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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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에 무엇으로 답변할 것인가

예술과 정치의 괴리 속에서 신음한 어느 예술가의 고뇌!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문득, 북한 체제의 현실을 고발한 소설 『고발』속의 글귀가 떠오른다.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공산주의 내부에서는 자유의지를 강탈한 독재자를 위해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연극인이 되어야만 했다. 레닌과 스탈린을 잇는 암흑의 러시아를 살아간 이들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러시아가 코끼리의 고향이 될 수 있고, 베토벤의 고향 또한 러시아가 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예술가라면 응당 어떤 정치적 지시도 없이 오직 그들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창의성을 빛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의 존재론적인 가치마저 체제의 형장에 가두고 마음대로 총살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부름에 응답해야만 하는 연극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줄리언 반스의 신작 『시대의 소음』은 이러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로, 예술과 정치의 괴리 속에서 신음해야만 했던 이 예술가의 내적투쟁을 치열하게 그려나간다.

 

 

 

예술이 권력에 혀가 묶이고

 

 

   윤년엔 악운이 깃든다고 했던가.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삶 중에서 ‘최악’이라 꼽은 시기는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12년을 주기로 찾아왔다. 소설은 바로 1936년, 1948년, 1960년에 이르는 이 세 시기를 중심으로 살얼음판을 걷듯 인생의 시험대에 올라야만 했던 그의 삶을 조명한다. 이야기는 스탈린 앞에서 선보인 연주곡을 망친 이유로 곡을 금지당하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그가 매일 밤 승강기 옆에서 체포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연주곡은 갑자기 요란하게 짖어대 주인의 기분을 거스른 개와 같은 꼴이 되었고, 그의 죄는 또한 정치적인 것이기도 했다. 우호적이었던 언론은 물론 고위 관료들로부터 그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낙인찍혔고, 자신의 후원자이던 투하쳅스키 마저 반스탈린 쿠데타를 주도한 혐의로 처형당하면서 그 역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도시 전역에서 매일 밤 체포되기를 기다리는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체포되는 모습만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는 승강기 옆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는 어째서 권력층이 이제 음악에, 그리고 그에게 주의를 돌리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권력층은 항상 음보다는 말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작곡가가 아니라 작가들이 인간 영혼의 기술자로 선포되었다. 작가들은 <프라우다> 1면에서 단죄를 당했고, 작곡가들은 3면에서 비난을 받았다. 두 면은 따로따로였다. 그러나 별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죽음과 삶을 가를 수도 있었다. / 62p

 

 

 

   친구와 후원자는 모두 죽었지만 그는 결국 살아남는다. ‘우리는 꿈꿀 때만 쉴 수 있다’던 시인 블로크의 말처럼, 이제 살아남았으니 가족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대중적이고, 인민이 듣기 좋은 음악을 쓰는 것으로 권력의 호의에 응답해야만 하는 운명 앞에 놓인다. 이는 1984년, 두 번째로 찾아온 최악의 시기 속에서 그의 날선 고통이 더욱 극대화된다. 적절히 지도를 받기만 한다면 명쾌하고 사실주의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최고위층의 견해에 따라 교육받아야 했던 그는 마침내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문화 과학 세계 평화 의회에 참석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는 그곳에서 소비에트적 가치의 대표이자 얼굴마담 역할을 하며,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어야했고 그간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던 스트라빈스키를 비판해야 했다. 체제에서 벗어나 이상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미국인들 앞에서 작곡가 조합의 일원이 아니면 악보 용지조차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할 수도, 권력층으로부터 자신의 오페라가 살해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과감히 드러낼 수 없는 데에서 자기혐오를 느낀다.

 

 

 

아이러니는 파괴자와 사보타주 주동자들의 언어로 통했기에, 그것을 쓰면 위험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는―어쩌면 가끔씩은, 그는 그러기를 바랐다―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낼 정도로 커질 때조차―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음악, 그의 가족, 사랑. 사랑, 그의 가족, 음악. 중요도는 바뀔 수 있었다. 아이러니가 그의 음악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잘못된 귀들이 듣지 못하도록 소중한 것을 숨겨서 통과시킬 수 있는 비밀의 언어로 음악이 남아 있는 한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암호로만 존재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말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 127p

 

 

 

   세 번째로 찾아온 최악의 시기, 1960년에는 스탈린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 그간 스탈린의 부름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각종 상을 받으며 영예를 되찾은 그이지만, 공산당은 러시아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을 억지로 맡기면서 입당을 강요한다. 공포가 끝나니 당 입적이라는 영혼의 소유를 요구받는다며 자신의 처지를 넋두리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갖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나 도덕적 자살을 결심해야 하는 그의 가혹한 운명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소설은 이렇듯 시대의 소음에 피폐해져가는 예술가의 고뇌를 매우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겁쟁이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삶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던 그의 자조는 참으로 서글프기까지 하다. 결국 이러한 자기혐오와 고뇌는 완벽하게 순응하기보다 사회가 듣고 싶은 것을 들려주되, 그들이 읽어낼 수 없는 체제의 아이러니와 조롱을 교묘히 담아내 저항함으로써 예술가 본연의 뜻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데에는 바로 현실을 통찰력 있게 담아내려는 그의 의지를 음악 속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 135p

 

 

그는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그 음악-우리 존재의 음악-누군가에 의해 진짜 음악으로 바뀌는 음악.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면,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181p

 

 

 

   『시대의 소음』은 사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이야기적인 요소가 아닌, 주인공인 쇼스타코비치의 의식과 그 흐름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전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그러했듯 나에게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 친절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시대를 통찰하고 예술가의 내적 내레이션을 그만의 지적 감수성으로 치열하게 문장을 통해 담아내려는 소설가적 사명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는가, 시대의 소음을 떠내려 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우리 존재의 음악을 고수하려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가 던지는 질문에 우리 역시 응답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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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기 전에 -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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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 없는 비극,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재구성하다!

1차 세계대전이 한반도의 안보에 던지는 질문과 경고들!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ICBM을 발사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소형화 기술 발전을 향한 이번 발사는 미국과 국제 사회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핵과 ICBM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앞세워 체제를 공고히 하고 힘의 우위를 선점하여 한반도를 자신들의 뜻대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던 정부와 미국은 보다 강력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봤을 때 실효성은 미지수다. 선제타격론이나 북한 핵 위협을 무력화하기 위한 방법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단호함만으로는 평화를 담보할 수 없고, 서로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마냥 낙관적인 태도로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우리에게는 냉정한 상황인식과 절제된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낙엽이 지기 전에>의 저자인 김정섭은 현재 국방부 고위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실무자로서 “잘못된 정세판단, 군사와 외교의 단절, 위기관리에 대한 몰이해로 발발한 1차 대전이 한반도에 던지는 교훈”에 주목한다. 1차 대전처럼 의도하지 않아도 일어날지 모르는 한반도 전쟁의 위기 앞에서 이를 극복해나갈 민군관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 의문을 던진다. 이것은 곧 1차 대전이 우리에게 전하는 심각한 경고이며, 진중한 메시지인 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선택들

 

 

   <낙엽이 지기 전에>의 저자 김정섭은 1차 대전은 온갖 아이러니가 가득 찬 수수께끼 같은 전쟁이었다고 평가한다. 주모자를 지목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침략자 없는 전쟁에 가까웠고, 영토 정복과 경제적 이권 같은 탐욕의 충돌도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방어전쟁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며 뛰어든 전쟁이었고, 당시 서유럽 열강들이 지닌 공격지상주의 신화, 단기전의 환상은 국가적 차원의 일치된 전략적 결정이 아니라 그야 말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뜻밖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 독일 빌헬름 황제 역시 수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될 정도로 장기간에 걸친 대재앙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1차 대전이 특별히 비극적인 것은 잘못된 믿음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방어가 유리했는데도 공격우위의 악몽에 짓눌렸고, 전쟁이 불가피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체념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였건만 그 준비는 언제부턴가 자체 논리에 의해 움직였고 아무도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탐욕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전쟁, 억제를 위한 노력 때문에 억제가 깨진 전쟁이 바로 1차 대전이었다. / 34P

 

 

  독일은 비스마르크가 재상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현상유지적인 유럽 질서와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 황제 빌헬름 2세의 등장으로 친러정책을 폐기하고, 독일의 번성을 바탕으로 제국 확장에의 야욕을 드러낸다. 독일이 해군력을 증강시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우려한 영국은 자신들을 향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프랑스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독일을 주변국으로부터 고립시키려 한다. 아울러 러시아 역시 병력과 중화기를 대폭적으로 증강시키고 있었으며, 프랑스는 방어위주 작전이 아닌 기동성에 바탕을 둔 공격 위주의 군으로 개편한다. 이렇게 요동치는 서유럽 열강들 간의 역학변화 속에서 마침내 유럽의 화약고와 같은 동남부 발칸지역에서 1차 대전의 방아쇠가 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사라예보에서 18세 청년과 세르비아 내 지하조직 ‘검은 손’에 의해 오스트리아 왕국의 황태자 암살 사건이 벌어지고만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를 구실로 단호한 대응책을 펼치기 위해 독일로부터 전적인 지원을 약속받는다. 사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국지 전쟁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안이 독일의 지원으로 인해 세계 대전으로 확대될 단추가 끼워진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 하에 세르비아가 종속되는 것을 우려하여 당시 러일전쟁의 후유증으로 더 이상 전쟁을 벌일 수 없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준비태세를 갖추어나간다. 이들의 모습은 전쟁으로 보이기에 충분했고 유럽 각국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너도나도 연쇄적으로 동원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비록 발단은 발칸 지역의 분쟁이 원인이었다고는 하나 이렇듯 세계의 열강들이 하나같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유럽 대륙 내 힘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우려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이 군사를 일으키면서도 반드시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빌헬름처럼 길어야 3주 정도에 그치는 단기 전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상하게도 1차 대전에서는 군사작전이 가져올 정치적 결과, 즉 전쟁의 궁극적 목적과 이후에 대한 토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쟁이 요구하는 엄청난 피의 대가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배제된 채 마치 ‘눈을 뜨고 있었지만 보지 못하는 몽유병 환자처럼’ 유럽은 제 발로 재앙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만 것이다.

 

 

짜르의 표현대로 하면 “힘을 과시함으로써 평화를 지킨다.”는 정책이었다. 문제는 모든 나라가 같은 생각으로 부딪혔다는데 있었다. 사조노프뿐만 아니라 베르히톨트도, 베트맨도, 포앵카레도 모두 단호함을 부르짖었고 그것이 평화를 담보한다고 생각했다. 위기 시에 가장 어려운 일은 성급한 행동을 삼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위기의 먹구름이 모두의 시야를 가릴 때 절제의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 156P

 

 

어느덧 외교의 시간은 가고 군인의 시대가 도래했다. 동원령이 발령되고 병사들의 군화소리가 들리자 각국의 전쟁성은 활기가 넘쳤다. 장교들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굳게 악수를 나누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돌이켜 보면 모두들 환상 속에 전쟁에 뛰어든 격이었다. 공격지상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고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전선으로 향했다. / 236P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연합,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연합의 전투는 이후 각 식민지 국가 및 소속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면서 전선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야 말로 ‘세계전쟁’이 된 셈이다. 전쟁의 양상은 예상과 달리 지루한 진지전으로 이어지며 무의미한 살육전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독일의 잠수함이 미국 뉴욕을 출발한 영국 여객선을 공격해 침몰 시킨 사건을 계기로 독일이 멕시코 정부에 보낸 연합 제의 비밀 전문이 발각되면서 이제껏 지켜만 보고 있던 미국까지 참전 소식을 알리게 된다. 사라예보 암살과 세르비아 응징이라는 당초 전쟁의 목적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셈이다. 결국 미국의 합류로 전쟁은 1,568일에 이르러서야 정전협정이 이뤄지며 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전쟁의 양상을 잘 살펴보면 결국 1차 세계대전은 전략 환경에 대한 오판으로, 방어우위라는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고 선제공격 우위의 발상, 위기관리와 균형을 잃은 민군관계의 전형적인 실패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장군들뿐 아니라 외교관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떻게 위기를 증폭시키는지 몰랐고, 고조된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던 결과가 이처럼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비참한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인류가 미쳤다! 인류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면 미친 게 분명하다. 너무도 끔찍한 학살극이다. 이처럼 끔찍한 공포와 대학살의 아수라장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내 기분을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다. 지옥인들 이보다 끔찍하랴. 인간은 미쳤다!

이것이 주베르가 남긴 마지막 일기였다. / 260P

 

 

 

 

 

 

1차 대전이 한반도 안보에 던지는 질문

 

 

   100년도 전에 저 멀리 유럽에서 발생한 전쟁이지만 앞서 살펴본 문제들이 원인이었다는 점에 있어 우리 한반도 안보에도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반도 전략상황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가? 두려움과 강박감에 젖어 과잉대응을 할 가능성은 없는가? 중요한 군사문제에 대해 평상시부터 민군간에 깊이 있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저자는 북핵 위협으로 안보상황이 더없이 엄중해진 오늘날 절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질문들로 우리의 안보 상황에 예리한 칼날을 드리운다.

 

 

 

   일단 저자는 핵무기가 실전에 사용될 가능성이란 북한 정권의 존립이 위협받을 경우 이를 저지하거나 최후의 보복 수단일 경우로 집약될 것이라 추측한다. 달리 얘기하면 한반도에서의 핵 전쟁은 억제의 허점을 노린 계획적, 의도적 결정으로 발발하기보다는 위기관리가 실패하여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호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관리가 핵심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강력한 억제조치를 취할 경우에도 그것이 과도한 공포를 유발해 의도하지 않은 핵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폐해는 이미 1차 대전이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반도에는 현재 공포의 균형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즉, 쌍방억제 상황이고 방어 우위 조건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확신할 수 없는 안보딜레마 상황이기 때문에 심리적, 전술적 차원에서는 상당히 불편하고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과잉 대응이 의도하지 않은 위기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방어 우위라는 객관적 조건을 놓치고 선제공격의 유혹과 공포에 굴복했던 1차 대전 유럽인들의 과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 331P

 

 

되짚어 볼수록 1차 대전이 주는 교훈은 현재진행형이다. 전략상황에 대해 오판하지 말 것, 고정관념과 도그마에 유의할 것, 유약하지 않되 지나친 과잉대응을 조심할 것, 그리고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민군간에 건설적인 대화가 있을 것.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코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평화는 결국 힘을 통해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냉철함과 절제된 용기, 그리고 민군지도자의 통합된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점이 바로 그 많은 피를 흘리고 얻은 1차 대전의 값진 교훈이 아닐까? / 354P

 

 

 

   1차 대전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거나, 발칸에 국한된 작은 전쟁으로 끝날 수 있었던 전쟁이었으나 이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한 나라의 거대한 침략 의도가 아니라 수많은 잘못된 결정들이 누적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터져 버린 결과였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과오를 범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어느 일방이 약해 보여서가 아니라 상호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전쟁이 터질 가능성에 유의해야 하며 가장 중요한 점은 위기관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낙엽이 지기 전에>은 한 편의 역사책처럼 1차 대전 발발 전의 상황과 전시 상황을 매우 사실감 있게 전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해석,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케 하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던지는 한반도 안보에 전해는 경고와 메시지를 우리 모두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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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스토리 - 어떻게 가난한 세 청년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무너뜨렸나?
레이 갤러거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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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신개념 여행 비즈니스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

새로운 경영의 교과서라 불릴 만한 에어비앤비만의 전략과 미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이 문구 하나로 유독 마음을 끄는 광고가 최근 들어 눈에 자주 띈다. 바로 에어비앤비(Airbnb)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이름이 아직은 많이 낯설다. 나 역시 규모가 큰 여행사 내지 호텔스컴바인이나 트리바고, 익스피디아와 같은 전 세계 호텔 예약 사이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기업이 창업 10년 만에 기업가치 300억 달러를 돌파하고 191개 국가 내 300만 개 숙소에 1억 6000만에 이르는 고객을 보유하여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이 놀라운 기업에 관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에어비앤비만의 담대한 여정을 기록한『에어비앤비 스토리』는 단순히 이 기업의 창업 스토리와 성공 전략을 넘어,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진입한 우리의 현주소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세 청년의 대담한 아이디어와 혁신

 

 

   늘 그러하듯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 스토리 속에는 저마다 비범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에어비앤비를 이끄는 괴짜 3인방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에어비앤비는 2007년 10월, 실직 상태였던 두 명의 디자인스쿨 졸업생이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서 생각해낸 장난스러운 아이디어로 인해 탄생했다. 그들은 서로가 함께라면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창업의 기회를 꿈꾸지만, 당장 방세를 마련하기도 벅찰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 것이, 비어있는 방에 에어 매트리스를 펼쳐 다가올 ‘미국 산업디자인협회 컨퍼런스’ 참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돈을 벌자는 의견이었다. 이것이 에어비앤비의 시초가 된 셈이다. 일주일만에 1000달러를 벌어들인 이들은 옛 룸메이트이자 엔지니어인 네이선 블레차르지크를 끌어들여 ‘룸메이트-매칭’ 시스템의 웹사이트를 구축해 이를 비즈니스로 정교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공간을 낯선 사람들에게 빌려준다는 이 대담하고 엉성한 아이디어가 괴기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이들을 외면했다. 하는 수 없이 이를 타개할 하나의 방안으로 일명 ‘오바마 오즈’라는 시리얼박스를 만들어 5달러짜리 시리얼을 40달러에 판매한 기지를 발휘했고, 론칭 하지 못한 신생 기업을 교육시키고 지원하는 와이 콤비네이터의 눈에 띔으로써 회생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초기에 그레이엄은 그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줬다. 먼저 그들에게 고객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는데, 있어봤자 겨우 100명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레이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서비스가 괜찮다’고 여기는 고객이 100명 있는 것보다 ‘서비스를 사랑하는’ 100명의 고객이 있는 게 훨씬 더 낫다는 뜻이었다. 이게 바로 그가 알려준 첫 번째 교훈이었고, 이는 규모와 성장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전통적인 실리콘밸리의 지혜에 위배되는 일종의 ‘교리’였다. / 66p

 

 

 

   원대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에 미숙한 부분이 많았던 이 괴짜 3인방을 향한 그레이엄의 조언은 탁월했다. 이들은 그레이엄의 조언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장벽을 걷어내고, 단순하게 플랫폼을 구축해 기존의 웹사이트들과 달리 호스트의 개성을 드러내는 무대로 활용되도록 디자인했다. 이를 위해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임대 공간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고 검색과 메시지 발송, 대금 지불이 모두 매끄럽게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했다. 이는 호스트가 매일 자신의 공간으로 수익을 거두도록 하고, 동시에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에게 새로운 영향을 끼친 최초의 서비스가 되었다. 놀라운 점은 회사를 시작할 당시에 세 창업자들은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넘쳐흐르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뛰어난 멘토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내놓는 이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 이들의 경영방식을 습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과 명예가 아닌 인간적인 ‘유대’의 가치에 집중할 줄 아는 보기 드문 CEO로, 에어비앤비를 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린 지금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최우선으로 든다는 점이 이들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든다.

 

 

 

“전통적인 사업은 창업자들에게 다른 강점을 요구합니다. 또 네트워크 회사나 게임 회사라면 담대한 마음가짐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켓플레이스 창업자가 가져야 할 강점들 중 최우선은 독창적으로 사고하고, 기꺼이 논쟁에 발을 담그려는 당돌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에어비앤비의 창업 스토리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에어베드를 임대하기 위해 애쓰고, 결코 죽지 않겠다며 시리얼박스를 만들었던 도전들, 그것이 바로 제가 ‘즉시 투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이유입니다.” / 98p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는 새로운 개념의 여행 문화를 선도하다

 

 

 에어비앤비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기업 신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 여행자들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텔 숙박비보다 훨씬 저렴하게 ‘누군가의 집’에 머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타인의 집에서 묵는다’는 이 색다른 경험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공간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조금이나마 타인과 연결되고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글로벌 체인호텔 브랜드에 대한 피로감을 덜고 ‘현지인’과 같은 경험을 누리면서 호스트와의 친밀감을 형성하여 독특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집뿐만 아니라 나무 위에 지은 오두막, 선상 가옥, 이글루, 원뿔형 텐트 등 별난 공간에서 개성 있는 여행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는 호스트에게도 호기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경우, 호스트 평균 연령이 43세로 자신의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의 회사나 웹사이트 곳곳에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Belong Anywhere)’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이는 회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핵심미션이다.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이 ‘어디에서나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은 혁신적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다. 혹자는 이 말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과장된 이상주의라고 간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회사가 제공하는 경험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차 잃어버리게 된 인간적인 정과 유대감을 되찾아준다.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놓은 독특하고도 진실된 공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떠올릴 수 있다. / 15p

 

 

요즘 트랜드처럼 많은 여행객, 그중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조금 엉성하지만 특별한 여행 경험을 더 선호한다.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 은퇴자와 함께 지낸다거나, 골목으로 난 뒷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뉴욕 소호의 멋진 로프트를 독차지할 수 있다면? 혹은 로스앤젤레스의 실버레이크 언덕에 한적하게 서 있는 어느 공예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이처럼 에어비앤비의 숙소는 제각각 다르고 독특하며, 그럼에도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 또 기존의 호텔들이 인간적인 정을 잃어버렸을 때 등장하여 여행을 매우 ‘인간적인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호프만은 에어비앤비가 주는 경험을 일컬어 “상품이 아닌 인간화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 124p

 

 

 

   그러나 에어비앤비가 성장할수록 수많은 리스크와 유사 기업의 도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호스트의 집을 강탈하는 초유의 사건이나 백인 호스트가 흑인 고객을 거부하는 인종차별문제, 주거 공간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데서 이를 불법으로 여기는 일부 도시나 나라로 인해 합법적인 비즈니스 규정을 마련해야만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곤 했다. 또한 많은 호텔 기업이 에어비앤비를 ‘파괴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와 유사한 각종 부티크 호텔을 출격시키거나 단기 대여 산업을 성장시켰으며 온라인 여행사를 흡수하여 일종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단순히 숙박이 아니라 여행 전체를 점유하여 에어비앤비만의 문화를 주도하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접속해보면 틈새시장, 전문성, 지역이라는 가치를 모두 결합하여 독특하고 지역 밀착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을 위한 목표를 말하자면 ‘많은 사람이 완전히 탈바꿈된 방식으로,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 느끼며 여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우리 집처럼’이라는 미션을 현실화하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미션은 주주보다 먼저고, 기업가치보다도 우선한다. 이익보다도, 상품보다도, 그 모든 것보다도 우위에 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사망한 이후에 에어비앤비의 가치가 정점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 212p

 

 

 

   현재 에어비앤비는 구글만큼이나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1순위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괴짜 3인방이 가장 신경 쓴 것이 조직 문화이듯, 이들은 직원들이 ‘나는 세상에 이로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것은 직원들 스스로를 ‘에어 패밀리’ 혹은 ‘에어팸’이라고 부를 만큼 단단한 결속력을 갖게 한 원동력이 된다. 이미 거대 기업의 반열에 올랐지만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수직 상승을 진행 중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나오는 순간에도 에어비앤비 스토리는 ‘과거’가 되어 있을 만큼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에어비앤비는 검색 및 매칭 매커니즘의 정교화,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이라는 고도화된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4차 산업혁명의 현재이자 미래가 될 기업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에어비앤비의 방식이 정착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이는 시간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닌 잠재적인 가치가 우리 산업에도 주요한 본보기로 작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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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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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영화 같은 낭만이 숨 쉬는 감성 여행 에세이!

 

 

 

   파리라는 도시를 향한 동경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본 뒤부터가 아니었을지. 내가 생각했던 파리의 인상은 주인공인 김정은이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내를 활기차게 누비고, 박신양이 사업 파트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 뒤로 에펠탑과 유유히 흐르는 센 강을 비추는 장면 그 자체였다. 낭만 가득한 드라마의 소재 탓인지 이국의 전경이 유독 아름다웠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자리에서 파리다운 낭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반드시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손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라는 에세이의 제목에서 묻어나는 파리를 향한 애정이 마치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것 같아 유독 마음이 설레었다.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나면 파리를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왜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는 파리에서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으로, 유럽과 아시아, 중동, 남미 등 총 62개국을 여행한 저자의 폭넓은 경험이 빛나는 여행에세이다. 그녀는 미얀마를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소피라는 프랑스인과의 인연을 통해 일주일 동안 소피의 집에 머물며 있는 그대로의 파리, ‘in Paris’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하였다. 책은 여행가이드북처럼 주요 명소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비롯하여 파리의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은 물로, 소소한 그날의 일상과 만남들, 때로는 친절하지만 때로는 불쾌했던 경험들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소피의 집을 나선 첫날,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그녀의 발걸음이 책을 읽고 있는 나로 하여금 설레게 한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이 그랬던 것처럼, 특별히 자전거를 구매하지 않아도 파리 시에서 운영하는 시티 바이크를 타고 시내를 누빌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체험이란 말인가. 비록 파리가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도시는 아닐뿐더러, 시티 바이크를 반납할 때 제대로 주차하지 않으면 자전거 디포짓 150유로가 신용카드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생 마르탱 운하를 지나 노천카페의 파리지앵들을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인상적으로 본 까닭에 15세기 파리를 생생하게 구현한 빅토르 위고와 이에 얽힌 노트르담 대성당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무려 387개의 어지러운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야 하지만, 콰지모도가 종을 친 종탑에 올라가 파리 시내의 멋진 전망과 신비로움을 체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둘째 날, 저자는 바스티유와 함께 감옥으로 사용된 콩시에르주리를 통해 프랑스 혁명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프랑스혁명 당시 급진파의 산악당을 이끌던 마라의 죽음과 그를 죽인 샤를로트 코르데라는 여성을 그린 두 그림을 통해 역사의 진보에 일조했지만 그만큼 피를 원했던 혁명의 이면과 온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이는 역사책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이어서 이 책의 묘미를 더한다. 이 외에도 170년이 넘게 운영된 크레므리-레스토랑 폴리도르를 통해 언제가도 한결 같은 전통 있는 로컬식당이 우리나라에도 쭉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군주제를 폐지하고 혁명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며 공포정치를 펼친 마라에게 적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이 시기에 콩코르드 광장의 기요틴에서 목이 날아간 사람만 해도 셀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라의 죽음을 샤를로트의 생각과는 달리 더 큰 공포정치의 이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기요틴에서 머리가 잘린 뒤에도 한 사내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당했다. 또 공안당국은 샤를로트의 단독 범행을 의심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가 있는 처녀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혁명은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 / 65p

 

 

 

 

 

 

  셋째 날에는 몽마르트르를 찾아가는 일정을 다룬다. 그녀는 이곳에서 문득, 예전에 니스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북역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한국인과 여승을 만난 사연을 떠올린다. 여행자의 고난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고마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이 매력이 아닐지, 그것이 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이어 예술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언덕 위와, 언덕 아래의 ‘물랭루주’로 대표되는 붉은 빛의 환락가로 천양지차의 매력이 담긴 몽마르트르를 소개한다. 만약 이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가 추천하는 영화 <아멜리에>를 보고, 배경으로 등장하는 몽마르트르의 곳곳을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될 것이다.

 

 

 

   넷째 날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여행 때 만난 프랑스인 얀을 따라 ‘파리 외방 전교회’를 다녀온 일과 오스카 와일드, 쇼팽, 알퐁스 도데 등 유명인의 도심 속 묘지 투어의 매력을 전한다. 사실, 그 어느 일정보다 로맨틱한 파리의 낭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다섯째 날의 일정은 무척 흥미롭다. 그 유명한 로베르 드와노의 사진 <시청 앞에서의 키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이성과의 로맨스를 꿈꾸게 했던 영화 <비포 선셋> 외 시리즈를 통해 파리의 낭만과 로망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섯째 날에는 역시 여행가이드북이든 여행에세이든 빠질 수 없는 맛있는 파리를 소개한다. 도심에서 만나는 시장과 로컬 푸드를 비롯하여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카페 문화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누구나 한번쯤은 테라스에 앉아 커피와 수다를 즐기는 낭만을 꿈꾸듯 그녀 역시 카페 테라스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다리를 우아하게 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책을 보며 하루 종일 죽쳐 봐야지 하고 결심했지만 뜨거운 햇살에 땀은 줄줄 흐르고, 무엇보다 지루해서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던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에서는 살풋 웃음도 나온다.

 

 

 

파리의 카페는 프랑스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저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문학․예술을 논하는 토론 문화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은 프랑스 관광청에서 이러한 카페를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요리와 함께 프랑스의 3대 문화로 손꼽았다는 것이다.

카페가 주요 문화의 범주에 들어가다니! 파리에는 이러한 토론 문화를 당당히 이끌며 철학과 문학적인 생산물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카페 두 곳이 있다. 두 곳 모두 파리 6지구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카페다. / 212p

 

 

 

 

 

 

 

   마지막 날에는 소피와 함께 마레 지구 골목탐방에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상업 지구가 가장 번화해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일요일에 슈퍼마켓과 백화점을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일요일에 일해서 돈을 벌게 하는 것보다 법적으로 모두 일하지 않게 규제해 가족의 단란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데 더욱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무엇보다 작은 잔디밭에서 소박한 가족 나들이를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흑인 일행에게 카메라를 빼앗기고, 머리채가 잡히는 불상사에 글을 읽는 나까지 아찔해졌지만 예술과 낭만으로 가득하고, 친절의 손길을 내민 파리지앵으로 하여금 여전히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참 인상적이다. ‘이런 게 인생이지요(C'est la vie)’와 같은 산경험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으니까.

 

 

 

   이 외에도 책은 특별히 파리를 교통지옥으로 만든 차원이 다른 파업 이야기, 각각의 테마가 담긴 파리의 특별한 메트로, 영화 <비포 선셋>에 나온 스폿들을 찾아다닐 수 있는 지도, 키스를 부르는 파리의 장소 등 다양하게 파리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소스들을 제공하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미리 보고 여행 일정을 짜보는 구성이 여행의 흥미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이란 부제처럼 나 역시 잠시나마 파리의 꿈 같은 공간 속으로 잠시 다녀올 수 있어서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다. 최근에 스페인이나 스위스 등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시 나에게 있어 ‘파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로망 그 자체라는 것을 실감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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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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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은 눈부신 동화!

 

 

  너른 광장 하나가 있다. 그곳에는 늘 한 자리에 머물러서 내가 서 있는 쪽을 지그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모르게 바쁘게 사라졌다가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 광장의 한쪽에는 프리지아가 한 가득 피어있고, 뿌리 깊은 높다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좋아하는 아기 사자 인형이 작은 벤치에 놓여 있고, 그 옆에 있는 멋진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는 악보 하나가 살포시 부는 바람에 팔랑팔랑 소리를 내며 페이지를 넘긴다. 하늘 위에는 뭔가가 둥실둥실 떠다니는데 가만히 보면 구름이 아니라 책이다. 그렇다, 이곳은 다름 아닌 ‘기억’이라는 나만의 광장이다. 이 광장은 당시의 감정이나 기분, 정서를 동반하는 온갖 매개체들이 존재하는 나만의 우주 즉, 나만의 천체이다.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거나 인생의 마지막에 임박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 광장을 함께 거닐며 그것들에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이별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어쩐지 그 이별이 슬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헤어짐을 배워가는 손자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 31p

 

 

 

  세상에 이별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일생에 누구나 한 번은 이별을 마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특히 가족과의 이별 앞에서는 누구나 깊은 상실감과 무기력함을 느끼곤 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속 할아버지는 서서히 잃어가는 기억만큼 하루하루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손자의 이름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좋아서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르는 그는 손자와의, 기억과의 이별 앞에서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별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에게도, 이별을 설명해야만 하는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기억이라는 광장으로 손자를 이끌며 두려움 없이 작별할 수 있는 서로만의 방식을 찾아나간다. 두 사람이 굉장히 좋아하는 수학 이야기를 하거나, 광장에 존재하는 반짝이는 추억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원의 넓이를 계산할 때 필요한 원주율 외우기도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게임이다. 할아버지는 비밀의 문을 열어서 온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런 신비한 숫자들을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200번째 자리까지 외운다. 아이의 기록은 그 절반이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 40p

 

 

‘중요함!’ 한 건물을 이렇게 깜빡인다. ‘기억할 것!’ 한 건물을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은 건물은 ‘노아의 사진들’이라고 반짝인다.

“저 건물들은 뭐예요, 할아버지?”

“기록을 보관하는 곳. 중요한 것들이 전부 저 안에 들어 있지.”

“예를 들면 어떤 거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것. 사진, 영화, 그리고 네가 준 가장 쓸모없는 선물들.”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고 노아도 웃음을 터뜨린다. / 62p

 

 

 

 

 

 

 

   이 소설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하는 데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점점 자라고 한 사람은 점점 작아져서 몇 년이 지나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존재한다. 광장이 하룻밤 새 작아졌음을 눈으로 보면서, 모든 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며 삶에 대한 기대마저도 잃기 마련이지지만 여기, 이 우주처럼 어디로 확장될지 모르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으니까. 나를 추억해 줄 테니까, 슬프지 않다. 이렇듯 상실과 새로운 시작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담아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별이 단순히 단절과 사라짐이 아니라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 81p

 

 

 

나랑 평생을 함께 했잖아요. 내 평생을 가져갔으면서.

 

 

 

“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 85p

 

 

 

 

 

 

  이별을 준비하면서 할아버지는 아내와 나눈 시간들에 대한 회상과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유독 사무친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의 사람으로 지내며 히아신스 향기가 나고 가끔 고수 냄새도 풍기는 정원에서 공유했던 그들의 시간이 지금은 이토록 생생한데, 그 기억이 지워지게 될 것을 생각하면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이별을 직면하게 되고나니 더욱 크게 느껴지는 서로의 존재와 그 애절한 마음을 “당신의 히아신스. 그 향기가 이렇게 강렬했던 적이 없는데.”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한 저자의 표현이 애잔하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우리가 맨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당신이 잠자는 시간이 고문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응. 잠은 같이 잘 수 없었으니까.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거기가 어디인지 알아차리기 전 몇 초 동안 얼마나 괴로웠다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기 전 몇 초 동안 말이야.”

그녀는 그에게 입을 맞춘다.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 97p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마치 『어린 왕자』와 같은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기법으로 인해 확실히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과는 차별화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보일 생각으로 시작한 원고가 아니라고 한 저자의 말처럼 두터운 서사나 흥미로운 전개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되돌아볼 ‘나’라는 기억의 광장에 앞으로 무엇을 채워나가야 할 지 청사진을 그려보게 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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