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찌는 못생겼어 내책꽂이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박경현 옮김, 양정아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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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찌는 못생겼어>>를 읽고 나니, 오래 전 TV 광고가 하나 생각납니다. 한 친구를 위해 다른 친구들이 모두 머리를 밀었던 훈훈한 내용의 OO파이 광고였지요. 아주 오래된 광고였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픈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머리를 밀고 해맑게 웃던 아름다운 모습때문이지요. 그리고 여기 <<루찌는 못생겼어>>에도 그에 못지않은 너무 예쁜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화요일 마지막 수업 미술시간에는 모두 가을날의 숲을 마음껏 그리고 있었습니다. 헌데 루찌의 그림은 회색을 마구 칠해 놓아 언뜻 검은색으로 보이는 탓에 나무도, 풀도, 아무것도 없는 듯 했지요. 가을 숲이 아니라는 선생님에게 루찌는 평소의 루찌와는 너무도 다다르게 화난 목소리로 비가 와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흰 피부에 금발 머리인 루찌는 조용한 아이었고 치아 교정기를 낀 뒤로는 더욱 말수가 줄었어요. 교정기를 끼고 말을 하면 발음이 새는 탓에 아이들은 '루찌부비'라는 이름 대신에 '루찌부찌'라고 부르며 놀린 탓이지요. 그런 루찌가 이번에는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애 버리겠다며 그림을 갈기갈기 찢기까지 했으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모두 당황했답니다.

수업이 끝난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에도 루찌는 날쌔게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루찌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 제니는 신경이 쓰였어요.  어제 부모님 몰래 본 텔레비전 영화에서처럼 협박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도둑질을 했을지도 모르고, 부모님한테 맞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루찌와 이야기를 나눠 봐, 그러면 루찌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친구 사이에는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본문 28p)

 

 

제니는 엄마의 말씀처럼 오늘도 역시나 혼자인 루찌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단짝인 에이미와 함께 루찌에게 말을 걸었지만 루찌는 신경쓰지 말라며 소리칠 뿐이었지요. 제니는 루찌가 말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고, 결국 다음날 루찌의 집을 찾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루찌의 고민을 알게 됩니다. 제니는 단지 바보 같은 파란색 테 안경 때문에 루찌가 고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엄마로 인해 루찌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었고 루찌와 안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마침내 제니는 멋진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제니네 반에는 제니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까지 파란색 테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아파하지요. 교정기를 낀 탓에 놀림을 받던 루찌는 이번에는 안경까지 끼게 되었으니 친구들에게 더 많은 놀림을 받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루찌의 이 고민은 결국은 내성적이었던 루찌를 난폭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다행인 것은 달라진 루찌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준 제니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외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따른 사회적 풍조도 있겠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도 문제가 되고 있지요. 혹 친구의 외모를 가지고 놀린 적은 없나요? 그 놀림으로 친구는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게 친구들을 루찌처럼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키케로는 친구는 기쁨은 두 배로 늘리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인다고 했어요. 루찌처럼 말 못할 고민으로 아파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보면 어떨까요?

친구와 함께하는 것,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제니처럼 관심을 가져주면 되는 것이지요.

 

<<루찌는 못생겼어>>는 루찌에게 관심을 갖고, 그 마음을 이해해가는 제니가 참 예쁘게 그려진 동화책이죠. 이 책은 분명 아이들 마음 속에 따듯함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사진출처: '루찌는 못생겼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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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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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래스카 주, 그린란드, 캐나다 북부와 시베리아 극동에 퍼져 사는 이누이트는 북극에 사는 원주민을 말하는데, 15세기 무렵, 유럽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원이 풍부한 미지의 땅을 찾아 탐험을 떠났다가 지금의 캐나다 땅에 하나둘 정착하기 시작했다.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 땅을 지배하기 위해 외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이에 집과 상점을 열 자리가 필요해짐에 따라 원주민들을 쫓아내려 했으나 조상 때부터 살아온 땅을 어떤 좋은 물건으로도 바꾸려하지 않자, 외지 사람들은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를 없애 버리고 자기네 문화로 흡수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서양식' 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원주민 기숙 학교다.

 

IBBY 어너리스트 수장작 <<나쁜 학교>>는 캐나라 북부에 있는 뱅크스 섬에서 사는 주인공 올레마운이 어클라빅의 학교에 들어가면서 겪은 일을 통해 원주민 기숙 학교의 문제점을 되짚는다. 올레마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일제시대에 조선어 교육 폐지, 일본어 사용, 창씨 개명 등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잠재우려했던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여전히 기숙 학교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원주민 기숙 학교 출신 이누이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지만, 우리의 민족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레마운이 태어나기도 전에, 외지 사람들에게 이끌려 학교에 간 배다른 언니 아유니크가 사년 동안 학교생활을 한 후 뱅크스 섬으로 돌아왔을 때, 언니의 이름은 '로지'로 바뀌어 있었고 만날 책을 끼고 살면서도 학교 이야기를 좀체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올레마운은 로지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번 정신을 쏙 빼놓곤 했는데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많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그런데 앨리스는 왜 토기를 따라 굴에 들어간거야? 사냥을 하려는 거야?"

"아니, 앨리스는 호기심 때문에 따라간 거야."

'굴속은 무척 길고 캄캄할 텐데.....앨리스는 무척 용간한 아이인가 봐.' (본문 10p)

 

지난 사 년 동안 여름마다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올레마운을 데려가려 했지만, 아빠는 매번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올레마운의 고집에 아빠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처박혀 있지 않을 거예요." (본문 19p)

 

 

글을 배우고 싶었던 올레마운이 매부리코 수녀를 따라 학교에 들어서면서 한 일은 머리채를 뭉텅뭉텅 잘린 일이었고, 끔찍한 교복을 입고, '마거릿'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영어로만 말을 해야하는 것이었다. 먼지 떨 때 외에는 책을 한 번도 제대로 만져 보지 못한 채 지나간 첫 날과 마찬가지로 올레마운은 얼음이 어는 가을까지 화장실의 구린내나는 양동이를 처리하는 법과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해야했다. 매부리코의 까마귀 수녀는 아는 게 많다고 뻐겨 대면서도, 글을 가르치는 일보다 허드렛일을 시키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까마귀 수녀가 제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어느 누구보다 읽기와 쓰기와 셈을 부지런히 연습한 올레마운은 여름이 오면 어클라빅을 떠나서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곤 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푸른 북극광에 기대어 책을 읽어 보려 애썼다. 책을 읽을 때만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밤중에도 책장을 밝혀 줄 찬란한 태양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본문 65p)

 

 

올레마운은 까마귀 수녀가 자기 마음대로 교육시킬 수 없도록 했으며, 맥퀼런 수녀님은 그런 올레마운에게 힘을 주곤 했다. 토끼처럼 호기심을 따라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꼬박 두 해를 보내고서 집으로 돌아온 올레마운은 외지 문화에 익숙해져버렸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누이트임을 알고 있기에 예전의 올레마운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 올레마운은 만족스러웠다.

 

원주민 기숙 학교에서 고되게 일을 했던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 후에 외지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가르쳐 준 말도, 생활하는 방식도 깡그리 잊어버렸던 탓에 그야말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학교에서 학대받을 때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아이들은 먼나먼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기도 했단다. 이제 그들은 아픈 기억을 벗어던지고, 자신이 이누이트라는 사실에 대해 자신감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누이트 언어를 다시 배우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런 문화 나눔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나쁜 학교>>에서는 이 년 동안의 기숙 학교 생활로 이누이트로서의 모습을 잃어가는 올레마운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후 <두 개의 이름>에서는 올레마운이 이누이트 사회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고군부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고 한다.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는 올레마운의 마음은 이누이트인으로서의 자신감을 되찾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자 마거릿 포키악 펜턴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작품은 자아정체성과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부당한 일에 기꺼이 맞섰던 올레마운의 용기는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부당한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누이트의 아픈 상처를 기억해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들에게는 용기와 자신감이라는 더 큰 선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올레마운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들려줄 차례가 아닐런지.

 

(사진출처: '나쁜 학교'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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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1-1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보고갑니다!

봄덕 2013-11-3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보고 갑니다.^^
 
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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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소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예고편만으로도 딸을 둔 엄마인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기에 원작소설 <<소원>>을 앞에 두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책을 읽는동안 화가 많이 날 것이고, 또 많이 울 것임을 알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성폭행 사건은 딸을 둔 엄마에게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이야기다. 그 중 2008년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은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8살의 아이는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그 시간동안 아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짐작할 수도 없는 그 고통의 시간을 어린 아이 혼자 감당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 괴물같은 인간에게 우리는 합당한 벌은 내리기는 한걸까? 도대체 왜!!!!! 세상에 이런 괴물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 것인지....그 대답은 도대체 누가 해 줄 수 있을까? 점점 격앙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자꾸만 화가 난다. 슬.프.다.

힘겹게 책을 펼쳤다. 나영이아빠의 추천사를 읽으면서 이미 나는 울고 있었다.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아빠, 나쁜 아저씨 징역 얼마나 받았어?"

"12년 받았으니 10년 조금 넘게 더 감옥에 있어야 나와."

"쳇!"

사회에 대한 짜증일까? 아니었다. 공포였다.

"10년이나 남았잖아."

"그때까지 내가 힘을 길러야겠다."

12년 여느 다른 사람에게는 가벼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하는 지독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만약 놈이 더 많은 형량을 받았더라면 아이의 스트레스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본문 7,8p, 나영이아빠 추천사 中)

 

만취 상태라는 참작이 이루어져 검사가 구형한 20년 형량보다 가벼운 죗값을 받게된 그놈은 12년 형도 무거운 죗값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지윤아빠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 자식은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 정작 우리는 도망가고 두려워하고 분노해야한다는 사실에 그는 울분의 눈물을 쏟아냈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거부한 지윤이, 엄마 말고는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은 지윤이를 위해 그는 가게 옆 원룸에서 혼자 지냈다. 지윤아빠는 5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소주로 가슴을 소독하며, 기억이 자신을 떠나갈 수 있게, 자신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 기도하고 기도하며 숨 쉴 틈도 없이 술을 마셨다.

 

지윤엄마는 곤히 잠든 지윤이를 바라보고 있다. 잠을 자려는 순간 불안함이 찾아오는 탓에 5개월이 넘는 시간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낮이 되어야 겨우 수면제를 삼켜 세 시간의 수면만을 취하곤 한다. 잠시 자는 동안에도 지윤이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눈이 절로 떠져 한 시간도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죽음으로도 속죄되지 않는 유일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죄를 뉘우친다고 선처해달라고 호소한다.

 

"저 자식......알고 있을까? 판사는 알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행복이 지윤이에게서 나오는 우리를. 지금 저들이 세상 모든 절망을 우리에게 선물했다는 것을." (본문 62p)

 

지윤엄마는 지윤이의 기억에서 그놈을 지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억울함과 힘겨움도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윤아빠는 어린애를 놔두고 맘 편히 수다나 떨고 있었던 지윤엄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절망만 남은 그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예전과 같은 행복을 지켜낼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지윤엄마만 보면 원망이 터져 나오는 지윤아빠, 지윤이 앞에서는 굉장히 강하지만 남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두려워하는 지윤엄마, 그렇게 그들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었다.

헌데, 설상가상 지윤아빠는 교통사고로 열 시간의 대수술을 받아야했고, 그 후유증으로 해리성 기억장애와 8살의 지능을 가지게 된 지능장애를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을 혼자 이끌어가게 된 지윤엄마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가며 행복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한자리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 한 식탁에 모여 가족끼리 함께한다는 소중함. 왜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본문 166p)

 

"가족. 그 울타리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아직 행복한 거라 생각해요. 비록 처참하게 짓밟히고 망가졌지만, 아직 그 누구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나, 깨달았어요.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린 절대 서로를 놓지 않는다는 걸." (본문 183,184p)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그들을 가해자 보듯 했다. 거꾸로 된 세상.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소설 속 세상은 바로 우리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소설 속 지윤아빠와 지윤엄마는 영화를 통해 대화를 하고 추억을 공유했다. 그 중 <시네마천국>의 한 대사처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다" (본문 171p) . 어쩌면 현실은 이 소설보다 더 혹독하고 잔인할지도 모른다. 무섭다.

 

아빠를 본 순간 경기하며 고함을 지르며 오들오들 떨며 발작을 일으키고 스스로 자해를 하며 고통으로 두려움을 억누르기도 했던 지윤이가 "아빠"라고 부르던 장면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읽고 또 읽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그 순간,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것이다.

상처받은 아이로 인해 흩어지게 된 가족, 무너진 울타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이었다. 나영이아빠의 "잊으려 하면 안 돼요. 이겨내야지."(본문 286p)라는 말처럼 우리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고,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가족이 아닐까.

설경구, 엄지원 주연의 영화 <소원>의 원작소설이 된 소재원 작가의 <<소원>>은 인내하고 노력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아동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관심, 그리고 그에 따른 법의 개선 등에 대한 문제점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만취 상태가 참작이 이루어지는 엿같은 세상이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지길 바라는 우리들의 생각이 곧 법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피해자를 다르게 보는 우리 시선 또한 사라져야 한다.

 

슬프고, 화나고, 안타깝고, 아프다. 읽는내내 정말 행복하지 않았던 소설이다. 그러나 그 결말은 너무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분노의 눈물에서 감동의 눈물을 선물했다. 행복하지 않은 소재지만 우리가 직면해야하는 현실이기에 읽어보고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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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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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소설집의 공간적 배경인 땅끝섬 역시 그 많은 섬들 중 한 곳을 염두에 둔, 가상공간이다. 제목의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태생지인 섬에서 나고 자라 바다에 순응하며 모진 삶을 이어온 원주민들, 스스로를 유폐시키려고 찾아들었거나, 생존을 위해 먹고살려고 모여든 외지인들이 섬이라는 특수성, 폐쇄성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채 서로 부대끼며 갈등, 대립, 오해를 겪다 결국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쓰고 싶었다. (본문 283p)

 

책 제목이 참 낯익다. 섬섬옥수는 가녀리고 가녀린 옥같은 손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뜻이리라. 헌데 띄어쓰기, 쉼표 하나 있을 뿐인데 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섬'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폐쇄, 고립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귀엽게 들렸던 제주도 사투리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 사투리가 폐쇄의 느낌을 더해주는 듯 하다. 스토리의 분위기 탓이려나. 가끔 나는 인생이 꼬이는 느낌, 앞에 놓인 상황이 힘들어질 때 일탈을 꿈꾼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그곳이 무인도면 더 좋겠다)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마음의 마음에 동화되는 느낌이었고 더불어 내가 가진 그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의 감옥이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과 마주하고 있자니 삶의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잔잔한 파도를 가진 바당('바다'를 일컫는 제주도 사투리)같은 내 인생의 파도가 아니러니하게도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동안 괜한 투정을 부렸구나 싶기도 한.

 

"욕심이 없으면 적이 없고 아는 게 없으면 걱정이 없고 싸우지 않으면 질 일도 없잖아요." (본문 24p)

 

섬에 사는 개들 사이에서조차 벌어지는 서열 싸움, 그리고 그와 다를 바 없는 탐욕으로 인한 섬 주민들간의 갈등, 오해로 빚어진 부부간의 갈등과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 인생의 실패를 겪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없이 잔잔했다가 한없이 포악해지는 변덕스러운 바다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희망은 죽지 못해 찾아온 고립된 섬, 그곳에서 죽음이 아닌 희망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섬을 '고립'이 아닌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아름답게 변모한다.

 

생명과 인연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섬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법, 내려오기로 치면 끝이지만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토의 시작 아닌가. (본문 264p)

 

그랬다. 땅끝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인연을 만나게 된 혜자처럼 말이다. 외지인이라 배척하는 원주민들과 텃세를 부리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탐욕과 이기심으로 팽배했지만 결국은 또 인연을 만들며 살아가게 되지 않겠는가.

 

일 년 열두 달 바람이 첼렐레 팔렐레 부는 섬에는 숱한 사람들이 오가며 시절인연을 쌓고 허문다. 빈손 쥔 외지인이 먹고살아보겠다고 새로 들어오든, 한때 현금 만지는 재미 쏠쏠했던 원주민이든, 오래전 내남없이 어울려 정겹게 살아왔던 이 섬에서 또 새로운 관계를 쌓으며 살아갈 것이다. 죽살이가 그렇지 아니한가. (본문 264p).

 

죽지 못해 사는 심정으로 절망의 끝자락에서 찾아들었던 땅끝섬에서 미련과 애증, 회한을 다 내려두고 본래의 모습으로 마주한다면 스스로 만들어놓았던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벗어버리지 못하는 미련과 애증, 탐욕과 이기심이 결국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음을 우리는 왜 인지하지 못할까? 작가가 의도했던 것처럼 <<섬, 섬옥수>>는 갈등, 대립, 오해 속에서 사랑으로 구원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부부관계, 자식에 대한 갈망, 정교수로 선발되지 못하는 삶의 귀로에 선 자애의 절망스러운 이야기로 시작되어 희망을 담은 자애의 이야기로 끝나는 그 여정 속에서 그 의도가 명확하게 보여지는 듯 했다.

 

뒤돌아보자.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뒤를 돌아서면 그 앞에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 이 작품은 이렇듯 거친 바다와 싸우면서 또는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섬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의 고됨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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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박주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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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대학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갔더라도, 그곳이 내게 무얼 해줄 거라고, 거기만 통과해 나가면 무언가 또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본문 19,20p)

 

온갖 경쟁을 헤치고 수능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 대학에 들어가고나면 인생은 탄탄대로로 펼쳐질 줄 알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대학 입학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무작정 달려 대학교에 발을 들여놓지만, 정작 인생은 그 다음부터였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다, 라는 사탕발림은 옛말, 이제는 취업란을 위해 또 무작정 달려야만 한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지만 뜻대로 안되는 일은 너무도 많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또한 허망한 일이다. 얼마전 모 프로그램에서 대학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한 여대생의 인터뷰는 현 사회의 청춘들이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있는 질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스물일곱 살의 백수 윤승아가 있다.

 

그녀는 실생활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걸 전공하고 사 년 전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일 년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잠깐잠깐 아주 별 볼 일 없는, 별 볼 일 없기에 더욱 견디기 힘든 일들을 하다가 지금은 아주 완전히 푹 쉬고 있는, 한마디로 백수다. 승아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살아가는 우울한 청춘이다.

날마다 찾아드는 다른 날은 사 년 꼬박 채워 다닌 대학이 아무 의미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 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진열대 위에서 마냥 기다리는 청춘이지만,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가격으로는 절대 자신을 팔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자존심은 있다.

 

학창시절 줄곧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큰 오빠는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큰 오빠와는 반대편으로 나아가 학교 성적도 엉망이었고, 툭하면 싸움질에 정서가 불안하다고 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게 했던 작은 오빠는 지금 오히려 엄마의 기준으로 한다면 엄마를 창피하지 않게 살아주고 있는 사람이다. 학교와 사회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던 게다. 하지만 승아는 자신이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그런 일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내가 남들만큼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승아는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우울한 이십대를 자포자기 상태로 보내고 있었다.

 

스물일곱이나 되어서 내가 잘하는 건 뭘까를 고민해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그걸로 돈을 왕창 벌거나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진다면 모를까, 그게 이전에 내가 하던 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잘하는 일을 한다고 즐거우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좋아하는 야구를 해서 먹고살 만큼 돈을 버는 사람은 야구를 할 줄 아는 사람 가운데 지극히 극소수에 지나질 않는다는 얘기이다.

희망하고 애쓰고 실패하고 절망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복잡해지는 게 싫어서 나는 노래를 부른다. 나는 개미랑은 거리가 먼 베짱이. 나는 비관적인 베짱이. 자존심이 있으니 겨울이 오면 개미집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얼어 죽고말 베짱이. (본문 65,66p)

 

엄마의 성화로 승아와 면담을 요청한 작은오빠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걸 묻지만, 승아는 대답하지 못한다.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승아는 겉으로 태연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스스로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서로 비밀없는 친구 효림이도 마찬가지다. 승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구석에 자신을 구겨두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는 것이, 이렇게 형편없는 우리가 정말 우리일까봐 무섭고 두려워한다.

 

효림도 나도 희망이라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점점 더 약해지고 있고. 다만 버티기 위해서 자신을 다독거리는 것만으로 온종일 진이 빠진다. 그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삶 속에 지금 우리가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 105p)

 

꼭 뭘 해야 한다면, 만약 그래야 한다면 글이라고 써 볼까, 생각하던 승아는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몸과 마음을 움직여나간다. 물론 이 싸움에서 이길 확률은 몹시 희박하지만 그대로 싸워야 한다면 철저히 자신의 방식대로 싸우고, 이길 수 없다 해도 절대 사회의 기준에 맞춘 방식에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오기도 생겨난다. 불안하기만 한 희망이 사그라들까 걱정되지만 그녀는 무수히 탈락하고 거절당하고 거부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니 꿈을, 그리고 삶을 각오한다.

 

우리는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 (본문 180p)

 

어린 시절 책을 읽는 큰 오빠 옆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승아는 이제 소설을 쓰면서 달라질 것이며, 자신 안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승아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스물일곱의 우울한 청춘, 승아에게 세상은 기회도 주지 않았고,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따져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기회를 거두어가버리곤 했다. 승아의 이런 절망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절망적인 심정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다. 너무도 짧은 청춘의 유통기한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한 심정이 승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무언가를 찾고, 꿈을 그리고 삶을 각오하고 살아가려는 승아의 변화되어가는 심정 속에서 청춘들은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위로받고 있게 될 것이다. 꼭 뭘 해야 한다면, 만약 그래야 한다면, 당신을 무엇을 해보겠는가? 우울증하고 무기력한 당신에게 딱 한 번이라도 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그것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출입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승아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는 젊고 아직도 못 해본 일이 많다. 분명한 것은 내가 오로지 내 힘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 그리고 기회란 것이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 또는 행운이랄 것이 따라주어야 할 것들, 그 모든 것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 1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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