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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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의 자존감을 깨우는, 여자를 위한 책!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 여자를 위한 독서관을 정립하다!

 

 

   나에게 있어서 책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창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있을 무렵에 그것을 극복하는 계기로 선택한 것이 책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아이를 보는 데에만 쏟아 붓고 난 뒤에는 꼭 뭔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물밀 듯이 밀려오곤 하던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던 와중이었다. 출산 직후부터 도무지 진득하게 책을 마주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던 까닭에 간간이 출판사에서 게시한 신간 정보들을 눈으로 훔쳐보는 것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래던 도중, 서평단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과정은 잠시나마 엄마로서의 나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책을 읽고 이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과의 대화가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마치 문자중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 달에 평균 8권에 이르는 다독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책이란 도피 공간이자 또 현실의 공간이다…… 의미 있는 도피를 한 후에는 새로운 나로 변모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을 새롭게 정의한다. / 6p

 

 

 

   도시건축가이자 18대 국회의원으로 익히 알려진 김진애 저자는 『여자의 독서』 서두에서 책이란, ‘도피공간이자 또 현실의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책은 무형의 도피처이자 유형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공간과 다름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이 읽으면 기억에 다 남기는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좋은 문장을 기억하고, 그 책을 암기하듯 읽으려고 책을 읽는 게 아니다. 책이 제공하는 무형의 도피처에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설득하고 이해하여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재정립하는 것-그리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것, 그 뿐이다. 그런 이유로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이라는 부제의 『여자의 독서』가 유독 마음을 끈다. 책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함의를 함께 공유하고 자신이 읽었던 여러 책을 통해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찾도록 응원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나를 흔들고 매혹시켰던 여성 작가들

 

 

   책의 저자는 1남 6녀 딸부잣집이라는 환경에서 ‘여자라는 존재’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살아왔다. 일생의 화두를 ‘자존감’으로 꼽을 만큼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누구보다도 예민했던 그녀는 여성의 시각과 감성, 여성의 현실과 이상, 여성의 심리와 행동, 여성의 상처와 고통 등 여성의 삶과 꿈을 섬세하게 다루는 이들 작가들의 책에 유독 집중한다. 굳이 ‘여성’으로 한정을 짓는 것은 여성 독자와 여성 작가가 만날 때의 역학, 그 독특하고 섬세하고 에너지 가득한 만남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박경리, 한나 아렌트, 버지니아 울프, 제인 제이콥스, 정유정 등 자신을 흔들고 매혹시켰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길을 찾는 여성들에게 스스로 완벽하게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을 독려한다.

 

 

 

  『여자의 독서』는 자존감을 일깨워주는 책, 성장 스토리를 통해 자기 이미지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책, 섹스와 에로스의 세계를 열어주는 책,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 사회 속에서 ‘여성’이 지닌 동력에 집중하는 책,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장벽을 깬 여성들에 관한 책, ‘여신’이라는 원형을 찾는 책, 여성성과 남성성을 넘나드는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녀가 제시하는 ‘책 지도’를 통해 여성들이 책과 함께 성장할 것을 제안한다. 여성 작가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 속 캐릭터들을 통해, 그들이 제시하는 현실의 문제점과 비전을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발전시켜보고 노력하기를 응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캐릭터로 살아갈까’ 편에서 <빨강머리 앤>을 통해 앤의 열등감과 고독감, 불안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많은 소녀들을 위로하며 우리는 콤플렉스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늘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다독였던 문장이 인상에 남는다. ‘디어걸즈와 연대감을 꿈꾸며’ 편에서는 그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을 접함으로써 차분한 일상을 공포로 만드는 그녀만의 화법에 매혹되어 꼭 읽어보리라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가 있다’ 편에서 소개된 <콰이어트>는 세상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내적인 힘에 의해서 진정 바뀐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이로 인해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 <서재 결혼 시키기>, <한 남자>, <이혼고백서> 등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작품을 발견한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로 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다. 나라는 캐릭터는 그 모든 캐릭터를 합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어느 캐릭터와도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딘지 비슷한 점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 하나다. 이럴 때 참으로 생명체의 오묘함을 느낀다. 비슷하게 보이는 나무가 하나도 똑같지 않고 비슷하게 보이는 지문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은 하나하나 다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오묘한가? 그렇게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소중하게 나 자신을 정의하고 발전시켜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닮은 척도 해보고, 닮아보려 하고, 또는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반면교사로 삼기도 하고, 그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상상도 해보면서 사람은 자라는 것이다. / 147p

 

 

아멜리 노통브는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인간이자 처음으로 이 세계를 살아보는 인간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오직 자신의 감수성과 감각, 자신의 투시력과 관찰력, 그리고 호기심 가득 찬 지능으로 인간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우리 모두 그래야 하지 않나? 우리 모두 첫 번째 살아보는 인생이니 말이다. 나 역시 한없이 감각적이면서 한없이 무겁고 싶다. 나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지 알고 싶다. 왜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어리숙한 것 같고 당황해하고 있는 것 같을까? 그러면서도 왜 태연함을 가장하며 사는가?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싶다. 그 관찰의 결과가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적은 바로 내 안에 있을 테니 말이다. / 219p

 

 

 

 

 

 

   이미 시중에는 ‘책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존재하지만, 이 책은 지식인의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작품마다 온갖 이론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애초부터 저자는 작품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나 사전적 지식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시시콜콜한 의문들, 책을 읽는 순간에 느꼈던 나름의 감정과 해석들을 어렵지 않게 말하듯이 써내려감으로써 읽어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작품에 대한 저자 본인만의 독특한 해석과 의미 있는 관철들이 조금 미흡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자신의 몸이 책을 통과할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의 세계를 통과하는 과정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하지 못하고, 그렇게 민감하지 못하고, 그렇게 성찰적이지 못하고, 그렇게 통찰력을 발동하지 못할 뿐이다. 정희진의 독후감 같지 않은 독후감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예민함, 민감함, 성찰의 능력, 통찰력을 살려내보자. 책은 그렇게 우리의 생을 흔들 수 있다. / 228p

 

 

 

   요즘의 나는 오롯이 나만의 세계관을 차분히 완성해가는 기분으로 독서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책 읽기란 나의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과정’임을 상기시켜 준 이 책을 통해 나의 독서 활동에 훨씬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수많은 책들을 통과한 나는 보다 건강하고 의연하면서, 유연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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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 - 오늘을 여행하는 부부, 지구 한 바퀴를 돌다
김미나.박문규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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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하는 삶을 꿈꾸는 평범한 부부의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도 짐을 싸는 긍정적인 부부의 아름다운 희망 로드!

 

 

 

   삶이 팍팍하고 고단할 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는 꼭 ‘여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몸과 마음에 산적해있던 고민과 고통들을 이곳에다 묶어두고 일단 떠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니 말이다. 이렇게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를 동력삼아 다시 일상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우리는 금세 다시 떠나고 싶다는 넋두리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훌쩍, 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여행을 가기에 앞서 발목을 붙드는 요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바쁘니까, 부부이니 혼자 갈 수는 없으니까, 데리고 다니기 여의치 않은 아기가 있으니까 등등 신변의 여러 이유들로 인해 세웠다, 엎었다, 계획과 취소를 수시로 반복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고작 1박의 여행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 탓일까, 마치 언제 기회라도 닿으면 주저하지 않고 가기라도 할 것처럼 가이드북이나 여행에세이를 찾아 읽으며 마음으로나마 사전답사를 하기 시작한 게 벌써 몇 개월째이다. 그 가운데 '오늘도 여행하는 부부, 지구 한 바퀴를 돌다'라는 부제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란 책이 관심을 끈다. 또한 드넓은 초원과 설산의 웅장함이 장관을 이루는 언덕 위에서 그 어떤 고단함도 잊고 대자연의 풍경을 가만히 누리는 듯한 부부의 다정한 뒷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부가 함께 세계일주라니, 일상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세상 밖으로 함께 두 발을 내딛은 부부의 남다른 이야기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녹록치 않은 세계 여행 준비기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의 저자인 메밀꽃 부부는 동갑내기 부부로, 손님을 초대하기도 버거운 작은 원룸에서 신혼집을 차리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가며 착실하게 회사생활을 한 근검성실한 생활을 이어왔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에 그나마 유일한 낙이 있다면 매 주말 거르지 않고 국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은 가까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퇴근 후에는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삶의 고단함을 여행으로 달래곤 했다. 그렇게 결혼 후 두 달이 지났을 즈음, 2년 정도 열심히 모아서 스물아홉쯤에 세계여행을 갈까? 하고 불쑥 이야기를 꺼낸 것이 불씨가 되어 그날로 부부의 세계일주 프로젝트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부부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사전계획에 꽤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가장 먼저 여행 준비에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큰 그림을 그렸다. 여행 테마와 루트, 예산, 항공권 발급, 숙박 네트워크 확인을 비롯하여 여행 중 생길 문제들 대처방법 숙지, 건강검진, 예방접종, 장기여행자 보험 가입, 기존에 들어있던 불필요한 보험이나 통장을 정리하고, 필요한 카드나 비자 발급에 필요한 각종 증명서 사본을 만들기, 국제운전면허증 발급 등 사전에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고작 몇 박 몇 일의 해외여행이라 하더라도 준비할 일이 만만치 않은 일인데, 1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친 세계일주라면야 그 과정이 꽤나 녹록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다 여행 시작 전부터 지치겠다는 부부의 푸념이 예사로 들리지 않을 만큼 이들 부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리스트와 상세내역은 상당히 디테일하고 그래서 매우 유용할 듯하다.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이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기', '먹는 데엔 아끼지 않기', '가계부 꼼꼼히 적기', '로컬 시장엔 꼭 가보기', '매일매일 일기쓰기' 등 부부가 여행의 원칙으로 삼은 리스트였다. 아니나다를까 그들의 여행기를 따라 가다보면 고집스러울 정도로 많이 걷거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대중교통 이용기가 흥미진진하게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먹는 데엔 아끼지 않겠다더니, 정말로 숙박비나 교통비를 합한 것보다 식비가 훨씬 많이 나온 여행지를 보면 슬쩍 웃음도 나온다. 보통 배낭여행자들은 굶주린 여행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부대비용을 아끼고 지역의 먹거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 부부의 원칙이 의외로 신선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결혼한 지 2년 7개월, 평범한 20대 후반의 맞벌이 부부는 사직서를 내고 커다란 배낭 두 개를 둘러맨 채 세계여행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1년 후의 삶은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서. 같은 곳을 보며 함께 걷고 언제나 든든하게 손잡아줄 수 있는 서로가 있어 다행이라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며 기나긴 여정에 발을 내딛었다.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함께 하는 여행이니까, 그간 일상에 치여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면 이 여행은 오롯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이 될 테니까, 어쩐지 이 부부가 부러워졌다.

 

 

 

살아가면서 언제나 쉬운 길만 걸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라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가지 못할 길은 없다는 것을,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속도에 맞춰 걸으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여행길에서 우리도 조금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 60p

 

 

 

여행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부부는 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넘어가는 일정을 통해 시차적응과 육로이동에 편리하도록 루트를 설정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시작으로 하여 네팔, 인도,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터키에 이르렀다. 아시아는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다정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며 매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설레는 곳이었다. 부부가 떠난 여정을 쭉 따라가다보면 놀랍게도 내가 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동양적인 색채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정취에 매료되고 만다. 유독 아시아 여행지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들 부부가 여느 여행 에세이에서 잘 다루지 않는 소소한 아시아인들의 일상을 잘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과 여행 에세이가 객관적인 지역별 정보 제공 및 여행지에서 사유한 것들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을 주로 다루는 편인데 비해, 이 책은 이들 부부가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고, 감정을 나눈 일상들을 일기처럼 쓴 형식이라는 점에서 보다 현지와 밀착된 감정을 전한다.

 

 

 

근 30년 내내 복잡한 도시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날 때마다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거기다 호수나 강, 잔잔한 바다까지 있는 곳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우리는 은퇴한 노부부의 여행처럼 조용한 곳을 찾았다. 길거리엔 소와 닭들이 나와 어슬렁거리고, 해가 지면 온 동네가 어둠에 잠기고 나른한 바람이 살랑대는 곳, 채 한 권만 있어도 행복하고 시간도 더디게 흐르는 듯 마냥 게을러지는 곳. 그런 마을에 가면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어도 괜찮았다.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의 미소와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며칠간 넋 놓고 있는 시간이 좋았다. / 141p

 

 

 

   ‘우리가 가는 모든 곳이 집이 된다 생각하니 한편으론 가슴이 두근거렸다’ 던 감회처럼 이들 부부는 특유의 긍정적인 기질로 여행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욱한 먼지들로 가득한 네팔의 혼란스러운 아침을 맞이했을 때 그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 챙겨온 마스크 한 장에도 기뻐하며 카트만두 시내 구석구석을 걸었고, 위험천만하게도 지붕위에까지 올라타야 할 정도로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도 꿋꿋이 여행을 즐겼으며 베드버그가 창궐하는 숙소에서 잠 한숨 못자는 상황까지 겪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긴 일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덕분에 가는 여정이 가장 열악해 보이는 단점이 있으나 소박하고 평화로운 정취가 아름답게 느껴진 라오스를 꼭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간에 1년 동안 터키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했던 휴지기를 끝으로 정리된 아시아 여행은 이제 헝가리를 시작으로 유럽에서의 일정으로 넘어간다.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그리스, 스위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벨기에, 프랑스,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세계일주를 마무리 순이었다. 관광 시스템이 마을 곳곳에까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던 아시아에 비해 유럽 여행은 상대적으로 이들 부부에게 순탄해보였다. 물론, 오스트리아 빈에서 느닷없이 카메라 소매치기를 당할 뻔하고, ‘유럽 곳곳이 날벼락으로 40여 명 사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뉴스가 보도된 날 그들은 스위스에서 첫 캠핑을 했다가 텐트 침수를 당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여행 권태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은 따뜻한 공기와 낭만이 어린 매력적인 여행지임에는 틀림없는 듯 그들이 누빈 곳곳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여행이 길어지만 결국 이것도 생활이라 먹고살기의 연속이 된다. 크게는 이동, 숙소 구하기, 밥 먹기로 이루어지는데 배낭여행자의 주머니 사정이 뻔하므로 항상 싼 것을 찾아야 했고 매번 흥정에 흥정을 거듭했다. 사실 '세계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과 로맨틱함 안에는 '사서 고생'이 포함되어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 고장 난 로컬 버스를 타거나,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같은 동네를 몇 바퀴나 빙빙 돌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에도 손을 벌벌 떨게 되니까.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모르는 사이 여행자의 피로가 차곡차곡 쌓인다. / 296p      

 

 

 

 

 

 

   이들 부부의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것은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우정이었다.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기 위해 만난 리마 아저씨와의 우정은 그들을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네팔 포카라에서 처음 만난 뒤 스리랑카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치앙 마이에서는 생일과 송끄란을 함께 경험한 앨리스 언니도 마찬가지다. 그간 블로그에서 알고 지냈던 친구 신혜를 인도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훗날 터키에서 그녀의 게스트하우스를 1년간 운영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 역시 모두 그들과의 인연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은 이들 부부의 따뜻한 기질 덕분에 가능했던 일인 듯하다. 어쩌면 낯선 타지에서 나눈 누군가와의 우정이 유명한 관광지의 위대한 건축물 보다 현지의 추억을 두텁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전날이면 꼭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여행을 돌이켜 보고, 정리하고,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나라로 가기 전의 설렘을 나눴다던 이들 부부의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은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소박하게 글로 써내려간 여행에세이였다. 그들이 세세히 수록해놓은 경비 목록을 보면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서로를 앞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격려해주는 다정한 동반자만 함께 있다면 얼마든지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부부도 언젠가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신랑에게 몇 번이나 책의 내용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아이가 많이 자라고 나면 셋이서 함께 꽤 긴 여행을 떠나게 될 런지.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는 나에게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책이 되었다.

 

 

여행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서 인생이 크게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분명 단단해지고 있었다. 조그만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해 했으며, 속상하거나 좋지 않았던 일은 금방 훌훌 털어버렸다. 우리는 긍정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행하길 참 잘했다는 것을. /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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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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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빛의 뜨거운 정열과 낭만을 지닌 쿠바 여행 에세이

가이드북에도 없는 낯선 아바나의 골목골목이 지닌 일상에 매료되다!

 

 

   체 게바라의 나라, <CSI 마이애미>에서 등장하는 쿠바계 사람들이 미국과 벌이는 갈등만이 고작 내가 알고 있는 ‘쿠바’의 전부다. 미국과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위치하여 ‘아메리카 대륙의 열쇠’이자 대서양과 카리브 해를 접하고 있어 ‘카리브 해의 진주’라고도 불리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고 우리나라와는 국교가 단절된 만큼 여행지로써는 낯선 느낌이 지배적이다. 쿠바로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누군가에게, “저, 쿠바에 다녀올게요.” 라고 말한다면 열에 열은 “왜 거기를? 위험하지 않겠어?” 하고 반문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죽은 올빼미 농장』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백민석은 이 낯선 도시 속으로 그저 가만히 스며들었다. 그는 쿠바로의 여행을 기획한 뚜렷한 목적성도, 특별한 용기도 언급하지 않는다. 치장이라고는 없는 민낯 같은 도시의 골목을 누비며 헐벗은 건물의 외벽 사이에서 너무나 일상 같은 아바나 시민들의 모습을 포착해낼 뿐이다. 그의 시선으로 본 아바나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애써 치장하지 않고, 그들 내부에서 안정된 평화를 추구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허락받지 않은 촬영에도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 지닌 여유에 저절로 감화될 수밖에 없는, 『아바나의 시민들』은 내게 그런 여행에세이였다.

 

 

 

투쟁의 역사를 빛내는 태양 아래의 아바나

 

 

  『아바나의 시민들』은 거두절미하고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며, ‘당신’이라는 2인칭 화법을 통해 독자들을 함께 아바나의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아바나는 당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투성이다. 한국과 쿠바는 가까운 문화권이 아니다.’고 언급한 것처럼 독자 스스로가 화자의 눈과 마음이 되어 쿠바의 낯선 풍경에 때로는 어리둥절해하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작가 특유의 자부심이나 지적인 허세 따위로 쿠바의 낯선 문화를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와 2차적인 정보를 끼워 넣으려는 태도 역시 최대한 배제한다. 아바나를 통해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지, 그는 소비하는 작가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바나라는 도시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 호세 마르티의 동상을, 동상의 발치에 있는 반제국주의 광장을, 그 동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의 끝 지점에 이르면 볼 수 있는 ‘깃발의 벽’을 통해 쿠바의 이데올로기를 살펴봐야만 한다. 가느다란 쇠기둥이 무성의하게 135개나 꽂혀있는 이 이물스러운 형상 사이로 쿠바 깃발 하나가 의연하게 걸려 있는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놀랍게도 쇠기둥은 뒤편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건물을 ‘가리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스페인에 이어 쿠바를 지배했던 제국주의 미국과의 현 관계가 서슬 퍼렇게 빛나는 쇠기둥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아바나인들은 이들 건물이 주는 상징성을 엄중하게 다룬다거나 애써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동네 어디에선가 볼 수 있는 공원 중 하나처럼 시민들과 함께 한다.

 

 

 

사진 속 배경의 신전에 들어가면 쿠바가 스페인 식민지가 된 무렵을 묘사한 벽화가 뒤덮고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흰 피부에 중세 귀족 복장을 한 인물들, 미사를 접전하는 신부들, 그리고 벌거벗거나 백인 옷을 입은 인디오 원주민들을 봤던 것 같다. 아직 흑인이나 물라토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제야 당신은 신전의 바닥에 둔중하게 가라앉아 있던 서늘한 기운을 깨닫는다. 당신은 아바나에서 살아 있는 인디오는 본 적이 없다. 인디오는 국립미술관의 역사화 속에 있었다. 그 그림에서 인디오는 흰 피부의 귀족과 기사들이 둘러싸고 구경하는 가운데, 나무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하고 있었다. / 114p

 

 

 

너무나 자연스럽고 숨길 것이 없는 아바나의 정경들

 

 

   미국의 쿠바 고립 정책은 쿠바인들을 만성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해 생계 해결의 어려움을 겪게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장 하나 보기 힘든 환경 덕분에 이 도시에서는 작열하는 태양의 선연한 빛깔과 맑은 하늘을 늘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 낚시하는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말레콘은 유독 인상적이다. 에메랄드그린이다가 쥐색이다가 흐린 회색이기도 하고, 깊은 코발트색이다가도 반짝이는 남색이기도 하고, 무서운 칠흑이 되기도 하는 이곳은 아바나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작가는 매일 지정된 스케줄이라도 되는 양 말레콘을 떠돌며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당신 자신을 본다. 당신의 실존에 끊임없이 그어지는, 그러면서도 금세 스러지곤 하는 주름을 본다.

 

 

 

 

 

 

   작가는 가이드북을 펼쳐보고 이에 따라 여행을 계획하지 않는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오늘은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러나 가이드북이나 지도에도 상세히 나와 있지 않은 골목 안을 이끌리듯 들여다본다. 회칠이 떨어져 나가 적갈색 벽돌이 드러난 벽과 비바람에 형태가 온전하지 못한 기둥들,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음산한 건물들이 있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아바나 시민들은 이런 건물들을 굳이 허물지 않는다. 그저 보수하고 다듬기만 할 뿐이다. 너무나 쉽게 낡은 것들을 허물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속도를 생각한다면, 본질을 지키며 자연스러운 변화에 몸을 맡기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아바나의 시민들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인간의 것 같지 않은 색조와 흠 한 없는 매끈한 질감이 어떤 완벽함의 이상을 예시하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 사이로 드러나는 아바나 시민들의 육체적 아름다움은 그냥 그 자체로 작품처럼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아바나의 어느 집 마당 풍경은 어떤 관광 명소보다 당신 기억에 뚜렷하다. 배불뚝이 중년과 어린 아이는 어떤 관계이고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 여행객의 기억에 오래도록 생명의 불씨를 살려주는 것은 바로 이런 현지인의 삶의 현장이다. / 236p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생산해볼 것. 거실에서 연인과 살사 스텝을 맞춰본다든가, 프라도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맥주병 주위를 돈다든가, 망치를 뚝딱거려 당신의 그림을 넣은 액자를 만들어본다든가. 그래서 당신도 하찮지만 자기만의 사진을 생산해보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생산의 행위이고 실천이다. 권태는 그때야 비로소 물러날 것이다. 생산의 행위 자체가 행복이다. 아바나 시민들은 생산의 실천에 익숙하다. 아바나의 시민들이 어딘지 모르게 당신보다 행복해 보인다면, 이 때문일 수 있다. / 308p

 

 

 

 

 

 

  『아바나의 시민들』이 특별한 것은 아바나 소시민들의 삶 내부에 잠복해있는 빛나는 열정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작가가 선보인 다수의 작품에 미루어볼 때, 권력과 사회적 공포에 압도된 인간의 불안한 자아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는 어쩌면 아바나의 시민들을 통해 순정어린 인간 본연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중남미 패키지여행을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나 아바나에서의 여행이 즐거웠냐고 물었을 때, ‘뭐 볼만한 자연경관이 없잖아’ 하는 안타까운 대답이 돌아온 일이 있다. 물론 아바나에 마추픽추, 이구아수 폭포, 팜파스 소 떼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아바나의 진정한 볼거리는 자연경관이나 유적보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아바나의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향해가는 시민들인데’ 하고 되뇌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가볍게 헤아릴 수 없는 쿠바인들의 열정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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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 맛, 공간, 사람
크리스토프 리바트 지음, 이수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초기의 레스토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식과 사회 문화 생산을 주도한 레스토랑을 해석하다!

 

 

 

 

   미식, 외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특히, SNS를 통해 이른바 ‘맛집’을 공유하고 소비자 스스로 문화를 주도해가는 분위기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이제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욕구의 행위를 넘어서 시대와 문화를 ‘향유’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뉴욕의 칼럼니스트 애덤 고프닉이 ‘마치 새로운 종교나 스포츠, 신분 증거, 섹스 대용, 윤리적 의식으로 여겨진다’고 이에 대해 논한 말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는 한 사회와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가치관 그리고 생활습관 등이 응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문화코드로써 이에 대한 이해가 다채로운 각도에서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레스토랑’은 우리에게 있어 의미가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미식 산업을 주도하고 현대인들에게 대중적인 공간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음식점’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접근한다는 가정 하에 이를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 있어 흥미를 끈다. 『레스토랑에서』는 독일 출생으로 역사학 및 각종 문화사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저자가 파리의 첫 고급 레스토랑과 같은 초기 레스토랑에서부터 전후 시대를 거쳐 맥도널드에 이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레스토랑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조망한 책이다. 책에 접근하기 전에 유의해야 할 것은 단순히 레스토랑의 역사를 다루는 기술 및 이론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은 주방 직원과 요리사, 웨이터와 철학자, 미식가와 사회학자 등을 통해 그들이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펼치는 행동과 의식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화들을 조합, 나열한다는 데 특징을 두고 있다. 더욱이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삶의 면면들이 존재하는 곳임을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레스토랑, 지식 사회의 실험실이 되다

 

 

   유럽 레스토랑의 역사는 사람들이 배를 곯지 않게 되면서, 또는 배가 고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파리의 초기 레스토랑은 시민 계층의 여론을 형성하고 엘리트들의 살롱이자 교양 있는 계층의 사교 모임에 가까웠던 카페와 유사하게 등장하였으나, 보다 개인과 그들의 욕구에 집중하여 사적인 공간에 가깝게 활용된 덕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미식 전문가의 활동과 대충 매체의 세계가 확대됨으로써 음식물 섭취라는 육체적 행위를 미학적이고 지적인 활동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 또한 율리우스 벨렌도르프가 메뉴판의 상징과 기능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구체화한 것이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레스토랑의 홀과 주방을 개혁한 에스코피에로 인해 구이, 소스, 제과, 찬 요리 담당 등 각자 분야를 구분해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기도 했다.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아 별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가 사실은 타이어 회사의 이름(미쉐린)이고, 타이어 구매 고객에게 무료로 배포한 안내서가 그 기원이었다는 점은 매우 의외였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레스토랑의 엘리트적이고 귀족적인 요소는 밀려났다. 최초의 페스트푸드 체인점의 등장은 햄버거를 주 상품으로 한 화이트 캐슬의 선점에서 비롯되었다. 화이트 캐슬은 의심스럽게 여겨지는 다진 고기의 깨끗함과 안전성을 거듭 강조하는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고, 하루에 20~24개의 햄버거를 먹어도 건강 상태가 양호한 사례를 들며 곳곳에 선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런던에 값싸고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런던 최초의 급식소들이 설치되었는데, 윈스턴 처칠은 ‘브리티시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사람들이 괜찮은 식사를 제공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는 주로 집에서만 식사를 하던 영국인들이 외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오사카 출신의 레스토랑 소유자 요시아키 시라이시는 이동식 화장실 발명가로, 맥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착안해 오늘날 회전식 초밥을 고안해낸 점도 흥미롭다. 고와 미요의 ‘누벨 퀴진 10계명’으로 인해 레스토랑에서 무절제한 것들이 배제되고, 저칼로리의 효율적인 요리로 변형을 꾀하기도 한 점 역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 결과로 작용했다.

 

 

 

대규모 체인점을 운영하기에는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이 아직 없었다. 민족적 정체성은 오랫동안 식습관을 결정했다. 그러다가 192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이르러 현대화되고, 유동적이고, 대중 매체의 영향력이 커진 사회에서 그러한 관계가 비로소 해체되었다. 미국은 이제 동일한 것을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화이트 캐슬>에서 대량으로 판매한 표준화된 햄버거였다. 화이트 캐슬은 월트 앤더슨이 위치토에서 운영하던 가판점 4개에서 시작된 미국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이었다. / 58p

 

 

그로부터 20년 뒤 독일에 문을 연 피자 전문점들은 매년 1억 마르크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게 된다. <외국 것>으로 여겨진 음식점들이 독일의 얼굴도 바꾸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삶의 즐거움과 낭만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을 대변했다. 그들은 독일 도시들에 이탈리아적인 것을 들여왔다. 음식과 웨이터, 실내 장식을 통해서 자유와 감성의 새로운 분위기를 독일에 전파했고,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그 <본보기>로 행동했다. / 110p

 

 

 

   레스토랑은 관계를 가꾸고, 고무하고, 지식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다른 문화와 새로운 유행, 새로운 창의적 형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곳을 이용했다. 지식 사회의 실험실로써, ‘감정 요리’에 이르는 심미적인 기능으로써 다층적으로 작용하는 이와 같은 기능은 사회 진단 사이의 연관성으로 확대된다. 이에 대해 조지 리처는 현대 사회의 <맥도널드화>에 대한 연구에서 서비스 분야가 지배하는 사회, 즉 노동과 소비가 표준화된 사회를 보여 준다. 이 사회에서는 서비스의 확대와 규율화로 인간의 감정이 상업화되고 통제된다. 그렇다고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을 단순히 효율성과 획일성의 상징으로만 여겨서는 안될 일이다. 이들은 세계 곳곳에 편재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거대한 상징성을 지니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은 인간의 노동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각종 사회의 모순과 정치적 과제, 개혁의 이념들도 불러일으킨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이념이 부딪치는 곳

 

 

   레스토랑은 향유과 힘든 노동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인 공간이다. 홀에서는 손님들이 우아하게 비싼 음식을 먹지만, 홀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주방에서는 쥐꼬리만 한 임금이 지급되고, 육체적 폭력이 가해지고, 불법 이주자들이 고용주의 기분에 따라 무방비로 내몰린다. 조지 오웰, 귄터 발라프, 사루 자야라만은 그들이 살았던 특수한 시기에 이들 노동자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들을 아울러 ‘감정 노동자들’이라 칭하듯,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정은 더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조직의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실제로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을 만큼 오로지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강요하는 구조적인 문제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런 호텔에서 박봉을 받고 일하는 요리사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존중받지도 못했다. 그들은 하루에 14시간, 15시간, 16시간씩 일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40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육체적 과로에다 대부분 창문도 없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주방 구조 때문이었다. 요리사들은 광부들보다 많은 직업병에 걸렸다. 그들은 만성적인 산소 결핍과 폐결핵, 정맥류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영양 결핍인 경우도 많았다. / 32p

 

 

 

   한때 레스토랑의 백인 전용 스탠드는 새로운 흑인 정항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이전의 흑인 단체들은 대부분 인종 범죄나 차별 대우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반응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울워스의 백인 전용 스탠드에 앉은 학생들은 실제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손 놓고 있지 않으려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반응하는 대신 행동에 나섰고, 단순히 스탠드 반대편에 있는 종업원들을 신경질적으로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남부 지역 전체로 확산되는 새로운 저항 운동의 형태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베리스와 데이비드 서튼은 레스토랑을 <포스트 모던의 이상적인 기관>이라고 칭했다. 레스토랑에서는 문화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모든 것, 즉 생산, 소비, 교환, 감각적인 것, 상징적인 것,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만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피에르 아순도 레스토랑처럼 한 공간에서 내밀한 향유와 사회적, 기업가적 야망을 동시에 연구하기 좋은 곳은 없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레스토랑은 인간과 인간, 이념과 인간이 부딪치고, 시대와 문화가 겹겹이 쌓인 다층적인 형태의 공간으로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양산해냈다.

 

 

 

 

 

 

   『레스토랑에서』는 앞서 밝힌 레스토랑을 둘러싼 각종 흥미로운 이야기와 기록들로 재미있게 잘 읽힌다. 다만 긴밀한 서사나 세세한 분석 및 해석이 배제된 채 파편화된 기록들을 쭉 나열만 한다는 점에서는 그 전개 방식에 어느 정도의 적응이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별한 사전 지식 없이도 가볍게 잘 읽히고 특히, 상업 공간의 실내 인테리어를 주 업으로 삼고 있는 남편에게 미식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꽤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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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7-24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잇이 얼마나 깊이 읽으셨는지를 보여주네요. 사회학자의 작품인가봐요.

투콤마 2017-08-06 14:41   좋아요 0 | URL
포스트잇 붙여가며 다시 들춰보고 싶은 정보들이 꽤 있었어요^^ 학자지만 책 내용은 쉽게 잘 읽히는 편이었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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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슨 기괴한 형태인가. 과연 실존하고 있는 섬의 모습이 맞는 것인가. 잿빛 바다 위에 폐허가 된 골조만이 남아 있는 섬은 마치 뼈만 앙상하게 남은 혼령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이름도 서슬 퍼런 ‘군함도’다. 맨 위에 서 있는 신사를 중심으로 섬 전체를 둘러싼 드높은 방파제 때문에 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아서 사람들은 하시마라는 이름 대신 군함도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 근처에 위치한 섬으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 주목을 받아 우리 앞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었다.

 

 

 

   1940년대 무렵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끼는 거대 군수기업 미쯔비시의 자본 아래 놓여 일본 최대의 해저탄광으로 성업 중이었는데, 이곳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군함도에서 석탄이 채굴되면서 조선인들을 향한 강제징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태평양전쟁의 도발과 함께 궁핍과 자원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한 일본은 조선의 나이 어린 소년까지 닥치는 대로 훑어가 탄광에 처넣을 정도로 무차별 강제징용을 자행했고, 그 결과 조선인들의 인권은 그들 뜻대로 좌지우지 되어 유린당해야만 했다. 한수산의 『군함도』는 바로 이 지옥의 섬이라 불리던 곳, 거대한 악의 수레바퀴 속에서 강제노동에 처했다가 끝내 원폭 피해자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조선인들의 처절한 삶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이란 게 이런 것인가,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먹먹해질 정도로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는 이 소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내일을 희망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마땅히 마주하고 진지하게 성찰해봄으로써 한때의 과거가 아니라 계속해서 주목해야 할 일임을 우리 모두 일깨울 필요가 있는 듯하다.

 

 

 

 

 

 

 

 

나라 잃은 청춘들, 거대한 악의 수레바퀴에 내몰리다

 

 

   진폐증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는 조선의 징용공들이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는 지옥의 섬, 군함도. 이때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로, 조선의 징용공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가혹한 운명에 처해져야만 했다. 지하 700미터를 내려가면 시작되는 갱도에서 12시간 혹은 15시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노동 착취는 물론, 고작해야 콩비지에 삶은 콩, 정어리조림과 같은 형편없는 식사가 전부이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탄광 속에서 파리 목숨보다 가벼운 취급을 받았다. 어이없게도 조선 사람들 내에서도 서열 혹은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한뜻으로 마음을 모으지 못하고, 일본의 뜻에 반대하여 뒤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려할라 치면 이를 밀고하는 이 또한 조선인이라는 점이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었다. 이른바, ‘인간 공출’. 유복하게 자란 친일파의 아들 지상 역시 이 ‘인간 공출’이라는 일본의 서슬 퍼런 사슬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막 임신한 아내 서형을 고향에 둔 채 군함도로 징용을 오고 말았다.

 

 

 

반도의 물자를 닥치는 대로 걷어가던 공출이 이제는 사람에게까지 와 있는 것 아닌가. 쌀 보리 콩처럼, 절간의 종처럼, 제사에 쓰던 유기그릇처럼, 나는 물자가 되어 끌려가는 반도인인 것이다. 그들이 거둬가던 쌀이나 놋쇠와 다름없이 내 팔다리는 일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 『군함도 1』91p

 

 

이것이구나.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지상은 처음으로 나라라는 말을 생각했다. 내놓으라면 그게 어디 곡식만이었나. 조상님 제사 모시던 유기그릇까지 다 꺼내주어야 했다. 가자고 하니까 여기까지 끌려왔다. 그러고도 이제 또 서라면 서고, 때리면 맞아야 한다. 왜 우리가 이래야 하는가. 우리는 그 무엇에서도 주인이 아니다. 이제야 알겠다,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인가를. / 『군함도 1』 118p

 

 

 

   인권의 사각지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짓눌린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던 징용공들은 이곳에 남느냐 목숨을 걸고 도망치느냐 기로에서 끊임없이 내몰린다. 설상가상으로 증탄독려를 위한 가혹행위들은 거세지고 광부들의 자해행위는 늘어갔으며 눈에 띄지 않는 기생충으로 인해 숙사의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었다. 때마침 지상은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남을지,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해야 할지 고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험한 바닷길에 휩쓸려 죽거나 육지에 도착하더라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끝내 붙잡혀 돌아왔다가 모진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었다. 결국, 오랜 고심 끝에 군함도에서 머무를 수 없다고 결심한 지상은 오랫동안 군함도에서 징용공들의 큰형님으로 손꼽히는 명국과 춘천에서 징용되어 온 우직한 벗 우석과 함께 탈출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과연 죽어야만 나갈 수 있다는 이 지옥섬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총 2권에 이르는『군함도』의 1권은 군함도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지상과 그 일행들에게 놓인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매우 긴장감 있게 재현한다.

 

 

“세상은, 우리가 다 함께 사는 게 세상이다. 나한테는 남의 일이지만 그 사람한테는 손톱 밑에 가시만 끼어도 아픈 거, 그게 세상이다. 남의 일이냐 내 일이냐, 남의 탓이냐 내 탓이냐, 그렇게들 사니까 우리가 이 모양인 거야. 남의 일이 아니라 그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다.” / 『군함도 1』192p

 

 

우린 왜 이렇게 되었나. 왜 여기까지 끌려왔으며, 이제 목숨을 걸고 여길 나가야 하는가. 살기 위해서다. 산다는 건 뭔가. 그건 자유다. 나는 지금 자유를 찾아서 나가려는 거다. 자유란 게 뭐냐. 그건 간단하다. 내 나라가 없어지면서 우리는 자유를 잃었다. 할 말을 하며,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곳, 그걸 할 수 있는 게 조국이라면 우린 거기서부터 잘못됐던 거야. 나를 잃었다는 바로 그거. 내 나라 말도, 내 나라 글도, 제 이름조차 잃어버린 우리들. 이게 그 시작이다. 이름을 찾고 말을 찾고 혼을 찾아야 한다. / 『군함도 1』368p

 

 

 

   소설은 거대한 악의 수레바퀴에 내몰린 조선 청년들의 굴곡진 삶, 불굴의 의지를 강렬하게 담아냄과 동시에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조선의 여인들이 품어야했던 회한마저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남자들은 떠나가고 죽어가는데, 남아서 그들의 자식을 지키고 길러내야 하는 여인들의 처지와 애끓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던 님이 느닷없이 목숨을 잃어 뼛가루가 되어 돌아왔을 때 마주해야 하는 마음이란 얼마나 괴로운 것이겠는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어 가슴을 쥐어뜯으며 살아야 하는 마음은 또 어떠하겠는가. 그럼에도 살아서 견디고 이겨내어 아이들에게 제 뜻 펴고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여인네의 단단한 마음에서 또한 희망을 본다. 뿐만 아니라, 소설은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가 적극적으로 남편을 찾아 나서는 서형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음으로 맞선 금화를 통해 이를 더욱 극적으로 완성시킨다.

 

 

 

남자들은 떠나가고 죽어가는데, 그래도 남겨놓고 간 그들의 자식을 지키고 길러내야 하는 여자의 처지가 서럽고도 절절하게 가슴을 적셔왔다. 그러리라. 살아서 견디고 이겨내야 하리라. 그래서 어느날 시퍼렇게 자라날 그 아이들에게 억장이 무너지던 이 한스런 세월을 말해야 하리라. 잊지 않고 전해서 알게 하리라. 못난 조상은 이렇게 살았다면 너희들만은 달라야 한다고, 저마다 시퍼렇게 제 뜻 펴고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이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그렇게 말이다. / 『군함도 2』102p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한편, 미군의 공습이 본격화되고 일본은 군수 시설을 지하에 옮기려는 시도를 계속하면서 징용된 조선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지상은 운이 좋게 탈출에 성공하지만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란 보이지 않는다. 지상은 같이 지내던 광재가 급성 폐렴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상해제증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죽을병에 걸려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현실에 힘이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징집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사지 멀쩡한 자들이 눈 벌겋게 뜨고 쪽지 하나에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는 우리 모두가 나라 잃은 청춘의 현실 같다’ 하고 되뇌는 그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유독 가슴을 후벼 판다. 사실 전쟁이란 것은 젊은 일본 청년들의 꿈을 앗아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빛나는 생의 의지를 군부에 희생당하기는 우리와 다를 게 없었으며 원자폭탄으로 인해 한순간에 폐허가 된 삶의 터전으로 많은 것을 잃어야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이는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거기에 무슨 정의로움이 있을 것이란 말인가. 저자는 전쟁의 그늘과 이 참혹한 피해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군함도 2』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무엇인가. 침략전쟁이며 살육이다. 침략과 살육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하물며 인간의 목숨이 인간의 살육을 위해 쓰여도 좋단 말인가. 거기에 무슨 정의로움이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인가. / 『군함도 2』239p

 

 

우리들 하나하나가 아니다. 이 모래알 같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는 항거할 수 없이 크고 엄청난 어떤 집단이나 제도가 거대한 악이 되어 우리를 내리누르며 지배하고 있는 거다. 집단의 탐욕과 편견이 거대하게 뒤엉키고 제도와 제도 간의 경멸과 증오와 부패가 거기 뿌리 깊게 자리 잡아 그들만의 거대한 악을 구축하고 결속시킨다. 우리들 하나하나의 저편에 그 거대한 악이 있는 거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죄악,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거대한 죄악, 그것은 자멸하는 것밖에 제어할 길이 없는 불가항력의 악일 것이다. / 『군함도 2』284p

 

 

 

 

 

 

   동명의 영화 <군함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영화 역시 나름의 복원력과 서사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줄 것이라 기대되지만, 그 전에 이 소설을 읽고 지난날의 역사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에 희망이 있다던 것처럼, 책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히고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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