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 농장의 노예, 엠마 이야기
줄리어스 레스터 지음, 김중철 옮김, 김세희 그림 / 검둥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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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력이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운동을 했고, 흑인들과 삶과 역사, 정치문제에 관심을 많으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써 온 작가는 [자유의 길],[인종이야기를 해볼까?] 라는 책을 썼다. 이런 이력을 가진 작가가 노예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낼지 무척 궁금하다.
절망과 슬픔과 삶의 그늘만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표지 그림은 노예인 그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 자유와 생각을 빼앗긴 그들에게 웃음은 어쩌면 사치였을 것이다. 표지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책을 펼쳤다.

연극의 대본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공간 속에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이 지문으로 등장하고, 생각이 독백처럼 담겨져 있다.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연극 무대를 상상한다. 주인공 엠마를 둘러싼 인물들을 따라 버틀러 농장과 헨필드 농장으로 그렇게 무대를 상상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공유하였다. 그 상상을 통해서 나는 엠마의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사람 위에서 군림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악행이 무섭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버틀러 농장의 노예, 엠마 이야기]가 실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1859년 3월 2일과 3일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노예 경매가 조지아 주 사바나에서 있었는데, 7억 원에 가까운 돈을 주식과 노름으로 잃었던 피어스 버틀러가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노예 429명 (혹은  436명으로 전해진다)을 팔았다.
경매가 시작되면서 이틀 동안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고, 경매가 끝나자마자 비가 그쳤다고 하여, 그 경매를 "눈물의 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건 비가 아니야. 하나님의 눈물이지."

노예폐지론자였던 버틀러의 아내인 패니 켐블이 집을 나간 후, 버틀러의 두 아이 프랜시스와 세라를 돌봐준 것은 엠마였다. 엄마의 성향을 닮은 세라와 아빠를 닮은 프랜시스는 노예에 대한 생각마저 각각의 부모를 닮아있었다.
엠마의 엄마 매티와 윌은 어린시절부터 버틀러와 형제처럼 자랐고, 버틀러는 유모였던 엠마의 엄마에게 키워졌다.
버틀러에 의해 딸 엠마가 노예 경매에서 팔리게 되자, 매티와 윌은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한편 헨필드 농장으로 팔려간 엠마와 그리고 후에 엠마의 남편이 된 조는 그곳에서 ’자유’를 찾아줄 수 있다는 헨리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자유를 찾아 신시네티로 가게 된다. "주인님" 이나 "주인마님" 이 아닌 "아저씨" "아가씨""아줌마" 불러 주기를 원하는 백인들이 있는 그곳에서 패니 켐블을 만나게 되고, 도망친 노예를 붙잡아 다시 노예를 팔 수 있는 미국의 새 법을 피해 패니 켐블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로 또 다시 도망을 가게 된다.

마지막 장은 엠마의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엄마 아빠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경매에서 팔려졌던 자신을 걱정할 엄마와 아빠에 대한 그리움, 노예를 자유롭게 해 줄 전쟁에 참가한 남편 조의 죽음 등에 대해 손녀달 제시 메이에게 이야기한다. 

이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거란다. 고통 받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면, 착한 마음씨를 지닌 거란다. 160p

자신이 경매에서 팔렸을 때 슬프게 울던 버틀러의 딸이였던 세라를 기억하면서 엠마는 자신의 딸의 이름은 세라라고 지었다. 그리고 엠마는 말한다. 백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악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책 속에는 경매부분을 묘사해 놓았다.  번호 347 - 톰 22세, 목화 일꾼 130만 원에 팔림 ....
이 글귀를 읽어내려가면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연극의 무대가 바뀌면서 "막간극"을 통해서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의 독백을 읽게 된다. 노예제도가 있는 남부의 생활 방식이 깨지는 모습을 속터져 하는 주인, 백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평생 먹고 자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노예 샘슨 등의 이야기는 자유를 갈망하는 엠마와 조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이제 노예제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난 역사 속 노예 이야기를 들추어 내는 것은 그들의 자유를 향한 열망과 노력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역사는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다. 우리가 역사를 들추어보지 않는다면 역사 속의 오점들이 다시 미래에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현실 앞에서 역사에 대한 감사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눈물의 시간]이 다시 재생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은 그들의 만들어낸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사진출처: '버틀러 농장의 노예, 엠마 이야기'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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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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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붙혀진 포스터를 보면서 배우 안성기의 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친구의 딸과 사랑을 하게 되는 남자의 심적인 부분을 아주 잘 표현했을 거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였다. 51살의 남자와 25살의 친구 딸의 모습을 담은 표지가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든다. 
영화만 개봉을 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책이 출간되었었나보다. 궁금하던 영화였는데 책으로 먼저 볼 수 있어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껏 책에서 받은 느낌을 영화로 잘 표현한 작품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어서인지 영화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책을 읽은 내 느낌에 대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왠지 영화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사랑스러운 로맨스’라는 문구에 비하면 전반적인 내용이 좀 어둡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기 보다는 51살의 남자가 뒤늦게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모습이 더 강하게 묘사되었고, 사랑의 진행방식이 먼가 앞뒤의 연결고리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고등학생의 성장통을 앓는 듯한 주인공 형만의 모습은 책을 통해서라기보다 배우 안성기를 통해서 더 잘 묘사가 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5p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우연에서 시작되는 일이 많은 듯 하다. 그 우연을 바꾸려는 노력없이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그 우연은 분명 우리 인생에서 필연으로 작용되고 있을 것이다. 우연히 큰아버지 댁에 간 것도, 우연히 큰아버지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고치게 된 것도 모든 것이 우연이 되어, 51살이 되도록 카메라 수리를 하게 된 형만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 말한다.
누구나 51살이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만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 말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 속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친 친구 기혁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기혁은 형만에게 자주 들러봐달라며 딸을 부탁한다. 
그런 형만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아가는 자신이 밉고,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야속하다.
뱃속에서부터 도망만 다니고 살아서 좀 불안정하다는 기혁의 딸은 놀랍게도 25살의 대학생이였다. 
형만은 기혁의 딸 남은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 낸다. 빨래를 잘 한다며 자랑스레 이야기 하던 남은은 형만의 작업실에서 같이 밥도 먹고, 빨래감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고 때로는 작업일까지 도우며 형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내 마음 다 알죠? 알면서 그런 거죠? 알면서 그러는 거면 정말 나빠요." 130p

사춘기 성장통을 앓듯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픈 형만은 오래전에 두어번 만난 종희를 생각하면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최소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형만은 그렇게 남은에게 달려간다.

"내가 오십 년 넘게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았거든. 근데 세상엔 나쁜 놈들 많아. 사기 치고, 돈 떼먹고, 꼭 니 아빠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

"무슨 말씀이세요?"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싫고, 남이 나한테 그러는 것도 싫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 얘기가 무슨 얘긴지 알겠니??

"그게 지금 프로포즈 하는 거예요?"
 155p

형만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것이 우연이라 생각하면서도 우연을 바꾸려고 한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 휘둘려지며 결정 지어진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우연을 원망하면서도 말이다. 그런 형만을 남은은 바꿔보려고 한다. 남은은 형만이 작업실에서 나오기를 원하지만, 형만은 쉽게 변하지 못하는 나이 탓을 한다.
변하려고 하지 않는 형만과 변하기를 꿈꾸는 남은을 통해서 형만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 깨달아간다.

51살!!! 50여년을 살다보면 삶의 규칙이 정해지면서 지금의 삶의 패턴에 익숙해져서 살아간다.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그저 익숙함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남은은 형만이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인물로 존재한다. 사랑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형만에게 25살의 남은은 이미 삶의 규칙에서 벗어난 일이였고 그것을 계기로 형만은 새로움을 꿈꾸게 된다.

2009 부산 국제 영화제가 선택한 ’역대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표현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듯 싶다.
책의 이야기나 구성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책은 아름다운 로맨스를 기대하면서 읽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 사춘기 성장소설같은 느낌이 더 어울린다고 해야할 듯 싶다.
책을 읽고나니, 영화가 더욱 기대된다.
책 속에서 부족했던 로맨스를 배우 안성기를 통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삼십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겁을 먹게 되었다. 이제는 무엇을 시작하면 안 될거 같은 나이가 되어버렸다고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 칭하는 형만처럼, 우연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직 나는 살아온 날들보다는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았으므로...

우리, 다시 시작해요. 230p

어쩌면 남은은 사랑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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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아빠와 까칠한 아들 - 아빠와 함께 걷고 싸우고 화해하는 배낭여행 300km 동화책 읽는 거인 7
뱅상 퀴벨리에 지음, 김준영 옮김 / 거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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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딸아이와 팔짱을 끼고 인사동 거리를 배회했다. 원래 목적은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였지만, 그보다는 인사동 거리를 걸어 다니며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직장을 다닌다는 핑계로 사춘기에 들어선 딸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지 못한지 꽤 된 듯 했는데, 다리는 아팠지만 걸어다니면서 학교친구와 선생님, 연예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했으며, 그동안 이런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던 것에 미안하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여 걷는다는 것은 ’함께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의 엄마 아빠는 어릴 때부터 따로 살았기 때문에 벤자민은 아빠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별로 없다. 가끔 아빠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동물의 왕국을 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벤자민에게 300km를 걷는 배낭여행을 제안한다. 처음부터 가고싶지 않았던 여행길이였기에, 배낭의 묵직함도 싫었고, 불편한 잠자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두 사람의 배낭 여행이 순탄치만은 않다. 모든지 마음대로 하려는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가진 벤자민과 벤자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아빠와의 갈등은 기여이 곪았던 상처는 터져버린다.

어른들은 항상 그게 문제다. 고지식한 생각으로 제멋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서로 노려보았다. (본문 102p)

힘든 도보 여행에서 각자의 곁에 존재하고 있는 서로에 대해 의지하고, 원망을 풀어내면서 그들은 서서히 가까워지게 된다. 무서운 개에게 쫓기던 중 아빠가 도와주는 꿈을 꾸면서 벤자민은 자신을 지켜줄 아빠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된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까지는, 아빠와 나와의 사이가 우리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멀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예요. (본문 124p)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목소리는 간혹 ’나는 지금 사춘기예요’ 를 말하는 것처럼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변하곤 한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맞다. 책 제목처럼 정말 까칠하기만 한 딸이다. 조근조근 말할 줄 모르는 엄마인 나 역시 까칠해서인지 우리 모녀는 간혹 투닥투닥 다툼을 한다. 아이는 어른들은 제멋대로라고 말하는 듯 하고, 나는 제멋대로 하려하는 딸을 내 마음대로 해보려고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린시절의 애정 표현은 점점 사그러들고, 엄마의 말을 듣던 아이는 이제 자신의 주장대로 하려고 한다. 그것이 아이와 나 사이에 생긴 갈등인 듯 하다. 그 갈등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대화]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딸아이와 다정한 데이트에 맞추어 접하게 된 [못 말리는 아빠와 까칠한 아들]은 나와 딸아이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벤자민이 300km라는 긴 여정을 걷고 걸어서 간 목적지는 아빠의 마음이였던 것처럼, 나와 내 아이의 목적지 역시 서로의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가져보려 한다. 
인사동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 어깨에 기댄 딸의 모습과 아빠에 기대어 잠든 벤자민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진다.
행복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진출처: '못 말리는 아빠와 까칠한 아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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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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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 우연히 [덕혜옹주] 책소개를 보게 되었다. 덕혜옹주...내가 아는 그녀에 관한 사실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는 단순한 지식 뿐이였다. 고종 시대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은 익히 배워서 알고 있었고, 조선의 국모라 외치던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 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가 비운의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던 사실이였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덕혜옹주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신문기자였던 김을한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을한 기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덕혜옹주 이야기를 청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마지막 옹주로써의 기품과 권위를 잊지 않기 노력했던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조선의 백성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조국인 조선에게서 마저 버림받았던 비운의 여인은 오히려 일본인인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이씨 조선최후의 황녀’ 라는 제목으로 씌여진 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국에게서도 외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 돌아가고픈 열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갇혀 살아야 했음에도 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는 학창시절 내내 역사를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혜 옹주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은 우리는 역사의 드러난 표면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역사는 주인공보다는 주인공 뒤에 숨겨진 수많은 조연들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다. 표면에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그 단면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이제는 드러낼 때가 된 것은 아닐런지... 이 책을 통해서 덕혜 옹주가 세상에 더 많이 드러나게 된 것처럼, 그늘 속 역사도 이제는 서서히 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볼 수 있을때 우리는 국가의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바로 국민의 단합말이다.

1912년에 태어난 덕혜 옹주는 황족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않은 일본인에 의해서 이름을 얻지 못했으나, 1921년 ’덕혜’라는 이름으로 황적에 오른 댓가로 일본에 볼모로 가게 되었다. 덕혜와 함께 일본에 동행하게 된 복순은 일본인에게 낭패를 보게 될 뻔한 것을 마침 지나가던 덕혜옹주로 인해 목숨을 구하게 된 나인으로 덕혜를 목숨 바쳐 지키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다. 그것도 얼마 전에야. 그런데 이름을 얻은 대가로 일본에 가야 하는 것 같구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구나. 이름을 얻으면서 정식으로 황적이 됐는데 이름이 없던 때가 더 나았던 모양이다. 이름을 얻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 (본문 124p)

독살로 살해 된 고종의 죽음, 어머니 양 귀인의 죽음과 순종의 죽음 그리고 뜻하지 않는 일본인과의 결혼으로 덕혜옹주의 마음속에는 조선과 아바마마에 대한 그리움과 일본에 대한 분노만이 쌓이고 있었다.

한편 고종이 승하하기 전 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지 않기위해 부마로 정해졌던 김장한은 일본의 방해로 옹주와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하였으나, 그림자처럼 살라는 ’박무영’이라는 새이름으로 일본에서 옹주를 구하려는 구국청년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옹주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덕혜와 결혼한 다케유키는 어쩔 수 없이 맺어진 부부의 연이지만, 덕혜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면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 서서히 마음이 열어가던 덕혜는 아이를 임신하면서 극도의 불안을 얻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딸 정혜는 학교를 다니면서 조센징이라는 따돌림을 받으면서, 엄마 덕혜와 벽이 생기게 된다.

"조선은 이제 없어! 망해서 없어진 나라라고! 대일본 제국의 식민지란 말이야!"

저것이 내 굴육의 마지막 징표다. 저것을 내 뱃속으로 낳았다. 저것이 외치는 저 소리, 내 삶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저 소리, 조선의 존귀함조차 부정하는 야멸친 저 소리. 저것을 내가 낳았다. 덕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정혜 앞으로 다가갔다.
(본문 298p)

이야기는 덕혜옹주와 덕혜를 보살피는 복순 그리고 덕혜 옹주를 지키는 박무영을 통해서 그 시절의 암흑했던 조선과 일본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덕혜옹주는 조선의 권위를, 복순은 조선의 국민을, 박무영은 조선을 지켜내려는 독립운동가를 대면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보여줌으로해서 조선의 암담했던 모습을 재조명하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을 했지만, 덕혜옹주는 자신의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국의 땅을 밟게 된 것은 정신병원에서 복순과 박무영의 도움으로 탈출을 해서야 가능했다.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이 있었더냐."
’아니옵니다."
"옹주의 위엄을 잃은 적이 있었더냐."
"그렇지 않았나이다, 마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
(본문 403p)

모두에게 외면당했던 그녀는 죽음으로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장면이다. 덕혜옹주의 삶이 힘겨워 보였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저 강자의 힘 앞에서 순종하며 살았다면 그녀는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마지막 황녀가 주는 위엄과 존귀함을 잃었겠지?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녀의 존귀함과 위엄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녀의 삶은 더욱 비참하고 힘겨웠던 것이다. 
조국의 권위를 위해서 끝까지 옹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역사의 그늘에 숨겨진 그녀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한 사람으로서의 삶은 포기한채 조국을 위해서 끝까지 부러지지 않았던 그녀의 옳곧음이 스스로에게는 고통을 주었으나, 역사 속에는 존귀함으로 남게 되었다.

참 다행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그녀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그녀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옹주가 아닌 여자대 여자로서 바라보면서,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이 비운의 여인이 아니라, 조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자리잡게 되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일본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녀를 기억하는 일이 바로 그녀의 마지막 위엄을 지켜주는 일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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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 하늘에 계신 아빠가 들려주는 사랑의 메시지
롤라 제이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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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말씀은 하나같이 잔소리처럼만 들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고리타분했으며, 우리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고지식함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그랬다.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하지 않았다.
20대중반 결혼을 하고 드디어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듯 하면서부터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세대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살면서 터득한 경륜이 있었고, 실패와 후회를 직접 체험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었다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내게 엄마는 어린시절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때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고, 내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린시절부터 들어왔던 엄마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치부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음에 후회를 하게 되었다. 지금 내 곁에는 루이스가 갖고 있는 아빠의 매뉴얼처럼 엄마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도 많고, 엄마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일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엄마와 빙고 아저씨의 결혼식날 고모로부터 7년 전 아빠가 남겨주었다는 ’매뉴얼’을 받게 되었다. 12살 루이스는 아빠의 자리를 빙고 아저씨가 차지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단짝 친구 칼라의 엄마처럼 고상하지 못한 엄마에게도 불만이 많다. 그런 루이스에게 아빠가 직접 쓴 매뉴얼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등대였다.

매뉴얼의 규칙은 간단하다. 12세부터 30세까지 생일에만 새로운 장을 읽어야 하며, 다음 장은 훔쳐보지 말되 앞 장들은 다시 보기를 권한다는 내용이였다.
아빠는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낳아 길렀으며, 이제 죽음이라는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빠는 실패를 통해서 얻은 것도 있고, 살아오면서 터득한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또한 사춘기의 혈기 왕성한 청년의 시절을 지내왔기에 남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이 없이 살아가야 할 딸에게 남자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 수 없는 아쉬움을 글로 남긴 것이다. 루이스는 아빠의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빠의 조언에 따라 모범 의붓딸이 되고자 노력했으며, 찌질이 같은 남자들에 대처하는 법도 배웠고, 창피한 일을 감당하는 방법을 통해서 지혜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노련함을 배울 수 있었다.

루이스와 단짝 친구 칼라는 서로 상반되는 길을 걷는다. 많은 남자들을 만나면서 대책없이(?) 살아가는 듯한 칼라의 모습은 아빠의 조언에 따라 삶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사랑하는 코리와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에게 당당한 딸이고 싶은 루이스의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좋은 직장을 버리고 미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기막혀하는 엄마의 푸념에도 세상을 보라는 아빠의 조언이 있었기에 추친할 수 있었던 일이였다.

매년 생일마다 조금씩 자라는 루이스를 옆에서 보고 있는 듯 조언하는 아빠의 메시지는 그 나이때마다 겪게 되는 갈등을 아빠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아기를 낳았지만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루이스는 아빠의 조언에도 쉽지 않았던 일이지만 동생 애비의 실종으로 자신이 이복 동생인 애비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빠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직장에서 다른 동료의 시기에도, 직장을 잃고 힘들었던 시기에도 아빠의 매뉴얼은 루이스에게 힘이 되고 등대가 되었다.

장담하건대, 너도 살면서 실수를 몇 번 할거야. 사실 몇 번 이상하게 될 게다. 내가 무슨 말을 할 거라고 기대했니? 중요한 점은 이런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지. 그 실수들로 인해 성장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실수는 아무 이유 없는 헛짓이 되어 버리고 말지. (본문 322p)

....물론 네가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나도 싫다. 그저 사정이 안 좋은 게지.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나빠 보여도, 전에도 말했다시피 ’목숨이 붙어 있으면 희망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라. 이 점을 끌어낳으렴, 루이스. 왜냐면 네 목에 숨이 붙어 있는 한, 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나도 살아 있을 때 이것을 기억했더라면.... 사랑한다, 아빠가. (본문 323p)

30세 마지막 생일이 있기 전, 루이스는 코리와의 여러번의 갈등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빠의 매뉴얼을 통해서 모든 남자를 매뉴얼 속의 아빠와 비교하고 경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빠와 엄마의 갈등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이 아빠에게 맹목적이였음을 깨닫게 되고, 아빠의 30세 마지막 편지를 통해서 이해하고 용납하고 체념해서 받아들이고 끌어안아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의 재혼에 의한 반항으로 아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루이스는 비로소 아빠의 죽음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루이스가 ’안녕’이라는 글로 시작되는 매뉴얼을 작성하면서 끝이난다. 루이스는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매뉴얼을 남기게 될까? 아빠가 주었던 용기와 희망을 아이에게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아빠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자신의 실수도 함께 적지 않을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어떤 것이 좋은지에 대한 풀이과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륜이라 부른다. 어른들은 우리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삶의 이치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치는 우리에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등대의 빛이 되어 줄 것이다. 

30대 중반이 지났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엄마는 내곁에 있지 않고 언젠가는 내 아이도 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가 된 내 딸아이도 나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듣게 될 것이고, 자란 후에는 나처럼 내가 없음에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른다. [매뉴얼]은 아빠가 딸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나중에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에 앞둔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처럼 [매뉴얼]도 내 딸에게 삶의 조언자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내가 터득한 삶의 노하우를 들려주게 되겠지....내가 내 딸에게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내 삶에도 충실해야 할 것이다.
표지처럼 그렇게 나도 조심스레 책을 끌어안아 본다. 그리고 딸아이의 책꽂이에 놓여 있는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옆에 조심스레 꽂아두었다. 두 권의 책이 내 딸의 삶을 의미있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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