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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 하늘에 계신 아빠가 들려주는 사랑의 메시지
롤라 제이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8년 9월
평점 :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말씀은 하나같이 잔소리처럼만 들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고리타분했으며, 우리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고지식함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그랬다.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20대중반 결혼을 하고 드디어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듯 하면서부터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세대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살면서 터득한 경륜이 있었고, 실패와 후회를 직접 체험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었다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내게 엄마는 어린시절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때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고, 내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들어왔던 엄마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치부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음에 후회를 하게 되었다. 지금 내 곁에는 루이스가 갖고 있는 아빠의 매뉴얼처럼 엄마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도 많고, 엄마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일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엄마와 빙고 아저씨의 결혼식날 고모로부터 7년 전 아빠가 남겨주었다는 ’매뉴얼’을 받게 되었다. 12살 루이스는 아빠의 자리를 빙고 아저씨가 차지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단짝 친구 칼라의 엄마처럼 고상하지 못한 엄마에게도 불만이 많다. 그런 루이스에게 아빠가 직접 쓴 매뉴얼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등대였다.
매뉴얼의 규칙은 간단하다. 12세부터 30세까지 생일에만 새로운 장을 읽어야 하며, 다음 장은 훔쳐보지 말되 앞 장들은 다시 보기를 권한다는 내용이였다.
아빠는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낳아 길렀으며, 이제 죽음이라는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빠는 실패를 통해서 얻은 것도 있고, 살아오면서 터득한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또한 사춘기의 혈기 왕성한 청년의 시절을 지내왔기에 남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이 없이 살아가야 할 딸에게 남자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 수 없는 아쉬움을 글로 남긴 것이다. 루이스는 아빠의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빠의 조언에 따라 모범 의붓딸이 되고자 노력했으며, 찌질이 같은 남자들에 대처하는 법도 배웠고, 창피한 일을 감당하는 방법을 통해서 지혜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노련함을 배울 수 있었다.
루이스와 단짝 친구 칼라는 서로 상반되는 길을 걷는다. 많은 남자들을 만나면서 대책없이(?) 살아가는 듯한 칼라의 모습은 아빠의 조언에 따라 삶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사랑하는 코리와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에게 당당한 딸이고 싶은 루이스의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좋은 직장을 버리고 미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기막혀하는 엄마의 푸념에도 세상을 보라는 아빠의 조언이 있었기에 추친할 수 있었던 일이였다.
매년 생일마다 조금씩 자라는 루이스를 옆에서 보고 있는 듯 조언하는 아빠의 메시지는 그 나이때마다 겪게 되는 갈등을 아빠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아기를 낳았지만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루이스는 아빠의 조언에도 쉽지 않았던 일이지만 동생 애비의 실종으로 자신이 이복 동생인 애비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빠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직장에서 다른 동료의 시기에도, 직장을 잃고 힘들었던 시기에도 아빠의 매뉴얼은 루이스에게 힘이 되고 등대가 되었다.
장담하건대, 너도 살면서 실수를 몇 번 할거야. 사실 몇 번 이상하게 될 게다. 내가 무슨 말을 할 거라고 기대했니? 중요한 점은 이런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지. 그 실수들로 인해 성장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실수는 아무 이유 없는 헛짓이 되어 버리고 말지. (본문 322p)
....물론 네가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나도 싫다. 그저 사정이 안 좋은 게지.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나빠 보여도, 전에도 말했다시피 ’목숨이 붙어 있으면 희망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 이 점을 끌어낳으렴, 루이스. 왜냐면 네 목에 숨이 붙어 있는 한, 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나도 살아 있을 때 이것을 기억했더라면.... 사랑한다, 아빠가. (본문 323p)
30세 마지막 생일이 있기 전, 루이스는 코리와의 여러번의 갈등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빠의 매뉴얼을 통해서 모든 남자를 매뉴얼 속의 아빠와 비교하고 경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빠와 엄마의 갈등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이 아빠에게 맹목적이였음을 깨닫게 되고, 아빠의 30세 마지막 편지를 통해서 이해하고 용납하고 체념해서 받아들이고 끌어안아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의 재혼에 의한 반항으로 아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루이스는 비로소 아빠의 죽음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루이스가 ’안녕’이라는 글로 시작되는 매뉴얼을 작성하면서 끝이난다. 루이스는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매뉴얼을 남기게 될까? 아빠가 주었던 용기와 희망을 아이에게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아빠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자신의 실수도 함께 적지 않을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어떤 것이 좋은지에 대한 풀이과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륜이라 부른다. 어른들은 우리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삶의 이치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치는 우리에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등대의 빛이 되어 줄 것이다.
30대 중반이 지났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엄마는 내곁에 있지 않고 언젠가는 내 아이도 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가 된 내 딸아이도 나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듣게 될 것이고, 자란 후에는 나처럼 내가 없음에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른다. [매뉴얼]은 아빠가 딸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나중에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 앞둔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처럼 [매뉴얼]도 내 딸에게 삶의 조언자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내가 터득한 삶의 노하우를 들려주게 되겠지....내가 내 딸에게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내 삶에도 충실해야 할 것이다. 표지처럼 그렇게 나도 조심스레 책을 끌어안아 본다. 그리고 딸아이의 책꽂이에 놓여 있는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옆에 조심스레 꽂아두었다. 두 권의 책이 내 딸의 삶을 의미있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