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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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 마법 소녀야. 콤팩트를 이용해서 변신도 하고, 요술봉으로 마법도 쓸 수 있어."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적이 아주 많아. 나쁜 마녀와 괴물 같은 거. 난 언제나 적을 해치우며 지구를 지키고 있어."


"나도 나쓰키한테만 말하는 건데, 나,어쩌면 외계인일지도 몰라."


"언젠가 우주선이 날 데리러 올 거야. 난 계속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




지금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난 '인간 공장'에서 세뇌당한 지구별 인간이고 그들은 '마법 소녀'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숨긴 채 '인간 공장'에 대항하는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 이다. 그들이 보기엔 난 '비정상'이고 그들은 '정상'인 존재들이지만 책을 읽는 나는 그들의 공상인지 망상인지 모를 비현실 이야기에 당혹스럽다.




그런데, 왜 지구별 인간을 거부하고 마법 소녀와 외계인이 되어야 했을까?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부모, 아동을 상대로 가스라이팅과 성적 학대를 하는 선생님, 성차별과 외모 차별이 만연한 사회. 그 가혹한 지구별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현실에서 벗어나야 했던 거 아닐까.




이 책의 마지막을 달리면서 난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인간의 정체성을 버리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일.


바로 금기를 범하는 일.




"맛있어 보인다."


절단면을 보고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빨간 살점을 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러게, 식량도 다 떨어졌으니 오늘 밤에는 이걸 먹을까?"




완독 후 러블리한 핑크색 표지가 핏빛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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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맨 -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끝없는 모험
커밋 패티슨 지음, 윤신영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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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으로 알려졌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는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의 조상으로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고인류학자 '팀 화이트' 발굴팀이 에티오피아에서 그보다 100만 년 앞선 화석을 발굴하면서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된다. '아르디'의 골격이 어떻게 우리가 인간이 됐는지, 어떻게 우리 조상이 다른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는지,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으며 재주 많은 손을 갖게 됐는지, 그동안 교과서로 기술된 내용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특징을 가졌던 것이다.


 

'아르디'의 발견은 인류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학자들은 인류 진화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오랫동안 긴 싸움을 이어가게 된다.


 

책은 타협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완벽주의 고인류학자 '팀 화이트'를 비롯해 고인류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의 인터뷰와 논문 등을 바탕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됐다. 그래서일까, 마치 그 긴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인류의 경이롭고 감동적인 순간순간들이 마치 장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설고도 생소한 고고학을 저자는 휴먼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가며 700페이지 가까운 벽돌책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만든다.


 

지난 30년간, 인류학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유럽과 아시아의 안데르탈인과 같은 좀 더 오래된 종들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아프리카 기원론'을 받아들여왔다. 하지만 새로운 화석들의 발굴과 연구로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이종교배를 했다는 사실과 또 다른 고대 게놈이 존재했다는 사실들을 밝혀냈다. 그리고 복수의 인류 계통이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 수십만 년 동안 공존하면서 자주 피를 섞었다. 한마디로 인류의 게놈은 수많은 인류 조상의 흔적이 담긴 30억 조각짜리 모자이크와 같다는 것이다.


 

앞으로 또 발견될 화석들로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과 상식이 뒤집어 질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의문과 궁금증들이 어떻게 밝혀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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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존재들
팀 플래치 지음, 장정문 옮김, 조홍섭 감수 / 소우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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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는 순간부터 손끝이 떨려왔고 책장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비록 사진에 불과하지만 행여나 동물들이 상처입지 않을까, 눈물 흘리지 않을까 마음과 감정이 크게 동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진 한 장 한 장 마치 내 앞에 동물을 직접 대면한 듯 그 모습과 감정이 생생히 느껴졌다.



이 책은 산호에서 북극곰에 이르기까지, 멸종 위기에 처한 종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낸 사진과 그들이 직면한 현 상황을 소개하고 이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환경을 기술하고 있다. 마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동물들의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맞은편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한 짧은 에세이식 소개 글을 보면 더욱 울컥하게 된다. 인간에 의해 유발된 기후 변화가 어떻게 이들을 멸종의 위기로 빠트리게 되었는지... 나 또한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6600만 년 전, 지구 생명체 대부분의 멸종을 가져온 운석 충돌에서도 살아남은 동굴영원, 가장 희귀한 거북인 쟁기거북, 비닐을 지닌 유일한 포유류 천산갑, 지구상에서 가장 발견하기 힘든 영장류 검은들창코원숭이, 세상에서 가장 큰 맹금류 필리핀수리, 자연의 청소부 이집트독수리, 빙하시대를 견디고 살아남은 사이가영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야생말 프르제발스키말, 신화속에 등장하는 긴칼뿔오릭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북부흰코뿔소 가족. (하지만 수컷 북부흰코뿔소가 합병증으로 고통을 겪다 안락사되어 현재 암컷 2마리만 남아있다. 사실상 이 두 마리는 북부흰코뿔소 복원 사업에서 마지막 생존 개체가 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멸종 위기에 빠진 것일까?


북극에 얼음이 녹아 없어지니 그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하며, 개발을 목적으로 점점 더 북쪽으로 이동한다. 농업, 벌목, 원유 추출, 광물 채굴, 도로 건설 등으로 숲을 파괴한다. 이제 동물들은 달릴 곳이 사라지고 머물 곳이 사라졌다. 그들은 그 어디에서도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거기에 희소성의 가치를 앞세워 건강식, 장식용, 애완용으로 불법거래가 무자비하게 이뤄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의 많은 노력에도 암시장에서 불법거래가 근절되지 않자 급기야 환경보존론자들은 희소성의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해 거북의 등껍질에 글씨를 새겨 훼손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을 지경이다. (난 사실 이 방법이 과연 옳은가? 이 또한 동물을 멸종시키고 파괴하는 일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책의 저자 틈 플래치가 말했 듯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소비 및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때, 자연 자원과 동물 개체 수는 가하급수적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자연과 동물들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그렇게 동물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먹이사슬 또한 서서히 붕괴되고 결국 최상위 먹이 사슬 꼭대기에 서있는 인간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사라져 가는 존재들이 과연 그들 만일까?

다음은 우리 인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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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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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가의 명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유물이 아닌 우리 삶을 구성하는 사물들에 얽힌 아주 특별한 세계사를 들려준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것들, 부엌에서 사용하는 것들, 세상을 바꾼 혁명을 이룩한 것들, 여행지에서 가서 만나볼 수 있는 것들 등 총 77가지 사물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정조를 해칠 수 있다며 사용을 금했던 비데, 대량 소비를 이끈 마트 카트, 하인과 노동자가 신을 수 있는 유일한 신발 플립플릅, 이교도의 물건이라 죄악시되었던 서핑보드, 동물 창자나 생선 방광으로 만들었던 피임도구, 통조림 캔 소비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제1차 세계대전, 견고하고 가볍고 내용물을 잘 보호해 주며 맛도 변질되지 않았던 음료수 캔, 낭비 사회로의 진입을 예고했던 페트병 외 지폐, 페니실린, 여권, 재봉틀, 볼펜 등 일상에서 마주치지만 우리가 전혀 몰랐던 사물들의 과거들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물건들이지만 당시 이 사물들의 등장은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그전 보다 편해졌지만 그만큼 또 다른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늘어나는 일회용품들로 인해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쓰는 작은 볼펜은 매일 수백만 개 생산되고 팬 매되고 버려진다. 그 결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여 일곱 번째 대륙이 생길 정도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서 빠지지 않고 매일 등장하는 사물들의 역사를 교역, 전쟁, 문화의 큰 흐름과 함께 짚어가며 무척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그것들이 현재에 이르러 인류의 치명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 또한 일깨워준다.


어제 뉴스에 차세대 교통수단인 드론 택시가 내년 전남 고흥을 시작으로 3년 내 상용화된다는 발표를 했다.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10분, 하늘을 나는 택시는 또 다른 사물의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 이전으로 서울의 비행 금지 구역이 변경되면서 시작부터 삐걱 되고 있다. 앞으로 이 사물은 또 어떤 역사를 써 나갈지 무척 궁금해진다. 세계사의 만물관에는 오늘도 새로운 사물들이 이렇게 켜켜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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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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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처참하게 살해당한지 8년, 벡은 그날의 고통을 잊기 위해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며 지냈다. 그런데 8년 전 그날 아내가 죽은 호수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모든 증거가 벡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 FBI는 8년 전 그날의 사건을 다시 수사하고 아내 엘리자베스 또한 남편 벡이 살해했을 거라 확신하게 되는데...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계획적 범행이었을까?

비밀을 감추기 위한 아내의 계획적 범행이었을까?

아내 엘리자베스는 정말 살아 있는 것일까?

그런데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은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으로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데...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소설인 만큼 책을 읽는 동안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했다. 마치 영화 <나를 찾아줘>를 보는 듯 끊임없는 반전과 강렬하고 스릴 넘치는 전개로 이야기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용의자가 한 명씩 늘어나면서 마지막까지 범인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정말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는 순간 '힝 또 속았지~' 약 올리듯 작가는 결정적 한 방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날린다. 역시 늘 그렇듯 한번 쓴 정답은 고치는 게 아니었다.


초 중반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전과 새로운 증거들의 등장으로 기대감이 컸던 만큼 후반부의 다소 느슨한 전개가 아쉬웠지만,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밤새워서 읽게 만든 매력은 충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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