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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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그림책 중 하나입니다. 백 만 번을 살아보고서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고양이의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겨 주었지요. 읽어본 지 꽤 오래된 그림책이었는데 저자 사노 요코의 첫 에세이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를 읽으면서 다시 떠올려 보게 되었네요. 저자는 <사는 게 뭐라고>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라 하는데 사실 제게는 낯선 작가였어요. 그러다 작가의 이력을 보고서야 그제야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저자라는 걸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답니다.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겨준 그림책의 저자가 쓴 에세이는 저자와 친숙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그림책을 쓴 작가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 삶이 너무도 궁금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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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내 인생의 테마 같은 건 모른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우주 어느 부분을 핀셋으로 집어도, 거기에 내가 느끼는 조금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본문 1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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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집은 사뇨 요코가 40대에 쓴 첫 에세이집으로 어린시절부터 유학 시절, 그리고 40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글 속에서 가난으로 평탄하지 않았던 삶이지만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어요. 그녀의 당당함은 여명 선고를 받은 순간 우울증이 싹 가실 정도로 즐거웠다고 했다는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움 없이 당당했던 것은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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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이 좁아진다'는 표현을 처음 들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닌 '세상'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세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나를 둘러싼 것으로 조금은 진부하고, 조금은 나를 방해하는 것이어서 걷어차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란 한 사람 한 사람 살아 있는 인간의 연결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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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난했던 유학 시절, 계모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혼났던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 유학 중 만나게 된 한국 사람들과의 인연, 도쿄 우시고메에 사는 이모 집에서 하숙하던 때의 일화 등이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그 중 오빠와 함께한 고양이 실험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그녀가 유독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를 담아낸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 싶었습니다. 이들 이야기 속에는 그녀의 여리면서도 강인한 면이 많이 부각되고 있어요. 2010년 72세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뇨 요코의 삶은 아무래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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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오빠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중략) 오빠가 어린아이일 때 죽은 사실은 내게 고정된 환상을 심어 주었다. (중략) 그림 그리는 일이 사실은 오빠 같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일이라는 환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중략) 나는 그런 착각이나 자신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그림을 계속 그렸고, 사람들 대부분 보통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도 저마다 소중한 자신임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 보통인 자신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본문 157,158,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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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을 때 작가는 어떻게 이런 그림책을 그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이었기에 큰 매력을 느꼈던 거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그림책의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사노 요코는 에세이를 통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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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상력 풍부하게 살고 싶다. 불손하지만,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상상력은 난처한 일을 산더미처럼 안고, 남들이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 생활을 평범하게 쌓아가며 얻을 수밖에 업다고 생각한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현실에 계속 직면해야 상상력이 생겨나는 거라고 나는 고집스럽게 믿고 있다. (본문 161,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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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언덕 단비청소년 문학 2
창신강 지음, 최지희 옮김 / 단비청소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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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수탉 분투기><탁구왕 룽산><나는 개입니까>로 잘 알고 있는 창신강 작가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쁜 책 제목과 표지로 눈길을 끄는 <단비청소년문학> 시리즈 2번째 이야기 <<하늘 언덕>>이지요. 산뜻해보이는 책이지만 내용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요. 그렇다고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 속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으며 서로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이지요.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는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크고작은 마음의 병이 존재하고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 폭력, 왕따, 가정 폭력 등으로 자살까지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의 병은 얼마나 곪아 있었던 걸까요? 친구로부터, 가족으로부터, 폭력으로부터 얻게 된 마음의 병을 어떻게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법이 <<하늘 언덕>>에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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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하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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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언덕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곳이다.

그곳은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보여 준다.

하늘 언덕은 상처받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다.

그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표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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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배경은 '차오포'라고 불리는 마을입니다. 어느 날 어떤 남자아이가 들것에 실려 차에서 내렸어요. 어른 네 명이 들것을 들어야 할 정도로 남자아이는 엄청나게 뚱뚱했지요. 그런데 들것에 누워 있던 남자아이가 갑자기 눈을 떠 들것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지요. 들것을 들고 온 사람들은 주저앉아 아이가 혼자 걷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했어요. 차오포 마을은 그렇게 걷기 싫어하던 아이가 걷게 되는 신기한 마을입니다. 이 남자 아이는 루창창으로 나이는 열두 살이지만 몸무게는 74.5킬로그램에 달해요. 체육 시간만 되면 놀림을 받던 루창창에게는 체육 공포증이 생겼고 그 마음의 병으로 이 마을에 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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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포 마을의 아동 심리 치료 센터에는 루창창 외에도 마음이 병을 가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루에 세 번쌕 돈을 세야하는 진상상, 부모의 이혼으로 달마다 집을 옮겨 다니면서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자 더 이상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게 된 쑤이신, 자기 자신을 심하게 학대하는 남자아이 신신, 덩치가 크고 건장한 아빠로 부터 늘 혼나고 두들겨 맞으면서 아빠와 닮은 뚱뚱한 거위나 강아지를 괴롭히는 리취안취안, 매일 거짓말을 하는 런전, 어릴 때부터 발레에 재능이 있어 부모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지만 그 부담감으로 인해 수많은 꿈을 죄다 버린 허위샹 등은 이렇게 마음의 병을 갖게 되면서 이 마을에 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차오포 마을에는 아이들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의학적 치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치유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누구의 강요도, 미움도, 폭력도 없었던 평범한 하루를 보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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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언덕>>은 마음의 병을 가진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지만 그보다는 어른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어른들에 의해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질책과 기대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 스스로 생각하고 깨우칠 시간을 주는 것이 더 절실한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어른들은 기는 아이에게 걷기를, 걷는 아이들에게 뛰기를 바라며 채찍질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의 병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아이들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차오포 마을은 결코 특별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꿈을 꾸고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차오포 마을인 것이지요. 그곳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지금 서 있는 곳, 바로 그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모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잔잔하면서 따뜻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도, 부모인 저에게도 위로가 되어주네요. 책을 읽은 뒤에도 그 여운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책 <<하늘 언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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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 권력의 기록 1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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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유명하다는 미드나 일드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드라마 보다는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중국의 화제의 최고 인기드라마 <랑야방>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2011년 중국 온라인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끈 뒤, 독자들의 요청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동명의 54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송된 후 50개 도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드라마 웹사이트 35억 뷰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2015년 올해의 드라마'로 선정, 중화TV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 갱신은 물론 국내 '중국드라마 열풍'을 몰고온 수작이라고 하니 비록 드라마는 몰라도 이 소설에 관심을 두기에는 충분한 조건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전 3권으로 왕권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와 복수, 우정과 사랑, 인간 본성을 파헤진 무협정치사극으로 570권에 달하는 두꺼운 페이지에도 지루할 틈없이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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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대량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사기꾼 집단이라고도 불리우는 천하에 모르는 일이 없다는 랑야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랑야각에는 천하를 움직이는 인재들의 순위를 기록한 문서, 바로 랑야방이 있으며 그 중심에 이 책의 주인공인 매장소가 있다. 그는 무예를 전혀 하지 못하는 병약한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랑야각에서 발표하는 량야공자방의 서열 1위를 차지 하고 있으며, '기린기재: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뛰어난 재사이다. 사실 그는 소년 장군 '임수'였던 12년 전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이끄는 적염군을 잃게 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의 목표는 자신의 절친이자 세력이 전혀 없는 정왕을 황제로 등극시키며 명예회복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왕 소경염은 일곱째 황자로 아버지 황제의 미움을 받고 있지만 매장소의 지략으로 황권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듯 통쾌한 복수극의 줄거리를 담아냄으로써 권력,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케하지만 매장소와 예황군주의 로맨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임수와 약혼한 사이였던 예황이 매장소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책을 읽는내내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두 사람의 로맨스를 기대할 수 있기에 다음 권이 더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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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드라마는 어떤 영상을 보여주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더욱이 표지 속 주인공의 옆모습이 또 얼마나 잘생겼는지.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싶다. (^^) 방대하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으로 흡입력있게 다가온 작품이다. 그동안 중국 소설을 많이 접해본 적이 없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였는데, 이 소설이 중국 소설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준 듯 싶다. 매장소의 통쾌한 복수, 지략 그리고 로맨스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었다. 2, 3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그의 매력에 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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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랑야방 1'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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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오면
현현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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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폴리오는 네이버에서 운영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과 팬들의 커뮤니티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전시, 연재하며 창작자들이 대중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소통 창구라고 한다. 그중 스트로픽은 창작자들의 그림을 일정한 주제 하에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연재하는 코너인데 <<파리에 비가 오면>>은 그라폴리오의 인기 스토리픽 중 하나로 수백만 건에 이르는 조회수와 4만 회 이상의 '좋아요'를 얻은 작품으로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써내려간 글이 독자들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얻었단다. 내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작품에 대한 신뢰도도 있었고, 눈길을 끄는 책 제목과 삽화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이력이었다. 작가 현현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때 회사원으로 지냈지만 뒤늦게 그림을 시작해 늦깍이 그림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용기, 꿈에 대한 열정에 대한 부러움과 감탄이 책에 대한 호감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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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in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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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를 좋아하는 건

비를 통해서만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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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상에 그쳐버린 나의 옛사랑

난 늘 비를 생각한다. (본문 70p 'Walking in the Rain'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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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좀더 성숙해져가던 시기에 비는 유독 그리움을 가져다 주었고, 나를 센치하게 만들어 주었다. 회사 동기와 함께 근무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주륵주륵 내리는 비가 정면으로 보이는 커피숍 창가에 앉아 감상에 빠져있던 때도 있었으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 이 책과 함께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비는 정말 그리움인가보다. 그 시절에 대한 기억, 그리움……. 낭만적인 장소 파리에 내리는 비 그리고 사계절 속에 옛 연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낸 저자는 서정적이란 이것이다, 감성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채화 풍의 삽화는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으니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잠시동안 그 기억과 추억 속에 잠겨볼 수 있을 듯 싶다. 진한 밀크 커피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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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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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아직 비를 좋아하나요?

비는 내가 유일하게 그대를 만나고

맞이하는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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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이유

내가 사랑하는 이유

그대가 그림이 되는 이유처럼… (본문 37p '비가 내리는 이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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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헤어지고 혼자 남겨진 이가 옛 연인을 그리워하고 그와 함께했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슬프고 어두워야 할 듯 싶지만, 정작 이야기는 모두가 위로받을 수 있어 따뜻하기만 했다. 사랑의 기억을 안고 있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다, 이별의 아픔보다는 사랑했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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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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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보면 생각에 잠겨요

누군가 떠오르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슴속에 벅차올라 이내 감격하고 또 감동하곤 하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어요

문제는 우리가 비를 보고 있을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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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에는 고양이 가족이 살고 있어요

누군가 지어준 집도 있고 밥을 주는 사람도 여럿 있죠

비가 올 때면 그들은 늘 비를 보고 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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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부럽기도 해요 (본문 111p '비 구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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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시국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은 팍팍하고 사막하고 우울하다. 더욱이 이 찬 가을 날씨로 인해 더욱 쓸쓸해지는 요즘이다. 그럴 때 이 책이 단비가 되어 팍팍한 마음에 촉촉함을, 옛 기억이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기에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라 권해본다. 지금의 나는 '나도 한 때 그런 열정을 가진 때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잠시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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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파리에 비가 오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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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안에 담은 것들 - 걷다 떠오르다 새기다
이원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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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를 대동하고 아차산 둘레길을 걷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잊고 산지 오래다. 겨울이 지나 이제 걷기에 좋겠거니 했더니 금새 더워지고 더위가 가셔 이제 걸을만 하겠거니 했더니 금새 또 추워졌다. 어쩌면 이렇게 날씨 핑계를 대면서 산책이 주는 여유로움 대신 귀찮음을 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버스 정류장까지는 10여분의 시간이 걸린다. 매일 오가는 거리지만 한 번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없이 늘 바쁘게 걷고 바쁘게 지나친다. 산책이 마치 사치인 것처럼. 그러고보니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본지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문득 걸으며 바라봤던 주변이, 걸으면서 잠겼던 사색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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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걷기. 나를 벗어나는 두 발이 있다. 걸을 때 생각은 생각의 독자 노선으로 멀리 멀리 간다. 산책의 권리는 생각과 두 발이 '따로 또 같이' 갖는다. 이 분리, 이 사용법은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 또는 히든카드. (본문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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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원의 첫 산문집 <<산책 안에 담은 것들>>은 이병률 시인의 말을 빌어 '한 시인의 산책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 하겠다. 저자 이원은 산책에 대해 '산책은 나를 간명하게 만들어준다. 간명해진 몸으로 삶 속에 머물게 하며 빛이 사라지지 않게 해준다. 산책은 희망이다. 어느 순간에도 나를 돌보는 손길을 거두지 않는 엄마처럼, 아픈 희망이다' (본문 9p)라고 말하고 있을 만큼 산책에 매혹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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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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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흐르는 것이라고 믿는 것과 흐르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 것 사이. 공간: 채워지는 것과 비어 잇는 것 사이. 또는 사라지는 허공과 나타나는 허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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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는 언제 메워질까. 사이 안에 다 있다. 사이가 사라지면 시간도 공간도 욕망도 당신도 사라질 것이다. 사이가 사라지면 삶과 죽음이 바로 옆이었다는 것, 모든 언어는 하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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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사라지면 멈춘다. 그 자리에서 썩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를 꿈이라고 희망이라고 삶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사이를 결핍이라고 환영이라고 부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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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기 때문일까? 산문집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문장들이 읽는 동안 내내 감탄을 자아낸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상상력을 더해주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동안 천천히 걷는 것을 산책이라 생각했던 나의 산책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하게 되는 듯 했다. 엉킬 때, 가벼워지고 싶을 때, 종이비행기를 날리듯 어떤 것을 잊고, 잃고 싶을 때, 고요해지고 싶을 때 산책은 나를 벗어나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산책은 매일 떠나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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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와 함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가보지 못한 홍대 골목 골목이 익숙해지는 느낌처럼. 그저 걷고 눈으로 보는 것으로 산책의 의미를 부여했던 나와 달리 작가는 삶과 산책을 닮을 꼴로 보며 산책 속에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산책은 그저 두 발로 걷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 떠나는 가장 쉽고도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게다. 기억, 사람 등을 담아낸 '산책의 역사'와 마주하면서 나 역시 그 산책의 역사를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산책 속에 나도 기억과 사람과 그리움과 나를 담아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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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를 산책할 수 없다면 나 스스로를 산책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하여,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할 때만이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 너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니체의 문장대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이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한없이 주저앉아서, 때로는 한없이 울면서 사람을 배워간다.
오늘도 사람 속을 걸으며 사람과 이별한다. 이별하며 사람을 이해한다. (본문 169,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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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산책 안에 담은 것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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