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세계 -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
존 H. 엘리엇 엮음, 김원중 외 옮김 / 새물결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신문에서 미국 내 소수 인종 비율이 바뀌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히스패닉이 흑인을 앞질렀다는 것이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히스패닉은 단순히 스페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인이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앵글로 색슨 문화를 향유하는 백인들과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헌팅턴이 쓴 "미국" 이라는 책에서도 히스패닉인의 유입 증가에 따른 미국의 분열을 우려했는데, 이제는 이중 언어 정책이 논의의 수위에 오를 모양이다
확실히 수적으로 승부하는데는 못당하는 것 같다

스페인 하면 생각나는 것, 카톨릭, 대가족, 플라멩고, 돈 키호테, 콜럼버스 기타 등등...
피상적이고 단편적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그 보다도 훨씬 더 단조롭다
사실 남아메리카의 지도는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막연하게나마 "해피 투게터"에서 양조위와 장국영이 가고 싶어했던 이과수 폭포가 있는 아르헨티나 정도가 구체적으로 다가올까?
그만큼 관심이 없는 지역이었다
"백년 안의 고독" 이 노벨상도 받고 알라딘에 심심찮게 리뷰가 올라올 만큼 인기가 좋았는데도 왠지 끌리지가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도 마찬가지
뭐랄까,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느낌이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양식이랄까?
이 책에서는 이것이야 말로 라틴 문학의 특성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환상 문학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인 서구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수 밖에 없다는 문구를 읽고서야 라틴 문학이 소설을 풀어가는 방식이 서유럽이나 미국 쪽과는 매우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런 점 때문에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도 2세의 결합으로 시작된 레콩키스타야 말로 스페인의 역사를 결정지은 가장 큰 사건인 것 같다
무어인을 몰아내고 국토 재수복 과정을 통해 하나의 스페인으로 태어났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스페인도 과거 우리의 삼국 시대처럼 독립된 소왕국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기독교라는 정신적 지주 아래로 단결할 수 밖에 없었던 속사정도 알게 됐다
모든 스페인인은 카톨릭 교도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나라
무어인과 유대인을 몰아 내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투쟁한 나라
엘 그레코와 피카소, 벨라스케스, 그리고 위대한 고야의 나라
그러고 보면 스페인의 영향력도 엄청난 것 같다
당장 라틴 아메리카만 생각해도 어딘가!!
아메리카가 여전히 앵글로 색슨 중심인데 반해 라틴 아메리카는 단순한 스페인인이 아닌 메소티스라는 혼혈인의 나라라는 점이 특이하다
과연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스페인 문화권이라는 공동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인디오 문화가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이식된 문화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백년 안의 고독" 을 읽어 봐야 감을 좀 잡을 것 같다

미국의 히스패닉 문화에 대한 단락이 제일 흥미로웠다
여러 사람이 쓴 글이라 통일성이 부족하고 중구난방인 점은 상당히 불만스럽지만 꼭 뷔페 가서 이것저것 집어 먹은 기분이 든다
스페인 미술사도 재밌게 읽었다
엘 그레코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아비뇽의 처녀들" 과 엘 그레코의 "묵시론적 환상" 이 비슷한 분위기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랬다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인가?
16세기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엘 그레코의 그림에 관심이 많이 간다
역시 프라도 미술관을 가 봐야 할 것 같다

스페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독서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 같다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진부한 표현이 딱 들어 맞는다
관심 분야의 확대, 혹은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
막연하게 투우사와 플라멩고의 나라라고만 알고 있던 나라를 새롭게 인지하게 돼서 기쁘다
더더군다나 관심이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이제는 어느 정도 흥미가 생긴다
역시 독서는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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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 - 천재 과학자 27명의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차마 리뷰 쓰기가 미안할 정도로 정말 대충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너무 바빠 결국은 겉만 슬쩍 훑고 나서 반납하게 됐다
바쁜 일상을 탓할 수 밖에...

관심있는 사람들 편만 먼저 읽었다
역시 가장 흥미롭고 재밌게 읽은 과학자는 리처드 도킨스다
과학자라기 보다는 과학 저술가 내지는 평론가라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여튼 이 아저씨의 문장력은 언제나 위트가 넘치고 직설적이고 단호해서 읽을 때마다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심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진화가 곧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도킨스의 글이 시원한 청량음료처럼 느껴지리라

다중 지능론을 주장한 하워드 가드너의 글도 재밌게 읽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겸손한 척 하지 않고 대놓고 자랑을 한다
겸손이 미덕인 사회가 아님을, 미국인들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느낀다
자랑해도 될 만한 사람들이 자부심에 넘치는 글을 쓰는 건 대환영이다

과학자들은 확실히 다른 족속 같다
그 지긋지긋한 물리나 화학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유명 과학자들을 많이 안다면 책 읽는 기쁨이 배가 될 것 같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크리스피 크림에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 결국 이 책을 다 읽었다
항상 내가 생각했던 로망 중 하나가 조용한 커피숖 혹은 스타벅스처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종업원 눈치 볼 필요 없는 곳에서 몇 시간씩 책을 읽는 거였는데 비로소 실천에 옮기게 됐다
옆 사람과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듣고 싶지 않은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는 괴로움도 있었지만, 독서 환경이 바뀌어서 신선함 점도 있고, 또 책 내용이 워낙 평이하고 재밌어 비교적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칼 세이건의 전처였던 린 마굴리스 에세이를 보고 눈이 번쩍 띄였다
열 네 살에 대학에 입학한 뒤 열 여섯 살 때 다섯 살 연상의 세이건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전 남편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서스름 없이 전 남편과의 연애담을 기술하는 게 다소 놀랍다
세이건이 워낙 자신감이 넘치고 똑똑한 사람이다 보니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만 지적 자극도 많이 받았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이혼은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파트너는 부담스럽다

스티븐 핑커의 기억 조작론도 재밌었다
인문과학이 점점 자연과학에 예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절감한다
결국 뇌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 신비화를 벗겨 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정신이라고 지칭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그저 신경 화학 작용에 불과하다는 게 밝혀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스티븐 핑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감정에 맞춰 재구성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과학자를 만들어 낸 어린 시절 경험 같은 건, 사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경험의 차이를 전면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미국인이라면 거의 똑같은 경험을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유의한 차이는 유전, 즉 타고난 성향이라는 얘기다
쌍둥이를 전혀 다른 환경에서 키워도 같이 자란 입양아들 보다 훨씬 비슷하게 성장한다는 식의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 왔다
그러고 보면 영재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은 교육업자들 돈 벌어 주는 짓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끊임없는 호기심을 들 수 있겠다
일회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연속적인 호기심 말이다
나 역시 호기심이라면, 특히 지적 호기심은 누구 못지 않게 강한데 세계적인 과학자는 커녕, 오늘날 이 모양으로 한심하게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연속적이지 못한 데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뭔가 그럴 듯한 업적이라는 걸 이루려면 쉽게 질려서는 안 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난 너무 금방 지치는 게 문제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라마찬드란이 한 말이다
흔히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구는 고행길이라고 참고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획기적인 발견은 순간적인 영감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왓슨과 크릭이 겨우 6개월 만에 DNA 나선 구조를 밝혀낸 것처럼 말이다
어느 수준에 도달하려면 지긋지긋한 훈련 과정을 밟아야 하긴 하지만, 라마찬드란이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인생은 짧고 쏟을 수 있는 노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식하게 파고 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창의성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면 된다, 식의 구호는 정말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이제 천재의 99% 노력과 1% 영감설은 너무 낡은 표현이 된 것 같다

하여튼 새삼 느낀 것이 아이들 교육에 다양한 경험과 도서관 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조기 유학은,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일견 부러운 면이 있다
일단 영어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엄청난 정보를 받아들일 기본을 갖췄다는 얘기니까
한국어로 된 정보다 다 소화하지 못하긴 하지만, 어쨌든 영어를 구사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수십배 커진다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로버트 레드포드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의 과거 이력까지 꽤 자세하게 나온 기사였는데 좋아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구글에 그 사람 이름을 입력했다
그랬더니 방금 내가 읽은 기사의 원문이 그대로 뜨는 게 아닌가?
내가 읽은 기사는 분명히 한국 기자의 이름으로 쓰여졌는데 정작 원문은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그 기자는 외국 싸이트에서 적당히 정보를 빌려와 손질해 기사를 쓴 것이다
그 때 느꼈던 그 배신감!!
결국 영어라는 장벽이 있기 때문에 그걸 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기자나 작가 같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그 정보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직접 구글에서 검색해도 될 일을, 언어의 한계 때문에 걸러진 정보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 구글에 검색을 해 보면 정말 똑같은 문장을 단지 번역만 해서 책에 실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말이다
인터넷이 무섭긴 무섭다
결국 정보의 공유화가 세상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고, 사람들 사이를 평등하게 만들고, 영어라는 언어가 barrier를 형성하는 느낌이 든다

책 읽다가 자꾸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데, 하여튼 재밌게 읽은 책이고, 유명 저술가들이라 문장력이나 위트가 넘치며 한 편의 에세이로서 완성도는 좀 떨어지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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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김태용 감독, 문소리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좋은 영화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어떤 영화는 역시, 사람들이 칭찬할 만 하다,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고, 또 어떤 영화는 작품 질에 비해 너무 뻥튀기 된 게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다
괴물이나 왕의 남자가 그랬다
이번 "가족의 탄생" 은 뭐랄까, 나는 주제의식이 선명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영화 보면서 내내 "대체 주장하는 바가 뭐야" 이렇게 중얼거렸으니까

문소리는 역시 연기를 잘 하고 (그렇지만 마지막에 나이든 역으로 나와 오버하는 건 좀 부자연스러웠다 너무 전형적이라고 해야 할까?) 엄태웅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저 엄정화 동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깜짝 놀랬다
그런데 의외로 엄태웅 비중이 작아서 좀 의아했다
공효진도 참 자연스럽다
배우마다 자기에게 딱 맞는 캐릭터가 있는 것 같다
가운데 잠깐 나온 류승범은 과연 우정 출연이라는 게 실감날 정도로 아무 의미없이 있다가 사라지고...
일본어로 관광 가이드 하는 공효진 모습, 깜찍했다
역시 일본어 발음은 사근사근 하다
젊은 고두심을 본 것도 재밌었다
언젠가 고두심이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때 토크쇼에 나온 적이 있다
혜은이 토크쇼에 게스트로 초대됐는데 (전인화랑 같이) 얼마나 화려하게 하고 나왔는지 깜짝 놀랬다
아무리 한국의 어머니상을 구현한다 해도 배우는 배우인 모양이다, 화려한 끼는 내제되어 있었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딱 그 모습을 본 기분이다

왜 영화 속의 미라는 김사장과 결혼하지 못했을까?
동생 형철 때문에?
형철은 그 뒤로 소식을 딱 끊은 것 같은데 어떤 사연으로 채영과 무신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을까?
그 부분이 생략되어 좀 아쉽다
그렇지만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일종의 대안 가족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언젠가 저출산 해결책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혼모와 아이의 가정도 인정하고, (그러러면 빨리 호주제 폐지되고) 동성애자들이 입양하는 것도 인정하고, 여러 형태의 가정을 정상적인 울타리 범주로 받아들여야 출산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결혼한 성인남녀 (그것도 둘 다 초혼이어야 하고 나이도 엇비슷해야 하고 심지어 집안까지도!!) 가 낳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 집만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한다는 건 너무 좁은 폭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김명민이 나온 "불량가족" 이 생각난다
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에서 본 이런 구절도 생각난다
공화당이 낙태 반대를 외치는 진정한 이유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미혼모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함으로써 그들을 벌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낙태는 못하게 하고 미혼모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하지 않는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낙태 반대는 생명권 옹호라기 보다는 (그런 부분은 적고)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구호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생명권을 지키고 싶다면 혼전순결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피임법을 섹스 가능한 나이부터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더불어 미혼모들도 정상적인 가족의 울타리 안에 끼워 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가능하면 원하지 않는 아이는 안 낳고 (즉 낙태시킬 필요가 없이) 생기면 마음 편하게 낳는 쪽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경석(봉태규)이는 채영(정유미)이 너무 착해서 봉으로 보인다고 화를 낸다
확실히 채영은 좀 모자란 구석이 있다
영화 속에서는 예쁘게 그려지지만, 실제로 내 애인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끌려 다닌다면 정말 화날 것 같다
헤프다는 말에 화가 나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면서 채영이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헤픈 게 나쁜 거야?"
이 대사는 진짜 깬다
여기서 헤프다는 건 남자들에게 쉽게 마음을 허락하고 더 나아가 몸까지 주는 거 아니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데 말이다
하긴 반드시 여자만 성적으로 정숙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니 뭐, 넓게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정을 퍼 주는 채영이 나는 좀 부담스러웠고 경석이 화를 내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힘들다고 채영에게 전화해 하소연 하면서 꾼 돈을 안 갚으려는 선배의 전화를 받은 채영은, 역시나 착한 성격답게 급한 거 아니니깍 걱정마세요, 라고 대꾸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석이 전화를 뺏어 들고 이렇게 말한다
"형, 제발 징징대지 좀 마, 사람 다 힘들어, 그리고 채영이 돈 빨리 갚아!!"
이 대사가 어찌나 시원하던지~~
자기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 그러면서 남의 호의를 이익 챙기는 쪽으로 이용하려는 사람, 정말 싫다

무신(고두심)과 형철(엄태웅)의 결합은 참 깨는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어머니 같은 나이의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가 있을까?
여선생님과 결혼한 남제자도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 여자가 열 댓 살 어린 건 오히려 남자가 능력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왜 남자 나이 어린 건 한 두 살이라도 파격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늙은 마누라 데리고 살기 힘들다는 쪽으로 생각하고 불쌍하게 생각한다
왜 이런 편견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걸까?
확실히 남자들은 어린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남자는 여자의 젊음과 미모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의 사회적 지위와 돈을 원한다는 속설이 생각난다

하여튼 영화 보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관용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성숙한 사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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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kor 2007-05-0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명받은 데가 저랑 비슷하시네요 정유미를 발견한 것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리멸렬한 마무리 때문에 디비디구입은 망설이게 되네요
 
천국의 아이들 - 할인행사
마지드 마지디 감독, 바하레 시디키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사실 오래 전에 구입한 건데 선뜻 끌리지가 않아 계속 미루던 참이었다
왠지 신파일 것 같고 운동화 한 켤레에 얽힌 남매의 절절한 사연, 이런 식으로 억지 감동을 줄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이런데도 안 울고 배겨?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나의 편견에 불과했다
역시 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닌가 보다

한 시간 30분 밖에 안 된 영화라 길이 면에서도 마음에 든다
왠만큼 재밌는 영화가 아니면 2시간 넘게 집중하는 건 좀 힘들다
마지막 장면에 몇 분 더 추가로 에필로그 같은 걸 넣을 수도 있었을텐데 깔끔하게 잘라 버린 점이, 아쉽기도 하고 여운이 남기도 하고, 무엇보다 리얼리티가 있어서 좋았다
보통 다른 영화 같았다면 알리가 1등을 해 버려서 동생 자라의 신발을 못 가져 왔으니, 독지가가 나서서 사줬다거나 (해피 엔딩이라면), 아니면 1등 상품을 받고도 슬퍼하는 두 남매의 모습을 몇 분 더 끌 수도 있었을텐데 (비극적 결말이라면) 이도 저도 아니고, 마라톤 대회에서 딱 끝난 점이 신선했다
그리고 실망하는 자라와, 알리의 모습을 한 번씩만 비추고 끝!!

자라역을 맡은 꼬마 배우는, 예쁘게 자랐을 것 같다
다코타 패닝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건 아닌데, 눈매가 보통이 아니다
아주 나쁘지도 아주 착하지도 않은 딱 그만한 나이의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
자라가 자기 신발을 훔쳐 간 애를 찾아내고 오빠랑 둘이 그 집으로 간다
그런데 학생의 아버지는 장님이었다!!
겨우 1학년, 3학년 남매는 자기들도 신발이 없어 바꿔 신는 처지에, 도저히 신발을 달라고 할 수 없어 돌아서고 만다
이 장면에 제일 감동적이었다
어쩜 이런 설정을 했는지, 감독에게 감탄하는 바다
아마도 그 신발 도둑은, 훔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냥 주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알리가 수선한 자라의 신발을 일부러 안 보이는 곳에 감춰 둔 건데 그걸 주웠다고 생각하기엔 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하긴 나중에 꼬마애의 어머니가 고물상에 판 걸 보면 누가 주어가도 그만일 낡은 구두였음은 분명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나중에 그 아이가 자라의 볼펜을 주은 후 다시 돌려 주는 장면이 삽입되어 더 마음이 따뜻했다
그러니까 이 꼬마애는 절대 나쁜 어린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 의도없이 저지른 행위가 두 남매에게 큰 고통을 줬을 뿐...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격언도 영화에 나온다
정원사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알리의 아버지는, 아들 알리 덕분에 큰 돈을 번다
두 부자는 행복에 들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너무 꿈에 부풀었다 싶었는데, 역시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자전거는 개울에 처박히고 알리네 부자는 오히려 병원비로 더 큰 돈이 나간다
역시 약속했던 자라의 신발은 사지 못한다
사람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가 보다
절정의 순간에 바로 찾아 온 불행이라니...

 

역시 제일 멋있었던 장면은 알리의 달리기 질주였다
꼬마애가 어찌나 잘 뛰는지, 신발을 전해주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알리와 자라의 모습이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알리, 힘내!!" 라고 소리쳤다
간만에 영화에 몰입한 셈이다
차라리 최선을 다해 뛴 후 마지막에 주춤거렸으면 좋았을 것을, 어설프게 눈치보면서 3등 하려고 하다가 결국 추격당해 전력질주 한 결과 1등을 하고 만 알리
"챔피언, 웃어 봐" 하는 기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알리, 이럴 때 마음 넓은 어른이 나타나 우울해 하는 이유를 알아 차리고 좀 도와 주면 안 될까?
신문 기사거리로도 훌륭한데 말이다

 

신발을 바꿔 신고 등교하는 바람에 항상 지각을 하는 알리의 마음을 모르고 선생님은 알리를 쫓아냐려고 한다
왜 알리는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을까?
성적도 상위권이고 꽤 똑똑한 아이인데도 말이다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말하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낑낑댄다
어른들에게 얘기하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도 말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이다
데미안의 싱클레어 역시 매우 부당하게 협박을 받는데도 식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데미안이 나타나면서 빛의 세계로 돌아온다
알리에게도 그런 데미안 같은 존재가 나타나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다행히 알리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직감하고 알리를 옹호해 준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애의 고민을 들어 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란의 평범한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좌식 생활을 한다는 점,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쓴다는 점, 집에는 항상 차가 있다는 점, 사원에서 차에 설탕 조각을 넣어서 마신다는 점 등이 퍽 흥미로웠다
여자들이 반드시 차도르를 쓴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까 그것도 감회가 새롭다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서 하는 것도 어쩌면 남녀 분리를 위해서인 것 같다
얼굴은 내 놓아도 되는데 머리를 가리는 걸 보면, 머리카락을 보이는 게 성적인 의미가 들어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다
아예 얼굴을 가리는 경우도 있지만 심하지 않을 때도 반드시 머리카락은 가리는 걸 보면, 이슬람 문화에 여자의 머리는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문화적 차이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도르 착용 모습은 편하지가 않았다
자발적으로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차도르를 쓰는 건 얼마든지 편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슬람의 모든 여자들은 반드시 차도르를 써야 한다면 이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차도르를 벗어라" 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개인의 선택과 국가의, 혹은 종교의 강요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겠는가?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영화가 많이 수입되서 상영됐으면 좋겠다
영화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는 드문 것 같다
책 보다도 훨씬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간만에 본 정말 재밌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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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bino 2007-04-02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아빠가 여동생 신발을 사오시는 장면으로 훈훈함을... ^^
 
좋은 친구들 SE [워너 9월 11900원 할인전]
워너브라더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역시 독특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갱스 어브 뉴욕, 을 비롯해 디파티드도 그렇고 이 영화 역시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타란티노와 더불어 정말 개성있는 감독이다

 

실화라서 그런지 더욱 실감이 난다
갱스터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그들의 실체가 잘 드러난 영화다
직장에서 죽어라 일하고 세금 바치고 작은 월급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밥벌레가 되고 싶지 않다는 헨리 힐의 독백을 나는 너무나 공감했다
아마 갱스터가 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직장인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성이나 취향과 관계없이 직장에 나가고 작은 돈을 벌어 가족과 먹고 산다
그 날이 그 날 같고 인생은 지루함의 연속이고 직장에서 안 잘리면 천만다행인 그런 똑같은 나날이 반복된다
알라딘에 맨날 토로하는 얘기도 그런 직장인의 비애가 아닌가?
아마도 헨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고, 갱스터가 되지 않는 이상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면 밥 벌어 먹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특별히 머리가 좋지도 않고 (공부 쪽으로) 좁아터진 집에 불구인 동생을 포함해 일곱 식구가 우글거릴 정도로 가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헨리가 폼나게 사는 길은 갱스터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사는 동네는 이탈리아계 마피아인 폴리의 구역이었다
폴리의 부하들이 저지르는 꺼리낌 없는 행동들, 일종의 특권은 어린 헨리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경찰도 제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폴리는 어두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질서를 잡아주기까지 한다
내가 보기에 헨리는 갱스터가 될 자질이 충분한 아이다
자발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말 원해서 하는 거 말이다
설경구랑 조한선 나온 "열혈남아"를 보면, 모두 억지로 상황 때문에 조폭이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헨리는 정말 그 일을 원하고, 그런 직업을 즐기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기지만, 갱스터로서의 정체성이 확실하다고 해야 할까?

 

생각이 없을 정도로 잔인하기 그지없는 토미를 보면서 분명히 어디서 본 배우다, 싶었는데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역시나, "나홀로집에" 나왔던 어설픈 악당이었다
왠만큼 유명한 외국 배우가 아니면 구분을 잘 못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딱 눈에 들어왔다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영화 속의 토미는 정말 너무 잔인하고 살인을 즐긴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antisocial personality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겁도 없이 마피아를 죽이는 바람에 총맞아 죽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참 웃긴다
순수 이탈리아인만 마피아 조직에 들어올 수 있는데, 토미가 마피아로 인정받게 된다
그들의 친구인 지미와 헨리는 기쁨에 들떠 이제 자신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조직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한 토미는 어머니가 맞춰준 양복을 입고 의기양양하게 마피아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총맞아 죽고 만다
얼굴을 쏘는 바람에 얼굴이 심하게 뭉개져 어머니는 관도 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5.18 때 총맞은 사람들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코 등이 뭉개져 형체가 없어진 사진이었는데, 너무 무서워 벌벌 떨었다
영화 속에서는 총 쏘는 장면만 보여 주고 끝인데 사후처리 장면을 보여 준다면 정말 잔인하고 끔찍할 것이다
보통 주인공은 총을 신나게 쏴 댄다
그리고 혼자서 대부분의 악당을 전부 해치운다
그렇지만 주인공에게 총맞은 이들의 다음 모습은 더 이상 안 나오니까 동정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주인공의 끔찍한 살해 행위를 보면 더이상 공감이 안 가고 멋있게 보이기는 커녕 잔인하게 느껴져서 불편하다

 

로버트 드 니로는 얼마 전에 본 "택시 드라이버" 때와 너무 달라 얼른 못 알아 봤다
알 파치노와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믿었던 헨리에게 뒤통수를 맞고 20년을 복역하게 생겼으니 인간을 믿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보내고 있을까?
2004년까지는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는데, 과연 출소했을지 어떨지 궁금하다
나와봤자 벌써 70이 넘은 노인이겠지만...

 

좀 이해가 안 간 부분은, 마피아의 보스인 폴리가 헨리의 증언에 의해 기소됐고 역시 20년이 넘는 형을 언도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헨리는 마피아의 복수를 피해 간 걸까?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의해 모든 기록이 말소된 채 5년간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간다고 나왔는데, 영화 속에 묘사된 마피아들은 5년이 지났다고 해서 그래도 놔 두지 않을 놈들이다
역시 연방 정부에 맞서기엔 그저 한낱 범죄 집단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보스인 폴리가 감옥에서 평생 썩게 된 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한 2인자에 의해 용서를 받은 걸까?
조직 내의 역학 관계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생각만큼 복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전국적인 조직망이 아닌 이상 그 넓은 미국땅에서 주민등록증까지 말소된 헨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부 요원들이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영화 "뮌헨" 을 보면서, 이런 점을 느꼈다
암살이라는 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구나, 영화에서 쉽게 죽이는 건 정말 영화니까 가능한 거구나...
하여튼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조직은 없는 것 같다
군사력, 정보력, 인맥 기타 등등에서 모두 말이다
사조직이 국가를 능가한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국가 유지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노련한 보스 폴리는, 절대로 마약은 손대서 안 된다고 헨리에게 경고한다
아마 자기 경험을 토대로 한 얘기였을 것이다
마약 거래를 하면 연방정부에서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국 정부는 다른 건 다 몰라도 마약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폐해가 심각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감옥에서 평생을 썩기 싫으면 마약에 절대 손대지 말라는 폴리의 조언을 받아들이기엔, 헨리는 너무 젊고 야심만만 했던 것일까?
결국 마약 거래 때문에 헨리는 기소됐고 절묘하게 증인이 되서 빠져 나오긴 했지만, 평생 믿고 의지하던 친구들을 배신했고 증오해 마지 않던 삶, 밥벌레 같은 삶을 살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도박판에서 돈을 많이 딴 노름꾼이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난다면?
주식에서 돈을 왕창 딴 사람이 다시는 주식에 손 안 대고 그 돈으로 쭉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이 영화 속의 헨리도 6백만불에 이르는 돈을 수중에 넣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왜 자꾸 다시 범죄 생활에서 못 벗어나는 걸까?
또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술집 나가는 아가씨가 돈을 착실하게 모아 그 생활으 청산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왜 이런 일은 불가능한 걸까?
쉽게 돈을 벌면 쉽게 잃는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생활 습관을 바꾸지 못해서인 것 같다
특히 헨리처럼 체질적으로 갱스터로서의 삶이 몸에 착 맞는 사람은 더더욱
하여튼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건 쉽게 변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그래서 도박꾼은 또 도박장으로 향하고, 주식꾼도 객장을 떠나지 못하고 술집 아가씨들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마지막에 헨리가 지미와 폴리를 배신한 건 정말 충격이었다
자기 목숨을 너무 사랑한다는 헨리의 변명이 정말 그럴 듯하게 들린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이고, 어찌 보면 어지간한 배신 행위는 목숨이 걸린 이상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긴다는 표현이 흔히 나오는데 정말 이게 가능할까?
또 죽어 버리면 그만인데 과연 생명보다 더 중요한 대의명분이 있을 수 있을까?
나처럼 작은 고통에도 벌벌 떠는 사람은 독립운동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이고, 그래서인지 영웅이라는 것도 왠지 허울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마도 나는 헨리와 같은 타입의 인간인 것 같다
물론 감옥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 절대 범죄 같은 것도 못 저지를 위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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