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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 - 오늘을 여행하는 부부, 지구 한 바퀴를 돌다
김미나.박문규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추억하는 삶을 꿈꾸는
평범한 부부의 세계일주 배낭 여행기!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도 짐을 싸는 긍정적인 부부의
아름다운 희망 로드!
삶이 팍팍하고 고단할 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는 꼭 ‘여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몸과 마음에 산적해있던 고민과 고통들을 이곳에다 묶어두고 일단 떠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니 말이다. 이렇게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를 동력삼아 다시 일상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우리는 금세 다시
떠나고 싶다는 넋두리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훌쩍, 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여행을 가기에 앞서 발목을 붙드는 요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바쁘니까, 부부이니 혼자 갈 수는 없으니까, 데리고 다니기 여의치 않은 아기가 있으니까 등등 신변의 여러 이유들로 인해 세웠다,
엎었다, 계획과 취소를 수시로 반복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고작 1박의 여행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 탓일까, 마치 언제 기회라도 닿으면 주저하지
않고 가기라도 할 것처럼 가이드북이나 여행에세이를 찾아 읽으며 마음으로나마 사전답사를 하기 시작한 게 벌써 몇 개월째이다. 그 가운데 '오늘도
여행하는 부부, 지구 한 바퀴를 돌다'라는 부제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란 책이 관심을 끈다.
또한 드넓은 초원과 설산의 웅장함이 장관을 이루는 언덕 위에서 그 어떤 고단함도 잊고 대자연의 풍경을 가만히 누리는 듯한 부부의 다정한 뒷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부부가 함께 세계일주라니, 일상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세상 밖으로 함께 두 발을 내딛은 부부의 남다른 이야기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녹록치 않은 세계 여행
준비기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의 저자인 메밀꽃 부부는 동갑내기 부부로, 손님을 초대하기도 버거운 작은
원룸에서 신혼집을 차리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가며 착실하게 회사생활을 한 근검성실한 생활을 이어왔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에 그나마 유일한 낙이 있다면 매 주말 거르지 않고 국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은
가까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퇴근 후에는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삶의 고단함을 여행으로 달래곤 했다. 그렇게 결혼 후 두 달이 지났을 즈음,
2년 정도 열심히 모아서 스물아홉쯤에 세계여행을 갈까? 하고 불쑥 이야기를 꺼낸 것이 불씨가 되어 그날로 부부의 세계일주 프로젝트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부부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서 사전계획에 꽤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가장 먼저 여행
준비에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큰 그림을 그렸다. 여행 테마와 루트, 예산, 항공권 발급, 숙박 네트워크 확인을 비롯하여 여행 중 생길
문제들 대처방법 숙지, 건강검진, 예방접종, 장기여행자 보험 가입, 기존에 들어있던 불필요한 보험이나 통장을 정리하고, 필요한 카드나 비자
발급에 필요한 각종 증명서 사본을 만들기, 국제운전면허증 발급 등 사전에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고작 몇 박 몇 일의 해외여행이라
하더라도 준비할 일이 만만치 않은 일인데, 1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친 세계일주라면야 그 과정이 꽤나 녹록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다 여행
시작 전부터 지치겠다는 부부의 푸념이 예사로 들리지 않을 만큼 이들 부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리스트와 상세내역은 상당히 디테일하고 그래서 매우
유용할 듯하다.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이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기', '먹는 데엔 아끼지 않기', '가계부 꼼꼼히 적기',
'로컬 시장엔 꼭 가보기', '매일매일 일기쓰기' 등 부부가 여행의 원칙으로 삼은 리스트였다. 아니나다를까 그들의 여행기를 따라 가다보면
고집스러울 정도로 많이 걷거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대중교통 이용기가 흥미진진하게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먹는 데엔 아끼지 않겠다더니, 정말로
숙박비나 교통비를 합한 것보다 식비가 훨씬 많이 나온 여행지를 보면 슬쩍 웃음도 나온다. 보통 배낭여행자들은 굶주린 여행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부대비용을 아끼고 지역의 먹거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이들 부부의 원칙이 의외로 신선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결혼한 지 2년 7개월, 평범한 20대 후반의 맞벌이 부부는 사직서를 내고 커다란 배낭 두 개를 둘러맨 채
세계여행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1년 후의 삶은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서. 같은 곳을 보며 함께 걷고 언제나 든든하게 손잡아줄 수 있는
서로가 있어 다행이라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며 기나긴 여정에 발을 내딛었다.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함께
하는 여행이니까, 그간 일상에 치여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면 이 여행은 오롯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이 될 테니까, 어쩐지 이 부부가
부러워졌다.
살아가면서 언제나 쉬운 길만 걸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라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가지 못할 길은 없다는 것을,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속도에 맞춰 걸으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여행길에서 우리도 조금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 60p
여행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부부는 아시아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넘어가는 일정을 통해 시차적응과 육로이동에 편리하도록 루트를 설정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시작으로 하여 네팔, 인도,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터키에 이르렀다. 아시아는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 다정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며 매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설레는 곳이었다. 부부가 떠난 여정을
쭉 따라가다보면 놀랍게도 내가 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동양적인 색채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정취에 매료되고 만다.
유독 아시아 여행지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들 부부가 여느 여행 에세이에서 잘 다루지 않는 소소한 아시아인들의 일상을 잘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과 여행 에세이가 객관적인 지역별 정보 제공 및 여행지에서 사유한 것들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을 주로 다루는 편인데 비해, 이 책은 이들 부부가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고, 감정을 나눈 일상들을 일기처럼 쓴 형식이라는 점에서
보다 현지와 밀착된 감정을 전한다.
근 30년 내내 복잡한 도시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날
때마다 쉽게 사랑에 빠져버렸다. 거기다 호수나 강, 잔잔한 바다까지 있는 곳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우리는 은퇴한 노부부의
여행처럼 조용한 곳을 찾았다. 길거리엔 소와 닭들이 나와 어슬렁거리고, 해가 지면 온 동네가 어둠에 잠기고 나른한 바람이 살랑대는 곳, 채 한
권만 있어도 행복하고 시간도 더디게 흐르는 듯 마냥 게을러지는 곳. 그런 마을에 가면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어도 괜찮았다.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의 미소와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며칠간 넋 놓고 있는 시간이 좋았다. / 141p
‘우리가 가는 모든 곳이 집이 된다 생각하니 한편으론 가슴이 두근거렸다’ 던 감회처럼 이들 부부는 특유의 긍정적인
기질로 여행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욱한 먼지들로 가득한 네팔의 혼란스러운 아침을 맞이했을 때 그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 챙겨온
마스크 한 장에도 기뻐하며 카트만두 시내 구석구석을 걸었고, 위험천만하게도 지붕위에까지 올라타야 할 정도로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도 꿋꿋이
여행을 즐겼으며 베드버그가 창궐하는 숙소에서 잠 한숨 못자는 상황까지 겪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긴 일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덕분에 가는 여정이 가장 열악해 보이는 단점이 있으나
소박하고 평화로운 정취가 아름답게 느껴진 라오스를 꼭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간에 1년 동안 터키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했던 휴지기를 끝으로 정리된 아시아 여행은 이제 헝가리를
시작으로 유럽에서의 일정으로 넘어간다.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그리스, 스위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벨기에, 프랑스,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스페인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세계일주를 마무리 순이었다.
관광 시스템이 마을 곳곳에까지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던 아시아에 비해 유럽 여행은 상대적으로 이들 부부에게 순탄해보였다. 물론, 오스트리아 빈에서
느닷없이 카메라 소매치기를 당할 뻔하고, ‘유럽 곳곳이 날벼락으로 40여 명 사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뉴스가 보도된 날 그들은 스위스에서 첫
캠핑을 했다가 텐트 침수를 당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여행 권태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은 따뜻한 공기와 낭만이 어린 매력적인
여행지임에는 틀림없는 듯 그들이 누빈 곳곳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여행이 길어지만 결국 이것도 생활이라 먹고살기의 연속이 된다. 크게는 이동, 숙소
구하기, 밥 먹기로 이루어지는데 배낭여행자의 주머니 사정이 뻔하므로 항상 싼 것을 찾아야 했고 매번 흥정에 흥정을 거듭했다. 사실
'세계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과 로맨틱함 안에는 '사서 고생'이 포함되어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 고장 난 로컬 버스를 타거나,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같은 동네를 몇 바퀴나 빙빙 돌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에도 손을 벌벌 떨게 되니까.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모르는
사이 여행자의 피로가 차곡차곡 쌓인다. / 296p
이들 부부의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것은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우정이었다.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기 위해 만난 리마 아저씨와의 우정은 그들을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네팔 포카라에서 처음 만난 뒤 스리랑카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치앙 마이에서는 생일과 송끄란을 함께 경험한 앨리스 언니도 마찬가지다. 그간 블로그에서 알고 지냈던 친구 신혜를 인도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훗날 터키에서 그녀의 게스트하우스를 1년간 운영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 역시 모두 그들과의 인연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은 이들
부부의 따뜻한 기질 덕분에 가능했던 일인 듯하다. 어쩌면 낯선 타지에서 나눈 누군가와의 우정이 유명한 관광지의 위대한 건축물 보다 현지의 추억을
두텁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 전날이면 꼭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여행을 돌이켜 보고, 정리하고,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나라로 가기 전의 설렘을 나눴다던 이들 부부의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은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소박하게 글로
써내려간 여행에세이였다. 그들이 세세히 수록해놓은 경비 목록을 보면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서로를 앞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격려해주는 다정한
동반자만 함께 있다면 얼마든지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부부도 언젠가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신랑에게 몇 번이나 책의 내용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아이가 많이 자라고 나면 셋이서 함께 꽤 긴
여행을 떠나게 될 런지. <메밀꽃 부부 세계일주 프로젝트>는 나에게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책이 되었다.
여행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서 인생이 크게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분명 단단해지고 있었다. 조그만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행복해 했으며, 속상하거나 좋지 않았던 일은 금방
훌훌 털어버렸다. 우리는 긍정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행하길 참 잘했다는 것을. /
10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