수천억에 달할 정도로 많으며, 그 연결을 통해 온전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의 뇌를 구조적으로만 대략적으로 알고 있을 뿐, 그 상호작용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를 들어 뇌전증과 같이 신체를 조절하는 기능이 훼손된 경우나 이 책에 나오는 것들과 같은 여러 이해하기 쉽지 않은 증상들이 발현되었을 때, 아직까지는 그 원인이며 치료 방법에 대해 갈피를 잘 잡지 못하고 그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은 이러한 뇌에 대해 단순히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이상으로 인해 평범한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기이한 현상들을 인지하고 경험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뇌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늑대 인간'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영화 같은 곳에서 묘사되듯이 사람이 갑작스럽게 늑대로 변하는 모습이 떠오르고는 하지만, 놀랍게도 늑대 인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lycantrope는 임상적라이칸스로피(clinical lycanthropy)라는 단어로 자신이 늑대가 되었다는 망상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이용되고는 한다. 기록된 사례들은 다채로워 단순히 늑대로 변하는 것만이 아니라 뱀으로 변했다고 여기는 사람부터 고양이, 소, 말, 개구리 등으로 변했다고 여기는 사람들까지 전해진다.

사람들에게 상당히 널리 알려진 신경병증의 사례로는 사고 등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를 절단한 사람들에게서 가끔 나타나는 환각지 증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완전히 다를 것만 같은 이 두 종류의 증상들이 동일한 기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신체와 '신체 도식'의 불일치이다. 신체 도식이란 신체를 뇌가 인지하고 있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쉽다. 눈을 감고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때, 움직인 신체가 어떤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지를 어렴풋이 또는 상당히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 또한 우리의 뇌에 신체 도식이 있어 우리의 신체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적라이칸스로피는 이러한 신체 도식에 문제가 생겨 신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변하지 않았으나 이에 대한 뇌의 인식인 신체 도식이 변화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신체를 잘못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 상황이 심해지면 임상적라이칸스로피와 같은 양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환각지의 경우에는 신체의 변화를 신체 도식이 따라가지 못해, 사라져 버린 신체의 일부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두 증상 모두 우리의 감각이, 특히 외부와도 관련 없이 우리 신체 자체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심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그 결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뇌와 관련된 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뇌가 평균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에게 해롭기만 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매우 쉽다. 그러나 놀랍게도 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단순히 사람들에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서번트 증후군'이다.


서번트(savant)는 프랑스어로 '박식한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보통은 발달장애나 뇌 손상으로 인해 생겨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게 되거나, 손으로 써서 풀어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계산 실수로 꼬여 버리기 십상인 어려운 계산도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해낸다. 또한 음악적, 미술적, 공학적 역량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거나 이와 같은 특징이 복수로 나타나는 등 소위 말하는 '천재'의 모습을 보인다.

서번트 증후군은 선천적인 것이 많지만 드물게 사고를 겪으며 후천적으로 생겨 배운 적 없는 피아노를 피아니스트처럼 칠 수 있게 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단순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생겨나 갑작스런 미술적 재능을 얻게 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 플라세보처럼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경미한 증상에도 죽음에 이른 경우, 한 사이비 종교의 비극적 결말로 본 공유 망상, 외계인손 증후군 등 뇌를 꽁꽁 둘러싸고 있는 비밀들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은 마치 짧은 SF 소설 혹은 환상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 같아 무아지경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서두에서 이 책의 이야기들은 전부 실제 환자 사례들이기에 환자나 환자가 일으킨 사건의 피해자의 고통이 흥밋거리로 소비될까 우려했던 것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행동 사례들을 소개하며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의 작용도 함께 설명하고 있기에, 단순한 흥미 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닌 미지의 뇌과학에 대한 알찬 지식을 제공하고 무한한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뇌과학이 다소 생소했는데 뇌의 신비한 비밀을 조금이나마 들춰 보여주는 『뇌의 흑역사』를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행운인 것 같다.


뇌과학에 관심이 있지만 그 전문성에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흥미진진하고 신기한 사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쉬운 설명이 이해를 쉽게 해주고 풍부한 내용이 알차고 다양한 지식을 얻게 해주어 지적 만족감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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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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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대중화되면서 상품이나 문화 콘텐츠 등 생활 곳곳에서 페미니즘적인 요소들이 크게 늘어났다. 도서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서점에 가보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책들이 접근성이 좋은 곳이나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페미니즘이 대세가 되며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자기만의 방』을 저술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를 페미니즘과만 연관 짓는 것은 그녀의 극히 일부만 이해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영국 최초의 페미니스트일 뿐만이 아니라 당대 가장 훌륭한 모더니즘 작가이자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의 선구자라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듯 그녀와 그녀의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독보적이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막상 그녀의 작품들을 호기롭게 접했을 땐 작품의 난해함에 당황하곤 한다.

이에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점은 울프가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적었기에 당연한 것이라며, 어렵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다면 이해하려고 매달리지 말고 문장을 의식의 저편 너머로 그저 관조해 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포함한 13작품 속에서의 인상적인 문장들을 영어와 한국어 번역 두 가지 버전으로 보여주며 작품에 대한 쉬운 설명을 더해 독자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과 생애를 느껴보게 하고 있다.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대표작 『자기만의 방』에서 성 불평등의 본질을 지적하며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울프는 이 책에서 여성이 글을 쓰려면 두 가지 조건 즉, 경제적 자립을 가져다줄 '돈'과 시·공간적 자유를 의미하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울프가 제시한 두 조건들은 문학에서뿐만이 아닌, 다른 모든 분야에서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자아실현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무엇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마치 시속 80km로 튀어 나가는 지하철 속에서 휩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한쪽 끝에 하나의 핀도 없이 착륙하는 것처럼! 신의 발밑에 완전히 맨몸으로 던져지는 것과 같아요!"


『벽에 난 자국』은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문학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여성 서술자가 전개 내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형태가 없는 서술자의 의식과 흐릿한 시·공간의 경계가 생소하고도 낯설지만 오히려 이러한 과정이 읽는 이로 하여금 내적 고찰과 현실 세계의 연결을 촉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순간이라도 올랜도가 자신의 책상에서 글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소명에 이보다 더 적합한 여성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올랜도』는 울프가 열렬히 사랑한 여성 작가 비타색빌웨스트를 모델로 한 부분적인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올랜도의 요술 같은 성전환인데 이것은 어쩌면 성별의 제약 없이 다양한 삶을 자유롭게 살아 보고 싶어 했던 울프의 바람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울프는 이 소설을 통해 역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한 뒤 차별하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은 『3기니』, 『출항』, 『등대로』 등 버지니아 울프의 각 작품들 속에서 의미 있는 문장들을 뽑아 엮고 있다. 그 문장들은 내용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문장들 사이에는 울프 작품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나 이어지는 줄거리를 간단히 첨부하고 있기에, 짧은 문장들을 몇 페이지 읽었음에도 버지니아 울프 작품 한 권을 온전하게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정리되고 이해가 되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요즘 핫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지만 그 난해함에 좌절했던 사람들이나 이미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작품을 간단하게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은 물론, 발췌된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머릿속에 그 문장을 판박이처럼 새기고 기억해 내 문학적 감성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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