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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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으로 병상에서 생의 모든 것을 잃은 남자,

절망을 딛고 빛나는 생의 의지로 다시 태어난 위대한 실화!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할 때 저마다 특정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저자, 책 소개, 표지 디자인 등 독자를 유혹하는 책의 매력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수많은 페이지의 모든 정보를 하나로 압축해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 바로 ‘제목’을 꼽을 수 있다. 어떤 분야의 책인가에 따라 제목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이토록 직관적이고도 숨이 덜컥 막히게 하는 제목이 또 있을까.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라니. 나는 책의 제목을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에 불편하고 어둑한 그림들로 가득차서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엄마라는 생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자신에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무엇인지 궁금하거니와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큰 공포와 좌절감을 느꼈을지는 감히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만큼 자극적이고, 그래서 더욱 궁금했지만 책속에는 이보다 더한 충격적인 실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라는 탈출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남자

 

 

   책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유령 소년, 소리 없는 목격자, 정신이 유일한 소유물이 된 남자가 등장한다. 이 모두는 바로 열두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으로 사지가 마비되어 식물인간이 된 남자, 마틴 피스토리우스가 스스로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도시 근교에 있는 돌봄시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의식 불명의 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이 돌아왔지만 움직일 수 없는 몸 안에 갇힌 채 목소리를 낼 수도, 깨어났다고 신호를 보내거나 알릴 수 없는 상태로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시 살아나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늘 가족과 요양사들에게 ‘나 여기 있어요, 안 보여요?’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애쓰지만 소리 없는 절망만이 심연으로 파고들 뿐이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한 것은 그가 마치 아무런 감정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할 때였다. 어떤 이들은 화가 났을 때 그의 옷을 평소보다 거칠게 벗기거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등 차마 입에 담기에도 죄스러운 불경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자신의 몸을 가리켜 ‘어두운 욕구를 마음껏 칠할 수 있는 빈 캔버스’나 다름없다고 자조하는 그의 표현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들에게 무례하고 교만한 지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나를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일거리였다. 요양사들에게는 수년간 같은 곳에 머물러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익숙한 붙박이 가구였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 있어야 할 때 나를 보냈던 돌봄 기관의 복지사들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환자였다. 나를 진료한 의사들에게 나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대상이었다. 어느 의사가 동료에게 엑스레이 촬영대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이 마치 불가사리 같다고 말했듯이. / 31p

 

 

나는 무엇보다 누구든 나를 좀 바라봐주길 바랐다. 나를 본다면 내 얼굴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분명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공포였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감정이 있었다. 나는 그저 유령 소년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 / 211p

 

 

   그의 불행은 주변 사람들에게 단순히 가엾고 불편한 존재로써 끝나지 않는다. 장애와 질병의 불행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아빠에게서는 진급의 기회를 앗아감과 동시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았고, 엄마에게서는 정규직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미치게까지 했다. 그들의 고립감은 마틴의 동생들에게도 전염되었다. 마틴으로서는 가족의 꿈과 희망을 앗아간 것에 대한 회한과 자책으로 되돌아옴으로써 그를 더욱 좀먹게 했다.

 

 

내가 결코 잊지 못할 다툼이 있다. 아빠가 나가버리자 홀로 남은 엄마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던 날이다. 엄마는 손을 부르쥔 채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가슴속에서 날것으로 흘러나온 슬픔을 느꼈다. 엄마는 너무나 외롭고, 혼란스럽고, 절망적으로 보였다. 나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이렇게 크나큰 고통을 초래한 육신의 껍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네가 죽었어야 해.” / 86p

 

 

 

 

 

 

위로, 위로, 다시 떠오르기 위한 도약

 

 

   이대로 몸에 갇혀 죽을 것만 같았던 그에게 뜻밖의 기적이 찾아온다. 그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이는 간병인 버니로, 그녀는 마틴의 부모에게 그가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검사를 해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가족을 제외하고 마틴에게 생의 의지를 북돋아 준 가장 첫 은인이 된 셈이다. 의사소통센터에서 그의 인지 기능을 테스트해 본 것을 계기로 마침내, 그는 의사소통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그리드를 만들어내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가 여러 스위치 가운데 하나를 손으로 눌러 하고 싶은 말을 고르는 방법이다. 이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마침내 ‘대화’라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시도들을 하게 된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여기에 전념하는 필사의 노력을 거듭한다. 이후 그는 몸을 전보다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몸 구석구석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또한 컴퓨터 시스템을 이해하는 특유의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던 탓에 이와 관련된 업무를 맡아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한다. 곳곳에서 그의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들어보고자 강연 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이로써 그는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큰 희망을 얻게 된다. 이렇듯 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엿한 사회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헌신과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얻은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이었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굳건한 사랑과 믿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비롯된 유산과도 같아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빈약하고 얄팍한 감정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가족 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사랑의 모습은 때로는 헹크와 애리에타의 경우처럼 유희에 가까울 때도 있고, 잉그리드와 데이브의 사례처럼 평화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정말 운이 좋다면, 지디와 미미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랑은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누구에게나 포근한 위안을 주는 생명의 힘처럼, 두 사람을 굳건하게 해준 숱한 풍파 속에서 빚어진 기억을 어루만지고 새로이 피어나게 한다. / 235p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극복할 수 있는

 

 

   그는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여인 조애나를 만나 가정을 이루며 독립의 길로 나아간다. 이 기적적인 스토리는 언뜻 보면 희망만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그는 갈등을 야기하는 내면의 두 세계와 맞서야 하는 기로에 서곤 한다. 항상 타인의 도움을 받아 살아온 탓에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할 때면 늘 망설이게 되고, 여전히 신체적인 한계에 부딪혀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표출할 수 없어 늘 짓누르며 살아옴으로써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의사소통을 할 때 필요한 노트북이 없으면 다시 유령 소년의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라는 공포감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이 모든 기회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한다. 의사소통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일과 공부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써왔지만 뭔가를 보여줄 필요가 없는 유일한 존재, 조애나를 만나면서 타인과 똑같은 사람으로 스스로를 껴안는다.

 

 

인생은 흑백이 아니라 무수한 회색 그림자로 이루어졌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때로 틀릴지언정 점차 나의 판단을 믿는 법을 배웠다. 내가 배운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일이었다. / 286p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장애를 다룬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장애를 겪고 있는 이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의식을 흐름을 쫓아 기술하는 진정성에 있는 듯하다. 짖거나 물리지 못하게 중성화 수술을 한 개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던 그의 말처럼, 사랑에 대한 열망과 감정을 가진 똑같은 인격체로써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한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그 어느 책보다 따뜻한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점에서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이 책을 읽으며 장애를 지닌 이들을 고립시키는 건 아무 기회도 주지 않는 사회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도 사회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인격체이자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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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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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은 무엇인가?

왜곡과 의식 부재에 정면으로 맞선 김진명의 날카로운 역사추적기!

 

 

 

  E. H. 카의 유명한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또는 ‘과거의 사실과 현재 역사가의 대화’라고 정의하였다. 다시 말해 지나간 과거는 현재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뜻으로, 이는 현재의 역사가들을 통해 생산된 역사담론과 지식이 현실 사회에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과거의 사실 그 자체만큼이나 역사가들은 물론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중들의 역사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의 저자 김진명 역시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통해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장님이 된다’고 말했다. 작가라면 시대의 현안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바로 시대의 현안은 역사를 통해서만 드러내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에 대한 부재, 왜곡된 사실과 가치관, 반성 없는 과거사 앞에 진화란 있을 수 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부터 <고구려>까지 소설가 김진명이 끊임없이 ‘역사’에 천착한 글쓰기를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비밀과 진실을 추적한 작가, 김진명

 

  알다시피 작가 김진명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소설가이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우리 역사에 담긴 비밀과 진실을 소설의 감각을 빌어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그간 출간된 작품들을 쭉 살펴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를 알 수 없기는 하나, 분명한 것은 역사 앞에 날카로운 칼날을 드리우고 뚜렷한 문제의식과 예리한 논증을 통해 우리 시대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역사 앞에서 보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그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가령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숨겨진 참혹한 죽음의 진실에 다가가려 했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 한반도의 핵문제를 제기하였으며 <1026>을 통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뒤에 감쳐진 내막들을 파헤침은 물론, <몽유도원>을 통해 광개토대왕비에 숨겨진 비밀을 모티브로 임나일본부설의 조작된 역사적 허위를 고발하기도 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후 20년 넘게 소설을 써보면서, 두 가지를 놓지 않았습니다. 제 작업의 두 축이라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와 취재입니다. / 4p

 

 

  김진명은 거대하고 오래된 우리 역사 앞에서 단순히 책만으로는 역사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역사의 현장을 찾아 원하는 자료를 발굴하고, 관련 인물들을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다. 그가 부단히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자신의 민낯을 내보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은 바로 이러한 25년에 걸친 취재 과정에서의 노력과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된 갖가지 한국사의 비밀을 담은 만화책이자 또 다른 형태의 역사책이다. 그가 특별히 만화의 형식을 선택한 것은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힘과 동시에 역사를 주제로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셈이었다. 덕분에 2015년 새로운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발표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역사의 진실을 아는 일, 그리고 그것을 바로 세우는 일’을 목표로 카카오에서 진행한 스토리펀딩이 무려 3천여 명의 독자 후원을 달성하였고, 당시 연재 내용이 이 책으로 탄생하게 됨과 동시에 전국 도서관으로 무료 배포되기까지 하였으니 그의 의지에 독자들이 기꺼이 화답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사 7대 미스터리로 본, 역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책은 총 7가지의 화두를 내던진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 국호 한(韓)의 비밀’로 이 나라의 이름이 왜 한국인지, 우리가 왜 한국인인지, 한(韓)이라는 글자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추적해나간다. 한(韓)의 근원을 쫓는 일이란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해하는 일이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가장 선행되어야 할 주제였음에 틀림없다. 두 번째는 ‘광개토태왕비의 사라진 세 글자’를 통해 일본의 임나일본부 조작의 역사를 파헤친다.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며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작한 임나일본부는 과거 진위를 의심받는 역사책 속에나 존재했던 나라, 임나가 한반도 안에서 백제, 신라와 함께 어우러져 있었고, 일본이 임나에 ‘일본부’라는 관청을 두어 관리했다는 설이다. 일본은 이 설을 광개토태왕비 속 흔적이 사라진 세 글자에 자의적으로 뜻을 끼워 맞춰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억지 주장에 대해 한국의 학자들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정설로 받아들인 것이 ‘석회도말론’인데 작가 김진명은 이 석회도말론을 비상식적인 논리로 규정하였다. 자국의 학자들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근거와 규명을 할 수 없다면 찬성할 수 없었던 그는 집념을 발휘한 끝에 마침내 사라진 세 글 자 중 한 글자인 동(東)자를 찾아내게 되고,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몽유도원>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 <황태자비 납치사건> 또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밝혀진 일본의 잔혹한 행위와 무자비한 역사 조작이 지닌 위험성을 알리려한 끝에 탄생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임나일본부와 같은 역사 조작은 단순한 학문의 영역에 머무르는 게 아니다. 역사 조작이 무서운 것은, 이것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결국은 침략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당시 군국 일본은 광개토태왕비를 악용해 임나일본부라는 말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기 땅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세웠고, 이에 따라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침탈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 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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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박정희 죽음의 진실’ 편에서는 대통령의 죽음 뒤에 숨겨진 존재를 추적해나간다. 단순히 김재규의 우발적 살인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의문들을 재구성해가며, 한미 관계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그림자를 들춰낸다. 이는 개인적으로 김진명 소설에 입문하게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서 제기되었던 핵개발 문제로 이어지고 있으니 보다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에서는 최근 김정남 살인 사건으로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 북한 문제와 밀접한 주제도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즉, 김정은이 과연 북한의 실질적인 일인자가 맞는 것인가 의문을 품음으로써 북한 권력구조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해나간다. 철옹성과 같은 북한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볼 방법은 없지만 그간의 숙청과정과 권력다툼을 통해 결코 김정은을 절대권력자로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김정남을 살인한 배후 세력에 북한 당국자가 있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마당이라 그의 추리가 꽤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책은 ‘이성계의 함흥차사 속에 숨은 사연’을 통해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막고 역사를 왜곡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어 ‘문자의 기원을 둘러싼 역사 전쟁’ 편을 통해서는 한자의 기원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알리는 놀라운 설을 통해 중국 고대사에 대한 재해석과 공자의 춘추사관으로 왜곡당한 우리 한국사의 모습을 조명한다. 이렇듯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은 작가가 그간 의문을 품고 추적해온 한국사의 숨겨진 비밀과 그것을 취재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이면의 조각들을 독자들에게 내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가 과연 진짜 역사일까,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가 밝히는 비밀들이 모두가 진실이라고 할 수 없고 이 조차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 뒷면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을 품는 그의 자세를 통해,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으려는 역사의식과 아울러 민족에 대한 주체성과 자긍심을 부단히 지녀야 할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우리 역사의 진정한 문제점은 과거의 기록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못지않게 이 사회의 역사의식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500년간 이웃 나라인 중국을 하늘로 보는 춘추사관, 이어진 일본의 지배와 식민사관, 그 후 군사독재를 겪으며 우리는 성숙한 문화적 내면적 의식을 크게 상실하고 현실적 가치에만 눈이 먼 채 인간을 너무나 왜소하게 보도록 길들여져 있다.

“돈이 최고”라든지 “돈 없으면 죽는다”는 등으로 표피적 현실에만 눈을 뜨고 있다 보니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와 역사는 눈앞의 물질보다 오히려 삶을 훨씬 가치 있게 하고 자신감을 북돋운다. 또한 사물을 정확하고 본질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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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를 읽으며 김진명 작가가 지닌 역사에 대한 소명 의식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그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때로는 역사에 지나치게 천착한 그의 글쓰기가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사명감을 갖고 대중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그의 시도에 많은 독자들이 화답하고 더욱 응원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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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셀프 트래블 - 2017-2018 최신 개정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8
김주희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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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매력의 여행지,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두근두근 해외여행!

이 책 한 권으로 든든한 말레이시아 맞춤형 가이드북!

 

 

 

   말레이시아에 관심이 가지게 된 것은 현지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으로 인한 뉴스 때문이지만, 텔레비전 화면 속에 스쳐지나가는 말레이시아의 이국적인 풍경에 묘한 매력을 느껴 찾아보기 시작했다. 두 번 정도 다녀왔던 태국과 인접한 나라여서 이와 유사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질 뿐 어떠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로서는 동서양의 발전된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도시의 세련된 분위기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아이가 점점 성장해 감에 따라 함께 가보고 싶은 해외 여행지 리스트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결혼 전 신혼 여행지로 마음에 두었던 코타 키나발루가 말레이시아 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크게 반가웠다. 수도인 쿠알라 룸푸르의 세련된 도시 관광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코타 키나발루에서의 휴양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신판 <말레이시아 셀프트래블>은 아이가 있다 보니 사전에 더욱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는 나로서는 매우 유용한 책이 되었다.

 

 

 

당신의 꿈꾸는 여행지 리스트에 ‘말레이시아’를 올려야 하는 이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도시 쿠알라 룸푸르는 물론 서구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지이자 주석 생산지로 서구 열강의 치열한 쟁탈전을 겪은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가 공존하며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가진 나라다. 열대의 정글과 바다를 품은 보르네오 섬과 말레이반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또한 말레이시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 40p

 

 

   말레이시아는 북으로는 태국, 남으로는 싱가포르와 국경이 닿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인접하여 곳곳에 다채로운 여행지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과의 시차가 한 시간 밖에 되지 않아서 부담이 없으며 아시아 최고의 국제 도시 환경과 <정글의 법칙>에 단골로 등장하는 열대 정글이 있어 천혜의 자연이 주는 매력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나라이다. 무엇보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의 종교와 문화는 물론, 식민지를 거치면서 유입된 유럽의 문화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하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고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섞인 말레이시아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고 하니 금상첨화이다.

 

 

  감히 아시아 국가 중 쇼핑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꼽고 싶다는 저자의 말은 유독 관심을 끈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13가지’는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처럼 책은 말레이시아의 주요 도시와 관광지를 소개하면서 나라의 역사, 정치구조, 교통, 숙박 정보, 자유 여행 일정 가이드 등 여행 시 유의할 점과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을 매우 꼼꼼하게 알려준다. 이 책의 저자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달언니’ 김주희 작가는 무려 7년 동안 틈날 때마다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검색할 만큼 변함없이 좋아하고 있다고 하니, 나도 얼른 떠나고픈 생각이 간절해진다.

 

 

 

 

진화하는 메트로폴리스, 쿠알라 룸푸르

 

 

   <말레이시아 셀프트래블>의 표지에는 아주 멋진 트윈 타워가 돋보이는 도시 야경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만 보아도 수도 쿠알라 룸푸르의 역동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단번에 느껴진다. 쿠알라 룸푸르는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6시간 30분 정도의 비행을 마치면 도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처럼 최첨단 시설의 공항과 저가항공의 발달로 여행 허브도시로써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특급 호텔들이 곳곳에 들어서있으니 여행자 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높을 만하다. 책에는 다양한 교통 편의 시설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법, 노선도 등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어서 이 책 한 권으로 낯선 말레이시아에서도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을 듯하다.

 

 

   주요 관광지는 높이 451.9m, 지상 88층의 위용을 자랑하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타워 앞에 펼쳐진 도심 속 휴식처 KLCC 공원, 5,000여 마리 이상의 바다 생물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 규모의 아쿠아리아 KLCC, 다양한 체험과 시뮬레이션 기구들로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과학체험관 페트로사인스 등등이 있다. 이외에도 쿠알라 룸푸르의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호텔,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부킷 빈탕과 우리나라의 이태원과 청담동으로 불리는 거리인 창캇 부킷 빈탕, KL 센트럴&차이나타운, 반딧불이 투어와 같은 스페셜한 장소도 소개하고 있어 예비 여행자들의 흥미를 이끈다. 책에는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음식점들도 함께 수록하였는데, 그 중 고려원이라는 인기 높은 고급 한식당도 있다 하니 왠지 반가울 듯하다. 더불어 5성급 호텔에서부터 다양한 숙박업소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숙소 선택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저자가 쇼핑하기에 좋은 곳으로 추천했을 만큼 최대 70% 할인의 기회를 즐길 수 있는 때도 있다고 하니 여기에서 나의 눈의 크게 반짝거렸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상 최대의 낙원, 코타 키나발루

 

 

코타 키나발루는 ‘섬’이라는 뜻의 ‘코타’와 동남아 최고봉인 ‘키나발루 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전 세계 산악인이 몰려드는 키나발루 산과 보르네오의 열대우림,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는 휴양지로서의 매력을 충족시키고 있다.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도 거의 없고 치안도 안정적이며 여러 민족의 문화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관광은 물론 문화적으로 흥미를 끈다. / 304p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코타 키나발루는 한국과는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다. 인천공항과 코타 키나발루 국제공항 간 직항 노선인데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함께 가기에 무리가 없을 듯한 비행시간이라 만족스럽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특급 리조트가 있어 가족 여행지로 인기가 높으며 유명 관광지임에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언제나 유쾌하고 정 많은 현지인 등으로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한다.

 

 

   주요 명소는 남아시아의 최고봉이라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키나발루 산,보르네오 지역에 살고 있는 다섯 부족의 전통가옥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마리 마리 민속마을, 코나 키나발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 첫손에 꼽히는 툰쿠 압둘 라만 해양국립공원 섬 투어,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폰툰 아일랜드 투어, 맹그로브 숲으로 둘러싸인 강을 따라 그곳에 서식하는 코주부원숭이와 반딧불이를 만나는 투어, 잔잔한 해변에서 조용한 휴식과 수영을 즐기거나 강을 따라 바나나보트나 카야킹을 즐길 수 있는 켈리베이 투어, 골프 마니아라면 아주 만족스러워 할 만한 골프 클럽도 여럿 갖추어져 있으니 다양한 연령층을 만족할 수 있는 휴양지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특히 다양한 로컬 레스토랑과 다국적 메뉴를 갖춘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가야 스트리트에 들러 맛있는 식사를 먹고, 힐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마사지와 스파를 경험하고 싶다.

 

 

 

가고 싶다, 말레이시아!

 

  이 외에도 말라카, 푸트라자야, 카메론 하일랜드, 페낭, 랑카위, 쿠칭과 같은 주요 관광지는 어디 한군데 안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곳인 듯하다. 책에 적힌 추천 일정 그대로만 따라 해도 완성될 멋진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 외에도 휴대용 미니 맵북과 지역별 상세지도, 여행 준비에 필요한 기본 정보들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이 책이 톡톡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책으로 충족되지 않는 정보들이나 궁금한 점은 저자의 블로그와 메일이 항상 열린 상태로 대기 중이라 하니 주저 하지 않고 물어보면 될 것이다. 한동안 육아 생활에만 전념하느라 몸도 마음도 피로한 상태인데 기회가 닿을 때 꼭 말레이시아 여행을 계획해봐야겠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고 싶다. 기다려라,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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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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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쓰다!

민감한 사람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줄 책!

 

 

  민감함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자극에 빠르게 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영향을 받는 데가 있다’ 이다. 즉, 민감한 사람이란 남들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외부 자극에 빠르게 반응을 보이며 내적 동요가 깊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소심하거나 내성적인 혹은 극도의 예민함을 보이는 이들에게 흔히들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다. 아마도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걱정하지 마”, “더 강해져야지.”, “남들과 어울려서 더 활달하게 생활해봐”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외향적이고 활기 넘치는 이미지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부족한 면에만 점점 집착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센서티브>의 저자 일자 샌드는 민감함이야말로 “신이 주신 최고의 감각”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민감함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다. 민감함을 단점으로 여기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고 좌절하기보다 ‘내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초점을 옮기는 방법을 배우고 터득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매우 민감한 성향의 소유자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민감성을 스스로를 인정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과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센서티브>는 민감한 성격 때문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따뜻한 응원의 책이 될 것이다.

 

 

민감함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자세

 

  인간은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듯이 민감한 사람들 역시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특별히 예민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들은 더 많이 받아들이고 깊이 생각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있을 때 너무 많은 인풋을 받아들여야 하는 탓에 금방 지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변사람들로부터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쉬워서 자신의 민감성을 반드시 고쳐야 할 단점으로 간주하게 된다. 또한 불쾌한 소음이나 냄새 등과 같이 신경 시스템의 균형을 깨트리는 인풋 때문에 자주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스러워지는 경험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감한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이나 불편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툼이 있을 만한 상황 속에 섞이거나 그것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는 일에 극도로 민감한 성향을 보이는 나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1장에서는 민감한 사람들의 다양한 특징들을 나열함으로써 나의 성향을 파악하고, 또한 얼마나 민감한지 스스로를 체크해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향들을 문제로 여길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민감한 사람들은 내향적인 성격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데, 오히려 이들은 많은 외적인 자극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사고와 상상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아 풍부한 내면의 삶을 이룰 수 있다. 비록 느리긴 하여도 긍정적인 가능성과 부정적인 가능성까지도 대비하는 치밀함을 지니고 있기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민감한 사람들이 반드시 내향적인 것이 아니며, 외향적이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내향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다양성을 인지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특정한 범주에 맞추어 동일시하는 것은 스스로의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제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여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성격과 성향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하고, 남은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도 내향적인 파트너가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 두 사람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오해할 것이다.

자기 자신과 다른 유형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많은 커플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 58p

 

 

높은 기준을 버리고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라

 

  애석하게도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다.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내 약점을 보지 못하게 노력해야 하며, 내가 원하는 걸 요구하지 않고 타인을 항상 배려함으로써 이기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행동 규칙이나 스스로의 원칙을 매우 높은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규칙이 너무 낡아서 이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융통성 없는 행동 규칙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원치 않았거나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경우 모든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려 탓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않는 경우이다. 이는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즉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낮은 자존감에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도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높은 기준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년 시절의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대감을 받고 자랐고 항상 바르고 착하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타인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했다. 누구에게도 화를 내본 적이 없었고,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으며 반드시 내 입장보다 타인을 먼저 고려하고 이해해야했다. 여러모로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이렇게 행동해야만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좋은 이미지로 바라볼 것이라는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타인을 위해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것들 때문에 그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책에서는 모든 관계에 에너지를 쏟으려 하지 말고, 나에게 채널을 맞출 것을 조언한다. 때로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직접 물어봄으로써 남들이 보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시도도 좋다. 나의 경우처럼 분노가 생기면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중립적으로라도 표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때 새롭고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사람들이 당신을 그룹이나 공동체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여전히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해독제 같은 역할을 한다. 당신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 그대로 살아갈 용기를 얻고, 다른 사람들과 더 오랜 시간 즐겁게 어울리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것이다. / 79p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민감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친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상황을 조정해야 한다. 그런 방법에 익숙해지면 다른 많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전보다 더 편하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 186p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민감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애써 자신을 바꾸거나 불편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간혹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 민감하지 않은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았다가 오히려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심리치료사들은 그들에게 “한계를 벗어나라”,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라”, “더 자발적으로 행동하라” 등의 충고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해질 수 있는 방법을 권유한다. 하지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자신을 그곳에 내몰고, 억지로 바꾸려 하다보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성실하고, 창의적이고, 직관적이고, 남의 영향을 받기 쉽고, 감정 이입 능력이 있고, 예민한 감각과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들의 삶에서 어려움을 가중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창의성, 존재감, 공감 능력의 근원이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을 동력으로 삼아 저자는 스스로가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고, 한결같은 응원자가 되어 결함을 특별한 능력으로 삼는 데 더욱 주목하기를 바란다.

 

 

  나는 평소에 둔감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민감한 쪽에 보다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민해지는 상황으로 나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그간 부단히 노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내면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을 기울인 끝에 민감하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외부 자극에 무던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장에 마찬가지로 외부의 자극을 줄이면서 내면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법을 소개하는데 나와 이 책을 찾은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 여기며 사랑하는 데 있는 듯하다.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를 응원해줄 수 있는 변함없는 최고의 응원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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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24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선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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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될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의 모든 것!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로맨스 소설의 고전!

 

 

  높은 언덕 위 아름다운 대저택에서 열리는 화려한 무도회. 그 속에서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연주곡과 능숙한 사교 솜씨를 뽐내는 남녀들이 은근히 주고받는 눈길들. 스무 살 이전, 한창 로맨스 소설을 읽는 데 빠져 있었던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은 단순히 영국 특유의 고전미를 앞세운 외국 로맨스 소설에 불과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인 오스틴 특유의 문체가 낯설어서 그저 부잣집 남자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에 집중한, 할리퀸 로맨스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이후 나를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에 빠져들게 한 것은 뜻밖에도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였다.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있었으나 다아시 역할의 매튜 맥퍼딘으로 하여금 영화를 몇 번이나 보게 만들었고, 남녀가 사랑하기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오해와 편견들을 딛고 끝내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꿈결 같은 이야기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 <오만과 편견>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 진리다.

이런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터라, 그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아무리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를 자기네 딸들 중 누군가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간주한다. / 9p

 

 

   <오만과 편견>은 딸들을 둔 부모라면 당연히 마음에 두는 만고의 진리를 시작부터 펼쳐놓는다. 특히 다섯 딸들을 둔 베넷 가의 부모라면 네더필드 파크에 입주한 빙리라는 부유한 남자의 등장에 자연스레 흑심을 품게 마련이다. 좋은 신랑감에게 딸을 시집보내려 안달이 난 베넷 부인의 바람대로 아름답고 선량한 맏딸 제인은 빙리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지성미와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성격의 엘리자베스는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와 묘한 감정을 주고받지만 높은 신분과 고압적인 분위기의 그를 보고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두 딸을 항상 부끄럽게 만드는 베넷 부인과 동생들의 경솔한 행동, 어울릴 수 없는 신분과 부의 장벽이 낳은 오해와 편견들로 인해 그들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소설은 이들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의 진정성을 들여다보게 되는 우여곡절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마침내 두 커플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한 인물과 감정 묘사를 통해 담아낸다.

 

 

   소설의 줄거리만 보면 역시 흔한 로맨스 소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나는 다시 읽기 전만 하더라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왜 고전으로 읽히는 것인지 내내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잘 쓴 로맨스 소설은 아닐까. 여성 작가로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던 문학적 현실을 딛고 후대에 어찌되었던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들이 마치 인생의 종착지가 결혼인 듯 그것이 환상처럼 아름다운 세계인 듯 그리며 오직 그것을 향한 결말로 맹렬하게 나아가는데, 여기에 제인 오스틴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오만과 편견>은 전형적인 로맨스의 구조적 황홀경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호감을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콜린스 씨의 애정은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다. 샬럿은 남자나 결혼 생활 자체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혼은 항상 그녀의 목표였다. 결혼은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별로 없는 여성에게 남은 유일한 생활 대비책이었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가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방책이었다. / 189p

"저는 한정 상속에 대해서는 어느 것에도 절대 감사할 수가 없어요. 여보. 양심도 없지, 대체 왜 우리 딸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가도록 정해 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거기다 그걸 전부 콜린스 씨에게 주다니! 왜 그 사람이 우리 재산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많이 가져야 하는데요?" / 201p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냉정한 현실과 날카로운 유머 속에 담긴 시대 풍자가 이 소설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왜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 전체의 신분 상승의 욕망을 결혼을 통해서 실현하려 했던 것인가, 답은 사회의 모순된 구조 속에 있었다. 딸들에게는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없는 비정상적인 현실이 그들을 남편의 수입에 목매달게 만들었고, 제인 오스틴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돈과 계층 간의 상관관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유머를 곁들어 위트 있게 담아낸 것이다. 상류 사회를 지향하는 속물 근성의 여성들로 가득한 당대의 세계관을, 은근히 풍자의 형식을 빌려 사회 전체를 비판한 그녀의 글쓰기를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런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은 정말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에 또 다시 읽을 때면 새로운 것이 눈에 보일까. 역시 고전은 몇 번이고 읽어도 새롭고 다시 읽히게끔 하는 힘이 있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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