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국사 : 고려편 - 격동의 500년이 단숨에 이해되는 스토리텔링 고려사 벌거벗은 한국사
tvN〈벌거벗은 한국사〉제작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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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벌거벗은 세계사, 한국사 방송을 즐겨 보던지라 이 책이 더욱 반가웠다. 분명히 방송으로 접한 내용인데도 책으로 다시 보니 왜 또 처음 본거 같은지 나 자신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래도 29명의 부인을 둔 왕건은 또렷이 기억난다는 거.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혼인으로 끈끈한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해 각 지역 호족과의 혼맥을 맺었다. 무려 29명의 부인이라니,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책략이었지만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부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는 예고된 바였다. 왕건 즉위 18년 만에 간절히 꿈꾸던 삼국통일을 이루고 고려는 500년 역사의 서막을 올린다.

조선사도 재미있지만 뭔가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고려사 참 개방적이고 화끈한 맛이 있다. 특히 고려 왕실을 뒤흔든 충격적 애정 스캔들은 마치 1930년 당시 파격적이었던 김말봉 작가의 애정과 애욕의 갈등이 벌어지는 소설 <찔레꽃>을 연상케한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근친혼을 택한 고려 왕실, 배다른 남매가 근친혼을 통해 낳은 딸 천추태후와 승려 행세를 했던 김치양과의 은밀한 사랑 이야기,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정황후와 유부남 삼촌과의 불륜 이야기는 현대판 사랑과 전쟁 마랏맛을 보는듯하다.

혼돈의 한반도를 통일한 태조왕건의 특급 비책, 원나라 제1황후가 되었던 고려 여인 기황후, 공민왕의 비선 실세 노비 신돈, 믿었던 전우 이성계에게 목숨을 잃은 최영 등 끝없는 혼란 속 굳센 기상과 불굴의 정신으로 고려를 지켜낸 결정적 순간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안 밖으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들로 고려 궁궐은 피로 물들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은 궁핍해졌다. 책에서도 언급했듯 눈앞의 권력만 틀어쥐고 이것을 놓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급급하면 그 속에서 곪아가는 상처는 보지 못한다. 공민왕의 오른팔로 인생 역전을 꿈꾸던 문고리 신돈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천추태후도 사랑하는 연인 김치양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했고 폐위 당한 목종과 함께 유배지로 떠나야만 했다.

모든 권력이 한 사람과 한 세력으로 나올 때 그 끝이 죽음임을 역사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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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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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으로 알려진 점토판에는 우루크의 어느 왕이 경쟁상대인 왕에게 보내는 위협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로 채워진 점토판을 보며 상대방 왕은 마치 점토가 말을 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 놀라움에 우루크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리 없는 문자는 마치 인간의 소리를 담은 듯, 과거와 미래, 신들과 악마의 이야기,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기록은 어느 한 서기가 텍스트를 받아 적으면서 시작됐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만든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여정
마틴 푸크너 『글이 만든 세계』 이다.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은 책임은 분명하다. 5,0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된 텍스트를 시작으로 글이 만들어낸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철학 사상들의 영향이 어떻게 이 세계를 만들었는지 작가는 그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고 탐구하며 깊이 파고든다.

그리스어와 그리스 알파벳을 확산시키는데 주요 도구가 됐던 일리아스, 최초의 의미 있는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 신의 소리를 담은 성서와 금강경, 소크라테스와 논어, 세계 최초의 소설인 겐지이야기, 면죄부 판매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괴테 문학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마르쿠스와 엘겔스의 공산당선언, 천일야화부터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 4,000여 년을 걸친 글이 만든 장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의 역사에 글이 얼마나 중심적 역할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텍스트는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무자비한 권력자들에 의해 수많은 희생을 낳기도 했다. 문자 하나로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기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을 거듭해온 인류에는 그렇게 글이 존재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사 한 줄에 분노하고 환호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쏟아지는 관련 기사들과 댓글의 홍수에 떠밀려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한 서기의 기록으로 시작된 텍스트는 지금 수많은 이들이 기록하는 텍스트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글을 넘어 이제 짧은 영상이 그 자리를 채우는 지금. 내가 쓴 글이 내가 찍은 영상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우주에서는 당신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든 저마다 이야기를, 흔히 경이와 우연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거지는 알고 보면 왕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며, 그냥 짐꾼도 무엇인가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자 하나의 이야기이다. _p.275

그러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 지어 옮기지 말아야 함을 ... 이 책, 글이 만든 세계를 완독하며 다시 한번 새겨본다. 글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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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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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중앙신고센터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전 전화했던 데보라 쿠퍼입니다. 한 소녀가 숲에서 어떤 남자에게 쫓기도 있다고 신고했잖아요. 그 소녀가 지금 우리 집 주방에 도피해 있어요."
"소녀의 얼굴이 피투성이에요. 빨리 경찰과 의료 팀을 보내줘요."

경찰이 출동했을 때 데보라 쿠퍼 부인은 살해되었고, 소녀는 실종되었다.

그런데 33년 전 실종된 그 소녀가 나타났다.
교수이자 유명 작가 해리 쿼버트 자택 정원에서 유골로 발견된 열다섯 살 소녀 놀라 캘러건, 해리는 두 사람의 살해 용의자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이 일은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충격적 사건이 되고 만다. 서른네 살의 유명 작가 해리 쿼버트와 열다섯 살 소녀 놀라 캘러건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해리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책 <악의 기원>은 이 둘의 실제 사랑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의 제자이자 유명 작가인 마커스는 그가 범인이 아닐 거라 확신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마을 남자들 모두가 놀라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지는데.. 놀라는 마을 남자 모두와 부적절한 관계였을까, 아니면 그들에게 유린당한 희생자였을까, 하나같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다.

금지된 사랑의 끝!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위험한 욕망이 드러난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미 희미해진 그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른 순간, 마을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 조각들이 틀어지는 그 시간과 공간들이 모두 범인인 거 같아 혼란스럽다. 사랑이라 말하는 해리가 놀라가 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었던 해리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 해리와 놀라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알고 그 추악함을 응징하려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놀라의 비밀을 빌미로 한 소녀를 가혹하게 유린한 누군가가 있다면....

평화로운 시골 마을, 그곳에는 그 누구 하나 비밀 없는 자들이 없었다.
총 2권으로 나누어져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지만,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사건이 전환되며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그래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면 또 다른 용의자가 나타나고, 이제 진짜 범임이 나타났다 싶으며, 또 다른 진실이 밝혀져 최종, 진짜최종, 이게 마지막 진짜, 위에 거 다 아니고 이게 진짜 최종.. 그렇게 진짜 범인을 추적하는 미로에 빠지고 만다.

이 책이 챕터마다 제안하는 31가지의 조언 중 하나

"책이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 독자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마지막 반전이 필요해."
"왜 반전이 꼭 있어야 하죠?"
"독자들에게 끝까지 숨 돌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 작가 너무하잖아.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 최소한 숨 쉴 구멍 하나는 줘야지 말이야. 산소호흡기 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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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 레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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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는 소설 속에만 남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혹하고 끔찍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 그리고 여성살해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왜 이런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은폐됐던 가정폭력 속에서 숨죽여 지내야 했던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다. 마치 감정이 없는 듯 남편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가족들, 감히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이 집 주인이 누구고 누가 왕인지, 누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보고하고 존경심을 표해야 하는지 끈질기게 말했고, 어머니의 침묵에 따귀를 때렸다. 그런 뒤 곧바로 사과했고,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어머니가 자신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며 또 화를 내고 어머니를 때린다.

겉으로 보기에 크게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던 가족이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제발 나를 제대로 봐달라고,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봐달라고...

소설 속 친지와 이웃, 경찰들이 그랬듯 우리 대부분은 무심했고, 그냥 지나친다. 남의 가정사에 함부로 나서는 게 아니라 치부하며 모른척하는 사태들이 결국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남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가해자의 목소리만 담아내는 뉴스 속, 감춰진 피해자의 목소리를 이 책을 통해 들었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도중에 몇 번이나 책을 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읽기를 그만두는 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거라는 은유 작가의 말에 책임감 있게 끝까지 읽어내야 했고,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함께 읽기 바랐다.

삶이 완전히 부서졌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사회가 그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가해자의 목소리가 아닌, 피해자와 남은 이들의 아픔을 듣고 그들이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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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이광표 지음 / 현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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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라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 작품이 있나요?
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단연 떠오른다. 실제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에 실망하기도 한다는데, 루브르박물관에서 본 모나리자 작품은 나에게 꽤 충격적이고 신비로웠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에 오기도 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모나리자> 작품은 왜 이토록 대중의 사랑을 받고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걸까.

명작은 수많은 예술 작품 가운데 선택받은 극소수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여러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생전에 겨우 작품 하나만 팔았던 고흐의 작품들은 미술품 경매 세계 최고가를 경신했고 인류가 남긴 미술품 가운데 국경을 가장 많이 넘나든 고흐의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은 일본 재벌에게 낙찰된 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리고 케이크와 찻잔, 페인트 테러까지 당했던 모나리자는 도난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명작을 탄생시킨 예술가들의 위작은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며 법정 소송까지 가기도 한다. 특히 천경자 화백 본인이 그린 게 아닌 위작이라던 그림을 소장 미술관이 진품이라 주장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는데 아직도 결론이 안 났다는 게 더욱 놀라울 따름인 이상한 세계의 미술계이다.

책은 이렇게 명작으로 대접받게 된 과정을 둘러싼 사건 사고와 논란,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깃든 역사적 수난들을 여러 작품을 통해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잘 몰랐던 한국 작품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꽤 많이 담아냈다는 것이다. 6.25 전쟁 혼란을 틈타 국새와 어보를 훔쳐 간 미군들,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들, 투박하고 못생겼다며 구박받던 은진미륵의 재평가, 임산부가 가야금을 타고 그 옆에서 두 남녀가 적나라하게 성행위를 하고 있는 신라 토우, 끊임없이 위작을 만들어 일확천금을 노렸던 이중섭의 아들, 반가사유상의 뒤로 젖혀진 엄지발가락과 뺨에 닿은 직각 손가락이 말해주는 "깨달음의 표현" 등 작품마다 담긴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최근 몇 년간 경주박물관을 매해 방문했었는데 신라 토우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줄 몰랐었다. 특히 신라인들의 대담한 성적 표현은 차마 글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파격이자 충격이다. 불라불라불라불라~ 절제와 감춤의 미학 따윈 그들에게 없다. 쾌락과 욕망을 토우로 가차 없이 아니 과장되게 표현했는데, 이런 과감함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구나 싶다. 올해는 경주 갈 생각이 없었는데, 신라인들의 명작들이 날 그곳으로 또 부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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