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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평점 :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비눗방울.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비눗방울이 관람객의 정수리, 어깨 그리고 두 팔, 신체 곳곳을 가볍게 건드리며 피부 위로 가라앉는다.
"참 아름답죠"
"네, 정말 아름다워요.“
"작가가 그랬대요. 비눗방울들 하나하나가 곧 하나의 신체라고."
"어째서죠?"
"왜냐하면....“
"부검할 시신을 닦은 물.
바로 그것이 비눗방울의 재료니까요.“
"우리는 왜 어떤 죽음에는 애도하고, 어떤 죽음에는 침묵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점점 더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 되어가고 있다. 미디어는 매일같이 전쟁, 학대, 폭력, 차별, 소외 속에서 사라진 이들의 소식을 전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고,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무감각함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한선아의 『애도의 미학』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예술과 철학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조명하고, 우리가 간과했던 취약성과 애도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이 책은 전쟁, 학대, 차별, 폭력 등으로 사라진 이들의 부당한 죽음을 조명하며, 우리가 애도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단순한 죽음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 이들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소외되고,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결국 애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지를 탐구한다.
멕시코 예술가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공기 속에서'처럼, 아름다운 비눗방울이 시신을 닦은 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는 순간 관람객은 죽음을 마주하는 감각적 충격을 경험한다.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던 장면이 한순간에 비극으로 전환되는 순간, 우리는 무감각한 일상 속에서 잊혀가는 죽음을 새롭게 기억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애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행위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말하는 것만이 무너진 자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며칠전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외면했던 사회적 구조의 문제가 비극으로 치달아야만 그제야 애도하며 수습하려는 모습들이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가 외면했던 죽음, 애도 받지 못한 존재들의 의미를 깊이 성찰할 때, 비로소 사회적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비극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더 깊이 애도하고, 변화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