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평점 :
요사이 책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는 나에게 모처럼 집중하며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인데다 <미션 임파서블로>로 유명한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가 영화화하기로 했다고 하니 요즘 무기력한 나에게 가장 안성맞춤이다.
뿐만 아니라 더위와 장마로부터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기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만큼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들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이 책은 스릴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결말이 아니기에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
이 책의 주인공 헨리 하이든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내연녀인 베티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집에 가서 아내 마르타에게
다 말하겠다는 말로 베티를 놀라게 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자신의 오버를 책망한다. 베티와의 불륜관계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되었고, 현재 모리아니 출판사의 편집장인 베티가 실습생으로 일을 할 때 편집자 책상의 원고 더미에서 헨리의 타자 원고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베스트셀러 작가 헨리는 없었을 것이다. 베티 덕분에 헨리의 처녀작 『프랭크 앨리스』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가 팔려나갔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헨리는 자신의 책이 20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팔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수많은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헨리가 그 소설 중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자신과 마르타뿐이었다.
..
마르타를 만나지 않았다면 헨리는 밑바닥 인생을 살았을 것이며 지금처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헨리는 여느 때와 같이
낯선 집에서 하루를 보낸 뒤 조용히 사라지려했다. 침대 옆자리에 누워 있던 여자는 전날 처음 본 여자였고 통성명을 할 생각 같은 것도 없었지만,
왼쪽 양말을 찾으려다 발견한 마르타의 원고를 읽게 되면서 헨리는 마르타와 함께 살자고 제안하게 된다. 헨리는 마르타가 원고를 전혀 읽지 않으며
원고에 대해 말하는 법도 없었고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창고에는 원고가 가득 든 여행가방이 있었는데,
조용히 썩어가다가 어느 추운 날 난로 속에서 던져져 잠시 온기를 주고 사라지는 신세가 되었을지 모를 『프랭크 앨리스』를 찾게 된다. 문학에는
관심 없고, 그저 글 쓰는 게 좋다는 마르타는 원고를 쓴 사람이 누군지 절대 발설하지 않으며, 헨리의 이름으로 책을 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것을 수락하고자야 헨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수 있었다.
..
베티에게는 마르타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겠다고 하지만 헨리는 베티와의 약속 장소에서 사고사로 위장하여 베티를 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베티가 아닌 마르타였다. 마르타의 죽음을 시작으로 헨리는 진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을 감행하게 되고 베티 역시 살해하게 된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살인을 감행하는 헨리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생선을 사기 위해 가는 가게주인 오브라딘에게는 의리있는 친구였다. 아무런 댓가없이 그를 돕기도
했는데 헨리의 가장 알 수 없는 행동은 기스베르트 파시에 대한 그의 행동이다. 어린 시절, 함께 보육원에 살았던 파시에게 헨리는 괴물의 복사판
같은 존재였다. 헨리는 자기가 2층에서 자고 싶다는 이유로 파시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렸다. 기스베르트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날 밤을 절대 잊을
수 없었는데,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 신문의 문학특집란에서 하이든을 접했을 때 기스베르트는 보육원에서 도망친 후 바로 잠수를 탔고 수십
년간 죽은 듯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문학계의 혜성으로 떠오른 하이든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했다. 문득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
헨리는 파시와 추격전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파시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게 되는데, 헨리는 그런 파시를 구해주고 그가 보육원에서 함께 했던
파시임을 알고 병실을 특인실로 옮겨주는 선의를 베풀기도 한다.
..
이렇듯 헨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단 한 줄의 글도 써 본 적 없었고, 다정한 남편이지만 다른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인물이고,
의리있는 친구이지만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이기도 하다. 헨리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거짓을 만들어냈고,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다.
내연녀를 죽이려했지만 아내를 살해하게 된 헨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슬픔이나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헨리가 어떻게 파시에게
친절을 베풀고, 오브라딘에게는 사려 깊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이코패스와는 좀 다른 느낌을 주는 인물이기에 헨리는
어떤 인물이라고 단정짓기 힘든 인물이었다. 문득문득 등장하는 헨리의 선의는 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단연 마르타가 아닐까 싶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르타가 소설의 결말
대신 남긴 "여보, 어떻게 끝날지 알겠어?"라는 문구는 소설을 읽는내내 끊임없이 되새기게 되는 부분이었는데, 이로 인해 마르타의 존재여부에 대해
많은 의혹을 갖게 되고 이것으로 인해 소설에 대한 흥미는 더욱 커졌던 듯 싶다. 심리묘사가 압권인 이 소설은 무자비한 살인자가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살인이 주는 공포보다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한 섬뜩함이 주는 공포가 더욱 컸던 작품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헨리와 같은 인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간만에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무섭게 비가 내리는 날이기에
이 소설은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올 여름, 이 소설이 더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