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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8할이 나쁜 마음이었다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가 정말 솔직하게 이 글을 썼을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전쟁터와도 같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쁜 마음 한 번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다만, 꾹꾹 눌러 담아놓거나 나만이 볼 수 있는 일기장 같은 곳에 눌러놓은 그 마음을 실랄하게 적어놓을 뿐이지.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같은 나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나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감당할 수 있는 베짱은 없으니까. 그러니 자신의 이런 마음을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책으로 출간한 저자는 베짱두둑한 솔직한 사람이 아닐런지. 저자 이혜린은 영화로도 상영된 바 있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작가이다. 영화나 소설은 아직 접한 지는 못했지만, 제목은 익히 들어알고 있던 작품이다. 당시는 몰랐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 또한 굉장히 솔직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이 작품은 '사실은 나도 이 책에 나오는 나보다 더 나쁘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솔직함이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다.
다 같이 악마가 되자는 건 아니고, 그냥 공유해보고 싶다. 내 안에 숨겨뒀던 나쁜 말들. 다들 비슷하면 우린 다 같이 연대를 느껴보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거다. 작가만 나쁘다 싶으면 '그래도 얘보다 낫네.'라는 위안을 받으면 되겠다. 흉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어도 좋고, 물론, 자신이 작가보다 나쁘다 싶을 수도 있겠다. 괜찮다. 사실은 나도 이 책에 나오는 '나'보다 더 나쁘다. 으하하. (본문 6,7p)
개그,영화,드라마 혹은 예능에서 간혹 등장하는 버럭 캐릭터들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통쾌함을 느끼곤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 같은 통쾌함, 후련함 등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라는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보통 화가 나는 대상은 사람, 회사, 혹은 나일 때가 대부분일 게다. 이에 저자는 이 책을 [사람이 싫다], [회사가 싫다], [네가 싫다], [내가 싫다]로 총 4개의 주제로 나누었다. 어쩜 이렇게 소제목이 찰떡같은지. 혹여 내 마음 속에 다녀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중 아무래도 가장 나의 나쁨을 여실히 드러나게 되는 것은 '회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가장 공감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제부턴 혐오의 대결이다.
나를 이따위로 대우하는,
부려 먹긴 잘하면서 딱히 발전할 가망은 없는
빌어먹을 회사를 혐오하느냐.
겨우 이따위도 감지덕지한,
불평은 잘하면서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는
못나빠진 나를 혐오하느냐. (본문 91p)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나쁜 마음을 숨겨놓고 착한 척 이야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타인의 위로 속에는 내가 아니여서 다행이라는 위안이 더 크고, 칭찬하는 말 속에는 남 잘되는 것에 대한 배아픔이 더 크지 않던가. 내가 정년 옹졸한 인간이란 말인가, 라는 자책은 잠시 뿐이고,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자라는 다짐 역시 작심삼일일 뿐 사회속에서 나의 나쁜 마음은 점점 커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위안 받으면서 착한 마음을 가져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통쾌함이 내 안의 스트레스를 몽땅 날려버렸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회생활이란,
어금니를 악무는 동시에
활짝 웃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 (본문 115p)
책을 읽다보면 공감이 주는 통쾌함에 현웃이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웃음을 통해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이다. 내 안의 나쁜 마음이 부끄럽고 들키고 싶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이런 나쁜 마음이 악착같이 살아가게 하는, 날 지탱해주는 요소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해서 작가나 이 책에 공감하는 우리가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냐고. 오랜만에 읽기 편하면서도 무한 공감을 하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은데다, 그 공감 속에서 위안을 얻는 부분도 상당하다.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쁜 마음을 숨기고 착한 마음으로 애쓰며 살아가기에 가끔은 나쁜 마음이 정말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님을 위로 받을 필요가 있지싶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코로나로 지치고 직장생활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한바탕 웃으면서 위로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