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에 대하여
마이클 왈쩌 지음, 송재우 옮김 / 미토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해남에 있을 때 도서관에 신청해 읽었던 것 같다
벌써 한 2년은 지난 듯...
직장에서 시간을 쪼개가면서 잠깐 잠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무척이나 감동하면서 메모하면서 열심히 읽던 생각도 난다
몰입했던 책을 서울에 온 후 다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집어든 것은, 나로서는 좀 특이한 경험이었다
어떤 책이든 재독하지 않는 편이라 이번에 다시 읽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어쩌면 지난 번에 읽은 내용을 완전히 잊어 버렸기 때문에 더 몰입하면서 재밌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 때와는 상당히 느낌이 달랐고 어쩌면 그 때 내가 제대로 책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기억과는 달리 100% 훌륭한 엄청난 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시 실체에 좀 더 가까이 가면 환상은 깨지게 되어 있는가?
그렇지만 200쪽의 분량에 충분히 훌륭한 내용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재밌게 읽었고 생각할 꺼리도 참 많다
뒤의 역자 해설을 보면 확실히 피가 뜨거운 한국 사람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관용은 조화를 위한 방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하면 죄다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자발적이 아니라 하는 수 없이 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단일 민족 국가에서 살아서인지 공동체의 관용 보다는 개인의 관용에 더 관심이 많았다
책의 주제는 독특한 사상과 전통, 습관을 가진 공동체를 국가가 어디까지 인내해 줄 수 있는가이다
가까운 일본의 재일교포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본인이 속한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러니까 재일교포들이 왜 그렇게도 처절하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집하는지 솔직히 100% 공감할 수는 없다
내가 그들에게 연민의 정, 혹은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민족의 주체성을 지킨다는 명분 때문이 아니라, 차이를 가진 모든 집단은 남을 해치지 않는 이상 사회에서 용납해 줘야 한다는, 이른바 다양함의 원리, 혹은 다문화주의에 입각해서다
하나로 통일된 종교, 가치관, 집단주의, 이런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내 성격의 특성 때문이지, 오히려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바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완벽한 개인의 자립도 어느 정도는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느꼈다
인간이 모이면 집단을 만드는 이유는, 혼자서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기본적인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 취향, 내 가치관, 내 정체성 등이 과연 나 혼자 아무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채 얻어질 수 있을까?
가장 가깝게는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을 것이고, 조금 멀게는 내가 태어난 지역, 내 국가 등이 나를 규정하는 기본적인 단위가 될 것이다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집단은 (종교집단이나 민족공동체 등을 포함해서) 구성원을 억압하지만 대신 강력한 소속감을 주고 정체성의 단단한 기반을 제공한다
저자의 우려대로 완벽한 개인으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서 있는 사람은, 인종주의나 전체주의 선동가들에게 이용당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건전한 집단에 속해 (가정을 포함해) 사회화를 배우고 바람직한 의사표현 방식을 습득하는 게 사회 안정을 위해서 훨씬 더 이익일 것이다

스페인의 바스크족이라던가, 미국 인디언, 혹은 흑인 집단, 프랑스의 이슬람교인 등등 공동체의 관용을 요구하는 이질적인 집합체는 많다
우리나라라면 여호와의 증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그룹 등이 있을까?
문제는 공동체의 관용이 개인의 관용에 앞설 수 있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교의 머릿수건 착용과 여성할례(혹은 음핵적출)이 있다
프랑스 학교에서는 한 때 여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머릿수건 착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개방적인 교육 정책이 도입된 후 지금은 머릿수건 착용이 허용됐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정작 그 수건을 써야 하는 이슬람 여학생들은 그 정책으로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여성 억압의 대표적인 상징인 머릿수건 착용을 원하지 않지만, 프랑스 정부가 착용을 허용한 뒤부터 집안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고 다닌다고 한다
집단의 관용이 우선인가, 개인의 관용이 먼저인가?
집단은 문화를 재생산할 권리가 있다
즉 자신의 아이들에게 문화를 전수하고 강요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문화를 2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물론 나는 개인의 권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아무 결정권도 없는 유아 때 시행되는 끔찍한 음핵적출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부모와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라고 믿기 때문에 대안학교에 보낸다거나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집에서 교육시킨다거나, 더 나아가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친다거나 하는 일에 매우 부정적이다
선택은 자녀의 몫이기 때문에 최소한 양쪽 모두로부터 교육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신앙을 강요하는 것도 회의적이다
재세례파라는 교파도 있지만, 진정한 믿음은 충분히 회의하고 충분히 고민하고 충분한 지식을 얻은 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관용의 형태는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싸우다 지쳐서 마지못해 용인해 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종교전쟁 후 갖게 된 신앙의 자유가 있다
두번째는 그러든가 말든가 니네 알아서 살아라, 하고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세번째는 도덕적 스토아주의에서 나온 입장으로,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타인은 그 권리를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인정해 준다는 입장이다
네 번째는 타인에 대한 열린 태도로, 차이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고 관심을 갖으며 심지어 배우려고까지 한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혹시 대한민국이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존경하면서 따르는 것 정도나 될까? 이것은 아마도 권력차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자율적인 선택이 인간 번영의 필수조건이므로 차이는 반드시 존재하야 한다는 다문화주의자 정도가 있을 것이다
내 입장은, 세 번째 도덕적 스토아주의 정도가 될 것 같다
나 역시 매우 편협한 사람으로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하다
그렇지만 내가 내 맘대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 권리가 있는 만큼 남도 그 권리를 행사할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저자는 민족-국가에서는 민족이 가장 큰 문화집단이 되기 때문에 다른 소수의 모든 집단을 억압하고 오히려 개인에게 관용의 폭을 넓힌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에 과연 맞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종교가 아예 헌법인 끔찍한 중동 국가들도 있지만, 혹은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수십년이 통치되는 왕국 같은 전체주의 사회도 있지만 하여튼 한국도 개인에게 너그러운 곳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는, 오히려 민족국가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강화된 느낌이 든다
이것은 저자가 언급한 집단에 대한 관용과는 별개로 다루어야 할 문화적 특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지적대로 만약 개인이 집단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면 (정체성 유지를 위해) 집단과 계급의 결속을 깰 수 있도록 국가가 도움을 주는 실제적인 방법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이를테면 책에 나온 바대로, 인디언들 사이에 공무원 계급을 만들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지역할당이나 여성쿼터제 같은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개인에게 특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혜택을 주는 식이다
역차별 논란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실보다 득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집단과 계급의 고착이야 말로 사회를 수직적으로 가르는 가장 큰 위험성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말하면 좀 우습지만 전라도 사람은 절대 고위직에 못 오른다, 이런 식의 인식을 깨려면 전라도 출신에게 일정 부분 고위직을 분배하는 식으로 말이다
미국처럼 다인종 국가에서는, 대학 입시에서 흑인이나 소수 민족을 몇 % 까지 뽑는 식의 쿼터제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관용이라고 하면 개인적인 차원의 다양성 인정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책은 다양한 집단의 공존을 테마로 잡았다
그러면서도 개인주의 보다는 수많은 건전한 집단에 소속되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집단을 통한 개인의 목소리 내기를 추구하는 것 같아 신선했다
결국 완벽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른바 개인주의의 한계 혹은 아나키즘의 한계를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더불어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고 억압하는 집단의 존재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고 (이른바 교회, 민족공동체, 인종집단 등) 민족주의나 종교적 근본주의도 어쩌면 인류 역사가 끝까지 안고 갈 본질적인 것, 곧 인간의 속성임을 깨닫는 기분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하여튼 나는 모든 종류의 관용을 지지하고, 소수 집단 특히 폐쇄적인 집단 역시 구성원들에게 그 집단을 탈퇴하거나 교리를 어기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원칙이 타인에게 이해되지 못할 수 있음까지도 관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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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당제, 관용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다.
    from 木筆 2007-06-28 16:11 
       "관용은 조화가 아니라, 생명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다. " 1. 연줄인가? 연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엠에프때 사회자본-연...
 
 
이잘코군 2007-06-2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좋은 책 읽으셨군요. 저도 찜해놓은 책입니다. 마이클 왈쩌 한번 다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롤스에 관심 가지면서 왈쩌를 알게 되었는데 왈쩌도 그렇고 관용도 그렇고 매우 심하게 끌립니다. 일단 롤스를 먼저 읽으려고요.

marine 2007-06-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안 그래도 님 생각이 났어요 왠지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여울마당님, 닉네임을 바꿔서 못 알아 봤어요^^

여울 2007-06-29 09:34   좋아요 0 | URL
ㅎㅎ. 목련을 좋아해, 목련을 뜻하는 목필木筆로 바꿨어요. 맘에 들지 않더라도 잘 봐주세여~

marine 2007-06-2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있어요 전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답니다 한자어에는 이런 운치가 있는 것 같아요^^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엮음, 안인희 옮김 / 소소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당직 선 다음날 본 책이라 너무 졸려 제대로 못 읽었다
그렇지만 정말 감동적이었고 시간을 내서 다시 읽고 싶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말 소중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너무 피곤해 꾸벅꾸벅 졸다가, 명문장을 만나 가슴깊이 감동하고 다시 졸고, 결국은 끝까지 못 읽고 책을 덮었다
어쩌면 이 책은 편파적일 수도 있다
특히 편집자 존 브룩만의 서문은 논쟁꺼리가 많다
그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아마도 자신감의 발로겠지만) 말미에 반대 의견도 같이 실어 주었다
역시 인문학자들은 지나친 과학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반론을 폈다
브룩만은 평범한 이들의 매우 평이한 수준의 불안감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을 너무 경시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평범한 우리들은 브룩만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과학이 우주와 생명체가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해 주는 "진리" 라고 생각한다
논쟁이 필요한 당위적인 의미의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실제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류가 없다는 얘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과학자가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정치 사회에 잘못 해석해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정치가나 사회학자들이 문제다
과학은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는 조국이 있다는 황우석 식의 말 만들기는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방식의 말하기야 말로 과학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남자가 보다 지배적인 성향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본능이나 유전자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차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운전할 수 있겠는가?
진실을 받아들이려면 용감해야 한다

물론 갈등은 존재한다
제일 큰 것은 역시 종교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뇌의 화학 작용에 의한, 일종의 연산에 불과하다면 대체 사후 세계나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도킨스처럼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인지과학의 발달과 기독교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불안하기는 하다
과연 신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 낸 집단적인 발명품인가?
이런 식으로 빠지다 보면 과학은 그저 세상을 보는 여러가지 관점 중 하나라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3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했던 신에 대한 개념을, 그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현대의 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건 아닐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했던 세상은 일주일 만에 세상이 창조됐고 완전한 조상, 곧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신이 만든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21세기의 인간이 꼭 수 천 년 전의 조상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런 것들은 하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진실은 변하지 않고 그것을 무기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남들과 논쟁할 필요도 없고 다만 내가 얼마나 그 진실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 문제 다음으로 힘들었던 것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지고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가장 혐오해 마지 않던, 남녀차별주의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 보면 수천년 동안 사회가 남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도 만들어 냈고 여자들 역시 핸디캡을 극복하고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그저 한 종의 특징일 따름이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을 너무나 많이 공유한 똑같은 존재들일 따름이다
인종이나 문화적인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공통점이 차이점을 압도하는, 인류라는 큰 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이런 본능이나 유전적 성과를 토대로 인종주의나 남성 우월주의로 나가려는 일반인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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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사회의 여성
김대성 외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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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빼곡히 쓰여져 있는데 눈에 확 띄는 제목 때문에 우선적으로 대출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라는 발행처가 신뢰를 주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슬람 세계의 기본적인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기분이 들어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다
한 문화권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은, 편견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얼마 전에 읽은 "러시아정교"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나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내 편견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세계관을 확대시키고 보다 관용적인 자세를 갖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식의 축적 보다도 훨씬 더 가치있는, 책의 효용성일 것이다
책 수준은 지난 번에 읽은 "러시아 정교" 가 훨씬 낫다

이슬람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명예살인으로 대표된다
가끔 해외토픽에 나오는 끔찍한 기사를 많이 접해서인지 피상적으로 분노하고 굉장한 거부감을 가졌었다
이 대명천지에 아직도 저런 어처구니 없는 살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에 의해 버젓이 자행되다니, 더구나 국가가 그것을 인정하다니,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종교적인 관습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슬람 사회가 서구로부터 겪는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모른 척 하게 된다
아프리카 난민이나 남미 지역의 가난, 환경 문제 같은 것들은, 제국주의적 정책에 반대하고 분노하게 되지만 솔직히 말해 이슬람, 특히 중동아시아 국가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편이었다
아무리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해도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고, 또 여성을 살인하게끔 만드는 사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이슬람 사회의 특성을 이해해게 됐다
역시 항상 느끼는 바지만, 결국 인간은 넓게 보면 거의가 비슷비슷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 사회를 동경하는 까닭은, 그들이 우월해서라기 보다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표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먼저 해결한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약간의 위안이 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사회나 그만그만한 문제점들이 비슷하게 분포하고, 결국 유토피아 따위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슬람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굉장히 낙후됐고 비민주적인 부분이 많으나, 그렇게 비칠 수 밖에 없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분명히 존재한다

꾸란의 초월적 규범과 맥락적 규범의 분리는 새로운 해석이었다
꾸란이 쓰여진 7세기의 사회적 편견과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경직된 적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문자주의처럼 꾸란 역시 쓰여 있는 말 그대로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려는 원리주의자들이 종교를 완고하게 만든다
꾸란은 당시 아라비아 사회의 관습에 비해 매우 진보적인 경전이었다고 한다
남녀평등을 주장했고 심지어 노예제마저 부당하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 초월적 규범일 뿐이고, 실제로 7세기 사회에 만민평등을 현실화 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7세기에 쓰여진 문장을 곧이곧대로 21세기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런 경직된 해석이야 말로 종교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가장 나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 여성은 항상 보호되어야 할 존재인가?
여성의 정조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남성들에 의해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하고, 그것은 그녀들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로 대표된다
이런 종류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항상 답답한 것은, 왜 사회가 그것을 강압하느냐는 것이다
베일로 얼굴을 가릴지 여부를 개인이 선택하면 안 될까?
굳이 보호받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까지도 죽음으로 협박하면서까기 위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가장 큰 잣대는 바로 개인의 선택을 얼만큼 존중해 주냐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정교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슬람 사회의 완고함과 보수성은,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보면 답답한 게 현실이다

꾸란 혹은 이슬람교 자체에 대한 오해나 편견은 많이 해소되었으나, 솔직히 말해 여전히 무슬림 사회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여전히 절대군주에 의해 지배되고 종교법이 곧 헌법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여성을 사회로부터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 이란의 여러 규범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책에 나온 말처럼 이슬람 종교가들이 여성에 대한 우월권을 고수하기 위해 꾸란의 맥락적 적용 대신, 절대적 해석을 계속 고집한다면 여성 인권은 계속 낙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그 사회에도 변혁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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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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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사진들, 제목이 일단 좋다
내가 좋아하는 나귀님의 리뷰를 읽고 고른 책이다
사실 이 분은 나와 취향이 매우 다른지라 (전기나 문학 쪽) 이 분의 리뷰를 읽고 책을 고르게 되면 꽤나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언젠가 읽었던 "재키 스타일" 이나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처럼 이 책 역시 내가 즐겨 읽는 분야는 아니다
사실 사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뭐랄까, 나는 여전히 문자 중심주의자다
이미지 보다는 텍스트가 훨씬 편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번에 구입한 20세기 중국 화보집도 큰 감동은 없었다
사실 이 책도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유명한 사진들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다
익숙하게 접했던 사진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세계적인 사진이라 관심이 없는 나까지도 알았던 모양이다
이미지로만 기억했던 사진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으니 꽤 소득이 있었던 셈이다

마를린 먼로나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야 화보처럼 스틸컷으로 나오는 사진들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를테면 체 게바라의 그 유명한 상반신 사진이 (체 게바라 열풍을 불러온 빨간 책의 그 얼굴) 쿠바의 어느 집회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라는 식의 소소한 뒷얘기가 재밌었다
확실히 그는 뭔가 권위가 있어 보이고 열정이나 진지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총살당한 시신의 모습까지도 눈을 부릅뜨고 살짝 미소를 흘리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베트남 경찰에 의해 즉결처형 당하기 직전의 희생자가 공포에 질린 순간을 포착한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도 워낙 유명해 나도 전에 본 적이 있다
어쩜 이런 순간을 잘도 포착해 냈을까?
수 초 후에 벌어질 죽음의 공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잘 생긴 린드버그도 언급해야겠다
용기있지만 겸손하고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했다는 이 멋진 영웅의 모습!!
린드버그라고 하면 대니얼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 이라는 책에서 끝없이 소모되었던 바로 그 가짜 이미지의 희생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실제 얼굴을 보니 대중들이 열광할 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잘 생겼어야지~~

아폴로 11호의 그 유명한 달 착륙 사진은 너무 상징적이라 그런지 오히려 감동이 적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사진에 대해 실제로 달에 간 적이 없고 미국 방송국에서 찍은 조작 사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떠올리는 걸까?
그 음모론을 듣고 있자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같은 사람들의 주장까지도 다 피해망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도 유사과학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케네디의 후두엽을 박살낸 총살 사진도 좀 시시했다
정말 후두엽 쪽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다소 끔찍한 사진을 이미 봐 버렸기 때문일까?
하여튼 이 젊은 영웅은 죽음이 그를 영원히 스타로 남겨 두게 되어 정말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그 옆에 탄 비운의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은, 지난 번에 읽은 전기 탓인지 가엾다기 보다는, 머리가 커서 남자용 모자를 써야 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라 다소 코믹하게 느껴졌다

이오지마에 깃발을 세우는 그 유명한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Sands of Iwo Jima" 라는 영화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서 바로 그 유명한 사진이 마지막 장면으로 삽입된다
고전 영화를 보면 다소 지루하긴 해도 꼭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인용되기 마련이라 도움될 때가 많은데 이 경우도 그렇다
영화를 볼 때에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 주장하는 바가 뭐야, 하면서 툴툴 거렸는데 (흑백 필름이라 상당히 지루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됐다
사진작가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됐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초등학교 때인가, TV에서 본 기억이 생생한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식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흑백사진이지만 그 화려한 대관식의 모습은 너무나 웅장하고 멋있었다
어쩌면 아직도 유럽 왕실이 살아있는 이유가 국민들에게 바로 이런 화려한 쇼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를 위해 왕관을 버린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조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양쪽에 대주교 두 사람이 그녀를 호위하고 그녀의 길다란 망토는 아름답게 치장한 여섯 명의 궁녀들이 받쳐들고 행진한다
그 뒤로 네 살 먹은 찰스 왕세자와 (지금의 코믹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때는 퍽 귀여웠다) 윈스턴 처칠이 서 있다
아, 얼마나 웅장하고 가슴 설레는 장면인지!
그러고 보면 이른바 왕실의 행사라는 것은 국민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국가 최대의 이벤트라는 점 때문에 엄청난 세금을 기꺼이 내놓는 모양이다

살짝 눈물을 흘렸던 사진도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장면이었다
영어 교과서에서 그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 을 처음 접했는데, 그 때도 어찌나 가슴이 울컥하던지 영어 공부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같은 평화주의자, 비폭력적 저항가인데도 간디의 사진은 아무런 감흥이 없는 반면, 마틴 루터 킹의 사진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어쩌면 영국 면직물을 거부하는 대신 물레를 돌려 직접 실을 잣자는 그 전통 회귀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막연하게 들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킹 목사의 연설, "I have a dream" 은 우리가 간절히 이룩하고 싶어하는 것, 피부색깔에 의해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흑인들의 차별 대우를 접하면 같은 유색인종으로써 마치 내가 당한 모욕인양 분노하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어쩌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소수자의 권리의식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하얀 옷을 입고 두건을 쓴 KKK 단의 사진은 몸서리 칠 정도로 분노했다
백인 우월주의, 혹은 인종차별주의자들,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
그런데 하필 그 KKK단의 부활을 이끈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라니, 기가 막혀서, 참~~

몇 가지 기억에 남았던 사진들을 적어 봤다
그러고 보니 문득 나도 내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욕구, 이를테면 시간을 잡아 놓고 싶은 욕구, 혹은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진을 배우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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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좀 식히려고 빌린 책이다
보통 내가 읽는 책들은 독서대에 책 올려 놓고 커피 준비하고, 노트와 필기구 갖춘 후, 책갈피까지 있어야 하는, 이를테면 정독을 요하는 책인데 지하철 안에서까지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좀 가볍게 읽어 볼까 하고 빌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감동받고 있다
옛날에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눈물 줄줄 흐를 만큼 슬플 때만 썼는데, 요즘은 작가 생각에 100% 공감하고, 글솜씨에 감탄할 때도 쓰게 된다
어찌 보면 감탄보다 더 많은 찬사를 보내는 말이, 날 완전히 감동시켰어, 이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조지 오웰, 이 사람 마음에 쏙 든다
벌써 대문호 반열에 오른 (솔직히 괴테나 톨스토이처럼 사람 주눅들게 하는 위대한 성인 같은 작가는 아니지만), 고전으로 남을 만한 책을 쓴 작가이니 나 같은 평범한 독자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대세에 아무 지장도 없겠으나, 그러나 정말 나를 감동시킨다
이 사람이 스페인 내전에 직접 총들고 참전했다는 게 충분히 믿어진다
난 가끔 번역서가 일상의 자잘한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전달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큰 줄거리라면 모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장력기 훌륭하다면 번역해서 읽더라도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난에 대해 이렇게도 상세하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그러나 이렇게도 재미나게 묘사할 작가가 또 있을까!!
작가각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고,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배고픔의 고달픔을 생생하게 묘사했다지만 이 책에 비하면 그건 정말 추상적이다
이 사람의 다른  책, "동물농장" 도 정말 재밌게 읽은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인데 이 소설도 참 맛깔스럽다
문득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어 보고 싶어진다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가난에 관한 얘기라는 게 짐작이 간다
가난, 언제나 비루하고 끔찍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을 떠올리는 단어지만 위대한 작가에 의해 묘사되니 그것도 나름 매력적으로 들린다
물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 소크라테스는 배가 덜 고팠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얘기하는 가난이란 책을 사 볼 돈은 물론 며칠을 굶어야 하는 절대 가난을 뜻한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삶도 위대한 작가가 맛깔나는 문장으로 풀어쓰면 나름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게 살짝 위안이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상황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위로받고 재미나게 생각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로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대체 언제쯤 이런 극도의 가난을 겪어 봤을까?
저자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잘 매치가 안 된다
아마 내가 책을 끝까지 안 읽어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첫 부분에 저자가 나중에 부자가 된다는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접시닦기는 노예의 노예라는 식의 재치가 번득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가 가득한 이 책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원어가 아닌 한국어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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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6-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지오웰 좋아하는데 이 책은 못봤군요.

marine 2007-06-1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몰입이 안 되서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곧 빠져 들게 됩니다 유머와 위트가 풍부한 작가죠 강추~~

비로그인 2007-06-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의 글을 읽기 전에는 조지 오웰의 가난이 절대치라고 믿었는데, 그만큼이나 생경스러우면서도 천연덕스러웠어요. 마지막 생각,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번역도 매우 매끄러웠습니다.

하이드 2007-06-1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읽고 그 식민주의적 사고관에 역겹고 불콰했답니다.위선적으로 보였거든요. 그 이후로는 조지오웰책 거들떠도 안보고 있긴합니다만... 더 읽어봐야하나 싶습니다.

marine 2007-06-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어로 읽을 수 있는 Jude님이 부러워요~~ 님 말씀처럼 번역도 잘 한 것 같아요
하이드님, 확실히 이 사람은 식민주의적 사고관이 있는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 살짝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뭐,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드님도 English로 읽으시면 좋을 듯... ^^

파란놀 2007-06-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 님 이야기는, 이분 책 번역을 곧잘 하고 있는 박경서 님이 낸 <조지 오웰>(살림,2005)을 살펴보시면, 퍽 낱낱이 아실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아늑한 삶하고는 평생 거리가 있는 채로 살다가 죽은, 그러니까 죽은 뒤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빛을 본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한 분이지요.