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가 빛날 때 (블랙 에디션) - 푸른 행성의 수면 아래에서 만난 경이로운 지적 발견의 세계
율리아 슈네처 지음, 오공훈 옮김 / 푸른숲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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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새끼발가락 위에 코끼리 두 마리가 서있다고 생각해 보라.
새끼발가락에 코끼리 두 마리가 올라서기 힘들겠지만 그만큼의 압력이 새끼발가락에 가해진다고 생각하면 내 발가락은 아마 죽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의 압력을 가지고 있는 마리아나해구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장치 없이 인간이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아마 평평한 오징어처럼 될지 모른다. 감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까?

이 책은 해양생물학자인 저자가 그의 모든 삶을 바쳐 연구해 온 해양생물연구기를 과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사불멸의 홍해파리, 색맹이지만 망막에 있는 간상세포 덕분에 녹색형광빛 만 볼 수 있는 상어 (상어의 눈에서 발견된 색소는 440~540나노미터 범위의 광파만 흡수하는데 이 파장은 청색 형광에서 녹색 형광으로 바뀌는 파장 범위와 정확히 위치한다), 사람의 이름처럼 태어나 한 달 후 자신만의 고유 이름을 만드는 (서명휘파람) 돌고래, 산소 없이도 살아가는 최초의 동물 헤내구야 살미니콜라등 신기한 해양생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단순히 해양생물에 대한 비밀을 밝히고 앞으로 밝혀질 비밀에 대한 호기심만 담기보다 바다에 사는 동식물을 위협하는 오염, 남획, 소음 공해, 심해 채굴 등의 위험요소와 인간들의 환경파괴에 대한 심각성도 언급하며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막중한 책임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바다는 30억 인구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줄 만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다. 그럼에도 인간은 바다를 없이 여기고 푸대접한다. 바다는 병들어가고 인간은 99퍼센트 의존해 살아가는 그곳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바닷속 세계의 비밀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바닷속 생물들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보존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하는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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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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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고 싶어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치료를 거부하고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일 줄 몰랐다. 엄마에게 남은 마지막 두 달 동안 늘 그렇듯 일상을 보내온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는 결국 정연의 곁을 떠났다.

출산을 겪고 나서야 내가 엄마의 살을 파고 나온 걸 알게 됐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도 나를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겨준 엄마. 소설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에 먹먹해진다. 나의 엄마 또한 건강이 좋지 않기에 늘 친정에서 오는 전화는 나를 긴장케 한다. 행여 새벽이나 늦은 밤에 친정에서 전화가 올까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속 정연이 마치 내가 된 듯 이야기 속에 몰입한다.

엄마의 영원한 부재에 대한 공포이자 엄마가 떠난 뒤부터 반복될 내 외로움과 죄책감에 대한 공포...... 엄마가 떠난 후 느꼈을 정연의 그 공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 손이 사라지고 암흑 속 끝없는 공간에 갇힌 느낌일까. 엄마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정연은 엄마의 그 공간에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부재 속 엄마의 식당을 열며 엄마의 공간에서 엄마의 냄새를 자신의 몸에서 맡는다. 그렇게 엄마가 떠났다는 걸 덤덤히 받아들이는 충분히 시간을 가진 후에야 끝이 없을 거 같은 암흑 속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인다.

홀로 극장에 앉아 독립영화 한 편을 본 듯 조용히 눈물을 닦아냈다. 짧은 소설에 긴 여운을 남긴 이 소설을 이 겨울에 만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조해진 작가님을 왠지 사랑하게 될 거 같다. 이 겨울이 결코 시리지만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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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옵니다 - 정목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마음 연습
정목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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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늦지 않았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말하거라."

삭- 삭- 머리카락 잘려나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고, 그 머리카락이 하얀 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열여섯 소녀는 그렇게 출가해 스님이 되었다.

열여섯 소녀는 어떻게 출가할 결심을 했을까.
삶이 너무 괴로워서? 아니면 불심이 강해서? 어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절에 들어서는 순간 운명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산행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곳이 사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댕댕 울리는 풍경소리에 이끌려 사찰 마당에 들어서면 편안한 마음에 절로 눈이 감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도한다. 종교의 경계를 허무는 묘한 체험을 절에서 느껴보는 거 같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점심 공양의 유혹이란, 이런 말 하기 참 죄송스럽지만 사찰 공양 맛집이라고 할 정도로 건강한 한 끼를 대접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근심 걱정이 있을 때 사찰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책에 소개된 여러 에피소드에도 이런 근심 걱정,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스님을 찾아가 하소연하고 위로와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가끔 절을 점집처럼 생각해 복비를 내고 점을 봐달라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정목스님은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나눠주신다.

열여섯 출가 후 인생의 스승과 그들로부터 사랑을 새기고 또 많은 이들에게 그 사랑과 깨달음을 나누었던 정목스님은 국내 최초 비구니 DJ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책은 꼿꼿한 미움보다 부드러운 사랑으로 넓고 편해지는 삶을 이야기하며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벌써 11월 말, 달력에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며 올 한 해 돌이켜보니 아쉽고 속상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었다. 정목스님의 말씀처럼 살아보고 나서야 어리석었던 부분을 알게 되니 그 허전함과 회한의 감정이 더 많이 드는 거겠지. 하지만 꿈꾸는 힘이 없는 사람은 살아가는 힘도 없다고 꿈은 또 삶의 희망이 되고 우린 또 그 꿈을 향해 기꺼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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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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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이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지 않은 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며 고독 속으로 침잠할 것을 제안했던 작가 노재희가 자유롭고 충만한 삶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죽음 앞에서 살아났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야반도주했을 때, 어쩌다 보니 이 책의 저자와 아주 비슷한 결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은 거 같다. 약간의 위험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늘 좋은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의 이 세계가 답답하고 불안정하다면 다른 세계로 건너가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베드에 결박된 채 괴성을 질렀던 저자는 당시의 상황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의 이야기를 짜집기해 그게 그의 기억이 되어버렸고, 회복된 후에도 예전 자신의 모습을 일기로 접하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나일까?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프기 전과 후의 그의 글은 다른 듯 낯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그도 지금의 그도 그인 거.

새로운 기억이 심어지고 자라나고 빛나고 있는 작가의 글들이 좋았다. 조금씩 나를 인지하고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탐색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거.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이 진짜 나인지 확인하고 싶어 거울을 슬쩍 만져보듯 내가 기억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나 또한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심야괴담회가 생각나는지 ㅋㅋ 난 무표정한데 거울 속 웃고 있는 내가 자꾸 상상돼)

완벽해야 했던 욕심은 이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로,
과했던 의욕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뀐 저자는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아나고 점차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는 오랜 시간을 평온하게 기다린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볼까 했지만, 여전히 난 욕심 많고 의욕이 과한 사람인지 영 놓지 못할 거 같다. 내 인생의 변곡점은 나에게 과한 의욕을 심어주는 걸 보면 말이다 ㅎㅎ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내가 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고 오직 내가 해나가기 시작해서 끝까지 도달한 후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나는 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세계가 커지는 것일까? 이렇게 내 인생의 지도가 그려지는 것일까? 내 세계의 크기는 아직 나도 모른다. _p. 223

내 세계의 크기는 이왕이면 많이 많이 컸으면 좋겠다는 이놈의 욕심. ㅋㅋ
물려받을 땅도 없는데 마음으로나만 이 세계 좀 키워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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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이태형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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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곱게 차려입은 남녀가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은 달빛 아래 정을 통하는 남녀의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특히 밤하늘에 살짝 걸쳐있는 손톱달이 이 작품을 더욱 은밀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동안 이 작품의 제작연도를 알 수 없었는데, 한 천문학자가 그림 속 달을 분석하여 제작 시기를 추론했다. 달의 볼록한 부분이 위로 향한 것으로 보아 월식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신윤복이 태어난 백 년 동안 월식 자료를 분석해 1793년 8월 21일 무렵, 나이 만 35세이던 여름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었다.


'월하정인'의 시대적 배경을 고증한 천문학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이태형 천문학자이다. 

오로지 별밖에 모르는 별 바라기와 밤하늘로 떠나는 여정 


책을 펼치자마자 쏟아지는 별들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한국의 소백산 여름의 대삼각형, 적도 부근 킬리만자로에서 본 여름 은하수, 호주 울룰루에서 본 오리온자리, 캐나다 에노다 롯지에서 본 오로라, 우유니 사막에서 본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았다.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과 함께 저자가 안내하는 계절별 별자리 여행을 순항했다. 


이 책은 사계절의 하늘과 북쪽 하늘의 별자리를 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52개의 별자리 위치와 생김새, 구성별, 별자리에 전해지는 이야기까지 과학과 문학이 함께하며 천문학적 이야기에 머리가 아플 때쯤 재미있는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한다. 


그동안 별자리는 몇 가지 이름만 알았지 그 모양까지 다 알지는 못했는데, 책은 별자리 모양과 별자리 이름의 유래를 일러스트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한 별자리 모양을 동물이나 신화 속 인물 이름으로 붙인 건 엄청난 상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특히 쌍봉낙타쯤으로 생긴 별자리가 카시오페이아 왕비 별자리라니 아무리 내 상상을 밝휘해도 밤하늘에서는 도저히 그 이미지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나는 별자리 운세를 보는 게 더욱 재미있는 것 같다. 책 속에도 별자리 운세가 나와있는데, 내 별자리의 유래도 찾아보고 운세도 점쳐보는 재미가 또 있다. 내 별자리인 '게자리'를 찾아봤는데, 오로지 줄을 잘 섰다는 이유로 성공적으로 기억되는 별자리라니.. ㅋㅋ 게자리는 화려한 1등성 사이에서 오로지 황도에 줄을 섰다는 이유만으로 유명 별자리가 됐다고 한다. 나도 게자리답게 줄을 잘 서보도록 해야겠다. 어느 줄로 서야 하나... ㅎㅎ


책을 읽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났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릴 적 집 앞마당에 누워 바라본 아름다운 별들. 내 기억에 아주 어릴 적 흔히 볼 수 있었던 별들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별을 관찰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별을 볼 수 있는 날은 마치 선물을 받은 듯 아주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도시를 벗어나야 볼 수 있는 별이 되었지만 내 기억 속 별들을 소환하듯 이 책을 보며 별자리 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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