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의 재구성 - 히트하는 영화의 진실 혹은 거짓
김희경 지음 / 지안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읽은 책이다
책 읽을 때는 비행기 만한 곳이 없는데 그래도 장시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버스도 괜찮은 독서 공간이다
좀 흔들리기는 하지만 일부러 쉬운 책을 골랐는데 생각처럼 아주 쉽거나 재밌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영화를 분석한 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저자가 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헐리우드 영화를 분석해서 쓴 책이다
그래서 우리 실정과 좀 다르기 때문에 지루한 부분도 있었고 눈에 확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저자의 말대로 한국 영화계는 헐리우드를 모델로 따라가기 때문에 참조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기서 언급되는 거의 모든 영화들이 국내에서 개봉됐다는 점만 봐도 헐리우드와 한국 영화계의 밀접한 관련성을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민감한 소재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작년에 나온 책이라, 즉 스크린 쿼터 폐지 논란이 아직 본격화 되기 전이라 넘어간 걸까?
그래도 영화계 최대 이슈라 할 만한 사안인데, 기왕이면 언급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직까지 스크린 쿼터제 유지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잘 안 서는 독자 입장이라 더욱 그렇다

 

역시 제일 놀라운 부분은 스타들의 몸값이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상업적인 국가 같다
스타들의 몸값이 오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에이전시 때문이라고 한다
키워 줬는데 배신했네, 이런 감정적인 발언은 끼어들 구멍이 없는 것 같다
모든 계약은 당사자가 아닌 에이전시 직원들을 통해 이뤄지고 그들의 협상 능력에 따라 개런티가 결정된다
스타들이 나온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천정부지로 계속 올라가고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실패보다는 흥행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은 대단히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특별히 좋다 나쁘다는 의사 표명을 안 하지만, 분위기 상으로는 영화 찍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스타들의 높은 몸값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들의 몸값은 2500만 달러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우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멜 깁슨, 줄리아 로버츠, 해리슨 포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략 10여 명이 있고, 아래 등급으로 2000만 달러를 받는 배우로는 조니 뎁, 니컬라스 케이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까지 잘 알려진 배우들 (초등학생도 들으면 알만한 배우들) 이 제일 높은 개런티를 형성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뜻밖에도 여자 배우는 줄리아 로버츠와 캐메런 디아즈 두 사람 뿐이었다
이름에 비해 흥행작은 별로 없다는 니컬 키드만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자료였다

 

배우들에게 2500만 달러를 지급하면 감독들은 얼마나 받을까?
스필버그 같은 유명한 감독들은 보통 1000만 달러 정도를 받는데 피터 잭슨이 킹콩을 찍으면 2000만 달러를 받아 감독들 역시 인플레 현상을 겪을 것 같다고 한다
감독과 배우가 초기 비용으로 이렇게 엄청난 돈을 가져가 버리면 나머지 스태프나 조연 배우들은 뭘 먹나?
한 편의 유명 영화를 찍으려면 보통 1억 달러가 드는데 1/3을 주연 배우와 감독이 가져가 버리니 제작비는 물론 마케팅 비용이 한정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나머지 사람들에게 갈 파이는 갈수록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의 개런티가 5억+알파이고 전도연,장진영 등이 3억+알파라고 한다

 

물론 스타들은 영화를 보러 오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영화 내용을 전혀 모르는데 뭘 보고 극장까지 오겠는가?
특히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를 화면에서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책에서 지적한 바대로 스크린 속의 스타가 바로 나라고 착각을 하게 되고 꿈의 나라로 빠져 들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톰 행크스나 짐 캐리, 해리슨 포드 등은 얼마나 기막힌 연기를 하는가!
당장 나만 해도 톰 행크스나 짐 캐리 나오는 영화는 꼭 본다
그런데 재밌는 건 배우 보고 선택한 영화는 간혹 이건 아니잖아, 할 때도 있지만, 감독 보고 선택한 영화는 거의 다 괜찮다는 점이다
확실히 영화의 분위기나 스타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감독이지 배우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감독보다 스타가 두 배 이상 개런티를 받는 걸 보면, 역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원함이 분명하다
(왜 갑자기 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오를까?)

 

어쨌든 한 사람이 죄다 가져가 버리는 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부익부 빈익빈, 혹은 1등이 죄다 독식하는 문제는 영화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송강호는 영화 자체의 제작비가 커졌는데 주연 배우가 5억 가져가는 게 무슨 그런 큰 잘못이냐고 항변했지만 (왜 러닝 개런티 얘기는 빼 먹는 거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이 줘 버리면 그만큼 다른 곳에 들어갈 비용은 줄어 들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파이가 커져도 한정없이 클 수는 없는 것이고, 1년에 백만원으로 산다는 스태프들의 어처구니 없는 박봉도 생각해 볼 문제다
또 주연 배우 캐스팅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흥행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증명되어 온 가장 전형적인 영화를 원하게 될 것이다
수준이 있네 없네 해도 맨날 반복되는 조폭 코미디 영화처럼 말이다
어떤 면으로 봐도 한 사람의 독식은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영화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인기 있으면 또 만드나 보다 했는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속편 만드는 걸 프랜차이즈 영화라고 하는데,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처럼 한 편으로 만들기 어려워 기획 단계부터 속편을 준비하는 거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속편들은 전편의 재탕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아닌 기획의 승리가 되기 십상이라고 한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말이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창의성이나 발전 지향적인 점은 찾기 힘들고, 전편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지루하고 틀에 박힌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만 해도 스피드2, 미이라 2 등 재미없는 속편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전편의 성공으로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영화를 또 만드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배트맨 시리즈나 리셀 웨폰 시리즈, 스파이더 맨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 마치 연속극이나 되는 양 시리즈물의 양산은 결국 창의적인 새로운 양식의 영화를 밀어내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한다
우리 영화만 해도 가문의 영광과 두사부일체 시리즈물은 아, 정말 너무 지겨워 이제 그만 좀!! 이라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다
꼭 속편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다 못해 소설이나 드라마의 각색이라도 해야 안심을 한다고 한다
일단 검증이 되야만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2004년 최우수 작품상 후보 중 오리지널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하나에 불과했다고 한다
오늘 신문을 보니 가문의 영광은 또다시 4편을 기획하고, 마파도 역시 2편을 찍고 있다고 한다
안전한 속편 제일주의 보다는 보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실험물들이 많이 나와서 영화가 상업성 속에서도 예술을 추구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독립 영화들의 고군분투는 무척 반가운 얘기다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에 확실하게 흥행 요소를 갖춘 전형적인 영화 외에는 선뜻 투자를 안 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지라, 신인 감독이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감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비단 예술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스타일은 외면받기 일쑤다
더구나 "갱스 어브 뉴욕" 이 흥행성은 물론 아카데미에서 조차 외면받자 그 후로 실험적인 영화는 더욱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영화 보긴 봤는데 세 시간 가까운 시간에다가 전혀 익숙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에 황당했던 생각이 난다
(아마도 디카프리오가 안 나왔으면 안 봤을 거다)
어쨌든 돈이 워낙 많이 들어가니 더욱 안전한 코드의 영화만 양산이 되고 실험적인 영화는 외면을 받아 설 자리가 좁아진다
그렇지만 헐리우드는 한국 영화계에 비하면 여전히 새로운 형식의 영화가 끊임없이 수혈되는 역동적인 곳이라고 한다
썬댄스 영화제나 독립 영화관 같은 곳이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를 준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독립 영화제나 그런 영화관들이 보다 활성화 됐으면 한다
한국 영화가 스크린 쿼터제 덕분에 아무리 잘 나간다 해도 막상 극장에 가 보면 죄다 흥행하는 영화 한 두 개만 걸어 놔 선택하고 말 것도 없는 게 현실이고 보면, 영화계에서도 무조건 보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픽사의 성공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몬스터 주식회사를 본 후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그 후 니모를 찾아서나 아이스 에이지, 앤츠 같은 영화를 보면서 그 정교함에 감탄, 또 감탄을 했고 오히려 에니메이션은 적어도 서사 구조는 확실하기 때문에 어설픈 영화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시 미국인들도 이야기가 분명하고 그래픽이 정교한 애니메이션을 선호하게 됐고 더구나 영화의 주 관객층이 가족으로 이동하면서 아이들까지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당장 픽사에서 만든 여섯 작품들은 모두 100% 성공을 거뒀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제작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 마당에, 더구나 비싼 투자비 때문에 안전 제일주의로 대부분의 영화가 전형화 되는 마당에,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새로운 기대감을 품게 한다
아직까지 우리 영화는 애니메이션 분야가 약하지만 오히려 이런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걸 보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는 역시 돈을 벌어 들이는 매우 상업적인 분야임을 느꼈다
영화 투자는 거의 도박이라 할 정도로 손익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단순히 예술 운운하면서 개인의 취향에 맞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림이나 문학, 음악 등은 개인의 노력 만으로 예술성을 추구할 수 있지만 영화는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니, 영화의 상업성 추구는 그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필연적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는 또 하나의 예술 분야이고 단순히 대중 예술에 머물지 않고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는 매력적인 장르다
더구나 잘만 되면 수많은 관객들에게 그 예술성을 어필할 수 있으니 더욱 매력이 큰 곳이라 하겠다
영화계가 단순히 돈에 매이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는 매혹적인 분야가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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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0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상업주의를 벗어날 수는 없는 건데, 우리나라도 헐리우드도, 저 억소리 나는 몸값에 망연자실 할 때가 있어요. 도대체가 돈의 단위가 다르잖아요ㅡ.ㅡ;;;;

marine 2006-11-0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 쪽은 국민소득도 높고 그러니까... 그래도 좀 많긴 많죠? 대체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이 안 가요
 
독일, 내면의 여백이 아름다운 나라 타산지석 8
장미영.최명원 지음 / 리수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편하게 읽은 책이다
모든 책들이 이렇게 술술 넘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250페이지 정도 되는 중간 분량의 책인데 내용이 말랑말랑 해서 2시간도 못 되서 다 읽어 버렸다
앞서 읽은 "그대로 두기" 나 "레니 리펜슈탈" 등의 책은 외국 이름과 지명 때문에 거의 한 자 한 자 눈에 바르면서 지나가느라 시간이 꽤 걸렸는데, 역시 이 책은 독일 이야기지만 한국인이 쓴 거라 쉽게 술술 넘어간다
어떤 책이든 번역서는 문장의 어색함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듯 하다

 

책을 읽을 때 가능한 한 편견없이 대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앞서 읽은 "독일문화읽기" 와 비교하게 됐다
앞서 읽은 책이 독일 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같은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런데 두 책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독일문화읽기" 가 독일인들의 가치관이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해 썼다면 ( 더 정확히는 독일인들의 민족주의 부활을 비판함) 이 책은 독일인의 생활 습관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썼다
그래서 더 내용이 말랑말랑한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책의 저자들은 독일의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고 신문을 열심히 보지 않은 듯 싶다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한 언급이 너무 없어서 좀 놀랍다
미국 유학생 와이프들이 쓴 미국 생활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비단 이 책만 그런 건 아니고, 여태까지 내가 읽은 독일 관련 서적들은 거의 다 그렇긴 하다
그러고 보면 박노자의 노르웨이 이야기는 분석력이 뛰어난 편이다
물론 그가 노르웨이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로 기대했던 수준은 아니었다
미국에 관한 책은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다른 유럽 관련 체험기는 비교적 드문 편이고 그나마 프랑스나 영국이 좀 있지, 독일 체험기는 워낙 적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제목도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역시 딱 유학생 수준에서의 피상적 고찰들 뿐이라 내용이 너무 말랑말랑 해서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그러나 편집도 잘 되어 있고 역시 이국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책장은 쉽게 잘 넘어갔다
적어도 "독일문화읽기" 보다는 훨씬 균형잡힌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이 얘기하는 신나치주의 부활의 징조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높은 실업률을 외국인 노동자 탓으로 돌린다거나, 독일민족제일주의 같은 위험한 발상법들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읽은 책에서는 독일이 민족주의나 애국심 같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과거 청산에 철저하다고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유학한 이들의 시각이 사뭇 다르다
또 "독일문화읽기" 에서 지적 스노비즘이라고 비판했던 독일인들의 학문적 욕구를, 이 책에서는 교양시민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옆 나라 프랑스에서 혁명을 일으켜 군주정을 갈아 엎었을 때 독일은 이른바 계몽군주라는 미명 하에 진리 탐구의 자유만 허용하는 식의 교묘한 통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군주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독일인들이 특별히 학문 탐구에 열성적이었던 배경에는 그 외의 모든 정치적 자유가 금지됐기 때문에 그나마 열려 있던 지식에의 욕구라도 채우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역사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저자는 독일의 시민 계급을 교양있는 중산층으로 명명한다
독일 전역에 음악회가 번창하고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대표되는 독일 서점가의 번성도 대단하고 특히 시나 소설을 낭독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강성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로든 수준있는 문화가 여러 사람들에게 향유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독일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대학생들이 한정없이 대학에서만 머무르려고 하니 차라리 수업료를 부과하자는 것이 확실히 요즘의 이슈인 모양이다
이 책 외에도 여러 책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 봤다
완벽한 사회 복지정책의 표상이라고 할 무상교육 제도가 삐걱거리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인간은 이기적인 동기가 있어야만 발전하는 존재일까?
어쨌든 교육열 높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대학 등록금 무료가 계급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환상적인 대안으로 들린다
(늘 하는 말이지만,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일의 숲 이야기는 가슴 설레는 부분이었다
프랑스도 그렇지만 독일도 산이랄 게 없고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이고 울창한 숲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책할 곳도 많고 숲길을 이용한 자전거 정책도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떼제베를 타고 프랑스 시골을 달릴 때 (예약 미스로 야간 열차도 못 타고 비싼 돈 주고 주간 열차 탔을 때) 산은 없고 죄다 들판만 있어 깜짝 놀랜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산 없는 풍경은 상상할 수 없는데, 확실히 유럽은 숲이 바로 우리의 산과 비슷한 정서를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게르만 신화들은 숲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독일인들은 녹생당까지 만들 정도로 환경 보호에 더 열심인지도 모른다

 

맨 마지막에 실린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 얘기는 가슴이 뜨끔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차관을 빌릴 때 지급보증을 해 준 것이 바로 파독 근로자들의 월급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독일로 떠난 우리의 근로자들이 조국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만 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당시 독일로 떠난 근로자들은, 특히 간호사들은 집안의 유일한 희망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안 들어도 훤할 것이고,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근로 환경은 좀 나았지 않았나 싶은 점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좀 더 선진적인 근로 환경을 제공해야 할텐데 참 부끄럽다
어쨌든 그들의 노고에 대해 고국이 새롭게 그 의의를 되새기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재밌게 읽은 책이다
독일 문화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여다 보면 좋겠다
너무 거창한 기대는 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면 유쾌하게 2시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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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전 대도록
뱅상 포마레드 외 지음, 고형원 외 옮김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아쉽다
알라딘에서 품절이길래 예스24에서 구매를 했는데 오늘 들어왔구나!!
가격도 5% 할인해 주고 적립금도 570원이나 준다
예스24에서는 원가 그대로 샀고 적립금은 200원 밖에 안 되던데...

그러나 책 내용은 좋다
일단 판형이 크기 때문에 그림이 한 면을 다 차지하고서 있다
설명은 매우 꼼꼼한 편
아무래도 이번에 전시되는 70편만을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형태의 미술책이 마음에 든다
주제를 명확히 한정지어 가능하면 자세히 설명해 주는 그림읽기가 훨씬 도움이 된다
주마간산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전시가 풍경화 위주이다 보니 비슷한 그림들이 계속 반복되서 다소 지루한 구석이 있다
또 설명 역시 상당히 현학적인 편이다
하여간 200페이지가 넘는 매우 꼼꼼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열심히 읽고 전시회 가서 꼼꼼하게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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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고서 국립박물관 가면 감상이 더 잘 되겠어요. 안 그래도 오늘 포스터 보고 님이 떠올랐죠^^

marine 2006-11-08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이거 완전히 전과 수준이예요^^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노란색의 예쁜 표지만큼이나 내용도 훌륭하다
어쩌면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소비형태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시도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자료 의존적이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쓴 책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서구의 유명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친다는 점이 늘 아쉽다

 

소비란 무엇인가?
소비가 단순히 재화의 효용을 없애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 확장된 뜻이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소비라고 하면 흔히 낭비와 연결되어 도덕적으로 나쁜 의미와 연결되기 때문에 더 뜻밖이었다
소비가 곧 위세품, 즉 지위의 과시, 혹은 다름의 표지자라는 것은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소비는 곧 비축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더불어 문화를 발전시키며 공동체 사회에서 정을 베푸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예의범절이나 선물이라는 것도 사실은 비합리적인 소비처럼 보이나 사람들간의 정을 표현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행위들이다
또 예술품이야 말로 먹고 사는 데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 지극히 소비적이고 낭비적인 사치품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 부르고 인류가 이룩해 온 고귀한 정신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야, 즉 내일을 위한 비축품 (여기서는 이걸 낭비로 부른다)이 든든해야 비로소 고차원적인 것, 즉 예술 (이것도 역시 낭비로 볼 수 있다) 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치를 상류계급의 지위추구로만 본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론은 절반만 맞는 셈이다
또 크게 보면 소비 혹은 사치, 낭비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 중 하나다

 

이 책에서는, 진보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부르주아적인 명성과 소비를 누리는 좌파 지식인들을 비꼰다
"혁명을 팝니다" 에서 비판한 반문화와 비슷한 개념이다
또 끊임없이 남과 다른 차이, 차별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보면, 좌파 지식인들의 평등 이론이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어 조기 교육이 대표적인 예다
영어가 힘인 사회에 살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은 조기 유학을 보내 자녀를 네이티브 스피커로 만든다
반면 없는 집 애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사회의 하위 구조를 형성한다
계급이 대물림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리를 끊어야 할까?
저자는 영어 조기 교육을 공교육에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어 사대주의니 민족 자주성이니 운운하면서 공교육의 영어 조기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조기 유학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의 자식들을 계속 하층민으로 고정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 같다

 

저자는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을 들어 미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소비는 상류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매고 있는 루이비통 가방을, 조금만 애를 쓰면 평범한 한국의 직장 여성도 얼마든지 맬 수 있다
물질의 소비가 특정 계층의 차이 표지 기능을 상실해 가기 때문에 상류층은 문화의 소비를 통해 다름을 드러낸다
더구나 이 문화적 감식안이란 것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교육과 훈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니 교양이나 예술적 심미안 등은 어려서부터 고급 교육을 받아 온 전형적인 상류층의 가장 훌륭한 표지자 노릇을 할 수 있다
벼락부자 보다 재벌 2세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갑자기 떼돈을 번 사람은 문화적 우월성을 누리기 힘들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고급 문화를 익히고 교양과 매너 등을 몸에 익힌 재벌 2세는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죄다 재벌 2세가 차지할 수 밖에!!

 

그래서 부르디외는 계급의 차이를 줄이는 방편으로 미술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비단 미술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 인문학 전반의 교육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즉 공교육에서) 인문학 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면, 즉 예술을 향유할 능력을 기른다면 지식과 문화라는 상징자본이 계급성을 띄게 된 오늘날 (또 물질적 소비가 거의 평등해져 버리기도 한) 계급적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고 강조한다
수요일 하루는 학교에 가지 않고 루브르 미술관에 모여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프랑스 초등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나 역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무리인 것 같다
우선 한국 상류층의 표시가 과연 미적 심미안, 예술적인 감각인지 의심스럽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상징자본이 한국 사회에서 위세품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클래식 음악은 고사 직전이라고 징징대고 출판의 위기는 어떻게 왔는가?
상류층이 되기 위해 명품을 구입하듯 상류층으로 보이기 위해 인문학도 열심히 추구해야 할 게 아닌가?
하다못해 지적 허영심을 과시하기 위해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교양강좌라도 나가고 의무적으로라도 음악회나 미술관에 가야 할 거 아닌가?
상류층처럼 보이기 위해, 혹은 상류층을 지향하기 위해 열심히 루이비통 가방은 사들이지만 (한 달간 라면만 먹더라도 말이다) 비싼 음악회에 가거나 책을 사기 위해 굶는다는 사람은 못 봤다
오히려 책 많이 읽는다고 하면 구식케케먹은 사람, 쿨하지 못한 사람, 따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 사회에서 프랑스의 상징 자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그렇지만 학교 교육에서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교육을 강조하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계급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나 역시 단순한 암기 위주가 아니라, 실제로 예술을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현장 교육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일주일에 하루 쯤은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면 얼마나 신나겠는가!!
상징 자본의 소유가 위세품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죽은 학문이 아니고 계급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훌륭한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소비 성향과 그 의미를 분석한 훌륭한 책이다
비단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소비는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임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소비를 죄악시 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욕구,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구) 를 부정하는 피상적인 고찰일 뿐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보는 기분이 든다
더불어 위선적인 이른바 진보 지식인에 대한 일갈도 일면 시원한 구석이 있다
(아마 불편해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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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8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6-11-0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백수라서 시간이 많아요...
문화 때문에 옷 못 사 입는 사람이 바로 저 같은 부류인데 (아주 심한 건 아니지만) 책에서 나온 것 같은 상징자본으로 생각되기는 커녕 어설픈 인문주의적 성향 때문에 놀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지라... ^^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레니 리펜슈탈, 한 세기를 완전히 살다 간 여인
삶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실 이 여자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알라딘 서평으로 통해 우연히 그녀의 평전을 발견하고 집어든 책이다
이런 게 바로 독서의 확장이 아닐까 싶다
전혀 관심이 없고 모르는 분야인데, 어떤 기회를 통해 책을 접하게 되면 내 관심의 영역은 확장된다
참 멋진 일이 아닌가?
물론 평전이 워낙 길고 세세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은 없잖아 있다
일단 이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게 대부분이고 당시 나온 영화들도 본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영화라고 강조를 해도 그저 무덤덤하게 그런 게 있나 보다 할 뿐이니까
그렇지만 다음에 다른 곳에서 이런 영화들의 제목을 듣는다면 그 때는 보다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독서의 매력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확장되는 것, 그래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말이다

 

여기 나온 영화 중에 딱 하나를 본 적이 있다
프리츠 랑이 1924년에 만든 니벨룽겐이라는 무성 영화다
고전을 수집하는 아빠의 DVD 진열장에서 우연히 집어든 영화였는데 무성영화인지는 몰랐고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에 대한 관심 때문에 집어든 거였는데 뜻밖에도 흑백에다가 소리도 나오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당시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기준으로 생각하니까 레니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약간은 짐작이 간다
컴퓨터 그래픽 같은 게 없을 때니 실제로 모든 장면을 배우가 직접 연기하고 찍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특히 레니는 산악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직접 맨발로 바위를 타는 장면도 찍어야 했다
촬영이 얼마나 힘들고 심지어 생명의 위험마저 느끼게 하는 고난이도의 일이었는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재밌지는 않을 것 같다
니벨룽겐을 보면 아무래도 대사도 없고 흑백이기 때문에 화려한 영상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불친절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녀가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푸른 빛"은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일단 스토리에 관심이 간다
중세의 마녀에 얽힌 얘기 같기도 하고 마을에 하나 쯤은 전해 내려오는 다소 잔혹한 전설 같기도 하고 하여간 분위기가 참 독특할 것 같다
그런데 재밌는 건 초창기 영화라서 그랬는지 배우들을 마을에서 직접 캐스팅 하고 출연 경력이 전혀 없는 경찰관 아저씨 같은 사람도 주연으로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어찌 보면 낭만적인 얘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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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나 되는 꽤 긴 책인데 한 번에 죽 다 읽어 버렸다
두꺼운 분량에 질려 언제 다 읽나 심란하기까지 했는데 의외로 줄줄 잘 나갔다
그렇지만 독해가 아주 쉬운 건 아니었다
일단 외국 책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에 신경이 많이 쓰였고 개인적인 관심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집중도가 다소 떨어졌다
확실히 번역서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 책은 독일인이 주인공이어서 나은 편인데 러시아 책이나 일본 책은 정말 한 번에 죽 읽기 힘들다
어려운 지명과 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말이다
사실 나는 서평만 훑어 보고 이 책이 사진집이라고 착각했다
"재키 스타일" 처럼 사진 반 설명 반 이런 식의 전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손에 쥐고 보니 가운데 흑백 사진이 몇 장 끼여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독자를 위한 써비스 정도고 기본적으로 평전이었다
다소 난감했다
모르는 사람의, 특히 별 관심 없는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다는 건 굉장한 인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600페이지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읽어간 것은, 이 여자의 일생이 워낙 매력적이었고 친일 문제와 관련해 여러가지 생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치 핀업 걸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던 레니를 보면서 자꾸 서정주와 비교하게 된다
서정주를 친일 경력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가 문제는, 단정짓기가 참 어렵다
단지 작품과 작가는 별개로 평가되지 않아야 할까,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레니의 경우는 좀 다른 양상을 띤다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쟁 후 그녀는 단 한 편의 영화도 찍지 못하고 철저하게 영화계에서 소외당한다
학자도 아니고 대중 예술인에게 평단과 관객의 외면은, 더구나 투자자들의 외면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막말로 소설가나 시인은 누가 돈 대주지 않아도 읽어 주든 말든 혼자 집에서 써내려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영화라는 건 투자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매우 비싼 작업이다
그러니 아무리 상상력이 넘쳐 나고 예술에 대한 열망이 치솟아도 돈을 대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수고라는 얘기다
결국 레니는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사진찍기로 돌아 선다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레니 리펜슈탈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저 베를린 올림픽 영화를 찍은, 그래서 손기정 선수의 우승 장면 밖에는 생각이 안 나는 감독이다
책에도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 사진이 나온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라곤 이 책에 서술된 내용이 전부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이 내용만으로 본다면 과연 그녀가 뭘 그렇게 크게 잘못했는지 약간의 의문이 든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 억울하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레니 입장에서는 반유대주의 발언을 한 적도 없고 나치 정책에 특별히 동조한 것도 없고 단지 기록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히틀러의 연인이었다는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영화계에서 ?겨 나야 한다는 건 억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배우 경력이 있는 아름다운 여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비난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매력을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성적 관계까지 갖는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건 여러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그저 악의적인 가쉽에 불과한 것 같다
더구나 히틀러의 애인이었던 에바 브라운의 일기가 날조됐다는 판결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거기에 나온 내용대로 레니를 히틀러의 숨은 연인 따위로 생각한다는 건 아무리 봐도 대중들이 그렇게 만들길 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 보다는 이야깃거리를 원하는 것이다

 

서정주는 그래도 문단의 권력을 놓치지 않았지만 레니는 완전히 영화계에서 축출됐다
부정 정권에 하수인이 됐다는 비난을 받으려면 적어도 나치 정권 하에서 그럴듯한 직함이라도 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레니의 평전이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책 내용만으로는 대체 그녀가 나치에 협력한 게 뭐가 있는 건지 매우 의심스럽다
올림피아야 올림픽 기록 영화니 말할 건덕지도 못 되고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를 찍은 의지의 승리가 문제가 되는 모양인데 이것 역시 1934년 당시 독일인들은 거의 대부분 히틀러를 지지했고 미친 전쟁광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 두 편 찍은 걸 가지고 평생 동안 나치 협력자라고 비판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일들이 있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사실 예술가들을 도덕적이나 정치적으로 비난한다는 게 어느 선까지가 옳은 일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서정주만 해도 그렇다
대표적인 친일파 시인이지만 그 사람만큼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도 드물다
예술과 예술가는 별개라고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
그렇지만 또 예술가의 기본 정신이 시에 녹아나는 것이니 100%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는 바대로 레니나 서정주 모두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머무르지 못하고 진짜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기 때문에 끊임없이 평가의 대상이 됐는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말 것도 없는 함량 미달의 작품이었다면 오늘날 비평가들을 괴롭힐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너무 수준있는 예술 작품이 되버려서 무조건 그 정신이 나쁘다고 욕할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약간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생활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이혼을 한다거나 부적절한 대상과 연애를 하면 경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심지어 해고당할 위험도 있다
일만 잘 하면 됐지 사생활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있지만 이건 겉으로 하는 옳은 말일 뿐이고 실제 속마음은 어느 정도 비난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다면 좀 더 논의를 확대해서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했다고 예술 작품까지 비난받아 마땅한가?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고 감독이 영화만 잘 만드면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작품에 녹아 있는 정신이 문제라고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멀쩡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파시즘이 어쩌네 하는 비평이야 말로, 편견에 가득찬 악의적인 비판일 뿐이다
같은 사진을 다른 사람이 찍으면 찬탄의 대상이 되는데 레니가 찍으면 파시즘을 찬양하는 사진으로 돌변한다
저자가 일부러 어처구니 없는 사례를 뽑은 거겠지만, 아프리카 누부족의 육체를 찍은 게 대체 어떻게 파시즘과 연관되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수전 손택이라는 유명한 비평가가 이렇게 말했다니, 갑자기 그녀의 다른 해석들에도 의심이 생긴다
평론가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가 이미 정한 논리에 맞춰 작품들을 해석하는 건 아닐까?
레니의 사진이 그런 식으로 비난받는다면 거꾸로 그네들이 위대하다고 칭찬하는 작품들도 사실은 지나친 과장에 불과한 건 아닐까?

 

만약 예술가가 권력을 휘둘러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면, 과연 그의 예술 작품은 어떻게 평가되야 할까?
어려운 문제지만 가능하다면 분리되야 한다고 믿고 싶다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같은 걸 찬양한다면?
정말 어려운 문제지만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자유로 허용되야 하지 않을까?
비난받을 수는 있겠지만 단지 그 내용의 불순함 때문에 매장되야 하는 건 지나친 처사이지 않을까?
어찌 됐든 자유민주주의 사회란 자기 의견을 개진할 자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 사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금지된다면?
솔직히 일개 예술가가 그렇게까지 대중을 계몽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인종 차별주의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건 감독이 대중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인종주의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1930년대 독일인들은 레니처럼 히틀러를 위대하게 생각했고 자신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의식조차 못했던 것이다
모두가 공범자가 아닌가?
레니 혼자 받아야 할 비난은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매력적인 삶이었다
102세라는 기록적인 수명을 산 것도 그렇고, 70세의 나이에 스킨 스쿠버를 배워 수중 촬영을 한 점도 그녀가 얼마나 도전적인지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영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선택을 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특히 60대의 나이로 무려 40여 세나 어린 20대의 청년과 동거한 것은 주목할 만 한 사건이다
얼마나 매력이 넘치는 할머니였으면 손자뻘 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을까?
그 남자와의 관계는 레니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됐으니 무려 30년을 넘게 살았다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프리카 누부족 촬영할 때 랜드로버를 운전해 주는 기사로 만나 스킨 스쿠버를 함께 배우며 평생을 살아간 동반자적 관계
마치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을 보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면 젊은 애인을 갖는 것도 대단한 능력 같다

 

산악 영화를 찍을 때의 강인함도 인상적이었다
맨발로 바위를 타는 장면을 찍을 때는 그녀의 열정이 정말 놀라웠다
천성적으로 육체 활동을 즐긴 듯 하다
스키도 좋아하고 등산은 평생 사랑한 취미였다
편집 작업에 지쳐 휴가를 얻으면 알프스 산으로 올라갔을 정도니 그녀의 산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알 만 하다
그래서 늙어서까지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했고 무엇보다 체력이 튼튼하고 오래 살았던 것 같다
어쨌든 102세라는 나이는 경이적인 숫자다

 

아프리카 누부족들에 대한 비난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누부족의 전통이 사라짐을 안타까워 하는 게 문명인들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에 불과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길 원하지만 정작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길 원한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부족들도 더 이상 사냥하면서 원시 부족으로 살기 보다는, 그래서 그들의 관찰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물질 문명의 혜택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또 그래야 앞으로의 후손들도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레니의 입장도 틀린 건 아니다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해 봤자 사회의 최하층민이 될 것이고 자신들의 자부심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그들은 패배자가 될 뿐이다
그나마 모여 있을 때는, 또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상태에서는 전통에 기대어 전사로서의 자부심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부족 사회가 해체되면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할 울타리는 없어져 버린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찌 보면 레니의 비판자들처럼 이미 레니는 그들의 사진을 팔아다 돈을 얻는다
그런데도 누부족이 돈을 모르고 언제까지나 문명세계 사람들의 관찰 대상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너무 이기적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뭐가 됐든 이제 전통 부족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하고 말 것도 없게 됐지만 그들이 사회 최하층민으로 편입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또 레니가 절대로 그들을 진실로 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누부족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부족의 해체를 안타까워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분량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특히 히틀러와 제3제국에 관한 얘기는 역사책에서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난 왠지 히틀러가 그 콧수염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자꾸 코믹한 느낌이 든다
무솔리니나 스탈린은 전혀 그렇지 않는데 히틀러는 왠지 꼭두각시나 어릿광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책에 묘사된 히틀러는 레니의 시각으로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다지 잔인하지도 미치광이도 아니었다
인간에게는 원래 여러 면이 있는 거니까 그렇겠지만 말이다
괴벨스라는 사람도 나치 선전부장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 난다
역시 역사책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 정열적인 여자는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진부한 말이 딱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그녀의 전기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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