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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희망 노래 ㅣ 미래의 고전 16
최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3월
평점 :
얼마전 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덕혜옹주’ 책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게 붙잡혀 간 조선의 마지막 옹주였던 그녀의 삶을 엿보면서, 일본인에 대한 분노와 조국에게 조차 환대받지 못했던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과 죄스러움,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을 느꼈고, 이제라도 그녀가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것에 대해 감사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또 한번의 일본과 우리나라에 안일한 대처에 대한 분노, 그들에 대한 죄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제 그들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은 바로 한국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이다.
일본 교토부 우주시 우토로 51번지는 재일 조선인 마을이다. 그 곳에는 일본인에게도,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버려진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무심함도 그들의 고통을 더해주고 있었으리라. 덕혜옹주가 세상에 주목 받기 시작한 것처럼, 나는 이들도 세상에서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줄 한줄 한 구절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또르르~ 흐르는 눈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흘린 피눈물에 비하면, 나의 눈물은 사치일뿐이였다.
이야기는 2020년 겨울로 시작된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게 된 보라와 아들 홍이는 교토부 우토로로 향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그때처럼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때....홍이는 그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졌고, 엄마 보라는 11살 무렵인 1998년 늦은 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화자인 ’나’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열심히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등 떠밀려 학교로 향하는 보라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선생님들도 보라편은 아니다. 왜냐면, 보라는 우토로에 버려진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책 안 보고 뭐 하는거지? 특히 너 같은 애는 두 귀 활짝 열고 들어 둬야 하는 일본 역사 수업이라고." (본문 21p)
허락도 없이 남의 땅에 빌붙어 사는 ’우토로 거지 조센징’이라는 더러운 이름이 보라는 싫다. 그러다 마을에 갑자기 소동이 벌어졌다. 트럭이 오고, 사이렌이 울리고, 어른들은 모두 마을 입구로 나가 트럭을 막아세우고 있었다.
"우토로는 우리 땅이다. 절대로 내줄 수 없다." (본문 37p)
일제시대 조선 남자들은 모두 징용에 끌려가던 때, 일본 사람들은 우토로에 비행장을 짓기 위해, 노동력이 필요했다. 비행장 만드는 일을 하면 징용에 안 끌려가도 되고, 돈도 벌 수 있으며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말로 꼬인 일본인들에 말에, 가족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우토로로 향했다. 돈을 벌기위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토로에 왔고, 손으로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는 등 아침부터 밤 늦도록 일을 했지만,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버티고 버텼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패배로 우토로에 더이상 비행장을 지을 이유가 없어진 일본 사람들은 돈 한 푼 주지 않은 채 조선 사람들만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조선 사람들은, 만들다 만 비행장터에 집을 짓고 터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버려진 땅이였고, 죽을힘을 다해서 사람 사는 땅으로 만들어 놓았던 우토로는 ’우리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우토로 마을 주민 대표는 일본에게 우토로를 매각하고 말았다. 힘겹게 일구워 놓은 땅, 제 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터전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이자, 권력도 돈도 없는 어른들은 장구와 발품팔이로 억울함과 정당함을 알리기 시작했다.
보라는 우토로 마을 아이라는 이유로,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선생님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우토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지만, 할머니에게 우토로에 와서 터전을 잡고 살아왔던 지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속에서 뜨끈한 것이 꿈틀거리며 솟아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켜야지. 전쟁 때 끌려와서 이만큼 만들어 놓은 게 다 우리 조선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몽땅 내놓고 떠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우리가 들어오고 싶어 들어온 게 아니고, 남고 싶어 남은 게 아니야. 우리는 전쟁 때문에 들어온 거고, 전쟁 때문에 남겨진 피해자란다. 그런 우리한테 사과는 못할망정 평생 살아온 땅을 내놓으리나. 말도 안되지."
"분하고 억울해 죽겠는데 다들 모른 척해. 그래서 봐줄 수가 없어. 어떻게 해서든 알려서 사과도 받고, 보상도 받고, 그랬음 좋겠다." (본문 141p)
보라는 ’나는 우토로에 사는 조선 사람이야.’라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당당하게 학교에 간다. 귀찮게 하는 아이들도 무섭지 않았고, 괴롭히려 들면 숨어 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리라 마음 먹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와 마을 어른들이 우토로를 지켜내는 것처럼, 보라 역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용기를 내었다.
보라는 할머니에게 장구를 배웠다. 온몸에 힘을 빼고 흥으로 두드려야 듣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우리의 소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덩 더러러러~ 채를 두드렸다. 그 소리가 우토로의 한을 풀어지기라도 하는 듯....
2020년 미래는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 재일 조선인의 마을이다.
그러나 현재 오토로는,
2006년 9우러 토지소유권 재판, 최고재판소에서 서일본식산 승소.
2007년 4월 우토로 주민회, 한국에서 ’정부의 우토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우토로 동포 긴급 기자회견’ 개최
2007년 10월 ’우토로 마을 만들기 협의회’와 서일본식산 간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
2009년 지원금 수령을 위한 ’우토로 재단’ (정부)과 ’우토로 민간재단’(민간)을 설립하기로 결정
2010년 1월 재단 설립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실질적인 토지매매를 위한 준비단계에 있음. (본문 169p)
"옛날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에 사는 조선 사람들을 다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썼대."
"한국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국 대통령이 일본에 왔을 때 그렇게 하기로 했대. 일본에서 한국에 돈을 빌려 주는 대가로 전쟁 때문에 일본에 남아 있는 한국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피해 보상 요구도 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일본은 일본대로 우토로 사람들한테 아무 것도 안 해주고, 한국 정부에서도 뒷짐지고 있고 구경만 한대. 그러니까 결론은 우토로에 사는 사람들은 완전히 버림을 받았다는 거지. 어디에서든 다." (본문 108p)
보라와 같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우토로에서 나오게 된 하키오의 대사를 읽으면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탓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돈을 빌리는 대가로 동포를 버렸던 한국과 사탕발림과 같은 말로 꼬인 후 쓸모없어지자 버려버린 일본. 우토로 사람들은 조국에게 버림받았던 고통이 더 크고 아팠을 것이다.
여전히 우토로의 동포들은 자신이 일구낸 땅을 지키기 위해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힘겨운 투쟁은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해야하는 투쟁인 셈이다. 한일전 스포츠에 열의를 다해 응원하던 그 저력을 이제는, 우토로 주민들에게도 보여줄 때가 된 듯 싶다.
전쟁으로 인해 일본과 조국에 버림받았던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때의 고통이 전부 치유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을테니 말이다.
그동안 그들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의 무지함게 화가 나고, 이제라도 그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 검색창에 ’우토로’를 쳐 보았다. 역사를 배우고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지만, 정작 역사의 단편적인 것만 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토로’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음에 행복하고, 그 곳에서 희망을 보았다. 미약하지만,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2020년 우토로의 보라가 ’우토로는 우리 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길은, 바로 ’함께’ 하고자 하는 한국 국민들의 마음이 있을때 가능한 일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