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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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왜 어린이나 아저씨나 아줌마는 잡아가지 않고, 아가씨 또는 공주만 잡아갈까?
백설공주의 계모는 거울에 매달려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쁜지 안달복달할까?
빨간모자 소녀의 할머니는 깊은 숲속에서 왜 혼자 살까?
깊은 숲속 접근이 불가능한 탑에 갇혀도, 독사과 먹어 죽어서 유리관에 전시돼도 왜 항상 왕자가 나타나 구원해 주는 것일까?

지금 21세기의 우리에게 전래 동화는 무슨 의미일까?
새롭게 다시 읽는 전래동화의 숲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이다.

어릴 때 '흥부와 놀부'를 읽으며 흥부는 능력도 없고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 왜 저렇게 아이들만 많이 낳아 가족들을 고생시킬까 진짜 저런 남자 만나면 안 되겠다 교훈 삼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공주가 나오는 동화는 불쌍한 공주, 언제 왕자가 나타나 구해주고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까? 생각했지. 왜 공주는 늘 약하고 당하기만 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할까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남자가 당연히 여자를 구원해야 하고 여자는 당연히 남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거였다.

사회적 경험을 하고 책을 읽으며 사고가 확장되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남성이 준 유리 구두에 맞춰 발을 자르던 여성
가부장 권력에 순응하고, 평가당하고, 양도되던 여성
그동안 내가 읽었던 동화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숲으로 간 동화 속 여주인공들을 찾아 본격 해부에 나선다. 공주를 잡아간 용은 사실 여자 그 자체였고, 여자는 용처럼 용맹하고 파워를 지닌 존재이자 신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며 더 이상 깊은 숲에 있지 말라 말한다. 애초에 용은 없었다. 예쁜 공주의 모습을 하며 왕자가 와서 구해주길 여자는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오래전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세뇌당하고 잘못 주입된 고정관념이 여성을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성이라고 해서 여성보다 더 우월해야 했던 동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우월해야 하는 젠더 갈등을 부추기지 않는다. 동화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에 전래 동화를 새롭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당시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다시 쓰여야 하는 것처럼 옛날이야기도 여러 가지 변형을 통해 반드시 다시 쓰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럼, 이제 어떤 옛날이야기를 새롭게 써야 할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흥부와 놀부를 새롭게 써볼까
아이들과 함께 옛날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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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김선현 지음 / 한길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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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몸의 아픔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았던 프리다 칼로, 성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에곤 실레, 사랑하는 사람과 닮고 싶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 누구보다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스페인 독감마저 물리친 장수 예술가 에드바르 뭉크, 성공할까 두려워하면서도 후원과 관심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했던 빈센트 반 고흐,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로서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표출했던 타마라 드 렘피카 등 57명 화가가 남긴 자화상 104점이 담겨있다.

자화상은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자신의 내면과 정체성을 외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미술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치료기법으로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숨겨진 마음을 찾아낸다. 책에 소개된 자화상은 화가로서의 번민과 고통,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모습도 보였지만 아픔, 고통,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 또한 느껴졌다.

대부분 자화상이 우울과 불안, 고독, 슬픔 등이 느껴졌는데, 유독 도전적이고 당당함이 눈에 띄었던 작품이 있었다. 책 표지로도 선정된 타마라 드 렘피카의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이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뇌쇄적 눈빛과 대담하고 도시적인 신여성의 모습을 담아낸 이 작품에서 타마라가 여성으로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고자 했던 모습이 화풍에서 그대로 전해져 더욱 인상 깊었던 거 같다.

같은 시대, 우리나라 화가였던 나혜석 또한 당시 여성 화가로서 멋진 행보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사회적 질타 속에서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건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심리학에서는 '나'를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세 가지의 '나'가 있다고 한다.
'되고 싶은 나' , '노력하면 될 수 있는 나', '실제의 나'
되고 싶은 나를 위해 노력하려 하는 나지만 실제의 나는 그러지 못하는 거 같아 자주 좌절감을 느낀다. 여러 화가들의 자화상을 보며 진짜 되고 싶어 하는 나는 무엇인지, 오늘은 그 숙제를 해봐야겠다.

때론 우리의 환경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움직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은 시간이 흐른 뒤 그때가 운명 같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어떤 경우는 "그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때 그 상황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바로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_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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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국사 : 고려편 - 격동의 500년이 단숨에 이해되는 스토리텔링 고려사 벌거벗은 한국사
tvN〈벌거벗은 한국사〉제작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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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벌거벗은 세계사, 한국사 방송을 즐겨 보던지라 이 책이 더욱 반가웠다. 분명히 방송으로 접한 내용인데도 책으로 다시 보니 왜 또 처음 본거 같은지 나 자신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래도 29명의 부인을 둔 왕건은 또렷이 기억난다는 거.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혼인으로 끈끈한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해 각 지역 호족과의 혼맥을 맺었다. 무려 29명의 부인이라니,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책략이었지만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부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는 예고된 바였다. 왕건 즉위 18년 만에 간절히 꿈꾸던 삼국통일을 이루고 고려는 500년 역사의 서막을 올린다.

조선사도 재미있지만 뭔가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고려사 참 개방적이고 화끈한 맛이 있다. 특히 고려 왕실을 뒤흔든 충격적 애정 스캔들은 마치 1930년 당시 파격적이었던 김말봉 작가의 애정과 애욕의 갈등이 벌어지는 소설 <찔레꽃>을 연상케한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근친혼을 택한 고려 왕실, 배다른 남매가 근친혼을 통해 낳은 딸 천추태후와 승려 행세를 했던 김치양과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정황후와 유부남 삼촌과의 불륜 이야기는 현대판 사랑과 전쟁 마랏맛을 보는듯하다.

혼돈의 한반도를 통일한 태조왕건의 특급 비책, 원나라 제1황후가 되었던 고려 여인 기황후, 공민왕의 비선 실세 노비 신돈, 믿었던 전우 이성계에게 목숨을 잃은 최영 등 끝없는 혼란 속 굳센 기상과 불굴의 정신으로 고려를 지켜낸 결정적 순간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안 밖으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들로 고려 궁궐은 피로 물들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은 궁핍해졌다. 책에서도 언급했듯 눈앞의 권력만 틀어쥐고 이것을 놓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급급하면 그 속에서 곪아가는 상처는 보지 못한다. 공민왕의 오른팔로 인생 역전을 꿈꾸던 문고리 신돈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천추태후도 사랑하는 연인 김치양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했고 폐위 당한 목종과 함께 유배지로 떠나야만 했다.

모든 권력이 한 사람과 한 세력으로 나올 때 그 끝이 죽음임을 역사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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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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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으로 알려진 점토판에는 우루크의 어느 왕이 경쟁상대인 왕에게 보내는 위협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로 채워진 점토판을 보며 상대방 왕은 마치 점토가 말을 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 놀라움에 우루크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 없는 문자는 마치 인간의 소리를 담은 듯, 과거와 미래, 신들과 악마의 이야기,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기록은 어느 한 서기가 텍스트를 받아 적으면서 시작됐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만든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여정
마틴 푸크너 『글이 만든 세계』 이다.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은 책임은 분명하다. 5,0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된 텍스트를 시작으로 글이 만들어낸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철학 사상들의 영향이 어떻게 이 세계를 만들었는지 작가는 그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고 탐구하며 깊이 파고든다.

그리스어와 그리스 알파벳을 확산시키는데 주요 도구가 됐던 일리아스, 최초의 의미 있는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 신의 소리를 담은 성서와 금강경, 소크라테스와 논어, 세계 최초의 소설인 겐지이야기, 면죄부 판매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괴테 문학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마르쿠스와 엘겔스의 공산당선언, 천일야화부터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 4,000여 년을 걸친 글이 만든 장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의 역사에 글이 얼마나 중심적 역할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텍스트는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무자비한 권력자들에 의해 수많은 희생을 낳기도 했다. 문자 하나로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기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을 거듭해온 인류에는 그렇게 글이 존재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사 한 줄에 분노하고 환호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과 댓글의 홍수에 떠밀려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한 서기의 기록으로 시작된 텍스트는 지금 수많은 이들이 기록하는 텍스트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글을 넘어 이제 짧은 영상이 그 자리를 채우는 지금. 내가 쓴 글이 내가 찍은 영상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우주에서는 당신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든 저마다 이야기를, 흔히 경이와 우연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지는 알고 보면 왕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며, 그냥 짐꾼도 무엇인가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자 하나의 이야기이다. _p.275

그러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 지어 옮기지 말아야 함을 ... 이 책, 글이 만든 세계를 완독하며 다시 한번 새겨본다. 글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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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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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중앙신고센터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전 전화했던 데보라 쿠퍼입니다. 한 소녀가 숲에서 어떤 남자에게 쫓기도 있다고 신고했잖아요. 그 소녀가 지금 우리 집 주방에 도피해 있어요."
"소녀의 얼굴이 피투성이에요. 빨리 경찰과 의료 팀을 보내줘요."

경찰이 출동했을 때 데보라 쿠퍼 부인은 살해되었고, 소녀는 실종되었다.

그런데 33년 전 실종된 그 소녀가 나타났다.
교수이자 유명 작가 해리 쿼버트 자택 정원에서 유골로 발견된 열다섯 살 소녀 놀라 캘러건, 해리는 두 사람의 살해 용의자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이 일은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충격적 사건이 되고 만다. 서른네 살의 유명 작가 해리 쿼버트와 열다섯 살 소녀 놀라 캘러건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해리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책 <악의 기원>은 이 둘의 실제 사랑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의 제자이자 유명 작가인 마커스는 그가 범인이 아닐 거라 확신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마을 남자들 모두가 놀라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지는데.. 놀라는 마을 남자 모두와 부적절한 관계였을까, 아니면 그들에게 유린당한 희생자였을까, 하나같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다.

금지된 사랑의 끝!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위험한 욕망이 드러난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미 희미해진 그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른 순간, 마을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 조각들이 틀어지는 그 시간과 공간들이 모두 범인인 거 같아 혼란스럽다. 사랑이라 말하는 해리가 놀라가 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었던 해리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 해리와 놀라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알고 그 추악함을 응징하려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놀라의 비밀을 빌미로 한 소녀를 가혹하게 유린한 누군가가 있다면....

평화로운 시골 마을, 그곳에는 그 누구 하나 비밀 없는 자들이 없었다.
총 2권으로 나누어져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지만,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사건이 전환되며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그래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면 또 다른 용의자가 나타나고, 이제 진짜 범임이 나타났다 싶으며, 또 다른 진실이 밝혀져 최종, 진짜최종, 이게 마지막 진짜, 위에 거 다 아니고 이게 진짜 최종.. 그렇게 진짜 범인을 추적하는 미로에 빠지고 만다.

이 책이 챕터마다 제안하는 31가지의 조언 중 하나

"책이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 독자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마지막 반전이 필요해."
"왜 반전이 꼭 있어야 하죠?"
"독자들에게 끝까지 숨 돌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 작가 너무하잖아.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 최소한 숨 쉴 구멍 하나는 줘야지 말이야. 산소호흡기 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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