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11 시, 하루 한편의 미술이 에세이와 함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데일리 미술 구독 서비스 BGA에서 발행한 콘텐츠 중, '작품+에세이'로 구성된 아름다운 작품과 글들을 담아내고 있다. 미술평론가가 아닌 시인, 방송작가, 큐레이터, 화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여러 명의 필자들이 작품 속에서 '나만의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나만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


화가들이 작품을 구성할 때 분명 의도된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내가 느끼는 감정대로 따라가면 된다. 굳이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예술에 무식한 자가 되는 건 아닌다. 1+1=1이 될 수도, 1+1=3이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예술 분야가 아닐까.


이 책이 가장 좋았던 거 명화보다 동시대 작품들을 많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명화는 평론가들의 작품평에 워낙 익숙해져 다른 감상을 할 수가 없는데 동시대 작품은 오로지 내가 느낀 시선과 감정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어 좋았다. 특히 필자들이 각 작품마다 기록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작품에 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그중 발신인과 수신인이 정해져 있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편지들. 엄마에게 그림과 사진에 글을 담은 에세이는 내 시선을 한참 머물게 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나 또한 엄마를 발견한다. 그리고 누구에게 무슨 그림을 선물할 것인지를 상상한 에세이는 내가 가지고 싶었던 작품을 소장하는 상상만으로도 흥분하게 만든다. 역시 미술은 분석하고 이해하기 보다 감정과 감각을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칼로 정확하게 그어놓은 듯 반듯한 평이 아니어서 더욱 편안한 그림 안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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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방관 심바 씨 이야기
최규영 지음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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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화재 소식을 뉴스로 접할 때면 그 뜨거운 불속에 또 얼마나 많은 소방관들이 고생을 하셨을까 싶어 마음이 쓰이곤 한다. 그나마 요즘은 지원 물품이나 대우가 예전보다 나아져 다행이지만 그동안 생명을 담보로 하는 소방관이 안전장비를 자비로 사야 할 정도로 처우는 최악이었다. 목숨까지 내놓고 하는 일인데 이제야 겨우 이 정도 처우 개선이라니,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다.


35세 늦은 나이에 소방관에 된 저자는 극지 마라토너, 우간다 유학, 인도 봉사, 식당 운영, 특전사 등 젊은 시절 경험했던 다채로운 이력이 눈길을 끄는 고참 같은 막내 소방관이었다. 불 끄는 일부터 유기 동물 포획에 각종 민원들을 해결하는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 소방관은 그의 천직인듯했다. 하지만 늘 위험한 일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안타까운 사연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화재와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인을 만나지 못해 죽음에 처해 있는 동물들의 사연들을 보며 매일 타인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소방관의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지 다시 한번 깨닫고 고개 숙여 감사하게 된다. 그분들은 그 죽음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심장이 멎었던 날,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흉부압박을 하며 아버지 입에 숨을 불어넣었던 아이는 119 아저씨들을 원망했다고 한다. 아저씨들이 늦게 와서 아버지가 죽은 거라고.. 그런 그가 이제 119 아저씨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매번 조금만 참아달라고, 조금만 기다리라며 마음으로 외치며 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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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 천사와 악마 사이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안내서
마이클 슈어 지음, 염지선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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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선하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길 바란다. 그러다 보니 작은 거짓말을 하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함정과 선택에 있어 공리주의에서 실존주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피터 싱어를 넘나들며 더 나은 삶으로 안내하는 위트 넘치는 철학의 질문들에 유쾌한 답을 내놓는다.


쇼핑몰 카트를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아도 되는지, 친구의 구린 패션을 눈감아 줘야 할지, 지구 반대편에서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데 최신 휴대폰을 사야 할지,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빵을 계속 먹어도 될지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거대한 난제들을 돌직구로 독자에게 던진다. 가끔 쇼핑몰 카트를 주차 한쪽 구석에 두기도 했었고, 친구의 구린 패션을 예쁘다고 칭찬했으며, 아프리카의 노동착취를 욕하면서 하루에 커피를 열 잔씩 마셨다. 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게 모르게 악함이 조금씩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나름대로 '윤리적 피로감'에 힘겨울 때가 많았다. 악덕기업 제품 쓰지 않기,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불법 주정차하지 않기, 노동친화적이고 친환경적인 회사의 제품 사용하기, 도덕적인 정치인에 투표하기 등 '더 나은' '더 윤리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정도와 상황들이 점점 높아지면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도 쌓였다. 그러다 보니 나 혼자 이것저것 다 지킨다고 더 나은 삶이 되겠어라는 생각에 하나둘 내려놓게 되는 순간들이 온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이 땅에서의 피곤한 삶의 무게를 고려할 때 윤리적 피로감에서 벗어나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것 정도는 괜찮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사람이나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않는 선에서 규칙 위반을 어느 정도 허용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은 없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나와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므로 도덕적 중심잡기를 잘 하자며 좋은 삶을 살수 있는 두 가지 조언을 한다.


너 자신을 알라.

지나치지 말 것.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쓰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온전한 존재로서 너 자신을 이해하며 그에 맞는 삶을 살라는 것.

무엇이든 지나치면 일을 망치니 친절이나 관대함, 용기 같은 덕을 쌓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도 쓰여있었지만 철학은 한 가지 질문이 생기는 순간 그 질문의 답을 찾는 동시에 그것이 맞는 질문인지, 그 질문을 왜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50가지 질문을 던진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 꼬꼬무가 이어지는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철학이다. 이 책 한 권으로 더 나은 더 윤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나로 발전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유쾌한 질문에 유쾌한 답들이 이어지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흥미로웠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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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
사라 헨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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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은 늙기 마련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치매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내 의지와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 우린 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절망의 가장 큰 이유는 비장애인에 맞춰져있는 공간에서 비롯된다. '표준'과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만들어진 공간과 도구는 대부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도저히 이동할 수 없고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도시설계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고 발전됐다 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고 불편한 게 현실이다. 이에 책은 전체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몸과 세상이 만나는 지점에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안한다. 저신장 장애인 어맨다에게 탄소섬유탄으로 제작한 휴대용 강연대를, 발달장애로 스스로 앉지 못하는 니코에게 맞춤형 골판지 의자를, 양손을 잃은 신디에게는 케이블 타이가 그녀의 손을 대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복잡하고 값비싼 보조 기구가 아닌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제품으로 신체 맞춤형 기구를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재활용 쓰레기인 골판지로 가구를 만드는 적응형디자인협회의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는 놀라울 정도였다. 가볍고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흔하고 보잘것없는 재료인 골판지를 겹치고 심지를 만들어 끼워 1제곱 센티미터다 약 77킬로그램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견디는 가구를 만들어낸다.

몸이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여러 사례를 보며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장애와 디자인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없는 환경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린 결국 끝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장애의 몸이 될 수밖에 없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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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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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다음 날 약속만 없었다면 밤을 새서 읽고 싶을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내며 나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미친 남편 원우, 담대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강한 멘탈을 가진 아내 정하와 그녀를 계속 쫓는 소름돋는 앞집 여자, 그리고 앞집여자의 완벽한 남편까지, 그들의 얽힌 섬뜩한 이야기에 책을 놓을수가 없었다. 남편의 일기장을 발견한 순간 아내 정하보다 내가 더 흥분해 남편 원우의 사지를 갈기 길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잔인한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남편의 감춰두었던 마음을 알게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사랑까지 아니었지만 믿음. 그 신뢰가 무너질때 절망할거 같은데,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견뎌낸다. 그런 그녀 앞에 조금씩 다가오는 앞집 남자와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한 그 남자의 아내. 이제 남은 건 정하와 앞집 남자 두사람이다.

"당신과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어떤 일을 겪게 되든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를 하고 열심히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어. 지금 당신과 한집에 있으니."

그런데, 남편이 사라진지 13년이 지난 지금 아들 상원이 사라졌다. 그 날 남편이 피묻혔던 그 칼을 남긴채...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있는 배우들일지도 모른다. 진실을 밝히는 것과 진실을 덮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는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도 그녀와 같은 선택을 했을거 같다. 잔인하고 소름돋지만 그 진짜 사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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