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셀프 트래블 -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18
맹현정.조원미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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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풍요로움을 가득 품은 나라, 스위스 자유여행을 위한 모든 것!

이 책 한권으로 든든하게 준비하는 두근두근 스위스 여행!

 

   알프스로 대표되는 대자연의 풍요로움을 품은 나라, 스위스. 스위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 덮인 산의 웅장함과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달리는 기차를 떠올린다면, 그곳이 바로 스위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라 불리는 취리히와 각종 국제회의와 회담이 열리는 국제도시로 잘 알려진 제네바와 같이 세련된 도시 풍경을 품고 있기도 하니 유럽 여행 1순위의 나라로 손꼽힐만하다. 그 어디를 가든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교통 시설로 여행자들의 편의를 도우니, 자유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스위스의 다양한 매력을 보다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유럽 여행에 대한 로망을 모두 담은 나라라 할 수 있는 스위스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스위스 여행에 대한 주요 정보를 쏙쏙 담아낸 <스위스 셀프트래블>의 도움을 받아보자.

 

 

 

대자연의 여유로움에 지친 일상을 던져두고 오자

 

 

스위스 일정 짜기는 여행자가 직접 완성해가는 퍼즐과 같다. 단체 패키지 관광처럼 정해진 그림대로 하는 것이 아닌 원하는 바에 따라 도시, 마을, 산악 여행지를 선정하고 그 안에 문화, 예술, 휴식, 미식, 액티비티 등 하고자 하는 것을 조합하여 하나의 근사한 나만의 퍼즐을 완성해보자. / 20p

 

 

 

   <스위스 셀프트래블>은 스위스 정부 관광청 홍보 및 마케팅 관련 담당 업무에 재직 중인 두 저자가 공동으로 기획한 스위스 여행 가이드북이다. 늘 스위스와 관련된 업무에 몸을 담고 있어서인지 굉장히 밀도 있고 생생한 정보들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스위스 현지인들이 직접 추천하는 볼거리, 먹거리, 축제, 액티비티, 쇼핑 등 베스트 추천지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어 구성이 알차고 매우 유용하다. 책은 스위스 여행을 준비할 때 유의해야 할 목록들, 기간별 추천 일정들, 체계적으로 조직된 스위스의 각종 트래블 시스템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법들을 우선 설명함으로써 여행 전에 선행되어야 할 필수 준비사항들을 짚어본다. 여기에서는 스위스 여행 시 절대 놓칠 수 없는 다양한 관광 열차 이용법을 수록해놓은 부분이 유독 인상적이다. 파노라마 통창을 통해 알프스의 동화 같은 목초지대를 감상할 수 있는 골든패스 라인과 55개의 터널과 196개의 다리를 지나는 베르니나 특급, 알프스의 험준한 지형들을 관통하는 빙하특급, 스위스 건국 신화의 주인공인 빌헬름 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노선인 빌헬름 텔 특급과 같은 열차 여행이 스위스의 낭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스위스만큼 열차 여행이 어울리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보통 유럽 여행 시 도보 이동이 많은 탓에 많은 여행자들이 열차나 버스 이동 중에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위스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다. 잠든 사이 알프스의 초원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 평생 기억에 남을 알프스 산맥과 에메랄드빛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이 끝없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덕에 스위스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차량보다는 열차 여행을 택하는 편이다. 스위스 역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열차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 26p

 

 

 

 

 

 

 

   책은 스위스 제1의 도시 취리히, 셀러브리티가 찾는 고급 휴양지 생 모리츠, 포켓 사이즈 대도시 바젤, 호수가 아름다운 금빛 도시 뉴샤텔, 고색창연한 스위스의 수도 베른, 독특한 자연의 매력이 있는 융프라우 지역, 스위스 속 작은 이탈리아 루가노, 마테호른과 청정 산악 마을 체르마트, 국제회의가 열리는 곳 제네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로운 루체른 외 지역별 주변 지역들까지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이 “아, 스위스 융프라우! 그곳에 가지 않고서는 스위스에 갔다고 할 수 없지요.”라고 말씀하셨다던 바로 그곳,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대표적인 지역으로 손꼽고 있는 융프라우 지역에 나 역시 가장 많은 관심이 갔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하이킹을 할 수 있는 하더쿨름에서부터 만년설과 빙하에서 스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융프라우요흐, 007 제임스 본드가 선택한 명봉인 쉴트호른 등의 책에서 추천하는 모든 명소가 인상적이다. 등산 경험이 별로 없는 초보자들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코스도 있으니 대자연을 벗 삼아 하이킹을 해보는 경험을 꼭 놓치지 않기를 추천한다.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3개의 산이 중심인 이 지역은 융프라우 철도가 고산지대를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교통시설과 각종 여행제반시설들을 뛰어나게 갖춰놓았다. 그러한 까닭에 ‘뜨악’ 소리가 나도록 여행비용이 비싼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이킹을 하면서 만날 수 있는 앙증맞은 샬레, 새하얀 만년설이 내려앉은 3,000m 급의 봉우리, 이슬 내려앉은 푸르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떼, 만년설에서 서서히 녹아내려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를 체험하기 위해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 204p

 

 

 

 

 

 

 

   이 외에도 책에는 각종 명소와 식당 마다 주소와 전화번호, 가격 등 참고하기 좋은 정보들이 상세히 기록되었음은 물론 각종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페스티벌 등의 정보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오직 스위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스위스 와인이나 치즈, 초콜릿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연간 세계 1위 수준의 소비량을 자랑하는 스위스 초콜릿, 알프스 물과 같이 청량한 스위스 맥주 등이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도 살펴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이렇듯 스위스는 일상의 시름을 훌쩍 털어놓고 넉넉한 마음을 품어 올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나라를 여행하고자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미리 <스위스 셀프트래블>을 꼭 읽어보길 권유하고 싶다. 책만 읽어보아도 마치 스위스를 누비는 관광 열차에 탑승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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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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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침묵한 한국 현대사에 복수의 칼날을 드리우다!

추악한 음모와 예고된 살인, 숨 막힐 듯 치밀한 전개가 압도적이다!

 

 

 

   우리는 진실을 촉구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광장은 사상을 초월하여 오직 진실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자유의지의 공간으로써, 오늘의 민주주의는 나의 부모와 혹은 그 이전의 부모들이 지켜온 광장에서 더욱 성숙하게 자라왔다. 그러나 우리의 높아진 시민의식을 대변하는 광장의 반대편에는 불행하게도 국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들이 늘 존재해왔다.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기관마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때로는 각종 시국 조작 사건들에 앞장서서 시민들을 탄압하고 폭력과 광기를 일삼았다. 그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던 많은 희생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해왔지만, 문득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소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울한 한국사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겪어야만 했을 그들과 혹은 그들의 자식들이 입은 상처까지 살피기엔 아직도 힘겨워 보인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내부의 소용돌이 속에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침묵으로 눈을 가리는 편을 선택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침묵 당하는 모든 진실을 독이 된다

 

 

  이 소설은 1980년대 부당한 국가권력의 횡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 466p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국가기관이 조작한 시국 사건에 희생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스스로 전사이자 심판관이 되어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드리운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영혼의 조련사이자 심판관을 자처한 살인자들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카론과 이집트 사자의 신 아누비스가 되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배후조종자들을 집요하게 처단해간다. 소설은 공안부 검사 출신의 늙은 변호사 장기국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뛰어든 경찰 두식과 범죄심리학자 수연, 검사 준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추리소설의 형식이다.

 

 

 

‘심장 무게달기’ 의식은 이집트 신화를 묘사한 ‘사자의 서’ 125장에 잘 나타나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할 때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세 재판관에 의해 의식이 치러진다. 호루스와 아누비스, 토트가 재판을 맡은 신이다. 아누비스는 영혼의 길잡이로,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의 한쪽 접시에 올려놓는다. 진실의 여신 마트는 머리 장식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 반대쪽 접시에 올려놓고 함께 무게를 잰다. 심장을 얹힌 접시가 죄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암미트가 심장을 먹어치운다. 암미트는 머리는 악어, 위쪽 몸통은 사자, 그리고 아래쪽 몸통은 하마 모습을 한 암컷 괴물이다. 심장을 잃어버린 자는 사후에 영원히 생명을 얻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이 동영상 역시 영혼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의식이다. / 166p

 

 

법의 지배가 확립된 이후 사적인 복수는 금지됐다. 법이라는 제3자가 복수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처절한 복수극을 갈망한다. 복수는 정의를 빙자해 짜릿한 전율을 원하는 대중의 금지된 욕망이다. / 397p

 

 

 

   앞서 작가가 ‘국가권력의 횡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하였듯, 굉장히 엽기적이고 치밀하게 기획된 복수 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잔인하고 서슬 퍼런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추리소설보다 다소 묵직하게 다가온다. 억울하게 국가권력에 희생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상처들을 진정성 있게 다루는 것은 물론, 그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해 다소 기괴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작가의 시도는 충격만큼이나 자성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한다.

 

 

 

왜 코뿔소인가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장기국의 실종, 배종관의 논문집, 메일에 올라온 글,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동영상, 고석만의 그림, 블로그, ‘심장 무게달기’ 의식 동영상, 메멘토 모리에 이르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추리의 퍼즐을 완성해 가는데 매우 흥미롭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살인사건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코뿔소」, 「코뿔소를 위하여」, 「코뿔소를 위한 변명」에 이르는 세 편의 소설들은 꽤 훌륭한 장치가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코뿔소인가. 세 편의 소설은 수사관들이 범인의 움직임을 쫓는데 굉장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소설 속에 코뿔소가 등장하지 않는 점을 의아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책은 말미에 이르러서야 코뿔소의 특징을 설명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고.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라며.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으며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고. 이는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어떤 운명과도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의 한 단면을 시사하는 듯하다. 부모, 즉 과거의 트라우마가 대대로 이어져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과거가 덧씌운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끔 만든다. 그렇다고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머무를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나의 아이 혹은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굴레를 딛고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단순히 복수로 점철된 추리소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단순한 합의에 이르는 예정된 결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읽는 내내 치밀하고 견고한 구성과 발상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과거 작품에 연이어 이 작품 역시 역사과 현 시국, 추리라는 요소를 탄탄하게 소설적 감각으로 완성하였듯, 그만의 문학 제국을 이뤄가는 그의 차기작도 계속해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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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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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이상, 뒤틀린 열정의 초상을 담은 20세기 최고의 고전!

젊은 날의 욕망, 맹목적인 사랑의 현신 개츠비의 ‘위대함’이 살아 숨 쉬다!

 

 

   인간의 삶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쫓는 기나긴 여정이다. 돈과 사랑, 성취와 신념, 자유와 용기 등 저마다의 기준에서 가장 빛나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는 단연, 오늘날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목록 중 가장 윗부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가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이름처럼 위대한 작가의 분신으로 남아 오늘날 더욱더 많이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를 수식하는 ‘위대함’이라는 이 엄숙하고 경이로운 단어 앞에는 늘 의문이 붙는다. 왜 ‘위대한’ 개츠비인가.

 

 

 

세속적인 가치 너머로 빛나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

 

 

   개츠비는 바다 너머에서 작게 빛나는 녹색 불빛 하나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채권맨으로 동부 뉴욕의 웨스트 에그로 온 닉 캐러웨이는 호화스러운 저택에 사는 이웃 개츠비의 그런 모습을 우연히 바라보게 된다. 닉이 사촌 데이지와 그녀의 부유한 남편 톰 뷰캐넌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이었다. 그해 여름, 개츠비의 저택에서는 연일 화려한 파티가 열렸고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까닭에 닉은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공식적인 초대장을 보내온 개츠비로부터 초대된 닉은 그와 마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는 둥, 전쟁 중 독일 스파이였다는 둥, 실체를 알 수 없는 개츠비를 둘러싼 초대객들의 무수한 소문으로 인해 닉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그러던 가운데 닉은 자신과 남녀의 감정을 나누고 있는 골프 선수 베이커를 통해 개츠비는 8년 전에 그의 사촌인 데이지의 연인이었고, 절박한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닉은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열렬한 그리움을 알게 되면서 그녀와 재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개츠비가 이뤄온 부와 성공이 오직 그녀를 얻기 위한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다시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마치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의 가치에 대한 옅은 의심이 일어난 것 같았다. 거의 오 년이었다! 심지어 그날 오후 데이지가 그의 꿈의 일부를 혼란스럽게 했다 해도 틀림없이 그것은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환상이 가진 거대한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창조적 열정을 가지고 그 자신을 환상 속에 던졌고, 계속해서 더해갔으며, 그의 길 위에 표류된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아무리 많은 불길과 새로움으로도 한 남자가 자신의 유령 같은 마음에 축적하려는 것에 도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 158p

 

 

 

   애석하게도 개츠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한 데이지는 돈처럼 즉시 쓰여질 수 있는 힘을 보다 더 믿는 속물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톰이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정부를 두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유한 재산에 머물러있는 쪽을 택해 왔다. 한때의 연인이자 백만장자가 되어 돌아온 개츠비의 등장은 그녀로 하여금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렇듯 부와 성공이 그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개츠비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배경을 사랑하든, 그를 사랑하였든 이미 인생을 걸고 그녀에게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탄 개츠비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어느 여름 오후에 개츠비와 닉, 베이커, 톰과 데이지는 함께 시내로 나갔다가 비운의 사고를 겪게 되고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위험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고 만다.

 

 

 

   무능하고 실패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임스 개츠에서 제이 개츠비로 이름을 바꿔 살아온 그의 인생 여정이 쓸쓸하게 막을 내리는 과정은 이 위선적이고 비정한 현실에 대한 씁쓸한 여운을 안겨준다. 닉이 개츠비에게 “자넨 그 모든 빌어먹을 작자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훨씬 가치 있네.” 라고 말하며 경의를 표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왜 개츠비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자본주의 욕망 앞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의 열망을 쫓는 개츠비를 통해 인간 본연의 위대함을 형상화하여 20세기를 뛰어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돈이 목적이 되어버린 물질 만능의 시대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야 할 것들에게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다.

 

 

 

불친절하지만 가장 실제적인 문장의 가치를 빛낸 번역서

 

 

   사실 이 작품의 완성도는 이러한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묘사와 문체로 문학적 가치와 질을 높이는 아름다운 문장에 있다. 닉이라는 인물을 통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한 문장들은 문학적 가치를 한층 높인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한 작업은 역시 번역자에게 있을 것인데, 따로 역자 노트를 마련하면서까지 이에 많은 공을 들인 듯한 이 책은 보다 직역에 힘을 기울여 실제적인 문장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의 완성도를 언급하지만 유독 이 부분에 강조를 아끼지 않는 것에, 나는 이례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소장하고 있던 다른 출판사의 <위대한 개츠비>와 함께 두고 읽는 수고를 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번역자의 친절함이 가미된 의역이 문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사실이나, 불친절하기는 하지만 이정서의 번역으로 탄생된 문장이 보다 강렬하고 실제적인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다고 느꼈다. 특히,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빠져드는 순간을 묘사한 문장과 마지막 장면은 다른 번역서들보다 완곡하지만 감동적이다.

 

 

 

그의 가슴은 데이지의 흰 얼굴이 그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점점 더 빠르게 고동쳤다. 그가 이 아가씨에게 키스하고, 그의 순전한 비전을 그녀의 변하기 쉬운 숨결에 영원히 합치시켰을 때, 그의 마음이 결코 신의 생각처럼 다시 즐겁게 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별이 연주하는 음차를 한순간이라도 더 듣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이 닿았을 때 그녀는 꽃처럼 그에게 피어났고 생은 완벽했다. / 182p

 

 

개츠비는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그 풋풋한 불빛을,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때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고…… 그리고 어느 날 좋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 289p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문득, 우리가 위대하다고 표현하면서까지 데이지를 사랑한 개츠비 역시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려져 있을 뿐, 상류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현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바다 너머에서 작게 빛나는 녹색 불빛 하나를 쫓던 개츠비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가슴 속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녹색 불빛 하나를 내내 쫓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다만 기꺼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개츠비처럼 그 과정 속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기를, 그리고 그곳으로 나아가기를 바래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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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나트랑 셀프 트래블 - 호이안.후에,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33
한동철.이은영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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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세로 떠오르는 대표 휴양 도시 ‘다낭’ 맞춤 여행 가이드북!

이 책 한 권이면 든든하다, 여행 준비 끝!

 

 

  두 돌이 된 아들과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베트남의 ‘다낭’이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보니 휴양을 목적으로 하되, 비행거리가 짧아야 한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어야 했는데 다낭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을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후기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으로 다낭을 찾는 흔적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가장 주목받는 휴양 도시이자 대세라고 불린다는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러던 찰나에 다낭을 포함하여 나트랑과 호이안, 후에에 이르는 인근 지역에만 집중한 가이드북이 출간되어 흥미를 끌었다. 베트남 전체를 아우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지역에 딱 맞는 맞춤형 가이드북이다 보니, 두께나 무게도 가벼워 이곳을 찾으려는 여행자들에게는 군더더기 없이 만족스러운 안내서가 될 것 같다.

 

 

 

 

최근 가장 완벽한 휴양지로 부상하고 있는 다낭

 

 

   <다낭 ‧ 나트랑 셀프트래블>은 재미있게도 부부가 함께 쓴 여행 가이드북이다. 2017년 2월까지의 취재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보다 최신 정보가 수록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를 동시에 준다. 책은 베트남 중에서 다낭, 호이안, 후에, 나트랑을 중점적으로 하여 알짜배기 정보들만 쏙쏙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과 바다, 강과 아름다운 유적 외에도 신나는 테마 파크과 진흙 온천과 같은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이곳만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낭은 최근 가장 완벽한 휴양지로 부상하고 있어 짧은 휴가기간을 활용해야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5시간가량의 짧은 비행시간에 바로 해변에서 10분 거리인 다낭 공항에 도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다낭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 미 공군과 해군 기지가 설치되었으며, 현재까지 베트남 중부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넓고 넓은 한적한 해변이 멋진 다낭은 아름다운 자연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책에 수록된 다양한 추천 여행코스를 살펴보면 베트남의 자연문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운 여행에 도움이 될 듯하다. 책에는 여행 준비 방법과 떠나기 전에 들러보면 좋은 유용한 사이트, 각종 유사시에 필요한 기관의 연락처, 주요 베트남어 등과 같은 필수 정보에서부터, 짝퉁 택시나 흥정과 같이 주의해야 할 각가지 사항들 또한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다낭은 매력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인 것 같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6대 해변인 미케 해변과, 레이디 붓다라 불리는 하얗고 거대한 해수관 음상이 인상적인 영응사, 다양한 볼거리가 모여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다는 오행산(수산 2번 입구의 엘리베이터만 봐도 입이 벌어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잡지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으로 선정했다는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 하이반 패스 등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고도 차이와 가장 긴 싱글 로프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나힐 케이블카 역시 꼭 한 번 가보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단, 여기에서는 레스토랑 거리의 음식 가격이 비싸고 음식 맛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니, 무조건 좋다고 과장하지 않고 현실적인 팁을 전하려는 저자의 배려(?)가 고맙다. 이 외에도 쇼핑점, 부드러운 마사지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마시지숍, 식당, 바는 물론 어마어마한 스펙을 자랑하는 다낭 최고의 5성급 리조트와 3성급에 이르는 호텔까지 다양하고도 유용한 정보가 실려 있으니 선택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다낭 보다 더 매력적인 인근의 관광지

 

 

   사실 다낭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여행지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인근에 베트남 문화를 깊이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있어서 더욱 이목을 끈다. 전형적인 베트남 시골 풍경이 살아 있는 곳으로, 들과 바다를 누비며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체험하는 에코투어로 인기가 있는 호이안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견되는 후에 역시 궁과 왕릉, 사원과 같은 유적지를 많이 볼 수 있을뿐더러, 베트남 전쟁의 흔적까지 엿볼 수 있으니 베트남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머물고자 한다면 리조트와 호텔 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부대시설까지 책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외에도 휴양지의 정석이라고 불린다는 나트랑은 인천에서 출발하는 직항편까지 있다고 하니 베트남 여행자들에게는 선택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간 베트남 하면 호치민이나 하노이를 떠올리기 쉬웠지만, 이 책을 통해 알지 못했던 베트남의 다른 도시와 매력들을 많이 발견했다. 직접 발품 팔아 현지의 숙소와 식당 등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전달한 두 저자 덕분에 일정과 가볼 곳을 선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표지처럼 넓은 백사장을 느긋하게 거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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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내 유년의 빛
베이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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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최초의 동력은 바로 유년의 기억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좇아 베이징을 재건하다!

 

 

  한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기억이라는 저장소는 뜻밖에도 바로 이전의 과거가 아니라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는 듯하다. 나의 최초의 동력을 이끌었던 곳, 이른바 유년시절의 고향 말이다. 태어나 스무 해가 넘도록 살았던 나의 고향은 2군 사령부를 마주보고 있는 2층 양옥집이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항상 보초를 서고 있는 군부대라는 위압감 앞에서 개발은 더뎠고, 그래서 조용했던 동네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밖이나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어울려서 노는 것이 당연했던 때라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그나마 동네를 훈훈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네를 벗어나 살아서 이따금 그곳을 찾아갈 때면, 이렇게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을 만큼 한산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적막하게 느껴진다. ‘내게는 완전히 낯선 도시였다. 자신의 고향에서 이방인이 된 셈이었다’는 표현을 서두에 쓴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의 저자 베이다오 역시 오랜 이국 생활에서 돌아온 베이징을 보는 순간 아마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고목이 봄을 맞고 사라진 냄새와 소리 그리고 빛이 돌아오게 하여 나의 베이징을 재건하고 싶었다던 그의 선언이 나의 옛 추억과 풍경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시대 속에 담긴 유년의 일상   

 

 

   1992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중국의 대표 시인 베이다오의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은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베이징을 글로써 재건한 자전에세이다. 이 책과 하나의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상하이, 여자의 향기>가 상하이를 한 편의 풍경화처럼 묘사한다면,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은 저자의 삶을 동력으로 하여 격변의 시대를 누빈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민낯에 보다 더 밀착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오쩌둥이 3년 동안 미국을 제압한다는 명목으로 농업을 희생하여 공업을 발전시키려던 정책이 실패하면서 전국적으로 식량부족과 기아현상을 일으킨 3년 곤란시기, 광기어린 축제와도 같았던 문화대혁명, 사회주의 교육 운동과 무력을 이용한 교화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때를 살아야 했던 당시 중국인들의 곤란한 삶이 피로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 속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낸 저자의 일상은 마치 일기를 들춰보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절에도 낭만을 잃지 않는 아버지 덕분에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추억들이나 ‘세 검객’이라 불릴 정도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친구들과의 일화며, 가난해도 노천 농산물 시장에서 사달라고 졸라 기르게 된 토끼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전전했던 사연들은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책에 간간이 실려 있는 흑백사진은 당시의 풍경을 더욱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비록 순수했던 유년의 기억에 시대와 사상의 온상이 겹쳐져 서글프고 처연한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따스한 빛과 정서를 잃지 않는다.

 

 

나는 또 남자아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놀이들을 발견했다. 예컨대 ‘팽이치기’다. 이는 ‘매국노 때리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일본과 전쟁을 하던 시기에 생겨난 놀이라서 그런 것 같다. 팽이는 대부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곡괭이 손잡이를 톱으로 자른 다음, 칼로 원추형으로 깎아 뾰족한 부분에 자전거 베어링을 박아 넣고 넓적한 부분에는 다양한 색깔로 원을 여러 개 그려 넣었다. 그런 다음 빨랫줄을 대나무 막대에 묶어 채찍을 만들었다. 팽이는 정말로 매국노나 소인배처럼 고약했다. 채찍으로 세게 후려칠수록 더 말을 잘 들었고, 후려치지 않으면 이리저리 비틀거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베이징 남자들이 “이 멍청이, 매를 버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 62p

 

 

내 기억 속의 두 번째 레코드판은 차이콥스키 「이탈리아 기상곡」으로, 컬럼비아사에서 제작된 78회전 검은색 에보나이트 레코드판이었다. 70년대 초반, 나와 차오이판, 캉청 등이 자주 우리 집에 모이곤 했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등으로 찬바람에 저항하는 듯한 분위기의 모임이었다.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이 살롱에는 남몰래 금단의 열매를 맛보는 희열이 있었고, 여인들이 가져다주는 낭만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작가인 동시에 독자이자 평론가였다. 당시 우리가 썼던 초기 작품들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된 음악이 스며들어 있었다. / 82p

 

 

 

 

 

비틀린 축제와 광기, 문화대혁명

 

 

폭력은 찌는 듯한 더위를 따라 더욱 고조되었다. 도처에서 끊임없이 비판투쟁과 조리돌림, 가택수색, 재산 몰수, 구타가 벌어졌다. 베이징 시내 전체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모든 사람을 전율케 하는 그 악명 높은 ‘붉은 8월’이었다. / 237p

 

 

   1960년대를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있어 ‘문화대혁명’은 자신들의 일상을 뿌리 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이후부터 민주화 운동에 이르는 격변의 시기가 있었듯 중국인들에게도 문화대혁명은 개인과 집단을 송두리째 쥐고 흔든 광란의 시기였던 게 분명한 듯하다.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베이징 제4중학에 입학하게 된 저자 역시 시류에 휘말리거나 혹은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수업은 줄줄이 폐지되고, 학교 내에서도 출신 문제 때문에 각종 파벌에 따른 분화가 심해진 관계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던 시대였다. 이후 40년간 ‘평민’과 ‘귀족’의 경계가 역사의 상흔이 되어 아물지 않고 있다 하니, 중국인들에게 이 격변의 시기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클지 충분히 가늠된다.

 

 

교장과 교사들의 권위와 위엄, 지위가 하룻밤 사이에 땅에 덜어지리라고는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먼저 대자보가 천지를 뒤덮었고 비판투쟁대회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절정은 1966년 8월 4일 일요일이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학교 임원과 교사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죄명이 적힌 팻말을 목에 건 채 조리돌림을 당한 다음 운동장으로 끌려나왔다. 그들은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욕지거리와 주먹질, 발길질 사이로 치욕스럽게 비틀거리면서도 지나가야 했다. / 242p

 

 

 

 

 

 

   비록 나라도 다르고 같은 시절을 공유한 적도 없지만, 책은 진하고도 애잔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아마도 어려운 시절에 함께 배곯아가며 상처를 보듬었던 가족애와 친구로부터의 우정이 시절을 막론하고 모두로 하여금 비틀거리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신께서 저를 불러 아들이 되게 하셨기에 저는 당신을 따라 아버지가 되었습니다”는 글귀는 그래서 더 사무친다. 또한 상큼한 민트색 표지 아래에 천진난만 하게 뛰노는 소년은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오랫동안 책의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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