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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까까머리 이덕화가 건들거리며 반항하는 모습으로 나오던 70년대 영화가 생각난다. 아..또 있다. 이승현이 주인공으로 나오던 얄개시대 같은 류의 영화도 생각난다.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몰라도 나는 이런 류의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90년대에는 재방도 많이 해주었는데, 요즘은 ’한국영화걸작선’이라 불리던 프로들이 없어지면서 그 시절의 청춘 영화를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이 책은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법한 70년대의 청춘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향수와 추억이 느껴진다.
70년대를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나도 머저리클럽의 한 일원이 된 듯한 착각과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 여고생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었을 법한 문학소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딸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성장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옛 추억속에 잠기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자랄때 고민했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한다면 커가는 딸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은 사라질 수 있으리라...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과 동순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 나이의 고민과 생각과 성장통을 엿볼 수 있다. 꿈에서나 그리던 이상형 소림이를 알게 되었지만, 친구 영민이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으면서 동순이는 한층 자라게 된다.
바다 한가운데서 가냘픈, 그러나 날카로운 소리가 스며 나와 내 귀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 소리는 내 젊은 가슴을 쥐어흔들고,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나의 작은 실연쯤은 이 거창한 자연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 그러자 나는 유쾌해졌다. 이 거대한 바다와 하늘, 그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는 내 가슴은 그까짓 여인에게 상처받은 일상사는 한갓 물거품에 불과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마음껏 바닷바람을 들이마셨다. 137p
동순이는 아픔을 이겨내면서 시와 사랑과 우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뼘 자란 듯 보인다. 영민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승혜를 통해서 사랑하는 법(?)과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누구든 나를 인정해 주리라는 기대 속에서 자기 자신에 속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무거운 책가방 속에 수학책이, 영어책이 들어 있듯이 왜 우리는 무거운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손에 손금을 안고 있으나 그 무게는 느끼지 않는다. 손금처럼 지울 수 없는, 그러면서도 무게를 느끼지 않는 승혜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나는 그녀를 생각할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일까. 231p
학업, 사랑, 우정, 삶에 대한 고뇌를 잔뜩 짊어지고 힘들어하지만, 미성년자라는 꼬리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기의 아이들. 나 또한 수많은 고민과 슬픔과 아픔을 겪으면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이였지만, 결국은 내 손에서 해결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성년자라는 꼬리표를 길게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아, 우리들의 시대, 열아홉 살엔 왜 이렇게 구속이 많은 것인가. 아아, 우리들의 시대, 열아홉 살엔 왜 이렇게 지켜야할 의무도 사명감도 많은 것인가. 보라. 바깥세상은 우리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 하늘엔 구름, 검푸른 녹음, 뜨거운 햇살............아아, 우리들의 시대, 열아홉 살엔 왜 이렇게도 우울한 일이 겹치고 있는 것인가. 359p
동순이와 승혜가 주고 받는 시와 친구들의 방황과 아픔 등이 현실감 있게 잘 그려진 작품이다. 머저리 클럽....’ 머저리’라는 단어에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청춘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담겨져 있다. 청소년이라는 시기는 머저리같은 시간속에서 성장통을 겪으면서 점점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머저리 클럽의 한 일원이였고, 앞으로 내 딸도 머저리 클럽의 일원이 될 것이다. 나에게는 추억을, 딸에게는 앞으로의 희망과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머저리 클럽’.... 그렇게 소중한 느낌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